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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열전 200인

에릭 리델 (Eric Liddell)

영화 '불의 전차'의 주인공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이후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다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불의 전차, 올림픽 영웅에서 중국의 성자로: 에릭 리델의 삶
서론: 영광의 순간,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의 마지막, 파리 올림픽 400미터 결승선에 선 에릭 리델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주종목인 100미터 달리기를 포기했다. 예선 경기가 주일(Sabbath)에 열린다는 이유로, 왕세자와 국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앙 원칙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익숙하지 않은 400미터 경기에 나섰다. 어색한 자세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팔을 휘저으며 달리는 그의 모습 위로, 그의 유명한 독백이 흐른다. "하나님은 저를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저를 빨리 달리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달릴 때, 저는 그분의 기쁨을 느낍니다."

이 장면은 에릭 리델을 불굴의 신념과 재능을 통해 인간 승리를 이룬 올림픽 영웅으로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 눈부신 영광의 순간은 그의 인생 전체에서 볼 때, 단지 전반전에 불과했다. 영화가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진짜 위대하고 숭고한 삶의 후반전이 시작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최고의 영예를 뒤로하고, 그는 자신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이름 없는 선교사가 되어 중국의 흙먼지 속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금메달보다 더 영원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사랑과 희생의 월계관을 쓰게 된다.

본 글은 '나는 스코틀랜드인(The Flying Scotsman)'이라 불렸던 이 위대한 신앙인의 삶 전체를 조명하고자 한다. 먼저 올림픽 영웅으로서 그가 보여준 원칙을 위한 투쟁과 영광의 순간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영화가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그의 후반전, 즉 중국 선교사로서의 삶과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보여준 그의 마지막 헌신을 추적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떻게 트랙 위의 영웅을 넘어, 고난의 한복판에서 이웃을 섬긴 '중국의 성자'가 되었는지 그 깊은 울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본론 1: "제가 달릴 때, 하나님의 기쁨을 느낍니다" - 영광을 위한 질주
에릭 리델의 삶의 첫 번째 무대는 육상 트랙이었다. 그에게 달리기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였다.

선교사의 아들, 스코틀랜드의 영웅이 되다
1902년, 에릭 리델은 중국 톈진(天津)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런던 선교회(LMS) 소속 선교사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내다가, 6살 때 학업을 위해 형과 함께 영국으로 보내져 기숙학교에 들어갔다.

그의 비범한 운동 재능은 학창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뛰어난 럭비 선수였고, 단거리 달리기에서는 스코틀랜드 전체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였다.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하면서도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 '나는 스코틀랜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영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00미터 달리기의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신념을 위한 투쟁, 400미터의 기적
그러나 파리로 향하는 배 위에서, 그는 100미터 예선 경기가 주일 오후에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을 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영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신문들은 그를 '조국을 배신한 광신자'라고 비난했고, 영국 올림픽 위원회와 웨일스 공(훗날 에드워드 8세)까지 나서서 그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는 "조국과 왕을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할 수는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주종목을 포기하는 대신,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우승 가능성도 희박했던 400미터 경기에 출전하기로 결정했다. 결승전 직전, 한 미국인 마사지사가 그의 손에 쪽지 하나를 쥐여주었다. 거기에는 사무엘상 2장 30절의 구절이 적혀 있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He that honours me I will honour)."

이 말씀에 큰 용기를 얻은 그는 출발선에 섰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팔을 거칠게 휘젓는 특유의 비효율적인 자세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 질주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47.6초라는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영광을 포기했던 그에게, 하나님은 더 큰 영광으로 갚아주신 것이다. 이 승리는 단순한 스포츠의 승리를 넘어, 신념의 승리였다.

본론 2: 금메달을 뒤로하고 - 중국으로 돌아간 선교사
파리 올림픽의 영웅이 된 에릭 리델 앞에는 부와 명예가 보장된 삶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뒤로했다. 그에게 올림픽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더 위대한 경주를 위한 출발점일 뿐이었다.

더 위대한 경주를 향하여
1925년, 스코틀랜드 전역의 환호와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23세의 젊은 나이로 자신이 태어났던 땅, 중국 톈진으로 돌아갔다. 그는 부모님의 뒤를 이어 런던 선교회 소속의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톈진의 '신강 유빙 학교(Anglo-Chinese College)'에서 과학과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올림픽 경험을 바탕으로 운동을 가르쳤고, 따뜻한 인품과 헌신적인 태도로 학생들의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더 이상 트랙 위에서 세계 기록과 경쟁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교실과 운동장에서 중국의 젊은이들의 영혼을 얻기 위한 새로운 경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1934년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 플로렌스 맥켄지와 결혼하여 세 딸을 낳았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남겨진 헌신
평화롭던 그의 사역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일본의 침략이 거세지자, 중국 북부의 상황은 극도로 위험해졌다. 1941년, 리델은 임신한 아내와 두 딸을 안전한 캐나다로 피신시켰다. 이것이 그의 가족과의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는 위험한 전선을 뚫고 시골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하던 형 로버트를 돕는 등, 전쟁의 공포 속에서 고통받는 중국인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그는 언제든 중국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었지만, 양 떼를 버리고 떠날 수 없는 목자의 심정으로 끝까지 중국에 남았다.

본론 3: 웨이팡 수용소의 성자
1943년, 에릭 리델을 포함한 중국 내의 모든 서양인들은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산둥성 웨이팡(潍坊)에 있는 '웨이팡 적성국민 강제수용소(Weihsien Internment Camp)'에 수감되었다. 약 1,800명의 민간인이 갇힌 이 절망의 공간에서, 그의 삶은 마지막 불꽃을 가장 밝게 태웠다.

'에릭 아저씨(Uncle Eric)'
수용소 안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과거의 영광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에릭 리델은 그곳에서 새로운 이름, '에릭 아저씨'를 얻었다. 그는 수용소의 도덕적, 영적 지주가 되었다.

희망의 조직가: 그는 절망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조직하고 과학과 성경을 가르쳤다. 그는 아이들을 위한 운동 경기를 주선하고, 체스를 만들어주며 그들이 웃음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겸손한 중재자: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그는 겸손하게 다가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분쟁을 해결하는 평화의 사도였다.

희생적인 봉사자: 그는 수용소에서 가장 힘들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으며, 허약한 노인과 병자들을 돌보았다. 그는 종종 자신의 얼마 안 되는 배급 식량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한 젊은이가 그의 다 해진 낡은 운동화를 보고 자신의 새 신발과 바꾸자고 했을 때, 그는 "괜찮다"며 거절하고 그 낡은 신발을 계속 신었다.

"완전한 순종입니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그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는 영양실조와 과로 속에서 수술 불가능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1945년 2월, 수용소 해방을 불과 몇 달 앞두고, 그는 병상에서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그것은 완전한 순종입니다(It's complete surrender)"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드리는 그의 마지막 신앙 고백이었다. 그의 죽음을 수용소의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애도했다.

결론: 끝나지 않은 경주
에릭 리델의 삶은 두 개의 전혀 다른 경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전반전은 파리의 스타디움에서 금메달을 향해 달렸던 영광의 경주였고, 후반전은 중국의 포로수용소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소진했던 고난의 경주였다. 그러나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방향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그가 받은 진정한 금메달은 1924년 파리에서 목에 건 금속 조각이 아니었다. 그의 진짜 금메달은 1945년 웨이팡 수용소의 차가운 병상에서, 그가 섬겼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존경 속에서 수여된 '생명의 면류관'이었다.

영화 '불의 전차'는 그의 삶의 시작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의 진짜 이야기는 영화가 끝난 곳에서 시작되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영광을 포기하고, 그 신념을 살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는 더 위대한 감동으로 완성된다. 에릭 리델은 자신의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자신의 희생으로 이웃을 섬겼다. 그의 경주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우리 각자에게 자신의 인생이라는 경주를 어떤 자세와 목적으로 달려야 하는지를 묻는 영원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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