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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 강독

김교신 (Kim Kyo-shin), 『성서조선 강연집』

김교신 (Kim Kyo-shin)의 『성서조선 강연집』
- 부제: 식민지의 아픔 속에서 '조선적 기독교'를 외치다 -

서론: 식민지의 아픔 속에서 '조선적 기독교'를 외치다
🇰🇷 조국이 식민지로 신음하던 암흑의 시대, 당신에게 기독교 신앙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죽어서 천당에 가는 개인적인 위안입니까, 아니면 고통받는 민족의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예언자적 외침입니까? 일제 강점기, 한 평범한 고등학교 지리 교사였던 김교신은, 바로 이 질문을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갔던 인물입니다.

『성서조선 강연집』은 그가 남긴 단행본이 아니라, 그가 창간하고 주도했던 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에 실린 그의 글과 강연을 모은 것입니다. 이 책은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닌 한 평신도 지성인이, 어떻게 서양 선교사에 의해 이식된 기독교를 넘어, 이 땅의 역사와 영혼에 깊이 뿌리내린 **'조선적 기독교'**를 치열하게 모색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증언입니다.

김교신은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가 주창한 '무교회주의(Non-church)' 신앙 노선을 따랐습니다. 이는 제도권 교회와 성직자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오직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께 직접 나아가려는 평신도 중심의 신앙 운동이었습니다.

본 강독에서는 김교신의 글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성경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위에서 '조선'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을 끌어안으려 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당시 조선 교회를 향해 던졌던 날카로운 비판과, 민족의 고난을 십자가의 신앙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그의 깊은 고뇌를 탐구하며, 오늘 우리에게 '한국적 기독교'란 무엇인지를 묻게 될 것입니다.

본론: 성서 위에 선 조선, 조선 위에 선 성서
1. 신앙의 뿌리: 무교회주의와 '성서조선'
김교신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몸담았던 **'무교회주의'**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 중심, 그리스도 중심: 인위적인 교리나 교권, 의식보다 오직 성경을 통해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것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반(反)교권주의, 평신도 중심: 목회자라는 성직자 계급을 인정하지 않고,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성경을 연구하고 삶을 나누는 '성경 연구 모임'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정신 위에서, 1927년 김교신은 잡지 **『성서조선』**을 창간합니다. 이 제호 자체가 그의 신앙 선언이었습니다. 즉, 우리의 신앙은 오직 **'성서'**라는 반석 위에 서야 하며, 그 성서는 **'조선'**이라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읽혀지고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구 신학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거부하는 신학적 독립 선언이자, 민족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역사적 결단이었습니다.

2. 예언자의 비판: 잠자는 교회를 향하여
김교신은 『성서조선』을 통해 당시 조선 교회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서구화에 대한 비판: 그는 당시 조선 교회가 신학, 예배 형식, 교회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서양 선교사들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모방하는 '미국 교회의 지점'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기독교는 결코 민족의 등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도주의와 교권주의에 대한 비판: 교회가 본질인 복음 전파와 사랑의 실천보다, '헛간만큼 큰 예배당'을 짓고, 교권을 다투며, 외적인 성장에만 몰두하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내세 지향적 신앙에 대한 비판: 그의 비판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는 당시 교회가 민족이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의 문제—가난, 억압, 불의—를 외면한 채, 오직 죽어서 가는 **'천당 예수'**만을 가르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에게 참된 신앙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3. 신앙과 민족: '조선적 기독교'의 모색
김교신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참된 조선인이 되는 것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길이었습니다.

고난받는 이스라엘과 조선: 그는 구약 성경을 읽으며, 이민족의 압제 아래 신음했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희망이 군사력이나 외교술이 아닌, 하나님께로의 회개와 말씀에 대한 순종에 있었던 것처럼, 조선의 유일한 희망 또한 이 '성서적 신앙'의 회복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십자가와 민족의 고난: 그는 민족이 겪는 고난을 무의미한 불행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거룩한 과정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민족의 죄가 정화되고, 마침내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할 것이라는 신앙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결론: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의 유산
김교신의 신앙과 사상은 1942년 **'성서조선 사건'**을 통해 그의 삶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는 『성서조선』에 실린 한 지인의 추도문에서 "죽음이 유쾌하다"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 등으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정책에 비협조적인 '불령선인'으로 찍혀 동지들과 함께 투옥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성서조선』은 폐간되었고, 그는 1년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해방을 불과 4개월 앞둔 1945년 4월, 그는 발진티푸스로 세상을 떠나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김교신은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서구 선교 의존적인 신앙과 세속적 민족주의 사이에서, 성경에 기초한 토착적이고 예언자적인 제3의 길을 제시한 위대한 평신도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글은 오늘날 거대화되고 제도화된 한국 교회에 여전히 불편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우리의 신앙은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아픔과 함께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천당 예수'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가? 우리의 교회는 건물이 아닌, 살아있는 신앙 공동체인가?

김교신은 하나님의 말씀과 민족의 고난이라는 두 현실 앞에서 한 치의 거짓 없이 살아가려 했던 정직한 교사였습니다. 그의 글은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민족과 역사 전체를 자신의 교구로 삼았던 한 위대한 신앙인의 증언이며, 한국 교회가 자신의 예언자적 영혼을 되찾으라고 외치는 시대를 초월한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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