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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열전 200인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Robert Jermain Thomas)

대동강 변에서 성경을 나눠주다 순교한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로, 그의 죽음은 평양 대부흥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대동강에 뿌려진 순교의 피,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평양 대부흥의 첫 밀알이 되다
서론: 불타는 배, 강가에 흩뿌려진 성경
1866년 9월, 조선의 평양 대동강변. 강 한가운데서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맹렬한 불길에 휩싸여 있다. 배에서 뛰어내려 강가로 헤엄쳐 나온 한 젊은 서양인이 성난 관군과 백성들에게 포위된다. 죽음이 임박한 그 순간, 그는 품 속에서 책들을 꺼내 필사적으로 강가의 사람들을 향해 던지며 "야소! 야소!(예수! 예수!)"라고 외친다. 마침내 자신을 처형하려는 군인의 손에 마지막 성경 한 권을 건넨 뒤, 그는 칼날 아래 붉은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이 극적인 장면의 주인공이 바로 한국 땅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웨일스 출신의 27세 젊은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이다. 그의 선교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완벽하고도 처참한 실패였다. 그는 논란 많은 무장 상선을 타고 굳게 닫힌 나라에 무단으로 들어왔고, 단 한 명의 개종자도 얻지 못했으며, 도착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그의 모든 노력은 불타는 배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성경 말씀의 가장 위대한 성취가 되었다. 그가 대동강변에 뿌린 순교의 피와 성경책들은,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20세기 초 평양을 뒤흔든 대부흥 운동의 신비로운 씨앗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본 글은 이처럼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삶을 살았던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를 미지의 땅 조선으로 이끈 불타는 열망과 두 번에 걸친 시도를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비극적인 전말과 그의 순교의 순간을 재구성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죽음이라는 '실패'가 어떻게 한국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의 '성공'으로 이어졌는지 그 놀라운 유산의 의미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조선을 향한 불타는 열망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는 1839년 웨일스의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런던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재능 있는 젊은이였다. 그는 런던 선교회(LMS)의 파송을 받아, 1863년 아내와 함께 중국 상하이로 향하며 선교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개인적 비극과 새로운 소명
그러나 그의 첫 사역은 순탄치 않았다. 상하이에 도착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사랑하는 아내가 유산 후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진 그는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잠시 중국 세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있던 선교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적인 상실의 고통은 그의 시선을 더욱 어렵고 도전적인 곳, 당시 세계에서 가장 굳게 닫힌 '은둔의 왕국' 조선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는 조선이야말로 자신의 남은 생을 온전히 바쳐야 할 사명의 땅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첫 번째 시도: 변장과 잠입
1865년 가을, 그는 마침내 조선으로 향하는 첫 시도를 감행했다. 그는 중국인 선교 동역자 두 명과 함께, 중국의 정크선을 타고 서해를 건넜다. 그는 한복으로 변장하고 상투를 튼 채, 황해도 창린도 해안에 상륙했다. 그는 약 두 달 반 동안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며, 관리들의 눈을 피해 자신이 가져온 한문 성경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비록 위험하고 제한적인 활동이었지만, 이 경험은 조선 복음화에 대한 그의 열망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본론 2: 제너럴 셔먼호와 마지막 항해
중국으로 돌아온 토마스는 조선 내륙 깊숙이 들어갈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미국의 무장 상선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였다.

논란의 여지 있는 수단
제너럴 셔먼호의 주목적은 조선과의 통상이었지만, 그 방식은 매우 공격적이고 제국주의적이었다. 그들은 허가 없이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가 통상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벌일 계획이었다. 토마스는 이 배의 위험성과 논란의 소지를 알면서도, 굳게 닫힌 평양까지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판단하여 통역관 자격으로 승선했다. 이는 칼 귀츨라프가 아편선에 승선했던 것처럼, 선한 목적을 위해 위험한 수단과 타협한 선택이었다.

대동강에서의 비극
1866년 8월,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 관리들의 강력한 경고를 무시하고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성 근처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며칠간의 폭우로 불어났던 강물이 줄어들면서, 배는 얕은 모래톱에 좌초되고 말았다. 옴짝달싹 못하게 된 배의 선원들과 평양의 관군 및 백성들 사이에는 며칠간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셔먼호 측이 조선 관리를 납치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면서, 마침내 양측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 측은 화공(火攻) 작전을 감행했고, 제너럴 셔먼호는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불길을 피해 강으로 뛰어내렸지만, 강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관군과 백성들의 손에 모두 죽임을 당했다. 토마스 역시 이 비극의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강변의 순교
토마스의 마지막 순간은 여러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그는 불타는 배에서 탈출하여 강가로 헤엄쳐 나오면서도, 품 속에 지니고 있던 성경책들을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향해 던졌다. 마침내 강기슭에 이르러 붙잡혔을 때, 그는 자신을 죽이려던 군인 박춘권의 손에 마지막 성경 한 권을 공손히 건네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한다.

본론 3: 한 알의 밀알, 위대한 부흥을 낳다
토마스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순교는, 한국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벽지가 된 성경
토마스가 강가에 던진 성경책들은 흩어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낯선 책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제너럴 셔먼호를 해체하는 작업에 동원되었던 박영식이라는 인물은, 강물에 떠다니던 성경책들을 건져 그 종이가 희고 질긴 것을 보고 자신의 집을 도배하는 벽지로 사용했다.

그러나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벽에 붙은 한자로 가득한 종이를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 박영식의 집은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사람들은 벽에 쓰인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그 의미를 궁금해했다. 토마스가 뿌린 말씀의 씨앗이, 사람들의 집 벽지 위에서 조용히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
시간이 흘러, 평양에 본격적으로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토마스가 뿌렸던 씨앗들은 놀라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토마스를 처형했던 군인 박춘권은 훗날 회개하고 장로교의 신실한 신자가 되었다. 성경 벽지를 발랐던 박영식의 조카 이영태는 평양 지역의 중요한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다.

토마스가 순교했던 대동강변, 바로 그 자리에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가 세워졌고, 이 교회는 훗날 '토마스 기념 교회'로 불리기도 했다. 순교자의 피가 뿌려진 바로 그 땅 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907년, 평양에서는 한국 교회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기록된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이 대부흥을 통해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만큼 강력한 기독교 도시로 변모했다. 수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40년 전 대동강변에서 한 젊은 선교사가 흘렸던 순교의 피와 눈물의 기도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결론: 실패가 아닌, 가장 위대한 씨앗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의 삶은 세상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예이다. 그는 선교사로서 단 하나의 가시적인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그는 잘못된 방법을 선택했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던 땅에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던졌다.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완벽하게 증명했다. 그의 순교는 단순한 비극적인 사건을 넘어,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신화적인 서사가 되었다. 그것은 한국 교회가 '순교의 피'라는 거룩한 씨앗 위에 세워졌다는 강력한 영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토마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이해를 얼마나 깊이 초월하는지를 가르쳐준다. 한 젊은 웨일스인의 피가, 논란 많은 미국 상선 위에서, 대동강의 차가운 물줄기 속으로 흘러들어 가, 20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기독교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는 영적 거름이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의 실패처럼 보였던 죽음은, 그렇게 한국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성공의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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