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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열전 200인

D. G. S. 디나카란 (D. G. S. Dhinakaran)

인도의 복음 전도자로, 'Jesus Calls' 사역을 통해 대규모 기도 집회와 미디어 사역으로 인도 전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부르심'의 사도, D. G. S. 디나카란: 눈물의 기도로 인도를 위로하다
서론: "네 눈물을 내가 보았노라"
20세기 중반 인도, 거듭되는 실패와 가난, 그리고 가족의 질병으로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한 한 젊은 은행원이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차를 향해 몸을 던지려던 순간, 그의 삼촌이 그를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그날 밤,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깊은 회심을 체험했다. 그의 이름은 D. G. S. 디나카란. 그는 훗날 수억 명의 인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부르심(Jesus Calls)'이라는 초교파적인 거대 사역을 통해 '인도의 빌리 그레이엄'으로 불리게 될 인물이었다.

그의 사역은 화려한 웅변이나 지적인 신학 논쟁에 있지 않았다. 그의 사역의 중심에는 언제나 '눈물'과 '개인적인 만남'이 있었다. 그는 설교 중에 종종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성령의 은사를 통해 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질병, 그리고 마음의 아픔을 정확히 짚어내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사람들은 그의 사역을 통해, 자신들의 가장 깊은 고통을 아시고 인격적으로 찾아오시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했다.

본 글은 이처럼 '눈물의 전도자'였던 D. G. S. 디나카란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가 어떻게 절망의 자리에서 소명을 발견하고 '예수 부르심'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그의 사역을 특징짓는 '예언적 중보기도'와 '대중 매체 활용'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사역이 인도 기독교와 사회에 남긴 영향을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은행원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1935년 인도 타밀나두 주에서 태어난 디나카란의 젊은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도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고,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다. 마침내 은행에 취직했지만, 삶의 문제는 끊이지 않았고, 그는 결국 모든 희망을 잃고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삼촌의 전도와 예수와의 만남
바로 그 절망의 순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의 삼촌이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 1955년, 디나카란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매일 새벽마다 몇 시간씩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갔다.

1962년, 그는 기도 중에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축복하여 너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너의 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삶을 복음 전파를 위해 바치기로 헌신했다. 그는 낮에는 은행원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마을과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이중의 삶을 시작했다.

'예수 부르심(Jesus Calls)' 사역의 시작
그의 사역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에게 나타난 독특한 성령의 은사 때문이었다. 그는 집회 중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청중 속에 앉아 있는 특정 사람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그가 겪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질병, 가정 문제, 재정 문제 등)를 정확히 말하며 그를 위해 기도했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고통을 정확히 알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로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 사역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그는 1970년 은행원 직을 사임하고, 자신의 사역을 **'예수 부르심(Jesus Calls)'**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인도 전역과 전 세계를 다니며 대규모 '기도 축제(Prayer Festival)'를 인도했고, 수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본론 2: 눈물의 기도, 그리고 미디어 사역
디나카란 사역의 핵심에는 두 가지 중요한 기둥이 있었다.

'기도의 탑'
그는 기도가 모든 사역의 동력임을 굳게 믿었다. 그는 1983년 코임바토르(Coimbatore)에 24시간, 365일 전화 상담과 기도를 통해 사람들을 돕는 **'기도의 탑(Prayer Tower)'**을 설립했다. 수십, 수백 명의 기도 상담가들이 교대로 근무하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전화를 받고 그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었다. 이 '기도의 탑'은 이후 인도 전역과 세계 주요 도시로 확장되어, 수천만 명에게 영적인 위로와 희망을 제공하는 거대한 기도 네트워크가 되었다.

TV와 교육을 통한 영향력
디나카란은 빌리 그레이엄처럼, 대중 매체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했다. 그의 '예수 부르심' TV 프로그램은 여러 인도 언어로 방송되어,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수많은 가정의 안방에 복음을 전달했다.

또한 그는 1986년, '카루냐 기술과학 연구소(Karunya Institute of Technology and Sciences)'라는 이름의 공과대학을 설립했다. 그의 목표는 기독교 신앙과 가치를 바탕으로, 인도의 미래를 이끌어갈 탁월한 과학 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그의 사역이 단순히 영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했던 그의 총체적인 비전을 보여준다.

결론: 인도의 눈물을 닦아준 위로자
2008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D. G. S. 디나카란은 20세기 후반 인도 기독교의 부흥을 이끈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딸을 교통사고로 잃는 끔찍한 개인적인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 슬픔을 통해 오히려 고통받는 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위로하는 사역자로 거듭났다.

그의 유산은 그가 설립한 거대한 사역 기관들을 통해 그의 아들 폴 디나카란(Paul Dhinakaran)에게로 이어져,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인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사역은 때로 지나치게 기적과 은사에 치중한다는 신학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억 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인도인들의 눈에, 그는 자신들의 이름과 아픔을 불러주며 함께 울어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인도의 눈물을 닦아준 위대한 위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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