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실전 전략 104
선교의 동기: 하나님의 영광,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 그리스도의 명령 순종

심층 분석: 선교의 동기
- 하나님의 영광,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 그리스도의 명령 순종 -
I. 서론: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심장부, 동기(Motive)
선교의 여정을 떠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언어를 배우고, 타문화를 연구하며,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수많은 전략과 기술을 습득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가시적이고 분주한 준비의 수면 아래,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움직이는 거대한 엔진실이 있다. 바로 **'동기(Motive)'**의 영역이다. 왜 떠나는가? 무엇이 그를 움직이는가?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선교의 성패와 지속가능성, 그리고 그 영적인 깊이를 결정한다.
선교의 동기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와 같다. 뿌리가 깊고 건강하면, 지상에서 어떤 가뭄과 폭풍우를 만나도 나무는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뿌리가 얕거나 썩어 있다면, 겉보기에 아무리 잎이 무성하고 화려해 보여도 작은 시련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선교사의 동기가 순수하고 견고하게 성경적 진리 위에 세워져 있다면, 그는 사역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 기나긴 가뭄의 시간도, 예기치 못한 핍박과 오해의 폭풍우도, 내면의 깊은 영적 침체의 겨울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동기가 인간적인 야망, 현실 도피, 문화적 낭만주의, 혹은 죄책감과 같은 불순한 토양에 뿌리내리고 있다면, 선교 현장의 냉엄한 현실 앞에서 쉽게 소진(burn-out)되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동기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선교를 위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핵심적인 동기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상향적(Upward)' 동기인 '하나님의 영광', 세상을 향한 '외향적(Outward)' 동기인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우리 자신을 향한 **'내향적(Inward)' 동기인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다.
이 세 가지 동기는 선택지가 아니라, 건강한 선교라는 의자를 지탱하는 세 개의 다리와 같다. 어느 하나라도 약하거나 부재하면 의자는 불안정해지고 결국 넘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 없이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자칫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으로 전락할 수 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애통함 없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외치는 것은 차가운 정통주의나 율법주의가 될 위험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 사랑 없이 명령에만 순종하려는 것은 기쁨 없는 의무감이 되어 우리를 영적으로 메마르게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 세 가지 핵심 동기를 하나씩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각각의 성경적, 신학적 토대를 탐구하며, 이것이 선교사의 삶과 사역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선교사 후보생들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성찰하고, 가장 순수하고 강력하며 영원한 동력 위에 자신의 소명을 굳건히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II. 제1동기: 하나님의 영광 (The Glory of God) - 궁극의 이유
선교의 모든 동기 중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구원도, 사회의 변혁도 아니다. 선교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The Glory of God)'**이다. 인간의 구원과 사회의 변혁은 그 자체로 소중한 목표이지만, 그것들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자 결과이다.
1.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더해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무한히 영광스러우신 분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내재적인 가치, 아름다움, 거룩함, 능력, 지혜, 사랑 등 그분의 존재 자체의 무한한 무게감과 존귀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이미 무한히 영광스러우신 그분의 실체를 인정하고, 선포하며, 찬양하고, 그 가치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마치 망원경이 멀리 있는 행성의 장엄함을 드러내 보여주듯이, 우리의 삶과 사역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2. 예배가 없기에 선교는 존재한다: 신학적 토대
신학자 존 파이퍼(John Piper)는 이 개념을 "예배가 없는 곳이 있기에 선교는 존재한다(Missions exists because worship doesn't)"라는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요약했다. 이 말은 선교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하나님의 가장 큰 열망은 당신의 무한한 가치가 온 세상에 알려지고, 모든 피조물로부터 합당한 찬양과 경배, 즉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족속과 방언 가운데 하나님이 아닌 거짓된 우상, 물질, 이념, 혹은 자기 자신이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시는 일이며, 당신의 영광이 도둑질당하는 현장이다.
선교는 바로 이 우상숭배의 자리에 참되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일어나도록 하는 영적 사역이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가 온 땅에서 높임을 받으시기를 갈망하는 거룩한 질투심을 가지고, 예배가 부재한 그 땅으로 나아가는 '예배의 개척자'이다. 복음 전파, 교회 개척, 제자 훈련, 사회 봉사 등 모든 선교 활동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열심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얼마나 열심을 내시는지 성경은 반복해서 증언한다.
구약의 증언: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사 14:24).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 즉 온 땅에 당신의 영광을 충만하게 하시려는 계획을 반드시 이루시는 주권자이시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9, 11).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내하신다고 명백히 선언하신다.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시 66:1-2).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되리라"(합 2:14). 이것이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 목적지이다.
신약의 증언: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선포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원칙이며, 선교는 이 원칙의 가장 역동적인 표현이다.
4.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동기가 선교사에게 주는 유익
이 궁극적인 동기는 선교사에게 헤아릴 수 없는 영적 유익을 제공한다.
결과주의로부터의 자유: 선교의 성공을 눈에 보이는 회심자의 숫자나 교회의 성장 규모로만 판단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게 한다. 성공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신실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했는가'가 된다.
척박한 사역지에서의 인내: 수십 년을 사역해도 단 한 명의 영혼도 얻지 못하는 '돌짝밭'과 같은 사역지에서, 선교사를 지탱해 주는 힘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동기이다. 나의 존재와 신실한 삶 자체가 그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확신은 인간적인 성취감이 없을 때에도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겸손의 유지: 사역에 큰 부흥이 일어나고 많은 열매가 맺힐 때, 선교사는 교만해지기 쉽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기억할 때,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겸손한 도구로 남을 수 있다.
사역의 방향성 제시: 어떤 사역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지 고민될 때, "이 결정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III. 제2동기: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 (Love for Lost Souls) - 긴급한 이유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수직적 동기는 반드시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수평적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한 영혼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멸망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비극은 없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은 선교에 '긴급성'과 '열정'을 불어넣는다.
1. '잃어버림(Lostness)'의 실체에 대한 성경적 이해
이 사랑은 막연한 동정심이나 감상적인 휴머니즘이 아니다. 그것은 죄로 인해 인류가 처한 비참하고 절망적인 실상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 이해에 기초한다.
하나님과의 단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다. 이것이 모든 고통과 허무의 근원이다.
영원한 심판: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성경은 죄의 결과가 단지 육체적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영원한 분리, 즉 둘째 사망(영적 죽음)에 이른다고 분명히 경고한다(계 20:14-15). 이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죽어가는 영혼들의 운명에 대해 안일할 수 없다.
2.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
현대 사회의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는 결국 같은 정상에서 만난다"고 말하며 기독교 복음의 유일성을 희석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선교의 긴급성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독이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길에 대해 타협 없이 명확하게 선포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이 복음의 유일성은 우리가 다른 종교나 문화를 가진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교만한 태도를 갖게 하는 근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불타는 집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를 알려줘야만 하는 소방관의 절박한 심정과 같은, 사랑에 기초한 **'긴급한 책임감'**을 부여한다.
3. 예수님과 사도들에게서 배우는 긍휼의 마음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사랑의 가장 완벽한 모델은 예수님이시며, 그 마음을 가장 깊이 체화한 모델은 사도 바울이다.
예수님의 마음: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 예수님은 죄인들을 정죄의 시선이 아닌, 긍휼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셨다. 선교사는 바로 이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바울의 고백: "나의 큰 고통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슬픔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2-3). 동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대신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바울의 애끓는 고백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고 실제적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랑은 선교 현장에서 겪는 수많은 모욕과 거절, 오해와 배신을 감내하게 하는 힘이 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역시,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신 사랑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분노를 넘어서는 긍휼의 마음으로 다시 다가갈 수 있다.
IV. 제3동기: 그리스도의 명령 순종 (Obedience to Christ's Command) - 개인적인 이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경외심과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이 선교의 '마음'이라면,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의지적 결단이다. 이것은 "왜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가장 분명한 대답이다.
1. 지상대명령: 거부할 수 없는 왕의 명령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지상대명령(마 28:18-20)은 '위대한 제안(The Great Suggestion)'이 아니라 **'위대한 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다.
권위에 기초한 명령: 이 명령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는 만왕의 왕의 주권 선포 위에 세워져 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왕의 명령은 그의 백성에게 있어 선택사항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마땅히 따라야 할 의무이자 특권이다.
순종은 사랑의 증거: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억지로 하는 노역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의 위대한 사랑에 대한 자연스럽고 기쁜 반응이다. 구원의 은혜를 깊이 깨달은 사람일수록, 그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진다.
2. 순종이 주는 안정감과 확신
선교 현장에서 사역의 방향에 대해 의심이 들거나, 자신의 감정이 메말라 열정이 식어갈 때, '순종'이라는 동기는 우리를 굳건히 붙들어 준다.
감정을 넘어서는 동기: 사랑과 긍휼의 감정은 때때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은 나의 감정 상태와 상관없이 언제나 유효하다. 감정적으로 지쳐 있을 때에도 "나는 지금 왕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명한 인식은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게 하는 힘을 준다.
주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통로: 지상대명령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으로 끝을 맺는다. 이 약속은 명령에 '순종하여 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이다. 즉,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가장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순종은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통로이다.
3. 단순하고 명확한 동기
복잡한 신학적 논쟁이나 깊은 감정적 교감이 어려울 때, "주님이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갑니다"라는 단순한 순종의 동기는 가장 강력하고 명확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이 순종의 자세는 우리를 불필요한 논쟁과 자기 의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주어진 과업에 집중하게 만든다.
V. 결론: 세 동기의 통합 - 건강한 선교를 위한 거룩한 삼겹줄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동기 - 하나님의 영광,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 그리스도의 명령 순종 - 는 결코 분리되거나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 셋은 서로를 강화하고 보완하며, 마치 삼겹줄처럼 꼬여 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통합적 동기'**를 형성한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선교가 인간 중심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은 차가운 교리에 머무르지 않고, 뜨거운 열정과 긴급성을 가지고 사역에 임하게 하는 연료가 된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전진하게 하는 엔진의 역할을 한다.
이 세 가지 동기의 건강한 흐름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먼저 그분의 무한한 영광과 아름다움을 깊이 묵상하고 경배한다 (상향적). 그 영광의 빛 아래서, 그 영광을 보지 못하고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영혼들의 비참한 실상을 보며 애통하는 마음, 즉 그리스도의 긍휼을 품게 된다 (외향적). 그리고 이 거룩한 부담감은 마침내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하여, 예배가 없는 그 땅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내향적 결단과 행동).
선교사 후보생들이여, 지금 당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인가? 당신의 소명을 다시 한번 이 세 가지 거룩한 동기의 빛 아래 비추어 보라. 당신의 동기가 인간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과감히 회개하고 내려놓으라.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며, 왕의 명령에 즐거이 순종하는 순결하고 강력한 동기로 채워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라. 이 흔들리지 않는 삼겹줄 동기가 당신의 평생의 사역을 붙드는 가장 위대한 능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