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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열전 200인

글래디스 에일워드 (Gladys Aylward)

중국 산시성에서 고아들을 돌보며 '고아들의 어머니'로 불린 영국인 가정부 출신 선교사입니다.

작은 거인, 글래디스 에일워드: 100명의 고아를 이끌고 산을 넘은 여인
서론: "자격 미달"이라는 거절 앞에서
1920년대 후반, 런던의 한 선교 본부. 중국 선교사를 꿈꾸던 한 젊은 여인이 면접관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성경 지식과 신학적 소양도 부족했다. 면접관들은 고심 끝에 그녀에게 '자격 미달'이라는 최종 통보를 내렸다. 선교사가 되기에는 나이도 너무 많고, 학문적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부분의 사람이었다면 여기서 꿈을 접었을 것이다. 그러나 키가 150cm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여성, 글래디스 에일워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데, 당신들이 뭐라고 막느냐"는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런던의 부유한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푼돈을 모아,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가장 싸고 위험한 기차표 한 장을 손에 쥐었다.

글래디스 에일워드의 삶은 이처럼 세상의 기준과 평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놀라운 증거이다. 그녀는 '자격 없는' 가정부에서 시작하여, 중국 산시성의 험준한 산맥 속에서 '아이웨더(艾偉德, 덕이 있는 사람)'라 불리며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고, 일본군의 포화 속에서 100여 명의 고아들을 이끌고 기적적으로 산을 넘은 위대한 어머니가 되었다. 본 글은 이 '작은 거인'의 놀라운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선교회로부터 거절당한 그녀가 어떻게 홀로 중국 땅을 밟게 되었는지 그 불굴의 여정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팔복객잔'과 '전족 관리' 등 그녀의 독창적이고 지혜로운 사역을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삶의 정점이었던 100명의 고아들과 함께한 고난의 행군과, 그녀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런던의 가정부, 시베리아를 횡단하다
글래디스 에일워드의 위대한 여정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철저한 무모함과 불가능 속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하지만 확고했던 부르심
1902년 런던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글래디스는 젊은 시절부터 평범한 가정부(parlourmaid)로 일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중국의 영혼들을 향한 뜨거운 부담감이 있었다. 그녀는 중국 선교사로 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단순하지만 확고하게 믿었다.

이 소명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당시 가장 권위 있던 선교 단체였던 중국내지선교회(CIM)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선교 본부의 훈련 과정은 그녀에게 너무나 힘겨웠다. 학문적 배경이 거의 없었던 그녀는 성경과 신학 시험에서 계속해서 낙제했다. 결국 선교회는 그녀가 선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최종 결론 내렸다. 이 거절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와 좌절을 안겨주었지만, 그녀의 소명을 꺾지는 못했다.

믿음으로 떠난 여정
선교회가 자신을 보내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힘으로 가겠다고 결심한 글래디스는 다시 가정부로 돌아가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런던에서 중국 톈진까지 가는 편도 기차표를 살 돈을 마련했다. 가장 싼 표는 배가 아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것이었다.

1932년, 그녀는 성경 한 권과 약간의 음식, 그리고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2파운드를 들고 홀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녀의 여정은 첩보 영화와도 같았다.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를 거쳐 소련으로 들어간 그녀의 기차는, 당시 소련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만주 지역에서 멈춰 섰다. 그녀는 기차에서 쫓겨나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고, 낯선 이들의 도움으로 일본을 거쳐 마침내 기적적으로 목적지인 중국 톈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험난한 여정 자체가, 그녀의 비범한 용기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서막이었다.

본론 2: 팔복객잔과 '아이웨더'
톈진에 도착한 글래디스는 자신이 가기로 약속되어 있던, 산시성(山西省)의 깊은 산골 도시 양청(陽城)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의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었다.

'팔복객잔'의 이야기꾼
양청에는 제니 로슨(Jeannie Lawson)이라는 나이 든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가 힘겹게 사역하고 있었다. 글래디스는 그녀의 동역자가 되었다. 그들의 선교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그들은 '팔복객잔(The Inn of the Eight Happinesses)'이라는 이름의 여관을 운영했다. 이곳은 험준한 산맥을 오가는 노새 상인(muleteer)들을 위한 쉼터였다. 그들은 상인들에게 저렴한 잠자리와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는 대신, 식사가 끝난 후 성경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글래디스는 특유의 재치와 열정으로 성경의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고, 이 이야기들은 노새 상인들의 입을 통해 산시성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발을 푸는 관리, '아이웨더'
제니 로슨이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게 된 글래디스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중국 정부는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잔인한 풍습인 '전족(foot-binding)'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골 마을까지 이 법을 시행하고 감독할 사람이 없었다. 양청의 현(縣)의 장관은 글래디스의 강직함과 용기를 눈여겨보고, 그녀를 '전족 감독 관리'로 임명했다.

이 직책은 그녀에게 모든 집의 문을 열 수 있는 공식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그녀는 노새를 타고 산골 마을 구석구석을 방문하며, 여성들의 묶인 발을 풀어주고 전족의 해로움을 설득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깊은 신뢰 관계를 쌓아나갔다. 사람들은 이 작은 체구의 외국인 여인이 보여준 사랑과 헌신에 감동하여, 그녀를 '아이웨더(艾偉德)', 즉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존경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명성은 교도소 폭동 사건을 통해 절정에 달했다. 어느 날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켜 간수들까지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자, 겁에 질린 장관은 아이웨더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홀로 피비린내 나는 교도소 안으로 걸어 들어가, 흥분한 죄수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성적으로 설득하여 마침내 무기를 내려놓게 했다. 이 사건 이후, 그녀는 양청에서 가장 존경받고 신뢰받는 인물이 되었다.

본론 3: 100명의 고아와 함께한 고난의 행군
평화롭던 양청의 삶은 1938년, 중일전쟁의 포화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글래디스 에일워드의 삶은 가장 위대하고 극적인 정점을 맞이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일본군이 산시성을 침략하자, 양청은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글래디스는 피난을 거부하고, 부상자들을 돌보고 전쟁고아들을 거두는 일에 헌신했다. 그녀가 돌보는 고아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 100명에 가까워졌다. 그녀는 일본군의 스파이로 지목되어 현상금까지 걸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마침내 더 이상 양청에 머물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아이들을 안전한 시안(西安)의 고아원으로 피신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시안까지의 길은 험준한 산맥과 일본군 점령지를 통과해야 하는,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죽음의 여정이었다.

기적의 행군
1940년, 글래디스는 100여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이 불가능해 보이는 여정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나이는 4살부터 16살까지 다양했다. 그녀는 어린 아이들을 업고, 큰 아이들을 격려하며 험준한 산길을 걸었다. 굶주림과 피로, 질병이 그들을 덮쳤고, 일본군 순찰대를 피해 밤에만 이동해야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참고: 이 장면은 글래디스 에일워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으로, 실제와는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여정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어디선가 마을 사람들이 나타나 음식을 주었고, 길을 잃으면 누군가가 나타나 길을 안내해주었다. 마침내 황허(黃河)에 도착했지만, 강을 건널 배가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글래디스는 아이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얼마 후 기적적으로 강을 건너던 군인들의 배를 얻어 탈 수 있었다. 한 달이 넘는 사투 끝에, 그녀와 100여 명의 아이들은 마침내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시안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글래디스는 그동안 쌓였던 모든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티푸스와 폐렴, 영양실조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결론: '작은 거인'이 남긴 위대한 발자취
글래디스 에일워드의 이야기는 훗날 앨런 버지스의 책 『작은 여인(The Small Woman)』과,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여섯 번째 행복의 여관(The Inn of the Sixth Happiness)』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비록 영화는 극적인 재미를 위해 사실과 다른 내용(특히 로맨스)을 추가했지만, 그녀의 실제 삶은 영화보다 더 위대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녀의 유산은 명확하다.
첫째,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자격이나 조건에 얽매이지 않음을 증명했다. 세상의 권위 있는 선교 단체는 그녀를 '자격 미달'이라 판단했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작고 연약한' 그릇을 들어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하셨다. 그녀의 삶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는 고린도전서 말씀의 살아있는 증거이다.

둘째, 그녀는 진정한 '성육신적 선교'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외부인으로 군림하지 않고, 기꺼이 중국인이 되어 그들의 아픔과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녀의 사랑은 말뿐인 사랑이 아니라, 발을 씻기고 상처를 싸매주며,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실천적인 사랑이었다.

글래디스 에일워드는 작은 체구의 여인이었지만, 그녀의 믿음과 사랑은 산을 넘고 국경을 넘어 수많은 영혼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자격'이라는 세상의 기준에 갇혀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더 큰 가능성에 우리의 삶을 던지고 있는가? 런던의 부엌에서 시작하여 100명의 고아들과 함께 산을 넘었던 그녀의 위대한 발자취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원한 증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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