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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 강독

엔도 슈사쿠 (Shusaku Endo), 『침묵 (Silence)』

엔도 슈사쿠 (Shusaku Endo)의 『침묵 (Silence)』
- 부제: 고통의 한복판에서, 신은 왜 침묵하시는가? -

서론: 고통의 한복판에서, 신은 왜 침묵하시는가?
당신의 신실한 신자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끔찍한 고문 속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규하며 당신의 응답을 구합니다. 그러나 당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도, 아무런 기적도 없이, 그저 침묵하고 계십니다. 20세기 일본의 위대한 가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 **『침묵』**은 바로 이 견딜 수 없는 **'신의 침묵'**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품고 있는, 20세기 가장 심오하고도 고통스러운 종교 소설입니다.

평생을 일본이라는 문화적 토양과 서구의 기독교 신앙 사이의 간극 속에서 고뇌했던 엔도 슈사쿠는, 이 소설의 배경을 17세기 일본의 가혹했던 기독교 박해 시대로 가져갑니다. 이야기는 젊고 이상에 불타는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사제, 세바스티앙 로드리고가 순교의 영광을 꿈꾸며 일본으로 밀입국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의 임무는 박해받는 지하 교회의 신자들을 돌보는 것, 그리고 고문 끝에 배교했다고 전해지는 자신의 존경하는 스승 페레이라 신부의 진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본 강독에서는 이 젊은 사제의 여정을 따라, 일본이라는 '늪'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가 마주하게 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박해의 현실과 그보다 더 끔찍한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그의 신념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목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설의 충격적인 클라이맥스에서, 그 침묵이 깨지는 순간을 통해, 신앙과 배교, 강함과 약함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본론: 신념의 붕괴, 혹은 새로운 신앙의 탄생
1. 불타는 이상과 냉혹한 현실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는 영광스러운 순교를 꿈꾸는, 강하고 이상적인 신앙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일본 농민들의 모습에 감동하며, 자신 또한 그들처럼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서, 선량하고 순박한 신자들이 단지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바닷물에 묶여 서서히 죽어가고, 거꾸로 매달려 피를 흘리며 고통받는 끔찍한 현실이 펼쳐집니다. 로드리고는 절규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파도 소리와 매미 소리뿐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며, 로드리고의 영혼을 짓누르는 가장 무거운 십자가가 됩니다.

2. 두 개의 거울: 기치지로와 페레이라
로드리고의 신념을 뒤흔드는 것은 침묵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여정에는 그의 신앙을 비추는 두 개의 불편한 거울, 기치지로와 페레이라가 등장합니다.

기치지로 (Kichijiro): 그는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와도 같은 인물입니다. 그는 너무나 나약하여, 박해의 위협이 닥칠 때마다 예수를 부정하고 동료들을 배신합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로드리고를 찾아와 눈물로 용서를 구하고, 또다시 배신하기를 반복합니다. 로드리고는 이 비겁하고 지저분한 기치지로를 경멸하지만, 동시에 그의 모습 속에서 영웅적인 순교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하며 고뇌합니다. 기치지로는 영웅적인 신앙의 이면에 존재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은혜를 갈구하는 인간의 처절한 약함을 상징합니다.

페레이라 (Ferreira): 마침내 만난 그의 옛 스승 페레이라는, 이미 배교하여 일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로드리고에게 지적인 도전을 던집니다. "이 나라는 늪이다. 어떤 외래종교의 묘목도 이 늪에서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썩어버린다." 그는 일본 농민들이 믿었던 것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래 믿던 신들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며, 그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교리를 위해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사제의 잔인한 교만이라고 주장합니다.

3. 클라이맥스: 침묵을 깨는 목소리
마침내 체포된 로드리고에게, 일본 관리 이노우에는 가장 잔인한 심리적 고문을 가합니다. 그를 직접 고문하는 대신, 다른 신자들을 그의 눈앞에서 고문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들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당신이 배교하면, 저들은 풀려날 것이다."

이제 그의 순교는 더 이상 영광스러운 자기희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되어버립니다. 캄캄한 밤,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린 신자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고뇌하던 로드리고 앞에, 관리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 놋쇠 성화 **'후미에(踏み絵)'**를 내밉니다.

그가 성화를 밟지도, 외면하지도 못한 채 얼어붙어 있을 때, 그의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침묵하던 하나님이 마침내 입을 여십니다. 성화 속의 저 지치고 상처 입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에게 말합니다.

"밟아라. 나는 너의 발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밟아라. 나는 인간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졌다."

이 음성을 들은 로드리고는 후미에를 밟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 자신의 신념, 자신의 명예, 즉 사제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가장 큰 배교의 행위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행위를, 다른 사람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한, 그리스도를 닮은 가장 깊은 사랑의 행위로서 수행합니다.

결론: 배교자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
소설의 마지막, 배교한 로드리고는 일본 이름으로 살아가며, 막부의 명에 따라 다른 기독교인들을 색출하는 일을 돕습니다. 겉으로 그는 완벽한 배교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 그는 자신이 밟았던 그분, 즉 침묵 속에서 함께 고통받으시는 그분과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연합해 있다고 독백합니다.

엔도 슈사쿠는 이처럼 충격적이고 모호한 결말을 통해 독자에게 쉬운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는 영광스럽고 승리하는 '강한 신앙'의 이면에 있는, 약하고, 고통받으며, 심지어 배교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과 함께하시는 '약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침묵』은 우리의 모든 안락한 신앙의 전제들을 뒤흔드는 불편한 책입니다. 이 책은, 어쩌면 진정한 신앙이란 영웅적인 순교가 아니라, 나약하고 고통받는 자들, 심지어 배신자들과의 연대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묻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권력과 영광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우리와 함께 고통받으시고, 마침내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나를 배신하라'고까지 속삭이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얼굴을 가진 분일 수 있다는 충격적인 가능성을 열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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