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난제 해설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이 많으시지만, 구약 성경에는 진멸을 명령하는 등 잔인하고 분노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이 많으시지만, 구약 성경에는 진멸을 명령하는 등 잔인하고 분노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본론: 구약의 하나님, 사랑과 정의의 양면성
하나님에 대한 이 질문은 많은 사람이 갖는 가장 큰 의문 중 하나입니다.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과, 죄를 묵과하지 않고 진멸을 명령하시는 엄격하고 분노하는 하나님이 서로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이 두 모습이 한 분 하나님의 양면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사랑과 정의(또는 공의)**라는 하나님의 두 가지 성품을 균형 있게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1.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
구약의 하나님이 분노하고 심판하시는 모습은 그분이 죄를 혐오하시는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죄와 불의에 대한 반작용: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의 감정적인 분노와 다릅니다. 이는 불의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반작용입니다. 하나님은 불의와 죄악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모든 죄를 용인하고 심판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공의롭지 못한 분이라는 뜻이 됩니다.
공의로운 심판: 창조주이시자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죄의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당신의 피조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도 그들이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를 반복했을 때 나타났습니다. 이는 죄가 가진 심각성을 보여주며, 죄를 짓는 자들에게 반드시 그 대가가 있음을 경고합니다.
따라서 구약의 심판은 하나님의 변덕스러운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의 필연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분노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구약의 하나님은 분노와 심판을 선포하시면서도, 그 심판의 목적이 결국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임을 끊임없이 보여주십니다.
심판의 목적: 예를 들어, 홍수 심판은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정화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가나안 족속에 대한 진멸 명령도 그들의 극심한 죄악(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등)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고, 그 땅을 정화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심판이 파괴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과 구원을 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언약과 구원: 구약 전체는 심판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증언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끊임없이 약속을 주시고, 그들이 불순종할 때조차도 긍휼을 베푸시며 회복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나서와 같이 심판을 선포했다가도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자 심판을 거두신 이야기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3. 신약과 구약, 사랑의 통일성
신약의 예수님은 이 두 가지 성품을 모두 완벽하게 드러내십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자비와 사랑만으로 가득한 분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위선자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르시며 강하게 책망하셨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시며 거룩한 분노를 드러내셨습니다.
십자가의 역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그 심판을 죄인인 우리 대신 예수님이 받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곳입니다.
결론적으로, 구약의 하나님은 단순히 잔인하고 분노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와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거룩한 공의를 가진 동시에,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는 무한한 자비를 가진 분입니다. 구약은 이 두 가지 성품이 결코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는 한 분 하나님의 완전한 모습임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