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열전 200인
사두 선다 싱 (Sadhu Sundar Singh)
인도의 기독교 신비가이자 순회 전도자로, 인도의 전통적인 '사두'의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인도의 사두, 그리스도의 순례자가 되다: 사두 선다 싱의 신비로운 삶
서론: 히말라야의 눈길을 걷는 맨발의 전도자
20세기 초, 히말라야의 험준한 눈 덮인 산길을 맨발로 걷는 한 명의 순례자가 있었다. 그는 인도의 전통적인 힌두교 성자인 '사두(Sadhu)'처럼 머리를 길렀고, 물감나무 색의 소박한 옷 한 벌만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메시지는 힌두교의 경전이 아닌, 나사렛 예수의 산상수훈이었다. 그의 이름은 사두 선다 싱, 기독교 신앙을 가장 인도적인 방식으로 살아내고자 했던 20세기 가장 신비롭고 독창적인 복음 전도자였다.
그의 삶은 논리적인 설명만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체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부유한 시크교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를 맹렬히 박해했지만, 16세의 어린 나이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환상 속에서 인격적으로 만난 후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두'가 되었다. 그는 제도적인 교회나 서구 선교 단체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인도 전역과 금단의 땅 티베트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의 사역 방식은 설교나 변증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 즉 가난과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독사에 물리거나 맹수의 위협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차가운 감옥 속에서 신비로운 위로를 체험했다고 전해진다. 본 글은 이처럼 '인도의 바울' 혹은 '동방의 별'이라 불렸던 사두 선다 싱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독실한 시크교도 청년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는지 그의 극적인 회심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그가 왜 '사두'의 길을 선택했으며 그의 선교 방식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그의 마지막과 그가 남긴 유산의 의미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불타는 성경,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
사두 선다 싱의 그리스도를 향한 불같은 사랑은, 처음에는 불같은 증오에서 시작되었다.
기독교 박해에 앞장선 소년
1889년, 인도 펀자브 지방의 부유하고 독실한 시크교(Sikhism) 집안에서 태어난 선다 싱은 어려서부터 깊은 종교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힌두교의 구도자인 '사두'가 되기를 바라며, 7살 때부터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를 외우게 했다. 그는 시크교 경전과 힌두교 경전, 심지어 이슬람의 코란까지 탐독하며 진리를 향한 깊은 갈증을 가진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니던 미국 장로교 선교부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예수를 유일한 구원자로 가르치는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고, 기독교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돌을 던지고, 성경을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등 기독교 박해에 앞장서는 열렬한 반(反)기독교인이었다.
"나는 너를 구원하러 온 예수다"
그의 삶을 바꾼 극적인 사건은 그가 16세 되던 해인 1904년 12월에 일어났다. 진리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그는 깊은 절망에 빠져, "만약 참된 신이 존재한다면 오늘 밤 내게 나타나 달라. 그렇지 않으면 내일 새벽 지나가는 기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새벽, 그는 기도하던 중 갑자기 방 전체가 밝은 빛으로 가득 차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환상 속에서 손에 못 자국이 있고 영광스러운 빛을 발하는 한 인물을 보았다. 그는 그가 힌두교의 신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곧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너를 구원하러 왔다. 나는 바로 예수다"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 환상은 그의 모든 존재를 뒤흔들었다. 그가 그토록 저주하고 핍박했던 예수가 바로 자신이 찾던 살아있는 신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바쳤다. 다음 날, 그는 아버지에게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 결정은 그에게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를 집에서 쫓아냈고, 가문에서는 그의 장례식을 치렀으며, 친척들은 그의 음식에 독을 타서 그를 죽이려 했다. 그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떠돌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본론 2: 사두, 그리스도를 위한 새로운 그릇이 되다
집에서 쫓겨난 선다 싱은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문화적 토양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그는 서양 선교사들의 방식, 즉 양복을 입고 조직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인도의 가장 전통적인 구도자의 길, '사두'의 길을 선택했다.
왜 '크리스천 사두'인가?
'사두'는 세속적인 모든 소유와 관계를 포기하고, 오직 영적인 깨달음을 위해 맨발로 순례하며 살아가는 힌두교의 성자(聖者)이다. 선다 싱은 이 '사두'의 형식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제자도를 인도 땅에서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자기 비움의 실천: 사두의 가난하고 단순한 삶은, 부유하고 높은 곳이 아닌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문화적 접촉점: 인도 사람들에게 사두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가 사두의 모습을 함으로써, 사람들은 기독교를 낯선 '서양 종교'로 여기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친숙하게 다가온 '길 위의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유로운 복음 전파: 그는 어떤 조직이나 건물에도 얽매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유롭게 마을과 도시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는 1905년, 자신의 17번째 생일에 세례를 받고, 사두의 상징인 노란색 옷을 입고 맨발의 순례 전도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십자가만을 전하는 삶
그의 선교 방식은 매우 단순했다. 그는 길에서, 시장에서, 마을 광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간증과 함께 신약성경의 복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복잡한 신학 논쟁을 피하고, 오직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강조했다.
그의 삶은 신비로운 기적과 고난으로 가득 찼다. 그는 금단의 땅 티베트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고 감옥에 갇혔다. 그는 깊은 우물에 던져졌으나 천사의 도움으로 살아났다고 간증했고, 정글에서 굶주릴 때 신비로운 손길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으며, 코브라에게 물렸을 때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의 신성함을 더해주었고, 수많은 인도인들이 그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본론 3: 히말라야의 마지막 여정과 신비로운 유산
1920년대 초, 사두 선다 싱의 명성은 인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는 스위스, 독일, 영국, 미국 등지를 방문하여 집회를 인도했고, 서구 기독교계에 큰 영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서양인들은 그의 깊은 영성과 그리스도 중심적인 단순한 메시지에 깊이 매료되었다.
티베트를 향한 마지막 발걸음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이 '가장 큰 부담'이라고 불렀던 땅, 티베트를 향해 있었다. 그는 복음의 불모지인 그곳을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만드는 것을 자신의 최종적인 사명으로 여겼다.
1929년, 이미 건강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40번째 생일을 앞두고 마지막 티베트 선교 여행을 떠났다. 그는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맥을 넘어 티베트로 향하는 순례길에 올랐고, 그 이후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히말라야의 눈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눈사태를 만났을 수도 있고, 산적의 습격을 받았을 수도 있으며, 혹은 조용히 어느 동굴에서 기도하며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 그의 마지막은 그의 삶 전체처럼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다.
동방의 별, 시들지 않는 영감
비록 그는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지대하다.
첫째, 그는 기독교 신앙의 토착화 가능성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서양인이 될 필요가 없음을, 오히려 가장 깊은 인도인이 됨으로써 가장 깊은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의 삶은 서구 중심의 선교 방식에 대한 강력한 대안을 제시했다.
둘째, 그는 체험적이고 신비적인 신앙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팽배하던 20세기 초, 그는 환상과 기적,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교제라는 신비주의적 체험이 신앙의 핵심적인 부분임을 상기시켰다.
셋째, 그의 삶과 저작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의 저서 『스승의 발 앞에서』 등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결론: 십자가를 진 순례자의 길
사두 선다 싱은 어떤 교파나 조직에도 속하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는 20세기의 혼란 속에서, 초대 교회의 사도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따르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삶은 제도나 형식에 갇힌 기독교가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과 동행이 신앙의 본질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의 마지막 행방은 묘연하지만, 그의 삶의 목적지는 분명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환상 속에서 만났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품이었다. 히말라야의 눈 덮인 봉우리 어딘가에서 그의 육신은 썩어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인도 전통의 옷을 입고 십자가의 사랑을 전했던 그의 이야기는 '동방의 별'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진리를 찾는 수많은 영혼들의 길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