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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전문인 선교학 49 과정

창조-타락-구속 흐름, 아브라함 언약,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

성경신학 및 배경

에덴에서 열방으로: 창조, 언약,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에 대한 성경신학적 고찰

서론: 성경,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
성경은 단순히 종교적 교리나 도덕적 교훈, 혹은 영웅들의 전기를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는 하나의 거대하고 통일된 서사, 즉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장대한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다. 이 관점에서 선교는 신약 시대에 교회가 시작한 특정 활동이 아니라, 창조의 순간부터 시작되어 인류 역사를 관통하며, 새 창조의 완성으로 귀결될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역 그 자체이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잃어버린 피조 세계를 구속하고 회복하여 당신의 영광스러운 통치 아래로 다시 모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본 강의안은 이 거대한 '하나님의 선교'라는 렌즈를 통해 구약성경을 재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성경의 근본적인 내러티브 구조인 '창조-타락-구속'의 흐름이 어떻게 선교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설정하는지 탐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에덴동산에서 인류에게 주어진 최초의 사명인 '문화명령'을 선교의 원형으로 분석하고, 인간의 타락이 이 사명에 어떤 파국을 가져왔는지 고찰한다.

이어서, 타락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적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인 '아브라함 언약'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이 언약이 어떻게 '특수한 선택을 통한 보편적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선교 전략의 핵심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기 위한' 통로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세워진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 언약을 통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선교적 역할을 부여받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들의 율법, 예배, 그리고 국가 공동체 자체가 어떻게 열방을 향한 '구심적(centripetal)' 증거가 되어야 했는지를 분석하고, 동시에 그들이 이 사명을 어떻게 오해하고 실패했는지, 그리고 그 실패 속에서 선지자들이 어떻게 더 온전한 선교의 미래를 예언했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신약의 지상명령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전체에 깊이 뿌리내린 하나님의 일관된 선교적 목적의 필연적인 귀결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구약성경을 단지 이스라엘의 국지적인 역사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의 첫 장(章)으로 읽어내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제1부 창조와 타락: 선교의 기원과 필요성
하나님의 선교는 창조의 행위 그 자체에서 시작된다. 창조는 단순히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 그리고 영광이 피조 세계를 통해 드러나도록 의도된 목적 지향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류가 있었다.

1.1. 창조와 문화명령: 인류 최초의 선교적 사명
창세기 1장 26-28절은 인류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그 존재 목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본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인(vice-gerent), 즉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여 수행하는 청지기로 부름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리 통치자로서의 사명은 창세기 1장 28절의 '문화명령'(Cultural Mandate) 혹은 '통치명령'을 통해 구체적으로 부여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명령은 흔히 오해되듯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하라는 허가가 아니다. '정복하라'(카바쉬)와 '다스리라'(라다)는 동사는 왕적 권위를 가지고 질서를 부여하고 잠재력을 개발하여 풍성하게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인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아직 미완성 상태인 창조 세계를 경작하고 돌보며(창 2:15), 그 안에 숨겨진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우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에게 주어진 최초의 선교적 사명이었다. 선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가 온 땅에 확장되는 것이며, 문화명령은 그 사명의 원형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가정, 노동, 예술, 학문—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온 피조물이 창조주를 찬양하게 만드는 예배의 인도를 맡은 제사장이었다.

1.2. 타락: 선교의 실패와 왜곡
그러나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간의 타락은 이 원대한 선교적 사명에 파국을 가져왔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을 선택했다. 이 불순종은 단순히 금지된 열매 하나를 먹은 사소한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반역 행위였으며, 인류 최초의 '선교적 실패'였다.

타락의 결과는 참혹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깨어지고 두려움과 숨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창 3:8-10).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사랑과 협력에서 비난과 지배의 관계로 왜곡되었다(창 3:12, 16).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조화로운 돌봄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상징되는 고통스러운 투쟁의 관계로 변질되었다(창 3:17-19).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으나 심각하게 손상되고 뒤틀렸다.

이러한 관계의 총체적 파괴는 문화명령의 왜곡으로 이어졌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문화를 창조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문화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 정점이 바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이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 이는 하나님의 문화명령("땅에 충만하라")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대신 "우리 이름"을 높이려는 인간 중심적 문화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써 이 교만한 시도를 흩으셨고, 인류는 분열과 갈등의 역사로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처럼 타락은 하나님의 선교에 근본적인 위기를 초래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대리 통치자는 반역자가 되었고, 온 땅을 하나님의 통치로 채워야 할 사명은 자기 우상화의 도구로 전락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구속'(Redemption)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왜곡된 사명을 바로잡으며, 반역한 인류를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차원의 선교, 즉 '구속적 선교'가 시작되어야만 했다.

1.3. 원시복음과 구속의 서막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심판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셨다. 심판의 선언 속에서 하나님은 구속의 첫 희망을 계시하시는데, 이를 '원시복음'(Proto-evangelium)이라 부른다. 뱀을 저주하시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 구절은 인류 역사가 뱀의 후손(사탄의 세력)과 여자의 후손(하나님의 구원자) 사이의 영적 전쟁의 장이 될 것을 예고한다. 비록 여자의 후손이 고통(발꿈치를 상함)을 당할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는 앞으로 펼쳐질 성경 전체의 구속 드라마를 요약하는 서곡과 같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행위(창 3:21)는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허술한 옷(인간의 노력)으로는 불충분했다. 그들의 부끄러움을 온전히 가리기 위해서는 한 생명의 희생(가죽옷)이 필요했으며, 그 옷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주셔야 했다.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와 수치가 가려질 것을 예표하는 그림자이다.

이처럼 타락 직후부터 하나님은 깨어진 세상을 향한 당신의 구속적 선교를 시작하셨다. 바벨탑의 심판으로 절망의 정점에 이른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이제 이 구속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펼치시기 시작한다. 그것은 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제2부 아브라함 언약: 하나님의 선교 전략의 확립
바벨탑 사건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총체적 반역과 분열 이후,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새로운 국면을 여신다. 그것은 모든 인류를 한꺼번에 상대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 위대한 구속사의 전환점이 바로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그에게 주신 언약이다.

2.1. 보편적 구원을 위한 특수한 선택 (창세기 12:1-3)
창세기 12장 1-3절은 구약 선교 신학의 대헌장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본문이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의 이방 문화 속에서 살아가던 아브람에게 나타나 명령하시고 약속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언약은 여러 층위의 약속을 담고 있지만, 그 구조는 명백히 선교적이다.

부르심과 떠남: 선교는 언제나 '떠남'에서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안정된 기반(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불확실한 약속만을 의지하여 길을 떠나야 했다. 이는 세상의 가치관과 안락함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모든 선교적 삶의 원형이다.

개인적/민족적 축복: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큰 복을 약속하신다. 첫째,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자손의 복). 둘째,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이다(명성의 복). 셋째,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개인적 축복). 이는 바벨탑에서 인간들이 스스로 얻고자 했던 '큰 이름'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며,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축복의 회복을 의미한다.

궁극적 목적: 모든 족속을 향한 축복: 그러나 이 모든 약속은 아브라함 자신이나 그의 후손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이 언약의 정점이자 궁극적인 목적은 마지막 구절에 명시되어 있다.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히브리어 원문은 "너는 복이 될지라"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혹은 "너는 복 그 자체가 되라"는 명령형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은 복을 받는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그 복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 선교의 근본적인 동학, 즉 '보편주의를 섬기는 특수주의'(Particularism for the sake of Universalism)이다. 하나님은 '모든 족속'이라는 보편적인 구원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라는 특수한 대상을 선택하셨다. 이스라엘은 열방을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방을 '위해서' 선택된 민족이다. 그들의 선택은 특권이기에 앞서 책임이었고, 지위이기에 앞서 사명이었다.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의 관심이 결코 한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으며, 그의 구원 계획이 처음부터 전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성격을 가졌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2.2. 언약의 발전과 선교적 함의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기 전체에 걸쳐 점진적으로 재확인되고 구체화되면서 그 선교적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드러낸다.

땅과 자손의 약속: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고(창 13:14-17), 그의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창 15:5). 이는 장차 하나님의 백성이 거할 거룩한 공간(하나님 나라의 모형)과 그 나라를 구성할 수많은 백성에 대한 약속이다. 선교는 결국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그의 나라를 세우는 사역이라는 점에서, 이 약속들은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

할례: 언약 백성의 표지: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명령하신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구별하는 가시적인 표시였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함을 보여준다. 선교적 증거는 세상과의 구별됨, 즉 거룩함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삭과 야곱에게로의 계승: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그의 아들 이삭(창 26:3-4)과 손자 야곱(창 28:13-14)에게 그대로 계승된다. 특히 야곱에게 주신 약속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선교적 사명이 다시 한번 명확하게 강조된다. 이는 이 언약이 단지 한 개인의 약속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을 통해 대대로 이어져야 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임을 보여준다.

아브라함 언약은 이후 구약 역사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물줄기가 된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가나안 정복, 다윗 왕국의 설립 등 모든 구속사의 사건들은 이 언약의 성취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후손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는 것, 즉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타락 이후 흩어지고 분열된 인류를 다시 하나로 모으고, 그들을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으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제3부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
아브라함 언약의 씨앗은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한 민족으로 자라났고, 애굽에서의 400년 고난의 시간을 통해 거대한 백성으로 번성했다. 이제 하나님은 이 민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구출해내시고, 그들과 공식적인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그들의 정체성과 사명을 명확히 규정하신다. 이 역사적 사건이 바로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이며,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라는 구체적인 선교적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3.1. 출애굽: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
출애굽 사건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신들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공개적인 심판이자,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의 장엄한 선포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고 말씀하시며, 이 사건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행위임을 분명히 하신다.

열 가지 재앙은 각각 애굽의 주요 신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나일 강을 피로 물들인 것은 나일의 신 '하피'에 대한 심판이었고, 태양을 흑암으로 덮은 것은 최고의 신 '라'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바로와 애굽 백성, 그리고 주변의 모든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알게 되었다. 훗날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고백했듯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

이처럼 출애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선교적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고, 열방은 이스라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재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이스라엘이 장차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의 역사적, 신학적 기초가 되었다.

3.2. 시내산 언약: '제사장 나라'로서의 소명 (출애굽기 19:5-6)
출애굽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보이신 하나님은 이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공식적인 언약을 맺으신다. 이 언약의 핵심 내용이 바로 출애굽기 19장 5-6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규정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브라함 언약만큼이나 중요하다.

하나님의 보편적 주권: 하나님은 언약을 시작하시면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라고 선언하신다. 이는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라는 더 큰 맥락 안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지역 신이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시다.   

특별한 소유: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세굴라)가 될 것이라고 약속받는다. 이는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여 선택되었음을 의미한다.

제사장 나라(Kingdom of Priests):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핵심적인 선교적 역할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보하는 역할을 한다. 즉, 백성의 필요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과 축복을 백성에게 전달한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열방 사이의 '중보자 나라'로 부름받았다. 그들은 열방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동시에 열방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   

거룩한 백성(Holy Nation):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거룩'(카도쉬)은 '구별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주변 이방 민족들의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삶의 방식에서 구별되어, 오직 하나님의 율법(토라)이 규정하는 공의롭고 자비로운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들의 독특하고 거룩한 삶의 방식 자체가 열방을 향한 가장 강력한 증거요, 매력이 되어야 했다.   

3.3. 구심적 선교: 열방을 끌어당기는 빛으로서의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선교 방식은 신약 교회의 선교 방식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신약 교회의 선교가 흩어져 세상으로 '나아가는' 원심적(centrifugal) 성격이 강하다면, 구약 이스라엘의 선교는 열방을 자신들에게로 '끌어당기는' 구심적(centripetal) 성격이 강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머무는 중심지가 되어, 그 빛으로 열방을 매료시키고 그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했다.

율법(토라)의 증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단순히 지켜야 할 규율의 목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공의롭고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킬 때, 주변 민족들이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신 4:6)라고 감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과부와 고아,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도록 규정한 율법들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고대 사회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드러내는 혁신적인 증거였다.   

성전과 예배의 역할: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과 임재가 머무는 가시적인 장소였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에서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명성을 듣고 먼 곳에서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심으로써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를 경외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왕상 8:41-43).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사 56:7)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선포한다. 이처럼 성전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열방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구심점이 되도록 의도되었다.

시편의 선교적 찬양: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찬양이 열방의 찬양으로 확장되는 선교적 비전이 가득하다. 시편 67편은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한다. 시편 117편은 모든 시편 중 가장 짧지만,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라고 외치며 가장 강력한 선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예배는 본질적으로 열방을 향해 열려 있었으며, 모든 민족을 찬양의 자리로 초청하는 것이었다.   

3.4. 선교적 사명의 실패와 왜곡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위대한 선교적 소명을 성취하기보다는 실패와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거룩함의 상실: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 열방과 구별된 삶을 살라는 명령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은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기고 그들의 부도덕한 풍습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 거룩함을 상실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열방을 끌어당기는 빛이 될 수 없었다.   

선민사상의 왜곡: 제사장 나라로서 열방을 섬겨야 할 사명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선민사상'으로 변질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복을 독점하려는 '저수지'가 되려 했다. 이방인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멸시와 배척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변질은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선지자들의 비판과 새로운 희망: 이러한 이스라엘의 선교적 실패에 대해 선지자들은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동시에 그들은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선교적 열심을 선포하며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다.

이사야는 장차 시온의 빛으로 열방과 왕들이 나아올 영광스러운 미래를 그렸고(사 60:3-5), 이스라엘을 넘어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이 "이방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49:6). 이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선교의 주체가 등장할 것을 암시한다.   

요나서는 이스라엘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서사적 비판이다.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를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보내신다. 요나는 원수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치 않아 불순종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그를 통해 니느웨 전체를 회개시키신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이스라엘의 국경을 훨씬 넘어서며, 가장 악한 이방 민족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요나서는 구약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나아가는' 원심적 선교의 모델을 제시하며, 신약의 지상명령을 예고한다.   

결론: 새 언약과 참된 이스라엘을 향한 기다림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서막을 장대하게 펼쳐 보인다. 창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확장하려는 원대한 계획은 인간의 타락으로 좌절되는 듯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심으로써, 깨어진 세상을 구속하시려는 당신의 선교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율법과 예배를 통해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어, 열방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빛과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러나 구약의 이야기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실패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들은 거룩함을 잃어버렸고, 섬김의 사명을 배타적 특권으로 왜곡했다. 그 결과 그들은 열방을 향한 빛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방 민족과 같이 심판을 받아 흩어지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바로 이 실패의 지점에서 구약은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넘어서는 새로운 구원의 날을 예언했다. 율법이 돌판이 아닌 마음에 새겨지는 '새 언약'(렘 31:31-34)의 도래, 이스라엘의 민족적 한계를 넘어 온전한 순종으로 '이방의 빛'이 될 신실한 '여호와의 종'의 출현, 그리고 모든 민족이 시온으로 나아와 함께 여호와를 예배하게 될 영광스러운 미래가 그것이다.

결국 구약성경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과 기다림을 남긴다. 누가 이 새 언약을 성취할 것인가? 누가 참된 '여호와의 종'이 되어 이스라엘이 실패한 선교적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낼 것인가? 누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되어 온 열방을 구원으로 이끌 것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약성경의 첫 장을 여는 한 인물, 나사렛 예수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참된 이스라엘이요, 고난받는 종이며, 아브라함의 온전한 후손으로서 구약 전체가 가리키던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고, 그의 교회를 통해 그 선교를 땅 끝까지 확장시키실 것이다.

구약의 선교적 관점

에덴에서 열방으로: 창조, 언약,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에 대한 성경신학적 고찰

서론: 성경,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
성경은 단순히 종교적 교리나 도덕적 교훈, 혹은 영웅들의 전기를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는 하나의 거대하고 통일된 서사, 즉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장대한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다. 이 관점에서 선교는 신약 시대에 교회가 시작한 특정 활동이 아니라, 창조의 순간부터 시작되어 인류 역사를 관통하며, 새 창조의 완성으로 귀결될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역 그 자체이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잃어버린 피조 세계를 구속하고 회복하여 당신의 영광스러운 통치 아래로 다시 모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본 강의안은 이 거대한 '하나님의 선교'라는 렌즈를 통해 구약성경을 재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성경의 근본적인 내러티브 구조인 '창조-타락-구속'의 흐름이 어떻게 선교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설정하는지 탐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에덴동산에서 인류에게 주어진 최초의 사명인 '문화명령'을 선교의 원형으로 분석하고, 인간의 타락이 이 사명에 어떤 파국을 가져왔는지 고찰한다.

이어서, 타락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적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인 '아브라함 언약'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이 언약이 어떻게 '특수한 선택을 통한 보편적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선교 전략의 핵심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기 위한' 통로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세워진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 언약을 통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선교적 역할을 부여받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들의 율법, 예배, 그리고 국가 공동체 자체가 어떻게 열방을 향한 '구심적(centripetal)' 증거가 되어야 했는지를 분석하고, 동시에 그들이 이 사명을 어떻게 오해하고 실패했는지, 그리고 그 실패 속에서 선지자들이 어떻게 더 온전한 선교의 미래를 예언했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신약의 지상명령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전체에 깊이 뿌리내린 하나님의 일관된 선교적 목적의 필연적인 귀결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구약성경을 단지 이스라엘의 국지적인 역사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의 첫 장(章)으로 읽어내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제1부 창조와 타락: 선교의 기원과 필요성
하나님의 선교는 창조의 행위 그 자체에서 시작된다. 창조는 단순히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 그리고 영광이 피조 세계를 통해 드러나도록 의도된 목적 지향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류가 있었다.

1.1. 창조와 문화명령: 인류 최초의 선교적 사명
창세기 1장 26-28절은 인류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그 존재 목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본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인(vice-gerent), 즉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여 수행하는 청지기로 부름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리 통치자로서의 사명은 창세기 1장 28절의 '문화명령'(Cultural Mandate) 혹은 '통치명령'을 통해 구체적으로 부여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명령은 흔히 오해되듯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하라는 허가가 아니다. '정복하라'(카바쉬)와 '다스리라'(라다)는 동사는 왕적 권위를 가지고 질서를 부여하고 잠재력을 개발하여 풍성하게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인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아직 미완성 상태인 창조 세계를 경작하고 돌보며(창 2:15), 그 안에 숨겨진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우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에게 주어진 최초의 선교적 사명이었다. 선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가 온 땅에 확장되는 것이며, 문화명령은 그 사명의 원형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가정, 노동, 예술, 학문—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온 피조물이 창조주를 찬양하게 만드는 예배의 인도를 맡은 제사장이었다.

1.2. 타락: 선교의 실패와 왜곡
그러나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간의 타락은 이 원대한 선교적 사명에 파국을 가져왔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을 선택했다. 이 불순종은 단순히 금지된 열매 하나를 먹은 사소한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반역 행위였으며, 인류 최초의 '선교적 실패'였다.

타락의 결과는 참혹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깨어지고 두려움과 숨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창 3:8-10).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사랑과 협력에서 비난과 지배의 관계로 왜곡되었다(창 3:12, 16).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조화로운 돌봄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상징되는 고통스러운 투쟁의 관계로 변질되었다(창 3:17-19).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으나 심각하게 손상되고 뒤틀렸다.

이러한 관계의 총체적 파괴는 문화명령의 왜곡으로 이어졌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문화를 창조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문화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 정점이 바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이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 이는 하나님의 문화명령("땅에 충만하라")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대신 "우리 이름"을 높이려는 인간 중심적 문화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써 이 교만한 시도를 흩으셨고, 인류는 분열과 갈등의 역사로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처럼 타락은 하나님의 선교에 근본적인 위기를 초래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대리 통치자는 반역자가 되었고, 온 땅을 하나님의 통치로 채워야 할 사명은 자기 우상화의 도구로 전락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구속'(Redemption)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왜곡된 사명을 바로잡으며, 반역한 인류를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차원의 선교, 즉 '구속적 선교'가 시작되어야만 했다.

1.3. 원시복음과 구속의 서막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심판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셨다. 심판의 선언 속에서 하나님은 구속의 첫 희망을 계시하시는데, 이를 '원시복음'(Proto-evangelium)이라 부른다. 뱀을 저주하시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 구절은 인류 역사가 뱀의 후손(사탄의 세력)과 여자의 후손(하나님의 구원자) 사이의 영적 전쟁의 장이 될 것을 예고한다. 비록 여자의 후손이 고통(발꿈치를 상함)을 당할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는 앞으로 펼쳐질 성경 전체의 구속 드라마를 요약하는 서곡과 같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행위(창 3:21)는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허술한 옷(인간의 노력)으로는 불충분했다. 그들의 부끄러움을 온전히 가리기 위해서는 한 생명의 희생(가죽옷)이 필요했으며, 그 옷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주셔야 했다.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와 수치가 가려질 것을 예표하는 그림자이다.

이처럼 타락 직후부터 하나님은 깨어진 세상을 향한 당신의 구속적 선교를 시작하셨다. 바벨탑의 심판으로 절망의 정점에 이른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이제 이 구속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펼치시기 시작한다. 그것은 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제2부 아브라함 언약: 하나님의 선교 전략의 확립
바벨탑 사건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총체적 반역과 분열 이후,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새로운 국면을 여신다. 그것은 모든 인류를 한꺼번에 상대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 위대한 구속사의 전환점이 바로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그에게 주신 언약이다.

2.1. 보편적 구원을 위한 특수한 선택 (창세기 12:1-3)
창세기 12장 1-3절은 구약 선교 신학의 대헌장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본문이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의 이방 문화 속에서 살아가던 아브람에게 나타나 명령하시고 약속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언약은 여러 층위의 약속을 담고 있지만, 그 구조는 명백히 선교적이다.

부르심과 떠남: 선교는 언제나 '떠남'에서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안정된 기반(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불확실한 약속만을 의지하여 길을 떠나야 했다. 이는 세상의 가치관과 안락함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모든 선교적 삶의 원형이다.

개인적/민족적 축복: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큰 복을 약속하신다. 첫째,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자손의 복). 둘째,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이다(명성의 복). 셋째,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개인적 축복). 이는 바벨탑에서 인간들이 스스로 얻고자 했던 '큰 이름'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며,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축복의 회복을 의미한다.

궁극적 목적: 모든 족속을 향한 축복: 그러나 이 모든 약속은 아브라함 자신이나 그의 후손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이 언약의 정점이자 궁극적인 목적은 마지막 구절에 명시되어 있다.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히브리어 원문은 "너는 복이 될지라"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혹은 "너는 복 그 자체가 되라"는 명령형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은 복을 받는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그 복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 선교의 근본적인 동학, 즉 '보편주의를 섬기는 특수주의'(Particularism for the sake of Universalism)이다. 하나님은 '모든 족속'이라는 보편적인 구원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라는 특수한 대상을 선택하셨다. 이스라엘은 열방을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방을 '위해서' 선택된 민족이다. 그들의 선택은 특권이기에 앞서 책임이었고, 지위이기에 앞서 사명이었다.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의 관심이 결코 한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으며, 그의 구원 계획이 처음부터 전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성격을 가졌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2.2. 언약의 발전과 선교적 함의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기 전체에 걸쳐 점진적으로 재확인되고 구체화되면서 그 선교적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드러낸다.

땅과 자손의 약속: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고(창 13:14-17), 그의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창 15:5). 이는 장차 하나님의 백성이 거할 거룩한 공간(하나님 나라의 모형)과 그 나라를 구성할 수많은 백성에 대한 약속이다. 선교는 결국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그의 나라를 세우는 사역이라는 점에서, 이 약속들은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

할례: 언약 백성의 표지: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명령하신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구별하는 가시적인 표시였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함을 보여준다. 선교적 증거는 세상과의 구별됨, 즉 거룩함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삭과 야곱에게로의 계승: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그의 아들 이삭(창 26:3-4)과 손자 야곱(창 28:13-14)에게 그대로 계승된다. 특히 야곱에게 주신 약속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선교적 사명이 다시 한번 명확하게 강조된다. 이는 이 언약이 단지 한 개인의 약속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을 통해 대대로 이어져야 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임을 보여준다.

아브라함 언약은 이후 구약 역사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물줄기가 된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가나안 정복, 다윗 왕국의 설립 등 모든 구속사의 사건들은 이 언약의 성취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후손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는 것, 즉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타락 이후 흩어지고 분열된 인류를 다시 하나로 모으고, 그들을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으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제3부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
아브라함 언약의 씨앗은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한 민족으로 자라났고, 애굽에서의 400년 고난의 시간을 통해 거대한 백성으로 번성했다. 이제 하나님은 이 민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구출해내시고, 그들과 공식적인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그들의 정체성과 사명을 명확히 규정하신다. 이 역사적 사건이 바로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이며,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라는 구체적인 선교적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3.1. 출애굽: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
출애굽 사건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신들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공개적인 심판이자,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의 장엄한 선포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고 말씀하시며, 이 사건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행위임을 분명히 하신다.

열 가지 재앙은 각각 애굽의 주요 신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나일 강을 피로 물들인 것은 나일의 신 '하피'에 대한 심판이었고, 태양을 흑암으로 덮은 것은 최고의 신 '라'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바로와 애굽 백성, 그리고 주변의 모든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알게 되었다. 훗날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고백했듯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

이처럼 출애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선교적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고, 열방은 이스라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재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이스라엘이 장차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의 역사적, 신학적 기초가 되었다.

3.2. 시내산 언약: '제사장 나라'로서의 소명 (출애굽기 19:5-6)
출애굽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보이신 하나님은 이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공식적인 언약을 맺으신다. 이 언약의 핵심 내용이 바로 출애굽기 19장 5-6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규정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브라함 언약만큼이나 중요하다.

하나님의 보편적 주권: 하나님은 언약을 시작하시면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라고 선언하신다. 이는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라는 더 큰 맥락 안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지역 신이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시다.  

특별한 소유: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세굴라)가 될 것이라고 약속받는다. 이는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여 선택되었음을 의미한다.

제사장 나라(Kingdom of Priests):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핵심적인 선교적 역할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보하는 역할을 한다. 즉, 백성의 필요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과 축복을 백성에게 전달한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열방 사이의 '중보자 나라'로 부름받았다. 그들은 열방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동시에 열방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  

거룩한 백성(Holy Nation):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거룩'(카도쉬)은 '구별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주변 이방 민족들의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삶의 방식에서 구별되어, 오직 하나님의 율법(토라)이 규정하는 공의롭고 자비로운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들의 독특하고 거룩한 삶의 방식 자체가 열방을 향한 가장 강력한 증거요, 매력이 되어야 했다.  

3.3. 구심적 선교: 열방을 끌어당기는 빛으로서의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선교 방식은 신약 교회의 선교 방식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신약 교회의 선교가 흩어져 세상으로 '나아가는' 원심적(centrifugal) 성격이 강하다면, 구약 이스라엘의 선교는 열방을 자신들에게로 '끌어당기는' 구심적(centripetal) 성격이 강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머무는 중심지가 되어, 그 빛으로 열방을 매료시키고 그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했다.

율법(토라)의 증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단순히 지켜야 할 규율의 목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공의롭고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킬 때, 주변 민족들이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신 4:6)라고 감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과부와 고아,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도록 규정한 율법들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고대 사회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드러내는 혁신적인 증거였다.  

성전과 예배의 역할: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과 임재가 머무는 가시적인 장소였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에서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명성을 듣고 먼 곳에서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심으로써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를 경외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왕상 8:41-43).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사 56:7)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선포한다. 이처럼 성전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열방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구심점이 되도록 의도되었다.

시편의 선교적 찬양: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찬양이 열방의 찬양으로 확장되는 선교적 비전이 가득하다. 시편 67편은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한다. 시편 117편은 모든 시편 중 가장 짧지만,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라고 외치며 가장 강력한 선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예배는 본질적으로 열방을 향해 열려 있었으며, 모든 민족을 찬양의 자리로 초청하는 것이었다.  

3.4. 선교적 사명의 실패와 왜곡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위대한 선교적 소명을 성취하기보다는 실패와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거룩함의 상실: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 열방과 구별된 삶을 살라는 명령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은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기고 그들의 부도덕한 풍습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 거룩함을 상실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열방을 끌어당기는 빛이 될 수 없었다.  

선민사상의 왜곡: 제사장 나라로서 열방을 섬겨야 할 사명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선민사상'으로 변질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복을 독점하려는 '저수지'가 되려 했다. 이방인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멸시와 배척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변질은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선지자들의 비판과 새로운 희망: 이러한 이스라엘의 선교적 실패에 대해 선지자들은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동시에 그들은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선교적 열심을 선포하며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다.

이사야는 장차 시온의 빛으로 열방과 왕들이 나아올 영광스러운 미래를 그렸고(사 60:3-5), 이스라엘을 넘어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이 "이방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49:6). 이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선교의 주체가 등장할 것을 암시한다.  

요나서는 이스라엘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서사적 비판이다.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를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보내신다. 요나는 원수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치 않아 불순종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그를 통해 니느웨 전체를 회개시키신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이스라엘의 국경을 훨씬 넘어서며, 가장 악한 이방 민족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요나서는 구약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나아가는' 원심적 선교의 모델을 제시하며, 신약의 지상명령을 예고한다.  

결론: 새 언약과 참된 이스라엘을 향한 기다림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서막을 장대하게 펼쳐 보인다. 창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확장하려는 원대한 계획은 인간의 타락으로 좌절되는 듯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심으로써, 깨어진 세상을 구속하시려는 당신의 선교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율법과 예배를 통해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어, 열방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빛과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러나 구약의 이야기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실패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들은 거룩함을 잃어버렸고, 섬김의 사명을 배타적 특권으로 왜곡했다. 그 결과 그들은 열방을 향한 빛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방 민족과 같이 심판을 받아 흩어지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바로 이 실패의 지점에서 구약은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넘어서는 새로운 구원의 날을 예언했다. 율법이 돌판이 아닌 마음에 새겨지는 '새 언약'(렘 31:31-34)의 도래, 이스라엘의 민족적 한계를 넘어 온전한 순종으로 '이방의 빛'이 될 신실한 '여호와의 종'의 출현, 그리고 모든 민족이 시온으로 나아와 함께 여호와를 예배하게 될 영광스러운 미래가 그것이다.

결국 구약성경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과 기다림을 남긴다. 누가 이 새 언약을 성취할 것인가? 누가 참된 '여호와의 종'이 되어 이스라엘이 실패한 선교적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낼 것인가? 누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되어 온 열방을 구원으로 이끌 것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약성경의 첫 장을 여는 한 인물, 나사렛 예수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참된 이스라엘이요, 고난받는 종이며, 아브라함의 온전한 후손으로서 구약 전체가 가리키던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고, 그의 교회를 통해 그 선교를 땅 끝까지 확장시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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