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열전 200인
롤랜드 빙엄 (Rowland Bingham)
아프리카 '수단 내지 선교회(Sudan Interior Mission, 현 SIM)'의 창설자로, 수많은 실패와 동료들의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서아프리카 복음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수단의 개척자', 롤랜드 빙엄: 실패의 잿더미 위에서 피어난 불굴의 비전
서론: 세 번의 실패, 꺾이지 않은 소명
만약 당신이 꿈에 그리던 선교지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함께 갔던 동료 두 명 중 한 명은 열병으로 죽고 다른 한 명은 병들어 돌아가야 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두 번째 시도에서 또 다른 동료가 순교하고, 세 번째 시도마저 실패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기고 포기하지 않겠는가?
여기, 이 모든 비극과 실패를 겪고도 "아프리카 수단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실패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네 번째 도전에 나선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롤랜드 빙엄. 그는 20세기 초, 서아프리카의 광활하고 복음이 닿지 않았던 '수단 벨트(Sudan Belt)' 지역을 향한 불굴의 비전을 품고 **'수단 내지 선교회(Sudan Interior Mission, SIM)'**를 창설한 위대한 개척자이다.
그의 삶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는 현장 선교사로서 정착하지 못했고, 평생을 병약한 몸으로 고통받았다. 그러나 그의 꺾이지 않는 믿음과 비전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초교파적 선교 단체 중 하나를 탄생시키는 씨앗이 되었다. 본 글은 이처럼 실패의 잿더미 위에서 불사조처럼 일어선 롤랜드 빙엄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본론: "아프리카냐, 죽음이냐" - 수단을 향한 헌신
1872년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롤랜드 빙엄은, 젊은 시절 A. B. 심슨의 영향을 받아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많았지만 복음이 거의 전해지지 않았던 미지의 땅, '수단 벨트' 지역이었다.
1893년, 그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아무런 조직의 후원도 없이, "아프리카냐, 죽음이냐(Africa or death)"라는 비장한 각오로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상륙했다. 이것이 SIM의 비공식적인 시작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첫 세 번의 시도는 동료들의 죽음과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모두가 그의 꿈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1901년 네 번째 팀을 조직하여 다시 아프리카로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네 번째 팀이 나이지리아 내륙에 첫 번째 선교 기지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후 SIM은 나이지리아를 넘어, 에티오피아, 수단 등 아프리카 전역의 가장 닿기 어려운 지역으로 확장해 나갔다.
빙엄 자신은 건강 문제로 더 이상 현장에서 사역할 수 없었지만, 그는 캐나다 토론토의 본부에서 선교회의 총재로서, 선교사들을 모집하고, 기도와 재정을 동원하며, 전략을 수립하는 '선교의 사령관' 역할을 평생 감당했다.
결론: 실패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194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롤랜드 빙엄은 결코 자신의 첫 꿈이었던 현장 선교사의 삶을 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실패'는, 오히려 수천 명의 선교사들을 일으켜 아프리카의 심장부로 보내는 더 위대한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가 세운 SIM(오늘날 Serving In Mission)은 오늘날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4,0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세계 최대의 국제 선교 단체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공이 아닌 우리의 순종을 사용하시며, 우리의 가장 큰 실패와 좌절을 통해 그분의 가장 위대한 계획을 이루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