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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열전 200인

C. S. 루이스 (C. S. Lewis)

그의 저술 활동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이끄는 강력한 선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회의주의 시대의 사도, C. S. 루이스: 상상력과 이성으로 복음을 변증하다
서론: 서재에서 세상 끝까지 이른 선교사
C. S. 루이스는 아프리카의 정글을 탐험하거나, 중국 내륙의 오지를 찾아가거나, 식인종의 섬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다. 그의 삶의 대부분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풍스러운 서재와 강의실, 그리고 동료 교수들과의 담소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선교사' 중 한 명이다. 그의 선교지는 지리적인 공간이 아닌, 과학과 이성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회의적인 정신 세계였다.

그의 선교 도구는 의료 상자나 구호 물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자의 날카로운 이성과 논리, 동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전시(戰時)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국에 울려 퍼졌던 따뜻하고 명료한 목소리였다. 그는 『나니아 연대기』라는 마법의 옷장을 통해 수억 명의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고,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통해 수많은 지성인들을 완고한 무신론의 성채에서 걸어 나오게 했다.

본래 완고한 무신론자였던 루이스의 삶 자체가, 이성과 상상력이 어떻게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증거이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단지 감상적인 위로나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적으로 정직하고 견고하며,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에 응답하는 진리임을 증명하고자 자신의 모든 재능을 바쳤다. 본 글은 '회의주의 시대의 사도'였던 C. S. 루이스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완고한 무신론자였던 그가 어떻게 '전 우주에서 가장 마지못해 개종한 사람'이 되었는지 그 여정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그가 '이성'과 '상상력'이라는 두 날개를 사용하여 어떻게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했는지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삶과 저작들이 오늘날까지도 현대인들에게 어떤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지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완고한 무신론자,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만나다
C. S. 루이스의 강력한 변증은 그 자신이 한때 기독교의 가장 열렬한 비판자였다는 사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회의주의자들의 모든 질문과 의심을 자신의 것으로 겪어냈기에, 누구보다 그들의 언어로 말할 수 있었다.

무신론의 요새를 쌓다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루이스(그의 친구들은 그를 '잭'이라 불렀다)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과 끔찍했던 기숙학교 생활,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겪은 전쟁의 공포를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는 "우주가 정말로 자비로운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이토록 부조리하고 잔인한 고통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고, 결국 우주는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는 물질의 우연한 조합일 뿐이라는 무신론의 요새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가 된 후, 그는 고대 및 중세 문학 연구에 몰두하며 지적인 만족 속에서 살아가던 성공한 무신론자였다. 그는 기독교를 어린 시절의 유치한 신화쯤으로 치부했다.

전 우주에서 가장 마지못한 개종
그러나 그의 무신론은 동료 교수들과의 지적인 교류를 통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훗날 『반지의 제왕』을 쓴 독실한 가톨릭 신자 J. R. R. 톨킨(J. R. R. Tolkien)과의 대화는 그의 삶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31년 어느 날 밤, 루이스는 톨킨 그리고 또 다른 친구 휴고 다이슨과 함께 옥스퍼드의 교정을 거닐며 '신화(myth)'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는 신화가 아름답지만 결국 "거짓을 통해 숨 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톨킨은 이렇게 반박했다. 기독교의 이야기는 다른 모든 신화와 같지만, 단 하나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신화(true myth)'**라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죽었다가 부활하는 신에 대한 고대의 모든 신화적 갈망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제 역사적 사실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참된 신화'라는 개념은 신화와 문학을 사랑했던 루이스의 마지막 지적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믿기 싫었던 모든 증거들이 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회심을 자서전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1929년 여름 학기, 나는 마침내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아마도 그날 밤, 전 영국을 통틀어 가장 마지못해 개종한, 가장 낙담한 개종자였을 것이다." 그는 감정적인 체험이 아닌, 끈질긴 이성의 추적 끝에 마지못해 항복한 것이었다.

본론 2: 이성과 상상력이라는 두 날개
기독교인이 된 루이스는 이제 자신이 걸어왔던 그 회의의 길 위에서, 다른 이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었다. 그는 '이성'과 '상상력'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날개를 사용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했다.

이성의 날개: 『순전한 기독교』
루이스의 '이성을 통한 변증'의 정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BBC 라디오 방송을 위해 준비했던 원고를 묶은 책,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 담겨 있다. 공습의 공포에 떨고 있던 영국 국민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혼란 속에서 명료한 이성과 희망을 제시했다.

그의 접근 방식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그는 성경 구절이나 신학 용어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도덕률(Moral Law)', 즉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에서 출발했다. 그는 우리가 모두 이 도덕률을 인정하면서도, 아무도 그것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다는 보편적인 인간의 딜레마를 지적한다. 그리고 이 도덕률의 존재는 우리 너머에 있는 '도덕률의 제정자', 즉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논증했다.

이러한 보편적인 토대 위에서, 그는 마침내 기독교의 핵심으로 나아간다. 그는 예수가 단지 위대한 도덕 교사일 수 없다는 유명한 '삼중 딜레마(Trilemma)'를 제시한다.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예수는 '거짓말쟁이(Liar)'이거나, '미치광이(Lunatic)'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그가 주장했던 대로 '주님(Lord)'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루이스는 평범한 사람의 언어와 냉철한 논리를 통해, 듣는 이들을 기독교 신앙의 문턱까지 차근차근 이끌어갔다.

상상력의 날개: 『나니아 연대기』
루이스는 이성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이성적 논증이 진리의 지도를 제공한다면, 상상력은 그 진리를 맛보게 해준다"고 믿었다. 그는 어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종교에 대한 '감시하는 용'을 몰래 지나쳐, 복음의 진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느끼게 할 방법으로 '판타지 동화'를 선택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이다.

『나니아 연대기』는 표면적으로는 마법과 말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이지만, 그 심층에는 기독교의 핵심 이야기가 아름다운 알레고리로 녹아 있다. 창조주이자 왕인 사자 아슬란(Aslan)은 명백한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아슬란이 반역자 에드먼드를 구하기 위해 돌탁자 위에서 마녀에게 자신을 내어주어 죽임을 당했다가, 다음 날 아침 영광스럽게 부활하는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묘사 중 하나이다.

루이스는 아이들(그리고 어른들)이 나니아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의 원형을 경험하고, 훗날 진짜 복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이것이 바로 아슬란의 이야기의 진짜 모습이구나!"라고 깨닫기를 바랐다. 그는 상상력을 '세례'시킴으로써, 사람들의 마음 밭을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옥토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본론 3: 헤아려 본 슬픔과 후대의 유산
지적인 변증가이자 동화 작가였던 루이스의 삶의 후반부는 예기치 못한 사랑과 그로 인한 깊은 고통을 통해 그의 신앙을 더욱 깊고 진실하게 만들었다.

조이와의 사랑, 그리고 고통의 신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루이스는 50대 후반, 미국 출신의 이혼한 유대인 여성 시인이었던 조이 데이비드먼(Joy Davidman)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들의 사랑은 짧고 강렬했다. 조이는 암에 걸렸고, 두 사람은 죽음의 그림자 아래서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신앙 안에서 투병했다.

조이가 세상을 떠난 후, 루이스는 신앙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고통과 씨름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지적인 변증이 이 무자비한 고통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절감했다. 그는 이 고통의 과정을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이라는 작은 책에 익명으로 기록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랑하는 이를 앗아간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고, 자신의 모든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정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고통의 가장 깊은 어둠을 통과하면서, 그는 마침내 더 단단하고, 더 진실한 신앙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은 그의 다른 어떤 변증서보다도 더 강력하게, 고통받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깊은 위로와 공감을 주었다.

결론: 옥스퍼드의 서재에서 세상 끝까지
C. S. 루이스는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바로 그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선교 단체를 세우지도, 해외로 떠나지도 않았지만, 그가 남긴 책들은 국경과 세대를 넘어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회의주의자들의 사도'였다. 그는 현대인의 의심과 질문을 정직하게 마주했으며, 이성과 상상력이라는 두 날개를 사용하여 기독교 신앙이 결코 지적으로 부끄럽거나 유치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는 복잡한 신학을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해낸 위대한 '번역가'였고, 낡고 익숙해진 복음의 이야기를 나니아라는 새로운 세계를 통해 다시 한번 경이롭고 가슴 뛰는 이야기로 만들어낸 '이야기꾼'이었다.

완고한 무신론자에서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가 된 C. S. 루이스. 그는 자신의 서재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의 말과 글은 마법의 옷장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낡은 일상의 문을 열고 눈 덮인 나니아의 숲으로,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슬란의 영광스러운 실재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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