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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열전 200인

브라더 앤드루 (Brother Andrew)

'하나님의 밀수꾼'으로, 공산권 국가에 성경을 몰래 반입하며 철의 장막 뒤의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하나님의 밀수꾼, 브라더 앤드루: 철의 장막을 뚫고 핍박받는 교회를 섬기다
서론: 보는 눈을 보지 못하게 하소서
1950년대 냉전의 서슬 퍼런 시절, 동유럽의 한 국경 검문소. 삼엄한 경비 속에서 낡고 작은 폭스바겐 비틀 자동차 한 대가 검문소 앞으로 다가선다. 운전석에 앉은 젊은 네덜란드 남자는 태연한 척하지만, 그의 차 안에는 당국에 발각되는 즉시 그를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 '밀수품'이 가득 실려 있다. 그것은 무기나 마약이 아닌, 수백 권의 성경이었다. 군인들이 차로 다가오는 순간, 그는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한다.

"주님, 제 짐 속에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전할 성경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보지 못하는 눈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제 제가 기도하오니, 보는 눈을 보지 못하게 하소서."

이 기도의 주인공이 바로 '하나님의 밀수꾼'이라는 별명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브라더 앤드루이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사와는 달랐다. 그의 선교지는 이교도의 땅이 아니라,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감시당하고, 투옥되고, 순교하는 '철의 장막' 뒤편의 핍박받는 교회였다. 그의 사명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계 3:2)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소멸될 위기에 처한 형제자매들을 찾아가 그들이 결코 잊혀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의 삶은 007 영화보다 더 극적인 신앙의 모험이었다. 그는 성경을 자동차 좌석 밑이나 짐 속에 교묘하게 숨기는 대신, 일부러 눈에 잘 띄는 곳에 쌓아두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보호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본 글은 이처럼 비범한 삶을 살았던 브라더 앤드루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모험을 즐기던 네덜란드의 젊은이가 어떻게 핍박받는 교회를 향한 소명을 품게 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그의 전설적인 성경 밀반입 사역과 그 이면에 담긴 급진적인 믿음의 원칙을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냉전 이후 이슬람 세계로까지 확장된 그의 사역과 그가 남긴 '오픈도어즈'의 유산을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모험가에서 사도로 - 소명의 시작
브라더 앤드루의 본명은 안드레 판데르베일(Andrew van der Bijl)이다. 그의 불같은 선교 열정은, 모험과 위험을 즐기던 그의 기질이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방향으로 전환된 결과였다.

상처 입은 군인, 성경을 만나다
1928년 네덜란드의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모험을 즐기는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독립 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했다. 그는 그곳에서 전투의 잔혹함과 죽음의 공포를 목격하며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었고, 발목에 총상을 입고 제대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했다. 바로 그때, 한 친구의 권유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이전에 지루하게만 여겼던 성경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자신을 향한 그분의 부르심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1953년, 그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있는 WEC 선교 훈련원에 입학하여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철의 장막 뒤편의 눈물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은 사건은 1955년,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세계 청년 학생 축전'에 참석하면서 일어났다. 그는 그곳에서 공산 정권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도 몰래 모여 예배드리는 지하 교회의 실상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그는 성경이 없어 손으로 베낀 성경 구절을 돌려 읽고, 찬송가조차 마음껏 부를 수 없는 그들의 영적 굶주림과 외로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 날 한 교회 집회에 참석했을 때, 그는 설교자가 요한계시록 3장 2절,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는 말씀을 읽는 것을 들었다. 이 말씀은 그의 심장에 불화살처럼 꽂혔다. 그는 이것이 바로 철의 장막 뒤편에서 고통받는 형제들을 향한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달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남은 생애를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는' 일에 바치기로 서원했다.

본론 2: 하나님의 밀수꾼 - 믿음의 원칙
폴란드에서의 경험 이후, 브라더 앤드루의 본격적인 '밀수' 사역이 시작되었다. 그의 사역 방식은 인간적인 치밀함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에 기반했다.

낡은 폭스바겐 비틀, 복음의 전차가 되다
그의 첫 번째 선교 도구는 낡고 작은 폭스바겐 비틀 자동차였다. 이 차는 그의 연약함과 무모해 보이는 도전의 상징이었다. 그는 이 작은 차에 성경과 기독교 서적들을 싣고,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공산권 국가의 국경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그의 방법은 세상의 지혜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성경을 교묘하게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성경 꾸러미를 조수석이나 뒷좌석에 보란 듯이 쌓아두었다. 그리고 국경 검문소에 다가갈 때마다, 그는 그 유명한 '보는 눈을 보지 못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놀랍게도, 국경 수비대들은 그의 차를 대충 훑어보거나, 바로 눈앞에 있는 성경 더미를 보지 못한 채 그를 통과시켜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는 자신의 안전이 인간의 속임수가 아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에 달려 있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잊혀진 이들을 향한 동행
브라더 앤드루의 사역은 단순히 성경을 전달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는 철의 장막 뒤편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도하며, 그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며 전 세계의 형제자매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핍박받는 교회에 물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가장 절실했던 영적인 격려와 동료애를 선물한 것이다.

1967년, 그의 초기 사역 경험을 담은 책 **『하나님의 밀수꾼(God's Smuggler)』**이 출판되면서 그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 책은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천만 부가 팔렸고, 핍박받는 교회의 실상에 무관심했던 서구 교회의 양심을 일깨우는 강력한 기폭제가 되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하여, 핍박받는 교회를 위한 사역에 헌신하게 되었다.

본론 3: 열린 문 - 이슬람 세계를 향한 새로운 도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 공산 정권이 차례로 붕괴되면서, 브라더 앤드루의 '밀수' 사역은 전환점을 맞았다. 철의 장막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역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한쪽 문을 닫으시면, 그것은 다른 문을 여시기 위함"이라고 믿었다.

가장 어두운 곳으로
그의 시선은 이제 새로운 '닫힌 문', 즉 이슬람 세계로 향했다. 그는 "선교의 비극은 닫힌 문이 아니라, 열린 문 앞에 가지 않으려는 교회"라고 말하며, 서구 교회가 두려워하고 적대시하는 이슬람권이야말로 복음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라고 역설했다.

그의 접근 방식은 이전보다 더욱 급진적이었다. 그는 단순히 성경을 전하는 것을 넘어, 이슬람 무장 단체의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는 '화해의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하마스의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 헤즈볼라와 이슬람 지하드의 지도자들을 직접 찾아갔다.

모두가 그를 테러리스트와 만나는 미친 사람이라고 비난했지만, 그의 대답은 명확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지, 그들을 죽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보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복음이 필요한 이웃으로 본다." 그는 그들에게 아랍어 성경을 선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오픈도어즈의 유산
브라더 앤드루가 1955년 시작했던 작은 사역은 오늘날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을 섬기는 국제 선교 단체, **'오픈도어즈(Open Doors)'**로 성장했다. 오픈도어즈는 매년 전 세계 기독교 박해 지수를 발표하며 핍박받는 교회의 실상을 알리고, 성경 배달, 지도자 훈련, 긴급 구호, 법률 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돕고 있다.

결론: 핍박받는 교회의 영원한 동반자
2022년 9월,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브라더 앤드루의 삶은 오직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가장 위험하며, 가장 잊혀진 곳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었다.

그는 낡은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 철의 장막을 뚫었던 청년이었고, 테러리스트 지도자 앞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노년의 사도였다. 그의 방법은 때로 무모해 보였지만, 그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브라더 앤드루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그가 밀반입한 성경의 숫자가 아니다. 그의 진짜 유산은, '핍박받는 교회'를 서구 교회의 관심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그는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일부 특별한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부르심이며, 편안한 곳에 안주하는 신앙은 결코 참된 신앙일 수 없음을. 그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당신은 열린 문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묻는, 살아있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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