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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비즈니스 살아남기 

13.’세상 법' 위에 '은혜 법'?: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최고의 방패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괜찮다'는 생각으로 세금, 노동법, 환경법 등 세상의 법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말씀처럼, 크리스천은 세상의 법과 질서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우리를 세상의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

주제 13: '세상 법' 위에 '은혜 법'?: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최고의 방패

Topic 13: 'The Law of Grace' Above 'Worldly Law'?: Why Thoroughly Obeying Law and Ethics Is the Best Shield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1-2)

서론: "우리 사이에 법이 어디 있어?"라는 위험한 신뢰
같은 교회를 섬기는 두 크리스천이 동업을 시작합니다. 뜨거운 기도로 시작된 이들의 파트너십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듯 보입니다. 복잡한 동업 계약서 대신, 그들은 악수와 "주님 안에서 서로 믿자"는 말로 모든 것을 대신합니다. "우리 사이에 법이 어디 있어? 은혜로 하면 되지!" 사업이 순항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치고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자 이 '은혜로운 신뢰'는 순식간에 원망과 불신으로 변질됩니다. 결국, 아름다웠던 형제 관계는 법정 다툼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끝나고, 주변 사람들과 교회 공동체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은혜'와 '법'의 관계를 오해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은혜의 법' 아래 있다는 신앙을, 이 세상의 법과 질서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영적인 면죄부'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금 문제, 근로기준법, 공정거래법, 그리고 비즈니스의 기본인 계약서 작성까지, 세상의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을 '믿음 없는 행위' 혹은 '세속적인 일'로 치부하며, 그 자리를 '믿음', '은혜',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대체하려 합니다.

이 글은 바로 이 위험하고 치명적인 오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성경이 결코 세상의 법을 무시하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오히려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법과 윤리를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음을 밝힐 것입니다. 나아가,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비즈니스와 신앙, 그리고 관계를 지켜주는 '최고의 방패'가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리와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를 '은혜'라는 이름 뒤에 숨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정의'와 '성실'이라는 빛의 갑옷을 입고 세상 속에서 당당히 승리하는 지혜로운 크리스천 리더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

1. Who (누가) 이 위험한 착각에 빠지는가?
'은혜'를 내세워 세상의 법과 질서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주로 신앙 공동체 내부의 관계 속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첫째, 크리스천들 간의 동업이나 거래 관계에서 이 문제는 가장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라는 끈끈한 유대감은, 때로 비즈니스에 필수적인 객관성과 법적 장치들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역할과 책임, 수익 분배, 그리고 갈등 해결 절차 등을 명시한 상세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을, 마치 상대방을 믿지 못한다는 표현처럼 여겨 부담스러워합니다. 이러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태도는, 결국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를 보호해 줄 아무런 장치가 없게 만들어, 재정적 손실은 물론 신앙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파국을 초래합니다.

둘째, 작은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이나 스타트업 창업가들 역시 이 유혹에 취약합니다. 이들은 복잡한 세법이나 노무 규정을 일일이 챙길 시간적, 재정적 여유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이런 작은 부분까지 다 지키기는 어렵다. 하나님이 알아서 지켜주시겠지"라는 생각으로 법적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됩니다. 이는 신앙을 자신의 부주의와 나태함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하는 것이며, 나중에 세무조사나 노동 분쟁과 같은 더 큰 위기를 맞았을 때 "왜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았는가"라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선한 사명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회적 기업가나 비영리 단체 리더들도 이 함정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좋은 일을 하는 곳"이라는 강한 사명감 때문에, 자신들은 일반 기업에 적용되는 엄격한 법과 윤리의 잣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특권의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로 인해 회계 투명성이나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갖추는 데 소홀해지고, 이것이 나중에 횡령이나 비리 문제로 이어져 단체의 선한 사명 전체를 무너뜨리는 비극을 낳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착각은 '신앙적 관계'가 '법적 책임'을 대체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그 반대입니다. 진정한 신앙적 관계는, 오히려 더 철저한 법적, 윤리적 책임을 통해 그 순수성과 신뢰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2. What (무엇이) 신학적 오해의 핵심인가? - '구원의 은혜'와 '세속 국가의 법'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롬 6:14)는 위대한 선언을, "우리는 세상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오해하는 것은 심각한 신학적 오류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입니다.

바울이 말한 '율법'과 '은혜'의 의미

율법 (The Law): 사도 바울이 '율법'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일차적으로 구약의 '모세 율법'을 의미합니다. 이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을 보여주지만, 죄인 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갈 3:24)의 역할을 합니다.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와 율법 준수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은혜 (Grace):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나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써, 값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받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와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구원'의 방식에 대한 것이지, '사회생활'의 방식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우리를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사회의 공공선을 위한 '책임'으로부터 방면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세상 법(Governing Authorities)'의 역할과 가치

오히려 성경은 '세상의 법'과 '정부(위에 있는 권세들)'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성한 기관이며,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1. 악을 억제하는 역할: 로마서 13장은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4)고 말합니다. 즉, 세상의 법과 정부는 인간의 죄성이 사회를 완전히 파괴하지 못하도록 막고, 최소한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2. 공공의 선을 이루는 역할: 법은 도로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며, 약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상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등, 사회 구성원 전체의 유익, 즉 '공공선(Common Good)'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이 세상의 법을 잘 지키는 것은, 단순히 처벌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인 행위를 넘어, 죄의 확산을 막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입니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것은 하나님의 공공선을 이루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은혜 법'은 '세상 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완성'하고 '능가'하는 더 높은 차원의 법입니다. 은혜받은 자는 법의 최소한의 요구를 넘어, 사랑이라는 최고의 법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의 법을 누구보다 더 성실하고 자발적으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3. When (언제) '은혜'라는 이름의 유혹은 가장 강력해지는가?
이론적으로는 법 준수의 중요성을 알더라도,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은혜'나 '믿음'을 내세워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싶은 강력한 유혹의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첫째, '비용과 효율성'의 압박을 받을 때 우리는 법을 어기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예를 들어, 환경 보호 규제를 지키기 위해 값비싼 정화 시설을 설치하는 대신, "하나님이 환경을 지켜주시겠지"라는 생각으로 오염 물질을 몰래 방류하는 것. 장애인 의무 고용 규정을 지키는 대신, 벌금을 내는 편이 더 싸다는 계산 아래 규정을 무시하는 것. 정식으로 세금을 다 내는 대신, 일부를 누락하여 헌금을 더 많이 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것이라고 자기합리화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라는 우상 앞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의 명령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둘째, '관계의 편리함'을 추구할 때 우리는 원칙을 무시하게 됩니다. 친한 교회 장로님의 부탁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검토 없이 회사의 중요한 계약을 맡기는 것. "목사님 사모님인데 설마..."라는 생각으로, 정식 근로계약서 없이 채용하고 구두로 모든 것을 약속하는 것. 이러한 '관계 중심'의 비즈니스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편리하고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의 감정적인 싸움으로 번져, 관계와 비즈니스를 모두 잃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불편하더라도 처음부터 원칙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것이, 결국 그 관계를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셋째, '영적인 권위'를 남용할 때 법과 윤리는 쉽게 무너집니다. 일부 크리스천 리더들은 자신의 사업적 결정을 "기도해 보니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하며, 직원들이나 투자자들의 합리적인 의심이나 반론을 '믿음 없는 행위'로 매도합니다. 이는 자신의 사업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매우 위험한 영적 교만입니다. 또한, 교회 내의 직분이나 영적인 영향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청탁을 하거나, 자신의 사업에 유리한 거래를 유도하는 행위 역시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하는 심각한 죄입니다.

이처럼 비용, 관계, 그리고 영적 권위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우리는 '은혜'와 '믿음'을 세상의 법과 윤리를 무시하는 핑계로 삼으려는 교묘한 유혹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유혹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신실한 크리스천 리더의 증표입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러한 법 경시 풍조는 비롯되는가?
크리스천 비즈니스 공동체 안에 은연중에 퍼져 있는 법과 윤리에 대한 안일한 태도는 어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원천은 세상 권세와 법에 대한 '역사적 불신' 입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태동했고, 역사 속에서 수많은 부패하고 불의한 정권에 의해 고통받아 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신앙인들의 마음속에 세상의 권세와 법에 대한 깊은 불신과 저항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충돌할 때(예: 우상숭배 강요) 신앙인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5:29)는 원칙에 따라 불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적인' 상황을, 일반적인 모든 법과 규범을 무시해도 된다는 '보편적인' 원리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대부분의 세속 법은 신앙의 양심과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도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두 번째 원천은 '감성'과 '관계'를 '이성'과 '원칙'보다 우위에 두는 일부 복음주의 문화입니다. 물론 따뜻한 사랑의 교제와 감성적인 신앙 체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객관적인 사실, 논리적인 사고, 그리고 공적인 원칙과 절차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로 인해 비즈니스와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조차, 명확한 계약과 법적 절차보다는 "서로 사랑으로 이해해주자"는 식의 모호하고 감성적인 접근이 선호됩니다. 이는 결국 더 큰 혼란과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감성적인 이해를 넘어, 상대방의 권리를 존중하고 나의 의무를 다하는 '책임 있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세 번째 원천은 '값싼 은혜(Cheap Grace)' 신학의 영향입니다.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경고했던 '값싼 은혜'는, 회개와 제자도의 대가 지불 없이 죄 사함의 축복만을 누리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신학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을 간과하고, "어차피 하나님이 다 용서해주실 텐데, 이 정도 법을 어기는 것은 괜찮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낳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된 은혜'는 우리를 죄의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참된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세상의 법을 어기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지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기 위해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의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이처럼 역사적 불신, 감성주의 문화, 그리고 값싼 은혜 신학이 결합하여,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세상의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을 신앙의 부차적인 문제 혹은 불필요한 짐으로 여기게 만드는 위험한 토양을 형성해 온 것입니다.

5. Why (왜)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방패'인가?
세상의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은 단순히 처벌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인 행위를 넘어, 우리의 비즈니스와 신앙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가장 강력하고 적극적인 '방패'의 역할을 합니다.

첫째, '법적인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패입니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명백한 이유입니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고, 노동법을 준수하며, 모든 계약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정하게 체결할 때, 우리는 세무조사, 노동 분쟁, 소송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법적 위험에 휘말릴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시간과 돈, 감정의 낭비를 막아주고, 우리가 비즈니스의 본질적인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법을 지키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의 더 큰 손실을 막아주는 가장 확실한 '보험'입니다.

둘째, '관계의 파괴'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최고의 방패입니다. 특히 크리스천 간의 비즈니스에서, 잘 만들어진 계약서는 서로를 불신하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지켜주는 '안전장치'입니다. 계약서는 양측의 기대치와 역할,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오해와 갈등을 사전에 예방합니다.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감정적인 싸움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고, 합의된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합니다.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말처럼, 명확한 법적, 절차적 울타리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안에서 서로를 신뢰하며 안정적인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세상의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신앙적 간증(Witness)'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입니다. 크리스천 리더가 탈세, 횡령, 부당 해고와 같은 법적, 윤리적 스캔들에 연루될 때, 그 비난은 개인을 넘어 그가 속한 교회와 기독교 전체를 향하게 됩니다. "크리스천도 별수 없구나"라는 비판 앞에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그 빛을 잃고 위선적인 외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반대로, 어떤 흠도 잡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법과 윤리를 지키는 기업은,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세상이 부패할수록, 우리의 예측 가능한 정직함과 신실함은 그 어떤 말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하는 '움직이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비즈니스를 법적 위험으로부터, 우리의 인간관계를 파괴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신앙적 간증을 위선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지켜주는 삼중의 방패 역할을 합니다.

6. How (어떻게) '법을 넘어서는 의(義)'를 실천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크리스천 비즈니스는 단순히 세상의 법을 '지키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법의 정신을 넘어, 하나님의 '더 높은 법', 즉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모범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방법론 1: '최소한의 법'을 넘어 '최고의 선'을 추구하라

우리의 기준은 세상 법이 요구하는 '최소한(Minimum)'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선(Maximum)'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용 관계: 법이 정한 '최저 임금'을 주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직원이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생활 임금(Living Wage)'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법적인 의무를 넘어, 직원들의 성장과 행복을 진심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만듭니다.

고객 관계: 법이 요구하는 '하자 보수 책임'을 다하는 것을 넘어,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사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계약서의 문구 뒤에 숨지 않고, 고객의 성공을 위해 진심으로 함께 노력하는 파트너가 됩니다.

환경 및 사회적 책임: 법이 정한 '환경 기준치'를 지키는 것을 넘어, 환경에 가장 이로운 '친환경 공법'을 자발적으로 도입합니다. 법적인 의무가 없더라도, 기업 이익의 일부를 지역 사회와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나누는 것을 시스템화합니다.

방법론 2: '나 홀로 신앙'을 넘어 '전문가의 지혜'를 구하라

복잡한 법률 및 회계 문제를 놓고 "기도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영적 교만'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입술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귀도 주셨습니다.

변호사와 회계사를 신앙의 동역자로: 실력 있고 신실한 변호사와 회계사를 비즈니스의 중요한 파트너로 삼아야 합니다. 이들에게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적인 자문을 구하는 것은, 법적인 위험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하나님이 일반 은총을 통해 주신 지혜를 사용하는 청지기의 의무입니다.

투명한 외부 감사를 자청하라: 법적인 의무가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외부 회계 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아 재무 투명성을 검증받는 것은 매우 좋은 실천입니다. 이는 내부의 부정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과 사회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는 길이 됩니다.

방향 제시: '세상 속의 작은 천국'을 만드는 비즈니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을 넘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모범적인 공동체'를 우리의 비즈니스 현장에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사가,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고,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약자가 보호받으며, 정직과 성실이 가장 큰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곳이 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저런 곳이겠구나"라고 상상하게 만드는 '세상 속의 작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은혜'는 법을 무시하는 방종의 구실이 아닙니다. 참된 은혜는 우리를 세상의 법을 기쁨으로 순종하게 하고, 나아가 그 법을 넘어서는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비즈니스가 바로 그 은혜의 능력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제 13: '세상 법' 위에 '은혜 법'?: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최고의 방패

Topic 13: 'The Law of Grace' Above 'Worldly Law'?: Why Thoroughly Obeying Law and Ethics Is the Best Shield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1-2)

서론: "우리 사이에 법이 어디 있어?"라는 위험한 신뢰
같은 교회를 섬기는 두 크리스천이 동업을 시작합니다. 뜨거운 기도로 시작된 이들의 파트너십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듯 보입니다. 복잡한 동업 계약서 대신, 그들은 악수와 "주님 안에서 서로 믿자"는 말로 모든 것을 대신합니다. "우리 사이에 법이 어디 있어? 은혜로 하면 되지!" 사업이 순항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치고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자 이 '은혜로운 신뢰'는 순식간에 원망과 불신으로 변질됩니다. 결국, 아름다웠던 형제 관계는 법정 다툼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끝나고, 주변 사람들과 교회 공동체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은혜'와 '법'의 관계를 오해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은혜의 법' 아래 있다는 신앙을, 이 세상의 법과 질서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영적인 면죄부'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금 문제, 근로기준법, 공정거래법, 그리고 비즈니스의 기본인 계약서 작성까지, 세상의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을 '믿음 없는 행위' 혹은 '세속적인 일'로 치부하며, 그 자리를 '믿음', '은혜',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대체하려 합니다.

이 글은 바로 이 위험하고 치명적인 오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성경이 결코 세상의 법을 무시하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오히려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법과 윤리를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음을 밝힐 것입니다. 나아가,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비즈니스와 신앙, 그리고 관계를 지켜주는 '최고의 방패'가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리와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를 '은혜'라는 이름 뒤에 숨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정의'와 '성실'이라는 빛의 갑옷을 입고 세상 속에서 당당히 승리하는 지혜로운 크리스천 리더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

1. Who (누가) 이 위험한 착각에 빠지는가?
'은혜'를 내세워 세상의 법과 질서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주로 신앙 공동체 내부의 관계 속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첫째, 크리스천들 간의 동업이나 거래 관계에서 이 문제는 가장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라는 끈끈한 유대감은, 때로 비즈니스에 필수적인 객관성과 법적 장치들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역할과 책임, 수익 분배, 그리고 갈등 해결 절차 등을 명시한 상세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을, 마치 상대방을 믿지 못한다는 표현처럼 여겨 부담스러워합니다. 이러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태도는, 결국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를 보호해 줄 아무런 장치가 없게 만들어, 재정적 손실은 물론 신앙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파국을 초래합니다.

둘째, 작은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이나 스타트업 창업가들 역시 이 유혹에 취약합니다. 이들은 복잡한 세법이나 노무 규정을 일일이 챙길 시간적, 재정적 여유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이런 작은 부분까지 다 지키기는 어렵다. 하나님이 알아서 지켜주시겠지"라는 생각으로 법적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됩니다. 이는 신앙을 자신의 부주의와 나태함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하는 것이며, 나중에 세무조사나 노동 분쟁과 같은 더 큰 위기를 맞았을 때 "왜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았는가"라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선한 사명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회적 기업가나 비영리 단체 리더들도 이 함정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좋은 일을 하는 곳"이라는 강한 사명감 때문에, 자신들은 일반 기업에 적용되는 엄격한 법과 윤리의 잣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특권의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로 인해 회계 투명성이나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갖추는 데 소홀해지고, 이것이 나중에 횡령이나 비리 문제로 이어져 단체의 선한 사명 전체를 무너뜨리는 비극을 낳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착각은 '신앙적 관계'가 '법적 책임'을 대체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그 반대입니다. 진정한 신앙적 관계는, 오히려 더 철저한 법적, 윤리적 책임을 통해 그 순수성과 신뢰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2. What (무엇이) 신학적 오해의 핵심인가? - '구원의 은혜'와 '세속 국가의 법'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롬 6:14)는 위대한 선언을, "우리는 세상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오해하는 것은 심각한 신학적 오류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입니다.

바울이 말한 '율법'과 '은혜'의 의미

율법 (The Law): 사도 바울이 '율법'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일차적으로 구약의 '모세 율법'을 의미합니다. 이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을 보여주지만, 죄인 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갈 3:24)의 역할을 합니다.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와 율법 준수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은혜 (Grace):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나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써, 값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받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와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구원'의 방식에 대한 것이지, '사회생활'의 방식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우리를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사회의 공공선을 위한 '책임'으로부터 방면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세상 법(Governing Authorities)'의 역할과 가치

오히려 성경은 '세상의 법'과 '정부(위에 있는 권세들)'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성한 기관이며,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1. 악을 억제하는 역할: 로마서 13장은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4)고 말합니다. 즉, 세상의 법과 정부는 인간의 죄성이 사회를 완전히 파괴하지 못하도록 막고, 최소한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2. 공공의 선을 이루는 역할: 법은 도로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며, 약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상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등, 사회 구성원 전체의 유익, 즉 '공공선(Common Good)'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이 세상의 법을 잘 지키는 것은, 단순히 처벌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인 행위를 넘어, 죄의 확산을 막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입니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것은 하나님의 공공선을 이루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은혜 법'은 '세상 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완성'하고 '능가'하는 더 높은 차원의 법입니다. 은혜받은 자는 법의 최소한의 요구를 넘어, 사랑이라는 최고의 법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의 법을 누구보다 더 성실하고 자발적으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3. When (언제) '은혜'라는 이름의 유혹은 가장 강력해지는가?
이론적으로는 법 준수의 중요성을 알더라도,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은혜'나 '믿음'을 내세워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싶은 강력한 유혹의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첫째, '비용과 효율성'의 압박을 받을 때 우리는 법을 어기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예를 들어, 환경 보호 규제를 지키기 위해 값비싼 정화 시설을 설치하는 대신, "하나님이 환경을 지켜주시겠지"라는 생각으로 오염 물질을 몰래 방류하는 것. 장애인 의무 고용 규정을 지키는 대신, 벌금을 내는 편이 더 싸다는 계산 아래 규정을 무시하는 것. 정식으로 세금을 다 내는 대신, 일부를 누락하여 헌금을 더 많이 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것이라고 자기합리화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라는 우상 앞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의 명령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둘째, '관계의 편리함'을 추구할 때 우리는 원칙을 무시하게 됩니다. 친한 교회 장로님의 부탁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검토 없이 회사의 중요한 계약을 맡기는 것. "목사님 사모님인데 설마..."라는 생각으로, 정식 근로계약서 없이 채용하고 구두로 모든 것을 약속하는 것. 이러한 '관계 중심'의 비즈니스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편리하고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의 감정적인 싸움으로 번져, 관계와 비즈니스를 모두 잃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불편하더라도 처음부터 원칙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것이, 결국 그 관계를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셋째, '영적인 권위'를 남용할 때 법과 윤리는 쉽게 무너집니다. 일부 크리스천 리더들은 자신의 사업적 결정을 "기도해 보니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하며, 직원들이나 투자자들의 합리적인 의심이나 반론을 '믿음 없는 행위'로 매도합니다. 이는 자신의 사업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매우 위험한 영적 교만입니다. 또한, 교회 내의 직분이나 영적인 영향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청탁을 하거나, 자신의 사업에 유리한 거래를 유도하는 행위 역시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하는 심각한 죄입니다.

이처럼 비용, 관계, 그리고 영적 권위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우리는 '은혜'와 '믿음'을 세상의 법과 윤리를 무시하는 핑계로 삼으려는 교묘한 유혹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유혹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신실한 크리스천 리더의 증표입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러한 법 경시 풍조는 비롯되는가?
크리스천 비즈니스 공동체 안에 은연중에 퍼져 있는 법과 윤리에 대한 안일한 태도는 어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원천은 세상 권세와 법에 대한 '역사적 불신' 입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태동했고, 역사 속에서 수많은 부패하고 불의한 정권에 의해 고통받아 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신앙인들의 마음속에 세상의 권세와 법에 대한 깊은 불신과 저항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충돌할 때(예: 우상숭배 강요) 신앙인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5:29)는 원칙에 따라 불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적인' 상황을, 일반적인 모든 법과 규범을 무시해도 된다는 '보편적인' 원리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대부분의 세속 법은 신앙의 양심과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도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두 번째 원천은 '감성'과 '관계'를 '이성'과 '원칙'보다 우위에 두는 일부 복음주의 문화입니다. 물론 따뜻한 사랑의 교제와 감성적인 신앙 체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객관적인 사실, 논리적인 사고, 그리고 공적인 원칙과 절차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로 인해 비즈니스와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조차, 명확한 계약과 법적 절차보다는 "서로 사랑으로 이해해주자"는 식의 모호하고 감성적인 접근이 선호됩니다. 이는 결국 더 큰 혼란과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감성적인 이해를 넘어, 상대방의 권리를 존중하고 나의 의무를 다하는 '책임 있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세 번째 원천은 '값싼 은혜(Cheap Grace)' 신학의 영향입니다.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경고했던 '값싼 은혜'는, 회개와 제자도의 대가 지불 없이 죄 사함의 축복만을 누리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신학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을 간과하고, "어차피 하나님이 다 용서해주실 텐데, 이 정도 법을 어기는 것은 괜찮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낳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된 은혜'는 우리를 죄의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참된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세상의 법을 어기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지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기 위해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의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이처럼 역사적 불신, 감성주의 문화, 그리고 값싼 은혜 신학이 결합하여,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세상의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을 신앙의 부차적인 문제 혹은 불필요한 짐으로 여기게 만드는 위험한 토양을 형성해 온 것입니다.

5. Why (왜)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방패'인가?
세상의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은 단순히 처벌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인 행위를 넘어, 우리의 비즈니스와 신앙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가장 강력하고 적극적인 '방패'의 역할을 합니다.

첫째, '법적인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패입니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명백한 이유입니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고, 노동법을 준수하며, 모든 계약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정하게 체결할 때, 우리는 세무조사, 노동 분쟁, 소송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법적 위험에 휘말릴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시간과 돈, 감정의 낭비를 막아주고, 우리가 비즈니스의 본질적인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법을 지키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의 더 큰 손실을 막아주는 가장 확실한 '보험'입니다.

둘째, '관계의 파괴'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최고의 방패입니다. 특히 크리스천 간의 비즈니스에서, 잘 만들어진 계약서는 서로를 불신하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지켜주는 '안전장치'입니다. 계약서는 양측의 기대치와 역할,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오해와 갈등을 사전에 예방합니다.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감정적인 싸움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고, 합의된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합니다.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말처럼, 명확한 법적, 절차적 울타리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안에서 서로를 신뢰하며 안정적인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세상의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신앙적 간증(Witness)'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입니다. 크리스천 리더가 탈세, 횡령, 부당 해고와 같은 법적, 윤리적 스캔들에 연루될 때, 그 비난은 개인을 넘어 그가 속한 교회와 기독교 전체를 향하게 됩니다. "크리스천도 별수 없구나"라는 비판 앞에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그 빛을 잃고 위선적인 외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반대로, 어떤 흠도 잡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법과 윤리를 지키는 기업은,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세상이 부패할수록, 우리의 예측 가능한 정직함과 신실함은 그 어떤 말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하는 '움직이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비즈니스를 법적 위험으로부터, 우리의 인간관계를 파괴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신앙적 간증을 위선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지켜주는 삼중의 방패 역할을 합니다.

6. How (어떻게) '법을 넘어서는 의(義)'를 실천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크리스천 비즈니스는 단순히 세상의 법을 '지키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법의 정신을 넘어, 하나님의 '더 높은 법', 즉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모범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방법론 1: '최소한의 법'을 넘어 '최고의 선'을 추구하라

우리의 기준은 세상 법이 요구하는 '최소한(Minimum)'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선(Maximum)'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용 관계: 법이 정한 '최저 임금'을 주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직원이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생활 임금(Living Wage)'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법적인 의무를 넘어, 직원들의 성장과 행복을 진심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만듭니다.

고객 관계: 법이 요구하는 '하자 보수 책임'을 다하는 것을 넘어,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사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계약서의 문구 뒤에 숨지 않고, 고객의 성공을 위해 진심으로 함께 노력하는 파트너가 됩니다.

환경 및 사회적 책임: 법이 정한 '환경 기준치'를 지키는 것을 넘어, 환경에 가장 이로운 '친환경 공법'을 자발적으로 도입합니다. 법적인 의무가 없더라도, 기업 이익의 일부를 지역 사회와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나누는 것을 시스템화합니다.

방법론 2: '나 홀로 신앙'을 넘어 '전문가의 지혜'를 구하라

복잡한 법률 및 회계 문제를 놓고 "기도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영적 교만'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입술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귀도 주셨습니다.

변호사와 회계사를 신앙의 동역자로: 실력 있고 신실한 변호사와 회계사를 비즈니스의 중요한 파트너로 삼아야 합니다. 이들에게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적인 자문을 구하는 것은, 법적인 위험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하나님이 일반 은총을 통해 주신 지혜를 사용하는 청지기의 의무입니다.

투명한 외부 감사를 자청하라: 법적인 의무가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외부 회계 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아 재무 투명성을 검증받는 것은 매우 좋은 실천입니다. 이는 내부의 부정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과 사회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는 길이 됩니다.

방향 제시: '세상 속의 작은 천국'을 만드는 비즈니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법과 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을 넘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모범적인 공동체'를 우리의 비즈니스 현장에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사가,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고,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약자가 보호받으며, 정직과 성실이 가장 큰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곳이 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저런 곳이겠구나"라고 상상하게 만드는 '세상 속의 작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은혜'는 법을 무시하는 방종의 구실이 아닙니다. 참된 은혜는 우리를 세상의 법을 기쁨으로 순종하게 하고, 나아가 그 법을 넘어서는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비즈니스가 바로 그 은혜의 능력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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