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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미래 제안서

PART4 세대 간 연결과 미래 목회

다음 세대 신앙 교육의 새로운 방향: 디지털 시대의 도전

한국 교회가 고난의 역사를 딛고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다음 세대 신앙 교육에 대한 헌신이었습니다.초기 교회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손을 잡고 새벽 기도를 나섰고,주일학교는 단순히 아이들을 돌보는 공간이 아니라, 말씀과 찬양, 기도를 통해 신앙의 씨앗을 심고 믿음의 공동체를 경험하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성장'이라는 열매 뒤에는 이처럼 헌신적인 양육과 교육이라는 땀방울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와 학생회는 눈에 띄게 위축되었고, 청년들은 교회를 '영적 가나안'이라 부르며 신앙 공동체 밖에서 각자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의 근본 원인은 단순히 교회의 매력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소통 방식과 다음 세대의 정체성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장은 다음 세대가 직면한 영적 위기의 본질을 분석하고, 전통적인 신앙 교육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는 단순히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넘어, 복음의 진리를 디지털 시대의 언어와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다음 세대의 삶 속에서 살아있는 믿음이 되도록 돕는 총체적인 변화를 포함합니다. 우리가 이 도전을 외면하지 않고 복음의 씨앗을 디지털의 밭에 심을 때, 한국 교회의 미래는 다시 한번 희망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1. 디지털 시대, 다음 세대 신앙의 위기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현상은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 즉 디지털 시대의 특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신앙 교육을 논하기 전에, 그들이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이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기존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영적 도전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첫째, 정보 과잉과 영적 혼란입니다.

다음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자랐습니다. 수많은 유튜브 채널과 SNS 피드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정보를 쏟아냅니다. 이러한 환경은 영적 진리에 대한 깊은 탐구를 방해하고, 신앙을 피상적인 지식으로만 여기게 만드는 위험을 낳았습니다. 이들은 기독교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철학, 그리고 무신론적 관점을 쉽게 접하며 무엇이 진짜인지 분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사라진 시대에, 교회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1분짜리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30분 이상의 설교는 지루한 '강요'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들은 깊이 있는 진리를 탐구하는 대신, 즉각적인 흥미와 재미를 주는 콘텐츠에 반응하며, 결국 영적 분별력과 사고의 깊이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둘째, '영적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적 신앙입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모든 것을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처럼, 다음 세대는 신앙도 자신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감동을 주고, 만족감을 주는 '콘텐츠'로서의 예배와 설교를 찾아다니며,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는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소속감과 공동체적 책임은 약화되고, 개인의 영적 만족이 신앙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이들에게 교회는 '함께 헌신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내가 필요할 때 이용하는 영적 편의점'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소비주의적 신앙은 헌신과 희생이라는 복음의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셋째, 관계의 단절과 고립입니다.

SNS를 통해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릴 수 있지만, 그 관계는 피상적이고 일회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 세대는 외로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교회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 모이는 거대한 공동체라면, 이들은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고 고립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이들은 '함께 있음'의 외로움 속에서 방황하며, 깊이 있는 교제와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성경이 말하는 '코이노니아'(Koinonia), 즉 영적인 교제는 단순히 함께 모이는 것을 넘어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삶을 함께 살아가는 깊은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진정한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고, 개인들이 모여 예배만 드리고 흩어지는 '영적 원자화'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2. 새로운 신앙 교육을 위한 신학적 재정립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이상의 근본적인 신학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첫째, '관계 중심의 복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신앙은 교리적 지식이나 윤리적 삶에 앞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시작됩니다.성경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친밀한 관계로 묘사합니다.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예배와 공동체 모임은 딱딱한 순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사랑을 경험하는 따뜻한 관계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 세대는 '함께' 기도하고, 함께 봉사하며, 함께 고민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복음의 진정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둘째, '성육신적 복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는 복음이 관념적인 진리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서 살아내야 할 실제적인 삶임을 보여줍니다. 다음 세대 신앙 교육은 교회의 건물 안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학교, 학원, 아르바이트 현장, 그리고 SNS 공간이 복음이 살아 숨 쉬는 선교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다음 세대가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복음을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도와야 합니다.이는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깨닫게 하고, '일터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할 것입니다.

셋째, '모든 성도의 제사장직'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는 더 이상 '가르침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믿음을 형성하고, 복음을 나누며, 공동체를 섬기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다음 세대에게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 것 외에, 성경을 스스로 읽고 묵상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그들의 재능과 열정을 발견하여 교회 안팎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이는 다음 세대에게 단순히 교회의 '소비자'가 아닌, 복음의 '생산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할 것입니다.
3. 다음 세대 신앙 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제언
이러한 신학적 재정립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 세대 신앙 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가. 디지털 도구를 '소통의 창'으로 활용하라:
온라인 공간은 더 이상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확성기'가 아닙니다. 교회는 유튜브, 팟캐스트, 웹툰, SNS 등 다음 세대에게 익숙한 플랫폼을 활용하여 진리를 전달하고, 쌍방향 소통을 위한 창구를 마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설교에 대한 질문을 실시간으로 받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갖거나,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숏폼(Short-form) 콘텐츠를 제작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입니다.
나. '멘토링' 중심의 양육 시스템을 구축하라:

다음 세대에게는 거대한 군중 속에서의 익명성보다, 한 사람의 진실한 멘토가 더 절실합니다. 교회는 믿음의 선배들과 다음 세대를 1:1로 연결하여, 삶의 고민과 영적인 질문들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멘토링 관계는 다음 세대가 교회가 살아있는 유기체임을 깨닫고, 고립감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또한, 멘토들이 단순히 조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삶을 나누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교회 차원의 지속적인 멘토 교육과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다. '체험형·관계형' 사역을 확대하라:
교실에 앉아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몸으로 직접 복음을 경험하는 사역을 강화해야 합니다. 빈곤한 이웃을 위한 봉사 활동, 환경 보호 캠페인,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도회 등, 다음 세대가 기독교 신앙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직접 깨닫게 해야 합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것을 넘어, 가슴으로 느끼고 삶으로 살아내는 훈련이 될 것입니다.
라. '질문'을 환영하는 교회가 되라:
다음 세대는 '왜?'라는 질문이 많은 세대입니다. 그들은 불합리해 보이는 교회의 전통이나, 삶과 동떨어진 듯한 신학적 개념에 대해 솔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질문을 '도전'으로 여기지 않고,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정해진 답을 주입하기보다 함께 고민하고 탐구하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때, 다음 세대는 교회가 진정으로 자신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공동체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선교의 장으로
다음 세대가 떠나는 현상은 한국 교회의 위기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다음 세대는 더 이상 교회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교회가 그들을 찾아 세상의 가장자리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선교의 소명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그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관계와 의미를 채워줄 때, 다음 세대는 다시금 교회를 '사랑의 공동체'이자 '진리의 등대'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는 바로 이 도전 앞에서 얼마나 용기 있게 변화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신앙:
기술 발전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 지키기

인류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기술적 변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의 사고방식과 일상, 그리고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AI는 이미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겨졌던 창작, 판단, 관계 형성의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급속한 기술 발전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편리함과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와 신앙의 영역에 깊은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존재하는가?", "나는 AI와 무엇이 다른가?"와같은 철학적 질문들은 이제 더 이상 추상적인 사유가 아니라, AI 시대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생존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이 장은 AI 시대가 한국 교회에 던지는 도전들을 진단하고,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극복하며 기술 발전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기술 경쟁에서 AI를 이기려 할 것이 아니라, AI가 결코 모방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이것이야말로 AI가 판치는 시대에 교회가 세상에 제시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강력한 복음이 될 것입니다.
1. 인공지능 혁명과 '인간성'의 위기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인지적, 창의적 노동이 AI에 의해 대체되면서, 우리는 '인간다움'의 핵심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위기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을 야기합니다.

가. 인간 노동의 가치 전복과 존재론적 혼란:

AI는 단순 반복 작업뿐만 아니라, 복잡한 데이터 분석, 법률 자문, 심지어 의료 진단까지 수행하며 인간의 전문 영역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생산성을 극대화하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직업적 상실감과 존재론적 위기를 안겨줍니다. 노동이 단순히 생계 수단을 넘어 자아실현의 중요한 통로였던 현대사회에서,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자신의 노동이 가치를 상실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영혼은 깊은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성경은 인간의 노동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창조적 행위이며, 저주가 아니라 축복임을 가르칩니다. 그러나AI가 '더 효율적인' 존재로 인정받을수록, 우리의 '비효율적인' 노력과 수고는 무가치하게 느껴질 위험이 커집니다.AI의 자동화가 보편화될수록,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영적 방황과 공허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 'AI 영혼' 논쟁과 인간의 유일성 재정립:

AI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AI가 과연 인간과 같은 의식이나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공상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AI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고, 창의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며, 심지어 '자기 인식'을 주장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인간의 유일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성경은 인간이 단순히 복잡한 생명체나 고도의 지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 존재임을 분명히 선포합니다.우리는 인간의 영혼이 단순히 복잡한 계산 능력이나 신경망의 산물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영혼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신비로운 영역입니다. AI는 인간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고유한 영혼의 무게와 고뇌를 가질 수 없으며, 죄와 구원의 문제를 이해하거나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AI가 복잡한 시를 쓸 수는 있지만, 그 시를 통해 고난받는 인간 영혼의 아픔에 깊이공감하거나, 그 시를 쓴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수는 없습니다.

다. 알고리즘 편향과 디지털 윤리:

AI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는 인간의 편향과 왜곡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인종, 성별, 사회적 배경에 대한 편견이 알고리즘에 스며들 수 있으며, 이는 AI의 판단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믿는 교회는 AI가 낳을 수 있는 이러한 '알고리즘적 불의'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AI의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가 훼손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는 '예언자적 사명'이 필요합니다.

2. 인공지능 시대 신앙의 핵심: 인간 존엄성의 회복
기술의 도전 속에서 신앙은 흔들리는 인간에게 가장 견고한 닻이 되어야 합니다. AI 시대 신앙의 핵심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지능이나 생산성에 있지 않습니다.
가.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

성경은 인간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관계 속에서 창조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랑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시듯, 우리도 관계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관계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사랑과 공감, 희생을 담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해도, 우리의 고통 앞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진정한 관계적 존재임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팬데믹 기간 동안 경험한 온라인 예배의 한계는 진정한 공동체가 단순한 접속이 아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삶을 나누는 관계에서 비롯됨을 보여주었습니다.

나. 몸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

AI는 '몸'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경험하고, 이웃을 안아주며, 우리의 믿음을 삶으로 표현합니다. 땀을 흘려 노동하고, 눈물을 흘려 슬픔을 나누며, 손을 잡아 위로하는 '몸'의 중요성은 AI 시대에 더욱 강조되어야 합니다.성경은 인간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포하며, 육체적 존재로서의 우리를 존귀하게 여깁니다.교회는 단순히 디지털 정보를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몸이 직접 만나 기도하고 교제하며 성찬을 나누는 살아있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러한 'embodied community'는 AI가 결코 제공할 수 없는 영적 경험의 보고입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성육신(Incarnation)의 사건은 '몸'의 신학적 중요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다.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

인간은 영원한 것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된 영적인 존재입니다. AI는 영적인 갈망을 가질 수 없으며, 예배라는 행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AI가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최적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해도, 인간의 영혼이 갈망하는 구원과 사랑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AI의 논리를 뛰어넘는 신비와 계시의 영역입니다. 교회는 AI의 도전에 굴하지 않고, 인간의 영혼이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영적 훈련을 통해 우리는 AI가 줄 수 없는 내면의 평화와 깊이를 얻을 수 있습니다.

3. 교회의 새로운 사명: 기술을 넘어선 '치유 공동체'와 '제자도’

AI 시대에 교회는 AI와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AI가 할 수 없는 일, 즉 인간 영혼을 치유하고 제자를 양육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라, 기술에 종속되지 말라:

AI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창조적 능력을 통해 만들어진 훌륭한 도구입니다. 교회는 AI를 행정, 교육, 선교 등 다양한 사역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를 활용해 성경 연구를 돕거나, 복음 메시지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는 일, 또는 교인들의 행정적 편의를 돕는 일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이 하나님을 대체하거나, 인간의 영적 삶을 통제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AI가 분석하는 '영적 통계'나 '맞춤형 예배'가 진정한 영성을 대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기술을 숭배하는 '기술적 우상숭배'의 유혹에서 벗어나, 기술의 주권자가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나. '지식' 전달을 넘어 '인격'을 양육하라:

AI는 무한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지식 전달이 곧 인격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 교육은 지식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적 변화와 제자도에 있습니다. 교회는 AI가 할 수 없는 '멘토링'과 '공동체적 제자 양육'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랑, 섬김, 용서, 겸손과 같은 덕목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뛰어넘어, 삶을 통해 복음을 보여주는 '영적 스승'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젊은 세대에게 단순히 교리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삶을 나누며 복음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외로움의 시대'에 '치유 공동체'가 되라:

AI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더욱 깊은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AI는 우리의 취향을 완벽하게 분석하여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그 관계는 진정한 위로나 공감과는 거리가 멉니다.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끌어안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는 '치유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AI가 해결할 수 없는 영적, 정서적 공허함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교회는 인간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라. '거룩한 불편함'을 훈련하라:

AI는 모든 것을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길에는 때로 '거룩한 불편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보다 불편한 오프라인 공동체 모임, AI가 추천하는 맞춤형 말씀 대신 스스로 성경을 묵상하는 수고, 효율적이지 않은 봉사와 섬김 등은 인간의 영혼을 단련하는 중요한 영적 훈련입니다. 교회는 AI가 주는 편리함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위한 '거룩한 불편함'을 기꺼이 선택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는 한국 교회에게 큰 위기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기회입니다. AI가 인간의 능력과 역할을 대체하는 시대에, 우리는 AI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의 지능이나 생산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주어집니다. 교회는 이 진리를 굳게 붙들고, 기술의 편리함에 매몰되지 않으며,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로서의 본질적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욱 진실되고, 사랑으로 충만한, 그리고 영적으로 깊이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새로운 영적 부흥의 모습입니다.
디지털 선교 전략:
온라인 공간에서 복음의 지경을 넓히다.

인류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기술적 변혁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이 우리의 삶을 재구성하는 가운데, 디지털 공간은 더 이상 현실 세계의 보조적인 영역이 아니라 또 하나의 거대한 삶의 터전이자 새로운 문명의 지평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관계를 맺고, 정보를 얻으며, 심지어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교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교회는 이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해야 하는가? 이 장은 디지털 시대가 한국 교회에 던지는 도전과 기회를 진단하고, 온라인 공간을 새로운 선교지로 인식하며 복음의 지경을 넓혀갈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디지털 시대, 교회에 던지는 도전과 기회
수많은 교회가 팬데믹 기간 동안 급작스럽게 온라인 예배 시스템을 구축하며 디지털 전환을 경험했지만, 이는 아직 복음의 본질을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하는 데는 미흡한 첫걸음에 불과했습니다. 온라인 예배가 대다수 교회에서 일방적인 '방송'에 그치고, 디지털 공간을 단순히 오프라인 교회의 보조 수단으로 여기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공간을 복음을 선포해야 할 새로운 '선교지'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가. 디지털 디아스포라와 교회의 존재론적 위기

현대 사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물리적인 교회 건물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공동체와 더불어,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디지털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 메신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자신들의 관계망과 소통 방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사역 모델을 고수하며, 이들이 살아가는 디지털 세상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온라인 삶'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상태이며, 이는 결국 성도들의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물리적 교회에서 멀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디지털 단절에서 비롯된 소외감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삶의 영역이 확장된 디지털 공간으로 그들을 따라가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나. 정보의 홍수와 복음의 소음화

오늘날의 디지털 공간은 '정보의 홍수'로 요약됩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메시지와 콘텐츠, 광고에 노출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수많은 정보 중 하나로 취급되어 소음처럼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이 아무리 고귀하고 위대하다 할지라도, 그 전달 방식이 시대의 언어와 방식을 외면한다면, 복음은 힘을 잃게 됩니다. 전통적인 강단 설교 방식은 디지털 공간의 상호작용적이고 감각적인 소통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그 진리를 담아내는 '그릇'은 시대에 맞게 혁신되어야 합니다.

다. 팬데믹이 연 창조적 기회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 교회에 디지털 선교의 필요성을 강제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위기 속에서 수많은 교회들이 온라인 예배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튜브와 줌(Zoom)을 활용하여 소그룹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디지털 공간이 단순히 교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사역을 '확장'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넘어선 예배와 모임이 가능해졌고, 온라인을 통해 해외에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성도들, 혹은 교회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비신앙인들과도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2. 디지털 선교의 신학적 토대

디지털 선교는 단순히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이는 복음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복음 전파의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선교를 위한 신학적 토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디지털 성육신(Digital Incarnation)'의 신학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와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내재(immanence)'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디지털 세상에 '디지털 성육신'을 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온라인에 교회 웹사이트를 개설하거나 영상을 올리는 것을 넘어,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디지털 공간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숨 쉬고 소통하며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AI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 교회는 인격적이고 진실된 '인간'의 모습을 통해 복음의 진정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감을 디지털 상호작용에 담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 '지리적 선교'에서 '접근성 선교'로의 전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말씀은 물리적으로 먼 곳으로 떠나는 '지리적 선교'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가야 할 곳'이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온라인이라는 무형의 공간에 모여 있습니다. 따라서 선교의 개념은 지리적 선교를 넘어,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접근성 선교'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 나갈 때, 복음의 지경은 국경을 초월하여 무한히 확장될 수 있습니다.

다. 디지털 공동체의 형성:'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조화

디지털 시대의 공동체는 물리적인 장소에 기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새로운 형태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보이는 교회'인 오프라인 교회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온라인 공동체는 지리적 제약으로 인해 교회에 출석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제공하고, 오프라인 교회의 예배와 소그룹 사역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화로운 협력을 통해 교회는 영적으로 흩어진 영혼들을 다시 모으고, 그리스도의 몸을 튼튼하게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3. 온라인 공간에서 복음의 지경을 넓히는 구체적 전략

디지털 선교는 단순히 '온라인에 존재'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을 요구합니다. 다음은 효과적인 디지털 선교를 위한 실질적인 제언들입니다.
가. 콘텐츠를 통한 복음 전파: '디지털 스토리텔링’

오늘날 사람들은 정보보다 '이야기'에 더 반응합니다. 교회는 복음의 메시지를 흥미롭고 공감 가는 이야기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숏폼(Short-form) 콘텐츠:틱톡, 릴스, 유튜브 쇼츠 등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은 복음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담은 짧은 간증, 성경 퀴즈, 영적 인사이트 등은 다음 세대에게 즉각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롱폼(Long-form) 콘텐츠:유튜브 채널, 팟캐스트, 블로그 등을 통해 깊이 있는 신학적 질문에 답하거나, 삶의 고민을 성경적으로 풀어내는 콘텐츠를 제공해야 합니다. 특히 팟캐스트는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이므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침투시킬 수 있습니다.
라이브 Q&A:실시간 소통을 통해 시청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신뢰를 쌓고, 복음이 그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 관계 중심의 디지털 공동체 구축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첫 단계입니다.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것은 '공동체'입니다.
온라인 소그룹과 멘토링:줌이나 구글 미트와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소규모 온라인 그룹을 운영해야 합니다. 이는 개인의 영적 성장을 돕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진정한 관계를 맺는 장이 됩니다. 특히 해외에 거주하거나, 지역 교회에 출석하기 어려운 성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교제:교회의 소셜 미디어 계정은 단순한 정보 전달 창구가 아니라, 성도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소통하는 교제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묵상 구절을 공유하고, 기도 제목을 댓글로 나누는 등 다양한 상호작용을 유도해야 합니다.
'온라인 홈커밍' 이벤트:오프라인 교회에 다시 출석하기를 주저하는 성도들을 위해 온라인으로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홈커밍' 행사를 기획하여 그들을 다시 교회와 연결해야 합니다.

다. 디지털 선교의 윤리적 과제

디지털 선교의 활성화는 동시에 윤리적인 고민을 요구합니다.
'영적 인플루언서'의 위험성:온라인의 '영적 인플루언서'가 목회자의 권위를 대신하거나, 성도들이 신앙을 '소비'하는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디지털 선교는 개인의 인기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진정성과 투명성:디지털 공간에서는 진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과장된 포장이나 거짓된 간증은 오히려 복음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습니다. 교회는 콘텐츠 제작과정에서 진솔함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디지털 디톡스와 오프라인의 중요성:온라인 선교에 집중하더라도, 성도들에게 오프라인에서 서로 만나 교제하고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디지털 선교는 오프라인 공동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온라인에 심는 복음의 씨앗

디지털 혁명은 한국 교회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을 제시했습니다.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두려움에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인식해야 합니다. 온라인이라는 끝없이 확장되는 새로운 영적 지평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복음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의 콘텐츠 하나, 댓글 하나, 공유 하나가 누군가의 영혼에 복음의 씨앗을 심는 거룩한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디지털 공간에서 '선교지향적 축적'을 이루어갈 때, 우리는 다음 세대와 소통하고, 지리적 한계를 넘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며, 무너진 영혼들을 다시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 선교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우리의 '열정'과 '지혜'를 증명하는 중요한 사명입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제언들이 바로 그 소중한 첫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목회자의 자기 돌봄과 소진 예방: 지속가능한 사역을 위한 제언

한국 교회는 전 세계가 놀랄 만큼 짧은 시간 안에 부흥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그 빛나는 성장의 이면에는 자신을 불살라 교회를 일으킨 목회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새벽을 깨우고, 성도들의 가정사를 돌보며, 때로는 가족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사역에 헌신했던 이들의 열정은 한국 교회의 중요한 영적 유산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누구보다 거룩하고 강인해야 할 목회자들이 깊은 영적, 정서적, 육체적 소진(burnout)을 겪고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우울증, 공황 장애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이는 목회 중단이나 사역 포기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장은 목회자의 자기 돌봄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영적 과제임을 선언하고, 지속 가능한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제언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강인함'이라는 신화에 갇힌 목회자: 소진의 현실과 원인
한국 사회는 목회자에게 '영적인 슈퍼히어로'의 역할을 기대해 왔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는 깊이 있는 기도의 사람이자, 설교를 통해 영혼을 울리는 선포자여야 하며, 동시에 교회라는 공동체를 운영하는 유능한 행정가이자 재정 전문가여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의 개인적인 삶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가, 갈등을 중재하는 화해자, 심지어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예언자적 목소리까지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끝없는 역할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믿음'의 문제로만 치부하게 만드는 위험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목회자 소진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현실적인 기대와 역할 과부하:목회자는 24시간 언제든 성도들의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립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가족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을 '거룩한 희생'으로 여기며, 휴식과 자기 돌봄을 죄책감의 대상으로 느끼기 쉽습니다.
정서적 고립과 소통의 부재:목회자는 자신의 연약함이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대상이 드물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서적 고립을 경험합니다.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완전한 모습을 기대하며, 목회자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집니다.
영적 고갈:사역을 위한 영적 에너지를 계속해서 소비하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을 채울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를 하지만, 이는 '사역'의 연장선에 있을 뿐,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개인 영성'과는 괴리될 수 있습니다.
행정 및 재정적 부담:목회는 영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교회의 행정, 재정, 건물 관리 등 비신학적인 영역에서의 부담은 목회자들을 소진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2.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성경적, 신학적 근거

소진된 목회자에게 '쉬라'고 말하는 것은 비장한 사역에 대한 '포기'를 권유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돌봄은 결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창조 질서와 복음적 진리를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영적 훈련입니다.
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셨지만, 동시에 영적, 육체적 휴식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사역의 분주함 속에서도 홀로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 기도하셨고(마가복음 1:35), 깊은 잠을 주무셨으며(마가복음 4:38),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마가복음 6:3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사역의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인간의 몸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나. 안식일(Sabbath)의 원리:
하나님께서는 천지 창조 후 제 칠일에 안식하셨고, 인간에게도 안식일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며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정기적인 안식을 통해 영혼의 숨을 쉬어야 합니다. 지속적인 소진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다. 몸은 성령의 전이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라고 가르칩니다(고린도전서 6:19). 이는 우리의 몸이 영적인 활동을 위한 도구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존귀한 가치를 지닌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것을 사역과 무관한 '세속적인' 일로 여기기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성전을 돌보는 '영적인' 행위로 인식해야 합니다.

3. 소진 예방을 위한 세 가지 차원의 자기 돌봄

목회자의 자기 돌봄은 단순히 '쉬는 것'을 넘어, 영적, 신체적, 관계적 차원에서의 균형 잡힌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 영적 자기 돌봄:

사역을 위한 묵상이 아닌, 존재를 위한 만남
목회자들은 설교 준비를 위한 말씀 묵상이나, 성도를 위한 중보기도는 익숙하지만, 오직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위한 기도의 자리는 놓치기 쉽습니다.
개인 영성 회복:설교 강단에서 내려와, 한 명의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설교를 위한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영혼을 위한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영적 멘토와의 교제:자신의 영적 상태를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영적 멘토를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목회자가 자신의 영적 고갈을 깨닫고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 신체적, 정신적 자기 돌봄: '거룩한 육체' 돌보기

육체의 건강은 영혼의 건강과 직결됩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돌보는 것을 영적인 게으름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정기적인 휴식과 수면:충분한 수면은 육체적 회복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명료한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정기적인 운동은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하며, 건강한 식습관은 사역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본이 됩니다.
전문 상담:목회자가 우울증, 불안, 소진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숨기거나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이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전문적인 도움을 통해 회복하려는 용기 있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다. 관계적 자기 돌봄: 사역의 동반자로서의 가족과 동료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공동체는 가족입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사역에 집중하느라 가족을 소홀히 하고, 그로 인해 가족 관계가 단절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가족과의 시간 확보:사역 일정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가족과의 식사, 여행, 대화는 목회자의 정서적 회복에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동료 목회자들과의 교제:경쟁 의식을 버리고, 서로의 연약함을 나누고 위로하는 동료 목회자들과의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목회자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사역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중요한 힘이 될 것입니다.

4. 지속가능한 목회를 위한 구조적 제언: 교회의 역할

목회자의 자기 돌봄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회가 목회자의 건강을 지지하고 돕는 구조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안식년(Sabbatical) 제도 도입:장기 사역 목회자들에게 정기적인 안식년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는 목회자가 영적, 육체적으로 재충전하여 새로운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사역에 복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목회자의 재정적 안정성 보장:목회자의 재정적인 어려움은 소진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교회가 목회자에게 합당하고 안정적인 보수를 제공하는 것은 목회자의 사역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은퇴'에 대한 새로운 인식:목회자는 은퇴 후에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은퇴 후의 삶을 위한 재정적, 정서적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여, 목회자들이 노년에도 안정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평신도 리더십의 역할 강화:목회자의 모든 짐을 덜어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평신도들이 각자의 은사에 따라 사역을 감당하도록 훈련하고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목회자의 행정적, 사역적 부담을 경감시켜야 합니다. 이는 목회자가 본질적인 목회 사명인 기도와 말씀 사역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목회자의 소진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영적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입니다. 우리는 목회자를 '희생의 아이콘'으로만 바라보는 시대착오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의 건강과 영성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목회자의 자기 돌봄은 '사역'을 위한 '휴식'이 아니라, '존재'를 위한 '호흡'입니다. 목회자가 건강할 때, 교회는 영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목회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공동체로 변화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새로운 부흥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 교육의 혁신:
미래 시대를 준비하는 신학교의 역할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 이면에는 철저한 성경적 훈련과 뜨거운 영성을 겸비한 수많은 목회자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의 억압, 6.25 전쟁의 폐허, 그리고 절대 빈곤의 시대를 겪으며 복음의 능력을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양성하는 가장 중요한 산실은 바로 신학교였습니다. 신학교는 한국 교회의 뿌리이자, 그 고난의 역사 속에서 믿음의 세대를 일으켜 세운 영적 리더십을 공급하는 핵심 기관이었습니다. 신학교에서 훈련받은 이들은 단순히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을 넘어, 사회 곳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신학교들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급격한 학령 인구 감소와 함께 신학생 수가 현저히 줄고 있으며, 신학교 교육이 현실의 목회 현장과 괴리되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신학교가 오히려 과거의 유산에 갇혀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장은 한국 교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신학교가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급변하는 시대와 소통하며 과감한 혁신을 이루어내야 함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전통적인 신학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경적 진리를 기반으로 오늘날의 도전과 기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목회자와 선교사를 양성하는 것이 신학교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1. 신학교의 현주소: '상아탑'의 위기와 그 문제점
한국 신학교는 오랫동안 '상아탑(ivory tower)'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깊이 있는 학문적 탐구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 학문이 실제 목회 현장과 분리될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러한 괴리는 결국 신학교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첫째, 이론 중심의 교육과 실천적 사역의 괴리입니다.
신학 교육은 방대한 신학적 지식, 교회사, 조직 신학, 성서 비평 등 이론적 커리큘럼에 치우쳐 있습니다. 물론 이는 목회자의 기본 소양이지만, 정작 목회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성도들을 상담하고, 공동체 갈등을 중재하며,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교회를 운영하는 실질적인 리더십입니다. 오늘날의 신학교는 변화하는 시대의 목회 현장에 필요한 실제적인 훈련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그룹 리더십, 재정 투명성 확보를 위한 회계 교육, 교회 내 성폭력 예방 및 대처, 그리고 심화된 상담 심리 훈련과 같은 과목들은 전통적인 커리큘럼에서 종종 소홀히 다루어져 왔습니다. 이로 인해 신학생들은 이론적으로는 훌륭한 신학을 갖추었지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기독교 지식인'으로만 양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시대의 언어와 소통하지 못하는 한계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 다문화, 사회적 양극화, 젠더 문제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의 커리큘럼은 이러한 시대적 담론을 성경적으로 분석하고 적용하는 데 미흡합니다. 졸업 후 목회 현장에 나가는 신학생들은 교회 밖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와 도구를 갖추지 못한 채 고립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인공지능이 설교문을 작성하고, 유튜브가 젊은 세대의 영적 교과서가 되는 시대에, 신학교가 여전히 전통적인 소통 방식만을 고수한다면, 교회는 결국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될 것입니다.
셋째, 정서적, 영적 성숙에 대한 소홀함입니다.
신학 교육은 주로 '지식'의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회 리더십은 학문적 탁월함뿐만 아니라, 깊은 영성, 성숙한 인격, 그리고 목회적 소명을 향한 헌신에서 나옵니다. 신학교가 지적 훈련에만 몰두할 때, 영적, 정서적, 인격적 성숙이 부족한 '지식인'만을 양성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결국 목회자의 소진과 영적 고갈로 이어지고, 성도들에게는 상처와 실망을 안겨주는 악순환을 낳게 됩니다. 목회자의 영적, 정서적 건강은 교회 공동체의 영적 건강과 직결됩니다.

2. '목회자 양성'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 리더 양성'으로
신학교는 단순히 '목회자'를 만드는 기관이라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역에서 사명을 감당할 리더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비전을 확장해야 합니다. 이는 학령 인구 감소라는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신학교의 존재 이유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가. '목회 신학'을 넘어선 '전인적 신학'으로:
신학 교육은 이제 교회의 담장 안에 국한되지 않아야 합니다.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미디어학, 예술, 과학 등 다양한 학문과 신학을 융합하여, 학생들이 세상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복음의 해답을 제시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목회자들이 단순히 예배당 안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넘어, 일터, 가정, 그리고 사회의 공공 영역에서 복음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 시대에 생태 신학을 연구하고, AI 윤리 문제에 대한 신학적 답을 제시하며, 사회적 기업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신학교의 새로운 사명이 될 것입니다.
나. 지식 전달에서 '영성 형성'으로:
신학교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깊이 있게 빚어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정기적인 영적 지도(spiritual direction), 영성 수련회, 그리고 묵상과 기도 생활에 대한 실질적인 훈련은 신학 교육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적 인격 형성을 돕는 인성 교육과 상담 훈련도 강화하여, 목회자가 사역의 소진을 예방하고 성도들의 삶을 진정으로 돌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교수진은 학문적 멘토링뿐만 아니라 영적 멘토로서 학생들의 삶을 깊이 있게 돌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다. '신학교'를 넘어선 '선교적 플랫폼'으로:
신학교는 단순히 졸업생을 배출하는 기관이 아니라, 이 시대의 선교적 과제를 연구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선교적 플랫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해외 선교지와의 직접적인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여 학생들이 현장 선교사들과 함께 사역하며 실제적인 경험을 쌓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또한, 지역 사회의 필요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봉사 활동을 커리큘럼에 적극적으로 포함시켜, 신학교 자체가 지역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신학생들에게 '책상 위의 신학'을 넘어선 '삶으로 증명하는 신학'을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3. 신학교 혁신을 위한 구체적인 제언
신학교의 혁신은 단순히 몇몇 과목을 추가하는 것을 넘어, 교육 시스템과 문화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가.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교육' 시스템 구축:
바쁜 현대인들이나 현장 사역자들을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유연한 교육 모델을 개발해야 합니다.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멘토링, 실습을 병행하는 시스템은 신학교의 지리적 한계를 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양질의 신학 교육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직 평신도 리더들을 위한 '온라인 목회학 석사 과정'이나, '선교사 재교육 과정'을 개설하여 급변하는 현장에 대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나. '현장 중심의 실습 교육' 강화:
신학 교육의 뼈대를 이론에서 현장으로 옮겨야 합니다. 모든 신학생들이 목회 현장, 선교지, 사회 봉사 단체 등에서 장기적인 실습을 의무적으로 수행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책상에서 배운 신학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직접 경험하고, 목회적 역량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단순히 교회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빈민 사역, 병원 호스피스 사역, 학교 내 상담 사역 등 다양한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전문가'로 훈련되어야 합니다.
다. '교차 학문'적 커리큘럼 개발:
신학 과목뿐만 아니라, 미디어 콘텐츠 제작, 상담 심리, 비영리 단체 운영, 사회적 기업가 정신 등 미래 시대의 목회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과목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함으로써 학생들이 넓은 시야를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는 신학생들이 복음을 사회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고 소통하는 '문화적 중개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라. '공동체적 영성' 회복:
신학교는 단순히 학위 취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학생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성을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생들 간의 깊이 있는 교제와 영적 연대를 강화하고, 교수와 학생이 함께 고민을 나누고 기도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는 목회 현장에서 겪게 될 고립감을 이겨낼 수 있는 중요한 영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또한, 소진을 예방하기 위한 멘토링 시스템을 정규 과정에 포함시켜, 학생들이 자신의 영적, 정서적 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건강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는 결국 오늘날의 신학교가 어떤 리더들을 배출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신학교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고, 시대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목회자 양성'을 넘어 '총체적 하나님 나라 리더 양성'이라는 새로운 소명을 받아들일 때,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새로운 부흥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제언들이 신학 교육 혁신의 소중한 첫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가나안 성도'를 위한 공동체:
교회 밖 신앙인들을 품는 방법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가장 아픈 현실 중 하나는 교회에는 속하지 않지만 신앙을 잃지 않은 사람들, 즉 '가나안 성도'의 증가입니다. '가나안'은 '안 나가'를 거꾸로 말한 신조어로, 교회를 떠났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신앙을 포기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때 교회의 중심에서 뜨거운 신앙 생활을 했던 이들이며, 그들의 이탈은 한국 교회에 대한 깊은 실망과 상처의 결과입니다. 이 장은 가나안 성도 현상을 단순한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교회가 이들을 이해하고 품기 위해 어떤 자세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합니다. 이는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을 넘어, 교회가 존재해야 할 본질적 이유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1. 가나안 성도가 교회를 떠난 이유: 상처와 실망의 증언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들의 상처는 교회의 구조적, 문화적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겸허히 경청해야 합니다. 이들이 경험한 상처는 단순히 주관적인 감정을 넘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냉철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형식화된 종교 의식에 대한 회의입니다.
많은 가나안 성도들은 예배가 더 이상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이 아니라, 매주 반복되는 공허한 의식처럼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화려한 영상과 웅장한 찬양, 정교한 프로그램은 넘쳐나지만, 그 안에 진정한 영적인 교제가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관람'의 대상이 되었고, 성도들은 단지 '방청객'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들은 예배당 안에서 경험하는 소외감과 공허함이 차라리 혼자 조용히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보다 못하다고 느낍니다. 이들은 주일마다 '신앙의 위선'을 경험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지만,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세상의 가치관으로 돌아가는 이중적인 삶이 그들을 지치게 했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인 신앙의 가면을 벗고, 삶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갈망했습니다.
둘째, 교회 내 관계의 부재와 위선에 대한 실망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가족'이라 불리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공동체는 경쟁과 판단, 그리고 정죄가 만연한 곳이었다는 상처를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메시지와 괴리된 목회자와 리더들의 삶을 보며 실망했고, 자신의 연약함을 숨겨야 하는 가면의 삶에 지쳐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감옥'처럼 느껴졌습니다. 교인들 간의 소통은 주로 사적인 삶의 나눔이 아니라, '누가 헌금을 더 많이 했는가', '누가 더 열심히 봉사하는가'와 같은 피상적인 기준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는 복음의 핵심인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나안 성도들은 이 공동체 안에서 '이방인'이나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을 느꼈고, 그들의 아픔과 고민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영적 교제를 갈망했습니다.
셋째, 교회의 비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환멸입니다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목회자의 모습, 불투명한 재정 운영, 권위주의적인 리더십, 그리고 성추문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은 성도들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내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모습을 보며, 교회의 공적 사명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된 것입니다. 특히, 사회적 불의와 부당함에 침묵하거나 오히려 권력에 야합하는 교회의 모습은 젊은 세대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조차 위계질서와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비성경적인 문화에 지쳐,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안식을 찾아 떠나게 되었습니다.

2. '성경적 교회'의 본질 회복: 건물을 넘어선 공동체
가나안 성도 현상은 우리에게 교회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는 과연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헬라어 '에클레시아')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무리'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유기적인 몸이며, 이 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서로를 향한 사랑과 교제입니다.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다고 해서 그들의 믿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건물'과 '제도'를 떠났을 뿐,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비록 제도적인 교회와는 단절되었지만, 오히려 더 순수하고 본질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혼자 성경을 읽고, 유튜브 설교를 들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적 성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가나안 성도들은 '잃어버린 양'이 아니라, 거대한 무리에서 잠시 벗어나 홀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소그룹 성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다시 '제도적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들을 비난하는 대신, 그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그들의 영적 갈망에 응답하는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를 모색해야 합니다. 교회가 건물과 제도의 울타리를 넘어 '관계'와 '진정성'을 회복할 때, 가나안 성도들은 다시금 공동체 속으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

3. '가나안 성도'를 품기 위한 교회의 구체적인 노력
가나안 성도를 위한 사역은 단순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영적 혁명입니다.
가. 판단 없이 경청하고, 공감하며 품으라:
가나안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판단이나 정죄가 아닌,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입니다. 교회는 '왜 교회를 떠났느냐'고 묻기 전에,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묻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소그룹이나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그들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는 치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목회자와 리더십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교회가 '치유의 공동체'가 될 때, 가나안 성도들은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돌아올 것입니다.
나. 진정성 있는 관계 공동체를 회복하라:
교회는 이제 대형 건물을 짓는 데 집중하기보다,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관계 공동체를 회복해야 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삶의 어려움을 나누며,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작은 모임들이 활성화될 때, 가나안 성도들은 다시금 공동체의 따뜻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형식적인 순서와 프로그램보다 '관계'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름만 아는 수많은 교인'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알아주는 몇몇 친구'를 찾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과 훈련을 제공해야 합니다.
다.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라:
가나안 성도들이 실망했던 이유는 복음이 아닌 '복음 외적인 것'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교회는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설교와 사역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두어, 성도들이 신학적 논쟁이나 교회의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는 교회가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휘둘리지 않고 복음의 핵심 가치를 삶으로 증명하는 데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본질을 회복할 때, 교회는 다시 한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라. '교회 밖'을 향한 선교적 태도를 갖추라:
가나안 성도는 교회 밖의 세상에 존재합니다. 교회는 이들을 '잃어버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보내신' 존재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들이 속한 일터, 가정, 그리고 취미 생활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새로운 선교적 시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가나안 성도'를 다시 교회로 불러들이는 것을 넘어,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새로운 선교의 장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이웃과 함께하는 열린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문화 강좌, 봉사 활동, 취미 모임 등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비신앙인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치유하는 교회
가나안 성도 현상은 한국 교회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회에 주어진 가장 큰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는 교회가 외형적인 성장을 멈추고, 내면의 영성을 돌아보며, 사랑으로 서로를 품는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판단의 칼날을 내려놓고 치유와 화해의 손을 내밀 때, 상처받은 영혼들은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꿀 것입니다. 가나안 성도들을 위한 사역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물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건축과 공간의 재해석:
교회가 '쉼터'가 되기 위한 제언

한국 교회의 역사는 곧 건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아닐 만큼, 교회의 성장은 물리적인 건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습니다.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지어진 작은 예배당들은 성도들에게 고난을 이겨낼 위로와 희망을 주었고,1970년대와 80년대의급격한 부흥기에는 성장의 상징처럼 거대한 성전을 지어올리는 것이 교회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거대한 십자가 탑이 밤을 밝히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웅장한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예배당은 성도들의 자부심이었고, 지역 사회에 교회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기념비와 같았습니다.교회의 건축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믿음의 승리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물이 되었습니다.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교회 건물들은 그 웅장함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단절된 섬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 문은 잠겨 있고, 주일이 아니면 아무도 찾지 않는 텅 빈 공간들은 교회가 더 이상 지역 사회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장은 교회의 건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고, 교회가 단순히 예배드리는 장소를 넘어 지역 사회와 이웃의 삶에 깊숙이 스며드는 '쉼터'로 거듭나야 함을 제안합니다. 이는 거룩함과 세속성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고, 모든 공간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교회의 물리적 공간이 '보여주기 위한 건물'에서 '섬기기 위한 공간'으로 변화할 때, 교회는 다시 한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1. 교회의 건축, 영광인가 욕망인가?
한국 교회의 건축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욕망을 투영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더 높이, 더 크게 지어 올린 교회 건물은 때로는 성공의 척도이자, 교세 확장의 증거로 여겨졌습니다.교회는 '영적 성전 건축'이라는 미명 아래, 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건물을 짓는 데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었습니다.이러한 건축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낳았습니다.

첫째, 교회와 세상의 단절을 심화시켰습니다.

웅장한 외관과 높은담벼락, 잠긴 철문은비신자들에게 위압감과 이질감을 주었고, 심리적인 문턱을 높였습니다.사람들은 교회를 단순히 주일 아침에만 잠시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비공개 클럽'처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교회는 세상의 삶과 동떨어진 '신성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이웃들은 교회를 '우리와 상관없는 곳'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건물을 지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건물이 복음의 통로를 막는 장벽이 된 것입니다.교회가 지역사회에 필요한 주차 공간이나 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안락한 공간을 짓는 데 몰두하면서 세상과의 간극은 더욱 커졌습니다.

둘째,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본질을 왜곡했습니다.

거대한 건물을 짓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이는 교회의 재정이 본래의 목적인 선교와 봉사, 구제보다는 건물을 관리하고 부채를 갚는 데 묶이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건축 부채는 교회의 발목을 잡는 '무거운 족쇄'가 되었고, 이로 인해 교인들은 끊임없이 헌금을 독려받는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건물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결국 성도들과 세상으로부터 불신을 초래했습니다.교회 건축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곧 세상이 말하는 '번영'이 교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셋째, 공동체적 본질을 훼손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잊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배당'이 곧 '교회'라고 여기게 되었고, 교회의 본질인 성도 간의 관계와 공동체적 삶에는 소홀해지기 쉬웠습니다. 예배당이 크면 클수록소그룹교제는 희미해졌고, 예배는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적 행위가 아닌, 목회자의 설교를 경청하는 일방적인 '관람'으로 변질되었습니다.성도들은 예배당의 거대한 공간 속에서 익명의 군중이 되어, 서로의 삶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 채 오직 주일에만 만나는 낯선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 즉 사랑과 섬김을 통해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의 힘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2. '에클레시아'의 본질적 공간: 건물이 아닌 공동체

교회 건축을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불러내심을 받은 무리'라는 뜻으로, 건물이 아닌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가정과 작은 모임 공간에서 예배를 드렸고, 그들의 삶 자체가 복음을 전하는 살아있는 성전이었습니다.그들은 건물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공동체적 삶과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을 통해 세상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성경적 교회는 건물의 크기나 웅장함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진정한 교회는 두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 이미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거대한 성전을 짓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병든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예수님의 사역은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갈릴리 호숫가, 길거리, 그리고 죄인들의 식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가 특정한 건물에 국한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 속에 거하심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이웃의 삶과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물리적인 건물이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3. '쉼터'로서의 새로운 공간: 세상을 품는 교회

교회는 이제 '요새'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연 '쉼터'가 되어야 합니다. 쉼터는 지친 영혼들이 잠시 머물러 위로와 회복을 얻는 공간입니다. 이러한 쉼터로서의 교회 공간은 다음과 같은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첫째, '환대'(Hospitality)의 공간입니다.

쉼터는 누구나 환영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성도뿐만 아니라,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이웃, 가난한 이들, 상처받은 이들 모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이는 단순히 친절한 인사말을 건네는 것을 넘어, 편견 없는 시선으로 사람들을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운영하는 카페나 도서관을 비신자들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진정한 환대의 시작입니다. 이는 교회 내에 존재하는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허무는 가장 강력한 행위입니다.

둘째, '치유'의 공간입니다.

쉼터는 단순히 쉬어가는 곳이 아니라, 영육 간의 상처가 치유되는 공간입니다.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심한 경쟁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습니다.교회의 공간은 상담, 치유 프로그램, 명상과 묵상을 위한 공간 등으로 활용되어, 마음의 고통을 겪는 이들이 찾아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교회는 지역의 정신 건강 기관과 연대하거나, 전문 상담사를 초빙하여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을 치유하셨듯이, 교회의 공간은 이 시대의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거룩한 치유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연결'의 공간입니다.

쉼터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관계를 맺는 장소입니다. 교회는 지역 사회의 다양한 소그룹, 비영리 단체, 문화 모임 등을 위한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교회가 지역 사회의 중심적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교회가 일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삶을 나누고 소통하는 통로가 되게 할 것입니다.예를 들어, 청년들이 창업을 꿈꿀 수 있는 공유 오피스를 제공하거나, 은퇴한 이들을 위한 취미 활동 공간을 마련하는 등, 교회는 지역 사회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필요를 채우는 '연결망'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4. 교회를 '쉼터'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제언

가. 다목적 공간으로 재해석하라:

교회 건물은 더 이상 주일에만 사용되는 공간이 아닙니다. 평일에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카페, 공부방, 문화센터 등으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이는 교회가 365일 내내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공간'이 되게 할 것입니다.더 나아가, 교회의 공간을 지역 예술가들에게 전시 공간으로 대여하거나,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를 여는 등, 교회가 지역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나. 친근하고 개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라:

교회의 외관은 위압적이고 거대한 느낌을 주기보다, 이웃들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는 친근한 디자인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연 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따뜻한 색감과 편안한 가구를 배치하며,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문을 없애야 합니다.교회의 문은 밤에도 열려 있어 누구나 와서 기도하고 쉴 수 있는 '밤샘 기도 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물리적 변화는 교회가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임을 세상에 보여주는 가시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다. '공동체 정원'과 '열린 마당'을 조성하라:

교회의 유휴 공간은 공동체 정원이나 벤치, 산책로가 있는 열린 마당으로 조성하여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되어야 합니다. 이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아도 이웃과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교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접촉점이 될 것입니다.공동체 정원은 성도들과 이웃들이 함께 작물을 가꾸며 자연스럽게 교제하고,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소중한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라. '성전'의 개념을 성도들의 삶으로 확장하라:

교회가 거룩한 건물을 넘어선 '쉼터'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움직이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가정이 쉼터가 되고, 그들의 일터가 쉼터가 될 때, 교회의 공간은 그들의 삶을 뒷받침하는 베이스캠프가 될 것입니다.성도들은 교회 건물이라는 물리적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삶의 모든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머리 둘 곳 없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화려한 성전에서 가르치시기보다, 길거리와 들판에서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교회의 미래는 거대한 건물을 짓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공간을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하셨듯, 가장 낮은 이웃들을 섬기고 환대하는 '사랑의 쉼터'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영적 비전을 가지고 건축과 공간을 재해석할 때, 교회는 다시 한번 세상의 고통을 끌어안고 치유하는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날 것입니다.


세대 간의 공존:
'꼰대'와 'MZ' 세대의 시너지를 만들다.

한국 교회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크고 아픈 현실 중 하나는 세대 간의 깊은 골입니다. 이 갈등은 단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단순한 현상을 넘어, 교회의 존재론적 기반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회는 모든 세대가 함께 하나님의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여야 하지만, 현실은 마치 서로 다른 언어와 가치관을 가진 두 개의 거대한 섬처럼 분리되어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의 무관심과 비협조적인 태도에 실망하고, 다음 세대는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문화에 상처받아 교회를 떠나거나 마음을 닫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불신과 오해는 깊어지고, 교회는 영적 활력을 잃은 채 각자의 섬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단절은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다음 세대 양육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며, 한국 교회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장은 이러한 세대 갈등을 단순히 '세대 차이'로 치부하는 것을 넘어, 그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꼰대'와 'MZ'라는 상징적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복잡한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차이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는 대신, 복음의 능력으로 세대 간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여 놀라운 시너지를 창출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함을 제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세대 간의 분열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되어 온전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1. 세대 갈등의 해부학: '꼰대'와 'MZ'의 충돌 지점
세대 갈등은 단순히 나이의 많고 적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가 살아온 시대적 환경과 사회적 경험이 형성한 가치관과 세계관의 충돌에서 비롯됩니다. '꼰대'와 'MZ'라는 용어는 이러한 충돌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이 두 세대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다른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통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세대 간의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가. '꼰대' 세대의 자화상: 성공과 희생으로 축적된 가치

'꼰대'라는 용어는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소통 방식을 가진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들의 삶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세대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이후의 극한 가난 속에서, 그들에게 생존과 성장은 최우선의 가치였습니다. '빨리빨리' 문화와 '하면 된다'는 신념은 그들이 이룬 눈부신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습니다. 교회의 부흥 또한 이들의 헌신과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십일조와 헌신으로 교회를 세우고, 목회자의 권위에 순종하며 교회의 외적 성장을 이루어낸 것이 이들의 공로입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곧 삶의 전부였으며, 헌신은 당연한 미덕이었습니다. 개인의 고난과 희생은 공동체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단계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교회 건축과 재정 확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의 증거를 삼았으며, 이는 그들 삶의 가장 중요한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강점이자 영광은 오늘날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성공과 희생을 다음 세대에게 강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우리 때는 말이야...", "너희는 편하게 신앙생활 하는 줄 알아"와 같은 말들은 다음 세대에게는 자신의 삶과 노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처로 다가옵니다. 그들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다음 세대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꺾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전체의 유익'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의견과 감정이 무시되는 경험은 MZ 세대에게 교회를 '숨 막히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목회자와 리더십의 절대적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공동체의 덕목이라고 믿지만, 다음 세대에게 이러한 방식은 소통의 부재와 불의한 구조를 덮으려는 시도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나. 'MZ' 세대의 자화상: 개인과 관계를 중시하는 실존적 신앙

MZ 세대는 '개인주의'와 '관계', '공정함', 그리고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었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랐습니다. 이들은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보다는 수평적인 소통과 논리적인 설명을 원합니다. 이들은 '교회'라는 조직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기보다, 그 공동체가 얼마나 진정성 있고 사랑이 넘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단순히 주일 예배를 드리고 교회의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실존적 경험'입니다. 이들은 교회 건물의 크기나 교회의 명성보다는, 소그룹 안에서의 깊은 나눔과 개인의 신앙적 성장을 더 가치 있게 여깁니다.

이러한 MZ 세대의 특징은 기성세대에게 '개인주의적', '나약함', '공동체 의식 부재'와 같은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이들이 예배 시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새벽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을 보며, 기성세대는 이들의 신앙이 깊지 않다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스마트폰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신앙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존 교회가 내세우는 영광의 유산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라는 복음의 본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들은 교회의 불투명한 재정 운영이나 비윤리적인 리더십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하며, 교회가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한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다. 세대 갈등의 교회적 표현: 예배, 리더십, 재정의 충돌

세대 간의 가치관 충돌은 교회 내 다양한 영역에서 표출됩니다.
예배: 기성세대는 전통적인 찬송가, 엄숙한 기도 순서, 정형화된 예배 형식을 선호하며 질서와 권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반면, MZ 세대는 현대적인 찬양, 자유로운 기도, 영상과 예술이 결합된 창의적인 예배를 통해 진정성과 감각적인 경험을 추구합니다.

리더십: 기성세대는 연장자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며 목회자의 절대적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MZ 세대는 수직적인 리더십 대신, 수평적 소통과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원합니다. 그들은 '섬기는 리더'를 원하며, 리더십의 투명성과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재정: 기성세대는 교회의 성장을 위한 십일조와 헌금을 당연한 의무로 여기지만, MZ 세대는 헌금의 사용처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요구합니다. 그들은 교회가 건물을 짓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재정을 쏟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 선교에 투자하는 등 복음의 본질에 더 부합하는 재정 사용을 원합니다.
이러한 갈등은 종종 '사랑'과 '화해'라는 이름으로 덮어지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상처는 깊어지고 소통의 단절은 더욱 심화됩니다. 교회는 이러한 갈등을 회피하거나 덮어두는 대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정직하게 마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2. 갈등을 넘어선 시너지: 복음이 만드는 화해의 길

세대 갈등을 극복하고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꼰대'와 'MZ'라는 세속적 프레임을 벗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서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갈등은 파괴를 낳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화해와 연합을 가능하게 합니다.
가. 십자가 아래서의 겸손과 경청

모든 세대 간의 화해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과거 성공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인정하고, 다음 세대의 새로운 방식과 언어를 겸손하게 경청해야 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연약한 죄인이다"라는 십자가의 진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MZ 세대 또한 기성세대가 겪어온 고난과 헌신의 역사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음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를 '나와 다른 존재'로 규정하는 대신,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로 바라보는 영적 시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마음과 아픔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포함합니다.

나.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동역으로의 전환

교회는 수직적인 권위와 지배의 구조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보이신 섬김의 리더십을 회복해야 합니다. 목회자와 리더십은 '명령하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임을 깨닫고, 다음 세대에게 실질적인 리더십의 기회를 부여해야 합니다. 청년들을 단순한 봉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영적 에너지를 교회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역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재정 운영, 의사 결정 과정 등 교회의 핵심적인 사역에 MZ 세대의 참여를 보장하고 그들의 의견을 진심으로 경청하는 것은 공동체적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는 MZ 세대가 교회의 '소비자'가 아닌,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다. '영원한 진리'와 '시대의 언어'의 조화

복음의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그 진리를 전달하는 방식은 끊임없이 혁신되어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복음의 견고한 뿌리를 지키고, MZ 세대는 그 진리를 이 시대의 언어와 방식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성경 공부 모임과 함께,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웹툰, 유튜브, 팟캐스트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한 말씀 나눔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경직된 전통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담아내는 새로운 그릇을 함께 만드는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문화화'는 단순히 세속 문화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시대의 문화 속으로 스며들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세대 간의 시너지를 위한 구체적인 제언

세대 간의 공존을 위한 노력은 단순히 이론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이 필요합니다.
가. 세대 통합형 소그룹 및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

나이와 관계없이 함께 모여 삶과 신앙을 나누는 세대 통합형 소그룹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이 소그룹 안에서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깊은 삶의 지혜와 신앙의 유산을 전수하고, 다음 세대는 기성세대의 영적 무지를 깨우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대 간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여, 목회자나 장로가 멘토가 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가 '디지털 멘토'가 되어 기성세대의 디지털 문해력을 돕는 등의 상호 교류를 통해 서로의 삶을 배우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을 넘어, 삶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삶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나. '소통과 공유'가 중심이 되는 교회 문화 정립

교회는 '정보 공유'를 꺼리는 폐쇄적인 문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재정 보고서, 사역 계획, 심지어는 목회자의 삶에 대한 고민까지 투명하게 공유할 때, 젊은 세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타운홀 미팅'을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교회의 중요한 결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소통과 공유의 문화는 모든 세대가 교회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투명성은 젊은 세대가 교회의 문제에 대해 비판만 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동역자'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다. '각 세대의 강점'을 활용한 공동 사역 추진

세대 갈등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여 공동 사역을 추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성세대의 '안정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MZ 세대의 '창의성'과 '실행력'을 결합한 지역사회 봉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은퇴한 장로님들이 MZ 세대의 청년들과 팀을 이루어 노숙자들을 위한 식사 봉사를 하거나, 청년들이 주축이 된 찬양팀이 전통적인 찬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편곡하여 예배를 풍성하게 하는 등, 서로의 강점을 존중하고 활용하는 사역은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 사역은 서로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계기가 되며, '나'의 세대만이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강화합니다.

세대 갈등은 한국 교회의 아픈 현실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잃어버린 '함께함'의 가치를 회복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각 세대가 가진 영적 유산과 에너지를 통합할 때, 교회는 다시 한번 세상에 희망을 선포하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꼰대'와 'MZ'라는 프레임은 세상이 만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 몸을 이루는 형제자매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판하고 단절하는 대신, 서로의 손을 맞잡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다음 세대에 기꺼이 전수하고, 다음 세대는 자신들의 창의성과 열정으로 교회의 미래를 열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제언들을 통해 한국 교회가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온전한 하나의 몸을 이루는 거룩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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