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선교사 열전 200인

피터 캐머런 스콧 (Peter Cameron Scott)

아프리카 선교사였으나 건강 문제로 귀국한 후, 아프리카의 심장부를 향한 열정을 품고 '아프리카 내지 선교회(Africa Inland Mission, AIM)'를 창설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심장'을 향한 불굴의 의지, 피터 캐머런 스콧: 두 번의 죽음, 하나의 사명
서론: "아프리카는 정복되어야 한다"
"아프리카는 그리스도를 위해 반드시 정복되어야 한다(Africa must be evangelized)." 19세기 말, 젊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선교사의 마음속에는 이 짧고 강렬한 외침이 떠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피터 캐머런 스콧. 그는 아프리카에서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 역시 말라리아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대부분의 사람이었다면 아프리카를 저주의 땅으로 여기고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죽음이 나를 막을 수 없다"며, 아프리카 해안을 넘어 복음이 닿지 않은 광활한 내륙, 즉 '아프리카의 심장부'를 향한 선교회를 세우는 일에 자신의 남은 모든 것을 바쳤다.

그의 삶은 C. T. 스터드의 "Only one life, 'twill soon be past, Only what's done for Christ will last"라는 신앙 고백처럼,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 온전히 불태운 '전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아프리카 내지 선교회(Africa Inland Mission, AIM)'의 창설자로서, 이후 100년 넘게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오지에서 헌신하게 될 수많은 선교사들의 길을 연 위대한 개척자였다. 본 글은 이처럼 두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피터 캐머런 스콧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본론: 실패와 죽음을 넘어선 부르심
1867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그가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주한 피터 캐머런 스콧은, 일찍부터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내지선교회(CIM)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으며 '내지(inland)' 선교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는 1892년, 국제 선교 연맹(International Missionary Alliance) 소속으로 콩고강 유역으로 파송되어, 마침내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그를 가혹하게 맞았다. 도착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그의 유일한 동역자였던 친동생 존(John)이 열병으로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콧 자신도 치명적인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선교사직을 포기하고 빈손으로 미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지만,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향한 그의 부담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요양 중에, 런던의 한 교회 벽에 걸린 아프리카 지도와 그 아래 적힌 "아프리카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는 문구를 보고 다시 한번 자신의 소명을 확인했다. 그는 실패와 죽음의 경험이 자신의 사명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기존의 선교 단체를 의지하지 않았다. 그는 1895년, 오직 "아프리카 내륙의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진 새로운 선교회, **'아프리카 내지 선교회(Africa Inland Mission, AIM)'**를 필라델피아에서 직접 창설했다. 그의 불굴의 의지에 감동한 몇몇 동료들이 그의 비전에 동참했고, 그 해에 그는 4명의 남자와 4명의 여자로 구성된 첫 선교팀을 이끌고 다시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해안에서 시작하여, 내륙을 향해 **'선교 기지의 사슬(a chain of mission stations)'**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의 첫 선교팀은 케냐의 몸바사항에 상륙하여, 약 400km 떨어진 내륙 지역에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기지를 성공적으로 건설했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아프리카 사역 역시 길지 못했다. 1896년 12월, 네 번째 선교 기지를 개척한 직후, 그는 흑수열(blackwater fever)에 걸려 쓰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29세라는 너무나 짧은 나이에, 그는 동생이 묻힌 바로 그 땅 아프리카에서 눈을 감았다.

결론: 단 1년의 사역, 영원한 유산
피터 캐머런 스콧이 AIM을 창설하고 아프리카에서 다시 사역한 기간은 불과 1년 남짓이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거의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의 삶은 또다시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가 남긴 "아프리카는 정복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비전과 순교와도 같은 죽음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가 세운 아프리카 내지 선교회(AIM)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성장했다.

오늘날 AIM International은 아프리카 20여 개국에서 수백 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가장 큰 복음주의 선교 단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지금도 창립자 피터 캐머런 스콧의 비전을 따라, 아프리카의 가장 닿기 힘든 '내지'의 영혼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

피터 캐머런 스콧의 삶은 멜빌 콕스의 삶처럼, 한 사람의 짧고 비극적인 죽음이 어떻게 다음 세대를 깨우는 위대한 씨앗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단 1년의 사역을 통해, 100년 넘게 이어질 위대한 선교 운동의 초석을 놓았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실패와 죽음의 두려움이, 당신의 소명을 가로막고 있는가?

강의 읽음 등록
mainlogo.png

SWIM 세계인터넷선교협의회는 (KWMA소속단체) 1996년 창립한 선교단체로, 인터넷과 IT를 활용하여 30여 년간 세계선교에 기여해 왔습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