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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열전 200인

존 스토트 (John Stott)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거장으로, '로잔 언약' 작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20세기 복음주의의 양심, 존 스토트: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통합한 사상가
서론: 설교가이자 사상가, 새들의 친구
20세기 기독교 지성계를 이야기할 때, C. S. 루이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존 스토트이다. 그는 런던의 올 소울즈 교회(All Souls Church)에서 평생을 섬긴 성공회 사제였지만, 그의 영향력은 영국 국교회의 담장을 훌쩍 넘어 전 세계 복음주의권 전체를 아울렀다. 그는 명료하고 지적인 설교가이자, 20권이 넘는 기독교 고전을 저술한 위대한 저술가였으며, 제3세계 교회 지도자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겸손한 제자였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974년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의 초안을 작성하여, 20세기 후반 세계 선교의 방향을 재정립한 것이다. 그는 복음 전도(evangelism)와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교회의 통합적 사명임을 역설했다. 그는 또한 열렬한 조류 관찰가(ornithologist)로서, 창조 세계를 돌보는 '창조 세계의 청지기 직분(creation care)'을 강조한 선구적인 복음주의 환경 운동가이기도 했다.

본 글은 '엉클 존(Uncle John)'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이 위대한 복음주의 사상가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의 생애와 사역을 살펴보고, 그의 신학의 핵심인 '통합적 선교'의 개념과 로잔 언약의 중요성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삶이 오늘날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교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런던의 목회자, 세계의 스승이 되다
1921년 런던에서 태어난 존 스토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학과 현대 언어를 공부한 수재였다. 그는 대학 시절 깊은 회심을 체험하고, 영국 성공회 사제가 되어 1945년부터 런던 중심부의 올 소울즈 교회에서 평생을 사역했다.

그의 설교는 지성과 경건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성경 본문을 명료하고 논리적으로 해설하면서도, 듣는 이의 가슴에 깊은 영적 도전을 주는 능력으로 '설교의 왕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교회는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학생들과 지성인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강단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Basic Christianity)』, 『그리스도의 십자가(The Cross of Christ)』 등 수많은 저서를 통해, 복음주의 신앙을 지적으로 변호하고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책들은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길잡이가 되었다.

본론 2: 로잔 언약 - '총체적 선교'의 대헌장
존 스토트의 가장 지속적인 유산은 그가 1974년 빌리 그레이엄과 함께 주도했던 '세계 복음화를 위한 국제 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와 그 결과물인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을 통해 만들어졌다.

복음 전도인가, 사회 참여인가?
20세기 중반, 복음주의권은 깊은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교회의 유일한 사명은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라고 주장하며,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사회 복음(Social Gospel)'이라 비판하며 거리를 두었다. 반면, 진보적인 에큐메니컬 진영은 사회 구조의 변혁과 해방을 교회의 우선적인 과제로 삼으며, 전통적인 개인 전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다.

두 날개를 가진 복음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 속에서, 존 스토트는 로잔 대회의 핵심 신학자로서 '통합적 선교' 또는 '총체적 선교(Holistic/Integral Mission)'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로잔 언약의 제5항에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억압에서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해야 한다... 사회-정치적 참여와 복음 전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가지 분리된 부분이 아니라, 우리 교리의 두 가지 결과이다."

즉,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하나만으로는 결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이다. 굶주리는 사람에게 빵을 주는 사회적 섬김과, 그에게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예수를 전하는 복음 전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명이라는 선언이었다. 이 로잔 언약은 이후 20세기 후반 복음주의 선교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가장 중요한 문서가 되었으며,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끌어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본론 3: 겸손한 삶, 다음 세대를 향한 헌신
존 스토트는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검소하고 단순한 삶을 살았다. 그는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 살았고, 자신의 책으로 인해 들어오는 막대한 인세 수입의 대부분을 제3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랭햄 파트너십(Langham Partnership)'이라는 단체를 통해 기부했다.

그는 권위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엉클 존'이라는 별명처럼 젊은 지도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겸손한 멘토였다. 그는 또한 새를 관찰하기 위해 전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는 열정적인 조류 관찰가로서, 창조 세계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졌고, 환경 문제가 중요한 신학적 과제임을 일찍부터 역설했던 선구자였다.

결론: 균형 잡힌 복음주의의 모범
2011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존 스토트의 삶은, 20세기 복음주의가 나아가야 할 가장 성숙하고 균형 잡힌 모델을 제시했다.

그의 유산은 실로 깊고 넓다.

그는 '생각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는 맹목적인 열광주의를 경계하고,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지적인 정직함이 신앙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통합적 사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성경적 원리를 재확인시킴으로써,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도록 도전했다.

그는 '겸손한 리더십'의 본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쌓는 대신, 다음 세대, 특히 제3세계의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존 스토트의 삶은, 가장 위대한 영향력이란 가장 높은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가장 진실한 삶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이다. 그는 20세기 복음주의의 흔들리는 저울추 위에, '균형'이라는 값진 추를 올려놓은 위대한 스승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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