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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열전 200인

그래함 스테인스 (Graham Staines)

인도 오리사 주에서 30년 넘게 나병 환자들을 섬기다 두 아들과 함께 방화로 순교했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순교자, 그래함 스테인스: 증오의 불길을 넘어선 헌신
서론: "나는 그들을 용서합니다"
1999년 1월 23일 새벽, 인도 동부 오리사(Orissa) 주의 작은 마을 마노하르푸르. 한 낡은 지프차 안에서 잠들어 있던 호주 출신의 58세 선교사와 그의 두 어린 아들 필립(10세), 티모시(6세)가 끔찍한 화염에 휩싸였다. 힌두교 광신도들로 이루어진 성난 군중이 차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것이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함께 불에 타 숨졌다. 이 끔찍한 사건의 희생자가 바로, 34년간 인도에서 가장 소외된 이웃이었던 나병 환자들을 섬겨온 그래함 스테인스 선교사였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 이후, 모든 언론의 관심은 한 사람에게 쏠렸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아내, 글래디스 스테인스(Gladys Staines)였다. 모두가 그녀의 입에서 증오와 복수의 말이 터져 나오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자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들을 용서합니다. 증오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내 남편과 두 아들은 하나님을 섬기다 그분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래함 스테인스의 이야기는 그의 비극적인 순교만큼이나, 그 죽음 앞에서 보여준 그의 가족들의 놀라운 용서로 완성된다. 그의 삶은 종교적 증오와 폭력의 광기가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어둠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증거하는 순교의 서사시이다. 본 글은 이처럼 사랑으로 살고 용서로 자신의 사명을 완성한 그래함 스테인스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가 어떻게 인도의 나병 환자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치게 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그의 비극적인 순교와 그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을 추적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죽음이 인도 사회와 기독교에 어떤 깊은 울림을 남겼는지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34년간의 헌신, 나병 환자들의 친구
그래함 스테인스의 인도 사역은 1965년, 그가 24세의 젊은 나이에 호주에서 인도로 건너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복음주의 선교 연합(Evangelical Missionary Society of Mayurbhanj)' 소속으로, 인도의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 중 하나인 오리사 주에서 사역했다.

세상이 버린 이들을 섬기다
그의 주된 사역 대상은 당시 '천형(天刑)'이라 불리며 모든 이에게 멸시받고 버림받았던 나병(한센병) 환자들이었다. 그는 오리사 주 바리파다(Baripada)에 있는 나병 환자 요양원을 운영하며, 3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그들을 섬겼다.

그는 단순히 의약품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환자들의 썩어가는 상처를 직접 돌보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또한 나병 환자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직물 기술 등을 가르쳤고,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했다. 그는 나병 환자들 사이에서 '사이바(Saib, 존경하는 주인)'라 불리며 깊은 사랑과 신뢰를 받았다.

1983년, 그는 인도에서 동료 선교사였던 글래디스와 결혼하여 딸 에스더와 두 아들 필립, 티모시를 낳았다. 그의 가족은 기꺼이 인도의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다.

본론 2: 마노하르푸르의 불길, 그리고 용서
스테인스 가족의 헌신적인 사역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후반 인도 사회에는 힌두 민족주의의 광풍이 불어 닥쳤다. 일부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을, 가난한 힌두교도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는 '외국 세력'으로 간주하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거짓과 증오가 부른 참사
1999년 1월, 그래함 스테인스는 두 아들 필립, 티모시와 함께 매년 열리는 정글 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오지 마을인 마노하르푸르를 방문했다. 그날 밤, 그들이 낡은 지프차 안에서 잠든 사이, '다라 싱(Dara Singh)'이라는 힌두교 극단주의자가 이끄는 50여 명의 폭도가 차를 에워쌌다. 그들은 "스테인스가 힌두교도들을 집단으로 개종시키고 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군중을 선동했다.

폭도들은 차를 뒤집고 기름을 부은 뒤 불을 질렀다. 어린 두 아들이 불길을 피해 빠져나오려 하자, 폭도들은 몽둥이로 그들을 막아 다시 불 속으로 밀어 넣는 잔인함을 보였다. 그래함 스테인스와 그의 두 아들은 그렇게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전 세계는 분노했다. 그러나 이 비극의 중심에 서 있던 아내 글래디스와 딸 에스더의 반응은 세상을 더욱 놀라게 했다. 그들은 복수심에 불타는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것처럼 "저들을 용서한다"고 선언했다.

글래디스는 인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금도 분노하거나 증오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회개하고 자신들의 삶을 바꾸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남편은 인도와 인도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을 앗아간 증오의 땅 인도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딸과 함께 인도에 남아, 남편이 하던 나병 환자 사역을 계속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2005년, 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완공하여 남편의 이름으로 헌정했다. 그녀의 이러한 초인적인 용서와 사랑은, 남편의 순교만큼이나 강력하게 인도의 양심을 뒤흔들었다.

본론 3: 순교의 피가 남긴 유산
그래함 스테인스의 죽음은 힌두교 극단주의의 잔혹성을 전 세계에 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단지 비극적인 사건의 고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도의 양심을 깨우다
이 사건은 인도 사회 전체에 큰 충격과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다. 당시 인도의 대통령이었던 K. R. 나라야난은 이 사건을 "세계의 질병인 광신에 속한 것"이라며 강력하게 규탄했고, 수많은 인도 지식인과 시민들이 종교적 관용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주범 다라 싱은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고(이후 종신형으로 감형), 이 사건은 인도의 종교적 극단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용서의 힘을 증거하다
글래디스 스테인스의 용서의 메시지는 힌두교가 다수인 인도 사회에 기독교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었다. 증오를 사랑으로, 복수를 용서로 갚는 그녀의 모습은 수많은 인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기독교에 대한 편견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

인도 정부는 글래디스의 숭고한 헌신과 용서를 기려, 2005년 그녀에게 사회 정의를 위해 공헌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파드마 슈리(Padma Shri)' 훈장을 수여했다. 그녀는 2004년 인도에서의 사역을 마감하고 호주로 돌아갔지만, 그녀의 딸 에스더는 인도에서 의학을 공부하며 아버지와 할머니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에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랑(The Least of These: The Graham Staines Story)'이 제작되어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깊은 울림을 주었다.

결론: 증오보다 강한 사랑
그래함 스테인스와 그의 두 아들의 순교는 20세기 말 기독교가 마주한 가장 끔찍한 비극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과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복음의 진리를 가장 극명하게 증거한다.

그래함 스테인스의 34년간의 헌신적인 삶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 글래디스의 초인적인 용서는, 그 사랑이 증오와 죽음마저도 넘어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스테인스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고난과 부당한 증오 앞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우리는 복수의 칼을 들 것인가, 아니면 용서의 손을 내밀 것인가? 그래함 스테인스는 자신의 생명을, 그리고 그의 가족은 자신들의 고통을 바쳐,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가장 위대한 대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 언제나 증오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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