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실전 전략 104
구약에 나타난 선교: 아브라함 언약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심층 분석: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흐름 이해 -
서론: 관점의 전환 - 교회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
우리는 흔히 '선교'를 교회가 하는 여러 사역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가 예산을 세워 선교사를 파송하고, 단기 선교팀을 보내는 활동을 '선교'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선교의 본질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깊이 있게 조망할 때, 우리는 선교의 주체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신학적 개념입니다. 이 관점은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명제를 "선교적 사명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가지고 계신다"로 전환시킵니다. 즉, 선교는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 세상을 구속하고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활동이며, 교회는 그 위대한 사역에 동참하도록 부름받은 동역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단순히 인간의 구원에 관한 교리집이나 위인들의 전기 모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창조부터 종말까지, 잃어버린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찾아오시고, 관계를 회복하시며, 모든 민족 가운데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장대한 흐름을 이해할 때, 선교사 후보생은 자신의 사역이 단독적인 활동이 아니라, 성경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위대한 드라마에 참여하는 것임을 깨닫고, 흔들리지 않는 역사적, 신학적 토대를 갖게 됩니다.
이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각 시대를 관통하며 나타나는 '하나님의 선교'의 흐름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창세기: 모든 것의 시작, 선교의 씨앗
하나님의 선교는 신약의 지상대명령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세상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첫 번째 구원의 약속이 주어진 창세기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창조 - 선교의 원형(Original Purpose): 하나님은 온 땅에 당신의 형상(Imago Dei)을 지닌 인간이 충만하여, 그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형이자, 선교가 회복하고자 하는 본래의 그림입니다.
타락 - 선교의 필요성(The Problem): 창세기 3장의 타락은 하나님, 인간, 자연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와 소외, 이것이 바로 선교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바벨탑 - 흩으심 속에 담긴 계획: 인류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의 이름을 내기 위해 탑을 쌓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창 11장). 이것은 죄에 대한 심판이었지만, 동시에 인류가 온 땅에 충만하라는 창조 명령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훗날 이 흩어진 열방을 다시 복음 안에서 하나로 모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 - 선교의 대헌장(The Great Commission of the OT): 흩어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전략은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데서 나타납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약속은 하나님의 선교가 처음부터 특정 민족이 아닌 '모든 족속'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언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방을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방을 축복하는 '통로'가 되기 위해 선택된 선교적 민족이었습니다.
2. 출애굽기와 율법: 선교적 공동체의 형성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심으로써,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알리는 선교적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구원 -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능력 과시: 출애굽 과정에서 나타난 열 가지 재앙은 애굽의 신들이 헛됨을 만방에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기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압도적인 능력을 온 세상에 증언하는 선교적 사건이었습니다.
언약과 율법 - 구별됨을 통한 증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들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의롭고, 자비로우며, 거룩한 삶의 방식 자체가 주변 민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보여주는 선교(Show-and-Tell Mission)'가 되어야 했습니다.
제사장 나라 - 선교적 정체성의 확립: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고 선언하셨습니다. 제사장이 백성과 하나님을 중재하듯, 이스라엘은 열방과 하나님을 잇는 중보자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으로 '나아가서' 전하는 선교(원심적 선교)가 아니라, 세상이 그들의 거룩한 공동체를 '보고 찾아오게' 만드는 선교(구심적 선교)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3. 역사서와 지혜서: 선교적 사명의 성취와 실패
가나안 정착 이후 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들의 선교적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성취의 순간들: 가나안 여인 라합, 모압 여인 룻이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된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이 혈통이 아닌 믿음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솔로몬 시대에 그의 지혜와 성전의 영광을 보기 위해 찾아온 스바 여왕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할 때 열방이 어떻게 하나님께 이끌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실패의 역사: 그러나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역사에서 이 사명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열방에 빛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가나안의 우상 숭배 문화를 따라가며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선민사상은 열방을 섬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들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교만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지혜서의 보편성: 욥기, 시편, 잠언 등 지혜서는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보편적인 질문(고난, 죽음, 삶의 의미 등)을 다룹니다. 이는 성경의 지혜가 온 인류를 위한 것임을 암시하며,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미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4. 선지서: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재선포
이스라엘이 선교적 사명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당신의 마음을 다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죄를 질책함과 동시에, 그들을 넘어 온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계획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열방을 향한 심판과 구원: 많은 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는 주변 국가들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가 이스라엘만의 신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온 세상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 심판 속에는 회복과 구원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이사야의 '이방의 빛': 이사야서는 구약의 선교 신학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받는 종(메시아)을 통해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고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통한 구심적 선교의 한계를 넘어, 메시아를 통해 땅 끝까지 뻗어 나가는 원심적 선교의 비전이 제시됩니다.
요나서 - 선교를 거부하는 공동체를 향한 경고: 요나서는 하나님의 선교적 마음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원수 나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선교사의 불순종과 편협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 그리고 구원받은 니느웨를 보며 불평하는 요나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강력한 질책이자, 모든 족속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5. 복음서: 선교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
구약 전체를 흐르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Missio Christi)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선교의 메시지 그 자체이자, 가장 완벽한 선교사 모델입니다.
성육신 - 최고의 상황화 선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은, 선교사가 타문화권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 복음을 전하는 '상황화'의 원형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 경계를 넘는 사랑: 예수님의 공생애는 유대인이라는 틀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고(요 4장),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며(마 8장),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주시는(막 7장) 모습들은 처음부터 그의 사역이 모든 경계를 넘어 '잃어버린 자'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십자가와 부활 - 만민을 위한 구원의 완성: 예수님의 십자가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막던 율법의 담을 허물고(엡 2:14-15), 모든 인류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하고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지상대명령 -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 부활하신 예수님은 교회에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중심의 '구심적 선교'는, 교회가 세상 끝까지 '나아가는' **원심적 선교(Centrifugal Mission)**로 공식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6. 사도행전과 서신서: 성령을 통한 교회의 선교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선교는 이제 성령님(Missio Spiritus)을 통해 교회를(Missio Ecclesiae) 통해 온 세상으로 확산됩니다.
성령 강림 - 선교의 동력과 시작: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바벨탑에서 흩어졌던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안티-바벨' 사건입니다. 각기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게 된 이것은, 다문화적, 다언어적 특성을 지닌 교회의 탄생이자 세계 선교의 공식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의 확장: 사도행전 전체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주는 선교 보고서입니다. 예루살렘(동일문화권)에서 시작된 복음은 박해를 통해 유대와 사마리아(유사문화권)로, 그리고 베드로의 환상과 바울의 회심을 통해 이방인(타문화권)에게로, 마침내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던 로마까지 확장됩니다.
서신서 - 선교의 신학적 해석: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서신은 사도행전에서 일어난 선교적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로마서는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차별 없이 필요한 복음의 능력을, 에베소서는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는 '비밀의 경륜'을, 고린도후서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우리의 사명을 강조하며 선교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7. 요한계시록: 선교의 완성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혼란스러운 예언서가 아니라, 모든 고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교가 마침내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희망의 책입니다.
어린 양의 승리와 주권: 요한계시록의 중심에는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가 계십니다. 그는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그의 피로 모든 민족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계 5:9).
모든 민족의 예배 - 선교의 최종 목표: 선교의 최종 목적은 구원받은 영혼의 숫자를 세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합당한 영광과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은 이 목표가 어떻게 성취될지를 보여주는 감격적인 장면을 묘사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예배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가 마침내 도달할 목적지이며, 모든 선교사가 붙들어야 할 마지막 비전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 창조의 회복: 하나님의 선교는 타락으로 깨어졌던 창조 세계가 완전히 회복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됩니다(계 21장).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 거하시며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창세기 1-2장의 '샬롬'이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에 동참하는 특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이처럼 일관되게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창조 시에 계획되었고, 타락 시에 약속되었으며, 이스라엘을 통해 예표되었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으며, 성령을 통해 교회에 위임되었고, 역사의 마지막에 완성될 이 거대한 흐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선교가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거부할 수 없는 열심임을 깨닫게 됩니다.
선교사 후보생에게 이 성경적 흐름의 이해는 자신의 소명을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연결시키는 견고한 닻이 됩니다. 나의 작은 순종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성취 과정에 있으며, 이사야가 보았던 비전의 실현이고, 사도 바울이 걸었던 그 길을 잇는 것이며, 요한계시록의 그 찬란한 예배에 참여할 한 영혼을 세우는 일임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선교: 아브라함 언약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생각하는 과정 표시
심층 분석: 구약에 나타난 선교
- 아브라함 언약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
서론: 오해를 넘어, 구약의 심장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신약성경의 마지막 장면들을 떠올립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고 명령하시는 지상대명령,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예루살렘을 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행전의 역동적인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로 인해 구약성경은 선교와는 무관한,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에게 국한된 이야기라는 오해가 싹트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 드라마의 절반을 놓치는 것입니다. 선교는 신약 시대에 갑자기 시작된 교회의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오히려 선교는 창조의 순간부터 세상을 향해 일하고 계시는 '선교하시는 하나님(Missionary God)'의 본질적인 성품이자 사역입니다. 신학 용어로 이를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부릅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구약성경은 선교가 부재한 시대가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선교 계획이 점진적으로 계시되고 그 토대가 놓이는 결정적인 무대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계획의 중심에는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아브라함 언약'**이 있습니다. 이 언약은 단순히 한 개인과 그의 후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사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이것은 타락으로 인해 흩어지고 소외된 온 인류, 즉 '열방(nations, goyim)'을 어떻게 다시 축복의 자리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공식적인 청사진이자 선교의 대헌장입니다.
따라서 구약에 나타난 선교를 이해하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이라는 씨앗이 어떻게 심겨졌고,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어떻게 싹을 틔웠으며, 때로는 실패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 어떻게 그 궁극적인 성취를 향해 나아갔는지를 추적하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신약의 선교가 무(無)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구약이라는 깊고 풍성한 토양 위에서 피어난 필연적인 열매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I. 아브라함 이전의 세상: 선교의 필요성이 대두되다
아브라함 언약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왜 한 사람을 부르셔야만 했는지, 그 이전 세상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창조: 온 땅을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꿈
하나님의 첫 마음은 선교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문화명령 (창 1:26-28):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Imago Dei)대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문화명령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구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땅에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을 대리하고 반영하는 존재들이 가득하여,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조화(Shalom)를 누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대한 꿈이었습니다. 이 그림 자체가 선교가 회복하고자 하는 본래의 목표입니다.
2. 타락과 흩어짐: 선교가 필요한 세상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은 이 원대한 꿈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관계의 파괴 (창 3장): 죄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신, 인간과 피조세계 사이의 모든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와 소외, 이것이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가 되었고, 선교가 필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바벨탑 사건 - 교만의 절정과 흩어짐 (창 11장): 인류는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닿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이는 문화명령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이 '흩어짐'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소통의 단절, 민족 간의 갈등과 불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완전한 소외를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창세기 11장의 '흩어진 열방'의 모습, 이것이 바로 선교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의 이야기는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져 저주와 분열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새로운 구원 계획, 즉 선교 프로젝트를 시작하십니다. 그 시작이 바로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의 부르심입니다.
II. 아브라함 언약: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 청사진 (창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1-3)
이 세 구절은 구약 전체, 나아가 성경 전체의 선교 신학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 언약은 다음과 같은 선교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 부르심: 떠남으로부터 시작되는 선교
"너는... 떠나... 가라 (Lech Lecha)": 선교는 언제나 '떠남'에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은 익숙하고 안정된 모든 것(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불확실한 약속만을 믿고 떠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것은 바벨탑으로 대표되는 인간 중심의 문명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라는 부르심입니다. 모든 선교사는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안전지대를 떠나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입니다.
2. 약속: 선교의 도구가 되는 축복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크게 세 가지 복을 약속하십니다.
큰 민족: 자식이 없던 노인에게 큰 민족을 약속하십니다.
복의 근원: 그에게 복을 주어 그 자체가 복이 되게 하십니다.
창대한 이름: 바벨탑을 쌓던 자들이 스스로 만들려 했던 '위대한 이름'을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축복이 아브라함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축복들은 아브라함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을 위한 도구이자 자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서, 그 축복이 그에게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흘러가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3. 사명: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
이 언약의 절정이자 선교적 핵심은 마지막 구절에 명확히 나타납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be a blessing)": 히브리어 원문은 '복의 근원'이라는 명사형보다 '복 자체가 되라'는 명령형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는 복을 받는 수혜자에서, 복을 나누어주는 시혜자로의 정체성 전환을 요구받은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all the families of the earth)'은 창세기 10-11장에서 교만으로 인해 흩어졌던 바로 그 열방을 가리킵니다. 즉, 아브라함 언약은 바벨탑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공식적인 응답입니다. 흩어짐과 저주의 문제를, 한 사람을 통한 축복의 집중과 확산으로 해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 언약은 **'특정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에게 복을 집중시키신 후, 그를 통로 삼아 모든 민족에게 그 복을 확산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선교 전략입니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었으며, 배제가 아니라 포용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III.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 구심적 선교 모델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열방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어야 했을까요? 신약의 교회처럼 밖으로 '나아가서' 전파하는(원심적, Centrifugal) 방식이 주가 아니었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선교 방식은 주로, 자신들이 거룩하고 구별된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열방이 그 빛을 보고 '찾아오게' 만드는 '구심적(Centripetal)' 모델이었습니다.
1.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출 19:5-6)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며 그들의 국가적 정체성을 "제사장 나라"로 규정하셨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재하듯,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열방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모델 국가가 될 때, 세상은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고 그분께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2. 율법과 성전: 열방을 향해 열린 창
율법(Torah): 이스라엘의 율법은 단순히 종교의식이 아니었습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돌보는 사회법, 공정한 재판, 안식일 제도 등은 주변 국가들의 착취적이고 폭력적인 문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정의와 긍휼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 율법대로 살아갈 때, 열방이 그 지혜와 지식을 보고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신 4:6)라고 감탄하며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셨습니다.
성전(Temple):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며 드린 기도는 이 구심적 선교의 비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왕상 8:41-43)**라고 기도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열방이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했습니다.
3. 구약 속 이방인들의 구원 이야기
이러한 구심적 선교 모델이 실제로 작동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구약 곳곳에 등장합니다.
라합과 룻: 가나안 여인 라합과 모압 여인 룻은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라합) 하나님의 백성에게 베풀어진 긍휼을 경험하며(룻)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되었습니다.
스바 여왕: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왕상 10장).
나아만 장군: 아람의 장군이었던 그는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소녀의 증거를 듣고 이스라엘을 찾아와 엘리사를 통해 나병을 고침받고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왕하 5:15)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경험하고 구원에 이른 이방인들입니다.
IV. 이스라엘의 실패와 선지자들의 비전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이 위대한 선교적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선교적 사명의 실패: 그들은 열방을 향한 '제사장 나라'가 되기보다, 주변 열방의 우상 숭배와 죄악을 따라가기 바빴습니다. '선민사상'은 열방을 섬기기 위한 책임감으로 나타나기보다, 그들을 배척하고 경멸하는 민족적 교만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선지자들의 역할: 바로 이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신랄하게 비판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코 멈추지 않을 하나님의 열방을 향한 계획을 더욱 확장하여 선포했습니다.
이사야 - "이방의 빛":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 즉 '고난받는 종'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넘어 "이방의 빛이 되어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사 49:6) 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는 구심적 선교를 넘어, 온 세상으로 뻗어 나가는 원심적 선교의 비전을 제시합니다.
요나 - 하나님의 마음: 요나서는 원수 나라 니느웨의 구원을 위해 집요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줌으로써, 이스라엘의 배타주의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고발합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교 계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며, 그 성취는 한계를 지닌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결론: 신약을 향해 열린 문, 구약의 선교
구약에 나타난 선교는 실패의 역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약 전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축복이 어떻게 모든 족속에게 흘러갈 것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며 신약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율법과 제사, 민족적 경계만으로는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열방을 진정으로 축복할 수 있는 새로운 중보자, 새로운 제사장, 새로운 희생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이요, 이스라엘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던 막힌 담을 허무시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교회에 지상대명령을 주심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열방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는 사명을 온전히 위임하셨습니다.
따라서 신약의 선교는 구약의 계획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하고 완성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고, 오늘날 교회를 통해 땅 끝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이 사역이 얼마나 장대하고 영광스러운 역사의 한 부분인지를 깨닫게 하는 놀라운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