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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열전 200인

릴리어스 트로터 (Lilias Trotter)

뛰어난 재능을 가진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였으나,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알제리로 건너가 40년간 무슬림 여성과 아이들을 섬겼습니다.

재능을 십자가에 묻은 화가, 릴리어스 트로터: 알제리의 골목길을 비춘 숨겨진 빛
서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릴리어스 트로터"
19세기 후반 영국, 당대 최고의 미술 비평가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은 한 젊은 여성 화가의 재능 앞에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 여성의 재능은 터너(J.M.W. Turner)에 버금간다"고 극찬하며, 그녀가 예술에 전념한다면 영국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 젊은 여성은 러스킨의 간곡한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북아프리카의 낯선 땅으로 떠나는 길을 택했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어스 트로터. 그녀는 세상의 가장 큰 영광을 약속받았지만, 기꺼이 그것을 버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향했던 '숨겨진 보석'과 같은 선교사였다. 그녀는 알제리의 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서구 남성 선교사들이 결코 들어갈 수 없었던 이슬람 여성들의 닫힌 공간으로 들어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녀의 무기는 화려한 설교가 아닌, 아름다운 수채화와 진심 어린 사랑, 그리고 깊은 영적 통찰이 담긴 글이었다.

그녀의 삶은 "가장 위대한 것을 얻기 위해 좋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큰 재능마저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앞에서는 기꺼이 '땅에 묻는' 헌신을 선택했다. 본 글은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장 순수하고 깊이 있는 헌신의 삶을 살았던 릴리어스 트로터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촉망받는 화가였던 그녀가 어떻게 모든 것을 버리고 알제리로 향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그곳에서 펼쳤던 독특하고 창의적인 사역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삶과 영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깊은 울림을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러스킨의 총애를 받은 화가, 더 위대한 부르심을 택하다
1853년 런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릴리어스 트로터는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자연과 사람을 관찰하고 그리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재능의 발견과 영적 갈등
그녀의 재능을 세상에 알린 것은 존 러스킨이었다. 그는 우연히 그녀의 스케치북을 보고, 그 안에 담긴 섬세한 관찰력과 영적인 깊이에 매료되었다. 그는 그녀의 개인 교사가 되어, 그녀를 제2의 터너로 키우기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릴리어스는 깊은 영적 갈등에 빠졌다. 그녀는 이미 젊은 시절 깊은 회심을 체험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한 상태였다. 그녀는 런던의 빈민가에서 여성들을 위한 선교 활동에 헌신하며,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예술'이라는 자신의 가장 큰 재능과 '선교'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사이에서 고뇌했다.

"두 개의 위대한 사랑이 내 안에서 싸우고 있다... 나는 동시에 두 명의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몇 달간의 기도와 씨름 끝에,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러스킨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저는 제가 받은 그림 그리는 능력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세상이 주는 최고의 영광을 향한 문 앞에서, 기꺼이 뒤돌아서서 좁고 험한 길을 택한 것이다.

북아프리카를 향한 마음
그녀의 마음이 북아프리카, 특히 알제리의 무슬림들을 향하게 된 것은 한 기도 모임에서였다. 당시 이슬람권은 '닫힌 문'으로 여겨졌고, 특히 여성들을 위한 선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릴리어스는 바로 그 '불가능한' 땅에, 여성의 몸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강렬한 부르심을 느꼈다. 1888년, 그녀는 건강이 약하다는 이유로 선교 단체의 공식 파송을 받지 못했지만, 몇몇 여성 동료들과 함께 독립 선교사로서 알제리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본론 2: 그림과 사랑으로 열어간 마음의 문
알제에 도착한 릴리어스의 선교 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버리는 대신, 그것을 복음을 위한 새로운 도구로 사용했다.

'맹인 인도자'의 비유
그녀와 동료들은 알제리의 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다니며, 굳게 닫힌 이슬람 가정의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자신들을 '선교사'라고 소개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당신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그녀의 주된 사역 대상은 집안에 갇혀 지내는 무슬림 여성들과 아이들이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바느질을 하며,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작은 스케치북에 아름다운 꽃과 새를 그려 보여주며 그들의 마음을 열었다. 그녀의 그림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소통하는 아름다운 도구가 되었다.

그녀는 성경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대신, 비유와 예화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알제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맹인을 인도하는 소년'의 모습을 그리고, 예수님이야말로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빛의 인도자'이심을 설명했다.

사막의 순례자
그녀의 사역은 알제 시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녀는 더 깊은 내륙과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까지, 낙타를 타고 여행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현지의 문화와 자연을 섬세한 수채화와 깊이 있는 글로 기록했다.

그녀의 글과 그림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깊은 묵상이자, 이슬람 영혼들을 향한 그녀의 애끓는 사랑의 고백이었다. 그녀가 남긴 일기와 묵상집, 예를 들어 『하늘의 향기(Parables of the Cross)』는 훗날 오스왈드 챔버스 등 수많은 영성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고전이 되었다.

결론: 땅에 묻힌 씨앗, 풍성한 향기로 피어나다
릴리어스 트로터는 40년 가까이 북아프리카에서 헌신하다가, 1928년 74세의 나이로 알제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가 평생을 바친 사역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녀가 세운 교회도, 그녀를 통해 회심한 사람의 숫자도 극히 적었다. 그녀의 이름은 선교의 위인전에서 오랫동안 잊혀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유산은 그녀가 남긴 가시적인 결과물에 있지 않다.

그녀는 '관계 중심적 선교'의 위대한 선구자였다. 그녀는 프로그램이나 전략이 아닌, 진심 어린 우정과 섬김을 통해 다른 문화권의 영혼에게 다가가는 길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여성을 통한 여성 선교'의 문을 열었다. 그녀는 남성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었던 이슬람 여성들의 내면 세계로 들어가, 그들의 진정한 필요에 응답했다.

그녀의 삶과 영성은 시대를 초월하는 영감을 준다. 그녀의 이야기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재발견되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묻는 강력한 도전이 되고 있다.

릴리어스 트로터는 존 러스킨이 예언했던 '영국 최고의 화가'가 되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알제리의 좁은 골목길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 간 '하나님의 화가'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재능을 땅에 묻힌 한 알의 밀알처럼 기꺼이 십자가 아래에 묻었다. 그리고 그 썩어짐을 통해,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시들지 않는 진리와 헌신의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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