선교사 열전 200인
D. L. 무디 (D. L. Moody)
19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강력한 도시 부흥 운동을 이끌었으며, 무디 성경학교를 설립해 수많은 선교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시카고의 구두 판매원, 세계를 깨운 부흥사: D. L. 무디의 열정과 유산
서론: 학벌 없는 설교자, 세상을 뒤흔들다
"어느 날 설교단에 오르니, 제 앞에 앉은 한 사람이 '저 사람은 문법도 제대로 못 맞추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가진 모든 문법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이 일화는 19세기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 중 한 명이었던 D. L. 무디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는 정규 신학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그의 설교는 종종 문법에 맞지 않았다. 그는 보스턴의 가난한 구두 판매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그의 불타는 열정과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은, 그를 대서양 양쪽의 수백만 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19세기의 사도 바울'로 만들었다.
그는 전통적인 목회자가 아니었다. 그는 도시의 평신도였으며, 주일학교 교사였고, YMCA 활동가였으며, 무엇보다 탁월한 '조직가'이자 '동원가'였다. 그는 당대 최고의 찬송가 가수였던 아이라 생키(Ira D. Sankey)와 동역하며, 찬양과 설교를 결합한 현대적인 대중 전도 집회의 모델을 창시했다. 또한 그는 시카고에 무디 성경학교(Moody Bible Institute)를 설립하여, 전 세계로 나아갈 수많은 평신도 선교사들을 훈련시켰다. 본 글은 이처럼 '배우지 못했으나 세상을 바꾼' D. L. 무디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본론 1: 구두 판매원에서 영혼의 사업가로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는 1837년 매사추세츠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그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보스턴의 한 구두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한 주일학교 교사의 헌신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18세 때, 그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의 끈질긴 전도를 통해서였다. 킴볼은 구두 가게 창고에서 일하고 있던 무디를 찾아와,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했고, 무디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기로 결심했다.
회심 이후, 그의 넘치는 에너지는 새로운 방향을 찾았다. 그는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하여 시카고에서 구두 판매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진짜 열정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있었다. 그는 시카고의 빈민가 아이들을 거리에서 모아와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그의 주일학교는 놀랍게 성장하여, 1,5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이는 거대한 학교가 되었고, 심지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방문하기도 했다.
본론 2: 잿더미 속에서 발견한 사명, 세계를 향한 부흥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그가 세운 교회와 YMCA 건물, 그리고 그의 집까지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 절망의 순간에, 그는 자신의 사역이 건물이 아닌 '성령의 능력' 위에 세워져야 함을 깊이 깨달았다.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고, 그곳에서 시작된 작은 기도 모임이 예기치 않은 부흥의 불길로 번져나갔다.
무디와 생키: 현대적 전도 집회의 탄생
영국 부흥의 성공은, 그가 당대 최고의 복음성가 가수였던 아이라 생키와 운명적인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두 사람은 영국 전역과 미국을 순회하며 대규모 전도 집회를 열었다.
무디의 설교: 그의 설교는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수많은 예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어려운 신학 용어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생키의 찬양: 생키의 감동적인 찬양은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열고, 설교의 메시지가 깊이 스며들게 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 '설교와 찬양의 결합'은 현대 대중 전도 집회의 원형이 되었고, 빌리 그레이엄에게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
무디 성경학교의 설립
무디의 가장 지속적인 유산 중 하나는 교육 기관 설립이었다. 그는 1886년 시카고에,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들을 전도와 선교의 일꾼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시카고 복음화 협회(Chicago Evangelization Society)'**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그가 죽은 후 **'무디 성경학교(Moody Bible Institute)'**로 이름이 바뀌었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 수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를 파송하는 세계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그는 또한 여학생들을 위한 노스필드 학교와 남학생들을 위한 마운트 허몬 학교를 설립하여 기독교 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존 모트가 이끈 학생자원운동(SVM) 역시 무디가 개최한 수련회에서 시작되었다.
결론: 평신도의 힘을 일깨운 거인
1899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D. L. 무디는 당대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복음 전도자였다. 그는 안수받은 목사가 아니었지만, 그 어떤 목사보다도 더 많은 영혼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유산은 명확하다.
그는 '평신도 사역'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학벌이나 신학 훈련이 없어도,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만 있다면 누구나 위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그가 세운 학교들은, 부흥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D. L. 무디는 배우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지혜로웠고, 평신도였지만 누구보다 사도적이었다.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성경 말씀의 살아있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