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실전 전략 104
21세기 선교의 흐름과 도전: 4/14 윈도우, 미전도종족, 디아스포라, 전문인 선교

심층 분석: 한국 선교의 역사와 특징
- 초기 선교사들의 유산과 한국교회의 선교적 역할 -
I. 서론: 빚진 자에서 빛을 전하는 자로
불과 140여 년 전, 한반도는 굳게 닫힌 '은둔의 왕국'이자 복음의 불모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명실상부한 '선교 대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한 세기 만에 복음을 받은 수혜자에서, 전 세계에 복음의 빚을 갚는 시혜자로의 극적인 전환. 이것은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이야기이며,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한국 교회의 독특한 영적 DNA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은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에 자신의 생명과 청춘을 바쳤던 초기 선교사들의 위대한 유산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혹독한 수난사를 통과하며 형성된 독특한 신앙적 특징이라는 두 개의 씨줄과 날줄이 엮여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인 선교사 후보생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어떤 유산 위에 서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유산을 바탕으로 형성된 한국 교회의 선교적 강점(빛)과 약점(그림자)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21세기 세계 선교를 향한 우리의 고유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모색해야 합니다. 본고에서는 이 두 가지 큰 흐름을 따라 한국 선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심도 있게 조망하고자 합니다.
II. 초기 선교사들의 위대한 유산: 한국교회의 주춧돌
19세기 말, '미지의 땅' 조선에 찾아온 서양 선교사들은 단순히 복음 메시지만을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 전체를 던져 한국 교회의 미래를 결정지은 네 가지 중요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1. 말씀 중심의 신앙: 성경 번역과 사경회
선교사들이 공식적으로 입국하기 전,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는 한국인들과 함께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을 번역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성경의 보급은 한국 교회가 처음부터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또한 **'사경회(査經會)'**라는 독특한 부흥회를 개최했습니다. 사경회는 단순한 설교 집회가 아니라, 며칠 혹은 몇 주씩 합숙하며 성경을 집중적으로 읽고, 토론하고, 삶에 적용하며 회개하는 신앙 수련회였습니다. 이 사경회 전통은 한국 성도들에게 깊은 성경 지식과 함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적 신앙을 심어주었습니다.
2. 총체적 접근: 교육, 의료, 그리고 민족의 계몽
초기 선교사들은 영혼 구원과 사회 변혁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임을 믿고 '총체적 선교'를 펼쳤습니다.
교육: 배재학당(아펜젤러), 이화학당(스크랜턴), 연희전문학교(언더우드, 현 연세대학교), 숭실학교(베어드) 등 근대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미신과 인습에 갇혀 있던 청년들에게 새로운 학문과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습니다. 이 학교들은 수많은 민족 지도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 산실이 되었습니다.
의료: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광혜원, 알렌)을 시작으로, 선교사들은 의료 사역을 통해 질병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의 몸을 치유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는 복음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을 여는 가장 효과적인 통로가 되었습니다.
사회 계몽: 선교사들은 남녀 차별이 극심했던 조선 사회에 여성 교육의 문을 열고, 계급 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며 인간의 평등 사상을 전파했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억압받던 여성과 백정 등 천민 계층에게는 해방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3. 네비우스 선교 정책: 자립하는 교회의 초석
한국 초기 선교가 세계 선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모델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는 **'네비우스 선교 정책(The Nevius Method)'**의 채택에 있습니다. 이는 선교사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의존적 교회'가 아니라, 처음부터 현지인이 주체가 되는 '자립적 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 획기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자전(Self-propagation): 전도는 선교사가 아닌,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인 성도 스스로가 하는 것.
자치(Self-government): 교회의 운영과 지도력은 한국인 지도자들에게 맡기는 것.
자급(Self-support): 교회당 건축과 사역자 생활비 등 재정은 한국 교회 스스로 책임지는 것.
이 '3자 원리'는 한국 교회가 선교사의 재정 원조에 의존하는 '선교지 교회'가 아니라, 처음부터 주인의식을 가진 '자립 교회'로 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강인한 자립 정신은 훗날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이 추방당했을 때, 한국 교회가 스스로의 힘으로 신앙을 지키고 살아남는 결정적인 저력이 되었습니다.
4. 민족과 함께한 교회: 고난의 동반자
초기 한국 교회는 민족의 역사와 동떨어진 종교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국권을 상실한 암울한 시기에, 교회는 민족의 희망과 설움이 응집된 장소였습니다.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 지도자였으며,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투옥되고 순교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강요에 맞선 저항과 순교,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구호와 재건의 중심이 되었던 역사 등, 교회는 언제나 민족의 가장 큰 고난의 현장에 함께 있었습니다. 이 '고난의 연대'는 기독교가 '서양 종교'가 아닌 '우리 민족의 종교'라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게 했습니다.
III. 한국교회의 선교적 특징과 역할
이러한 위대한 유산과 고난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한국 교회의 선교는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징, 즉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A. 한국 선교의 빛 (강점)
뜨거운 열정과 헌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새벽기도와 철야기도 문화, 그리고 '내 집 마련'보다 '교회 건축'을 우선시했던 헌신적인 신앙은 한국 선교사들의 가장 큰 영적 자산입니다. 기도로 무장된 이들의 영성과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려는 희생정신은 많은 선교 현장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강력한 개척정신과 추진력: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민족의 저력처럼, 한국 선교사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과감하게 도전하는 **'저돌적인 개척정신'**이 강합니다. 이슬람권, 공산권 등 가장 위험하고 척박한 '창의적 접근 지역'에 가장 많이 들어가 있는 선교사들이 바로 한국 선교사들입니다.
풍부한 인적 자원과 교회 중심의 파송: 세계 2위의 파송 규모에서 보듯이, 선교에 헌신하려는 인적 자원이 풍부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선교사가 특정 교단이나 파송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파송되기 때문에, 강력한 기도와 재정 후원을 받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B. 한국 선교의 그림자 (약점 및 과제)
성장주의와 가시적 성과 집착: 단기간의 경제 성장을 경험한 사회적 배경은 선교에 있어서도 '빠른 성장'과 '눈에 보이는 결과'(교인 수, 예배당 건축 등)에 집착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는 장기적인 제자훈련이나 성경 번역과 같은 '열매가 더딘' 사역을 소홀히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경쟁적이고 개교회주의적인 경향: 교단과 개교회 간의 경쟁의식이 선교 현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선교사들 간의 협력과 연합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지역에 여러 한국 선교사들이 중복으로 사역하며 비효율을 낳거나, 심지어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상황화와 타문화 이해의 부족: 한국 교회의 성공 모델(새벽기도, 부흥회 등)을 다른 문화권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성공주의적 획일성'의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현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복음을 '번역'하려는 노력보다, 우리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선교사 케어 시스템의 미비: 선교사를 '보내는 일'에는 열정적이지만, 일단 파송된 선교사의 영적, 정신적, 자녀 교육 문제 등 장기적인 '돌봄(Member Care)'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선교사들의 탈진과 중도 탈락의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C. 21세기, 세계를 향한 한국교회의 역할
이제 한국 교회는 양적인 성장을 넘어, 질적으로 성숙한 선교를 감당해야 할 시대적 소명 앞에 서 있습니다.
비서구권 선교의 허브 역할: 서구 제국주의의 경험이 없는 비서구 국가로서, 동일하게 식민지배와 가난을 겪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교회들에게 한국 교회의 자립과 부흥 스토리는 그 어떤 서구 교회의 이야기보다 더 강력한 영감과 실제적인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겸손과 협력을 통한 성숙한 파트너십: '우리가 주도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현지 교회를 진정한 파트너로 존중하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섬기는 선교'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다른 나라 선교사들, 국제기구들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해야 합니다.
흩어진 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750만 한인 디아스포라는 21세기 한국 선교의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각 나라에 흩어진 한인교회와 성도들이 현지 사회를 섬기는 선교적 전초기지가 되도록 동원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IV. 결론: 받은 은혜, 흘려보낼 사명
한국 교회는 이름도 빛도 없이 이 땅에 와서 자신의 생명을 거름으로 바친 초기 선교사들에게 값을 수 없는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잿더미 속에서 교회를 지키고 일으켰던 우리 믿음의 선조들에게 '기도와 순교의 빚'을 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빚을 갚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받은 위대한 유산이 주는 자부심을 갖되, 우리의 연약함과 그림자를 겸손하게 인정하며 끊임없이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뜨거운 열정이 겸손한 섬김으로, 우리의 개척정신이 지혜로운 협력으로, 우리의 헌신이 성숙한 사랑으로 열매 맺을 때, 한국 교회는 21세기 세계 선교 역사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광스러운 한 획을 긋게 될 것입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기에, 우리가 흘려보내야 할 사명 또한 막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