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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전문인 선교학 49 과정

에큐메니칼 vs. 복음주의, 로잔 운동, 현대 선교 과제

선교학 개론

선교학 개론 심화: 정의, 목표, 그리고 21세기의 도전

서론: 선교, 그 개념의 진화와 신학적 지형도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에서 '선교(Mission)'는 교회의 존재 이유와 본질을 규명하는 핵심적인 사명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선교'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시대와 신학적 통찰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20세기 중반까지 선교는 주로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라는 틀 안에서, 지리적 경계를 넘어 교세를 확장하고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의 주도적 활동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남긴 참상과 식민주의 시대의 종언은 서구 기독교 문명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죄책감을 낳았고, 이는 기존 선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신학적 성찰을 촉발했다.   

이러한 신학적 격변의 중심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이 혁명적 패러다임은 선교의 주체를 교회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으로 전환시켰다. 선교는 더 이상 교회가 수행하는 여러 과업 중 하나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고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며, 교회는 그 위대한 구원 드라마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로써 선교의 무대는 교회 안에서 세상 전체로, 그 목표는 개인 구원을 넘어 하나님의 총체적 통치, 즉 '하나님 나라'의 구현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라는 큰 우산 아래서 그 구체적인 내용과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20세기 후반 기독교계는 두 개의 큰 흐름으로 나뉘어 치열한 신학적 논쟁을 벌였다.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칼 진영은 선교를 사회 구조적 악의 철폐와 인간 해방, 정의와 평화(샬롬)의 실현으로 이해하며 사회 구원을 강조했다. 반면, 복음주의 진영은 이러한 경향이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개인의 회심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하며 영혼 구원의 우선성을 재확인하고자 했다.   

본 강의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먼저, 선교에 대한 전통적 정의와 현대적 정의의 핵심적인 차이를 명확히 하고, 선교의 궁극적 목표로서 '하나님 나라'의 신학적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룰 것이다. 이어서 20세기 선교 신학의 지형을 형성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대립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이 두 진영의 신학적 간극을 잇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 '로잔 운동'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그 핵심인 '총체적 선교' 개념을 상세히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신학적 유산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 세계 기독교 지형의 변화, 디지털 시대의 도래 등 21세기 교회가 마주한 복합적인 선교적 과제들을 진단하고 그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파편화된 선교 이해를 넘어, 성경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시각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적 사명을 재정립하게 될 것이다.

제1부 선교의 정의와 궁극적 목표
1.1. 선교 개념의 패러다임 전환: Missio Ecclesiae에서 Missio Dei로
1.1.1. 전통적 정의: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
19세기 '위대한 선교의 세기'를 거치며 확립된 전통적 선교관은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선교의 주체는 명확히 '교회'였으며, 그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대위임명령(마 28:18-20)에 대한 순종으로 이해되었다. 선교의 핵심 목표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고(구령, 救靈), 그들을 통해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여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수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고 전 세계에 교회를 세우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선교사들은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했을 뿐만 아니라, 병원과 학교를 세워 문맹을 퇴치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등 피선교지의 근대화에 기여한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모델은 몇 가지 본질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첫째, 선교를 교회의 여러 기능 중 하나로 축소시켰다. 둘째, 영혼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육체적 고통이나 사회 구조적 불의와 같은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한 이원론적 경향을 낳았다. 셋째, 선교를 주도했던 서구 교회가 자신들의 신학과 예배 형식, 교회 구조, 심지어 문화까지 우월한 것으로 여기고 피선교지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교회 확장주의' 혹은 문화적 제국주의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교회 중심적, 서구 중심적 선교 모델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1.1.2. 현대적 정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식민주의 시대의 종언은 서구 기독교가 지녔던 신학적, 문화적 낙관주의를 산산조각 냈고, 과거 선교 방식에 대한 깊은 죄책감과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신학적 공백과 실천적 위기 속에서 대안으로 부상한 개념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 즉    

Missio Dei이다.   

1952년 빌링겐 국제선교협의회(IMC)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 개념은 선교의 주체, 동력, 목표에 대한 이해를 송두리째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선교의 주체 전환: 선교의 주도권은 더 이상 인간이나 교회가 아닌, 창세 전부터 세상을 구원하고 회복하기 위해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 선교는 교회가 수행하는 여러 사역 중 하나가 아니라, '보내시는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이며, 교회는 그 위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공동체이다. 이로써 "교회가 선교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가 교회를 낳는다"는 혁명적 발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선교의 동력 재발견: 선교의 근원적 동력은 지상명령에 대한 의무감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본성에서 찾게 되었다. 영원 전부터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 사이의 완전하고 역동적인 사랑의 교제가 있었으며, 이 충만한 사랑과 선하심이 그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고 바깥으로 '흘러넘치는'(overflow) 속성을 가지는데, 이것이 바로 창조와 구속, 즉 선교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는 우리에게 먼저 부어진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자연스럽고 기쁨에 찬 응답이다.   

선교의 범위 확장: 선교의 무대는 교회나 특정 종교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상의 모든 영역(정치, 경제, 문화 등)으로 확장되었다. 전통적인 '하나님 → 교회 → 세상'의 구도가 '하나님 → 세상 → 교회'로 재정렬되면서, 교회의 과제는 세상에 없는 하나님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되었다. 이는 개인의 영혼 구원을 넘어 사회의 구조적 악과 불의에 맞서 싸우고, 파괴된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까지 선교의 본질적인 과제로 포함하는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 개념으로 발전하는 신학적 토대가 되었다.   

1.2. 선교의 궁극적 목표: 하나님 나라의 구현과 샬롬의 회복
선교의 정의가 확장되면서, 그 궁극적인 목표 또한 새롭게 조명되었다. 현대 선교신학은 선교의 최종 목표가 단순히 개교회의 성장이나 교파의 세력 확장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 '샬롬'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본다.

1.2.1.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의 도래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 주제였다. 성경에서 '나라'(malkuth, basileia)의 일차적 의미는 지리적 영토가 아니라 왕의 '통치'(reign), '주권'(rule)이라는 역동적인 활동을 가리킨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실현되는 영역이자 상태를 의미하며, 그곳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이다(마 6:10).   

선교는 바로 이 하나님의 통치가 개인의 삶과 가정, 공동체, 나아가 사회와 문화, 정치, 경제 등 세상의 모든 영역에 임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교회라는 조직의 성장을 넘어,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상에 임하는 더 크고 포괄적인 비전에 있다. 교회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이자 대리인(agent)이지, 목표 그 자체가 아니다.   

1.2.2.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의 종말론적 긴장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 나라는 독특한 시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이미' 역사 속으로 침투하여 시작되었지만(Already),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아직' 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다(Not Yet)는 종말론적 긴장 속에 존재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이 긴장감이야말로 교회가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선교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삶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구원과 능력을 '아직' 그것을 맛보지 못한 세상에 증언해야 할 사명이 있다.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죄와 불의의 세력에 맞서 싸우며, 반드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인내하는 선교적 과제를 안고 있다.   

1.2.3. 샬롬(Shalom)의 회복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구현된 상태를 성경은 '샬롬'(Shalom)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샬롬은 단순히 갈등이나 전쟁이 없는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든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된 총체적인 안녕과 번영, 조화의 상태를 의미한다. 질병, 가난, 억압, 불의, 환경 파괴와 같은 세상의 모든 고통은 이 샬롬이 깨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선교는 이러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샬롬이 임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난한 자를 돕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억압받는 자를 위해 정의를 외치고, 파괴된 창조 세계를 돌보는 모든 활동은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미리 맛보게 하고 확장하는 본질적인 선교 행위가 된다.   

제2부 에큐메니칼 vs. 복음주의: 20세기 선교신학의 대논쟁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은 20세기 중반 이후 모든 선교신학의 공통분모가 되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과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때로는 격렬한 신학적 대립을 보였다.

2.1. 에큐메니칼 진영의 선교 이해: 인간화와 사회 구원
에큐메니칼 운동은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를 기점으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며 발전했다. 초기에는 복음 전파를 위한 협력에 중점을 두었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시대적 상황의 변화 속에서 선교의 방향을 급진적으로 전환했다.   

세상으로의 전환: WCC는 교회의 관심이 교회 내부가 아닌, 고통받는 세상의 문제로 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세상이 선교의 의제를 설정한다"고 선언하며, 교회가 세상의 필요와 외침에 응답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교회의 과제보다 세상사 해결에 집중하는 '세속적 에큐메니즘'으로 발전했다.   

인간화(Humanization)로서의 선교: 196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린 제4차 WCC 총회는 '인간화'(Humanization)를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채택하며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 관점에서 선교는 가난, 질병, 인종차별, 정치적 억압 등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모든 구조악에 맞서 싸우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모든 활동과 동일시되었다.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 1973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 대회는 '오늘의 구원'이라는 주제 아래 이러한 신학을 더욱 구체화했다. 여기서 구원은 전통적인 영혼 구원을 넘어 '경제적 정의', '인간의 존엄성', '소외로부터의 연대' 등 현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해방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재정의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남미의 '해방신학'과 같은 급진적인 정치신학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종교 간 대화와 다원주의: 에큐메니칼 진영은 타종교 안에도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일방적인 복음 전파보다는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종교 간의 대화'를 강조했다. 이는 점차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 경향으로 나아갔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2.2. 복음주의 진영의 비판과 대응
에큐메니칼 진영의 급진적인 선교 이해에 대해, 복음주의 진영은 심각한 우려와 비판을 제기했다.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경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개인의 회심과 거듭남을 신앙의 핵심으로 강조하는 신학적 흐름이다.   

복음의 본질에 대한 우려: 복음주의자들은 WCC의 선교가 '인간화'와 '사회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이를 통한 영혼 구원이라는 수직적 차원을 상실하거나 변질시켰다고 비판했다. 선교가 인간의 노력으로 세상을 개선하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였다.   

프랑크푸르트 선언(1970):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피터 바이어하우스와 같은 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1970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WCC의 인간화 신학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선교의 최우선 목표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임을 재확인했다. 이는 복음주의 진영이 에큐메니칼 선교신학과 신학적으로 결별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초기 복음주의 선교 운동: 1966년 휘튼 선언과 빌리 그레이엄이 주도한 베를린 세계복음화대회 등은 복음주의자들이 세계 복음화를 위해 연대하려는 초기 시도였다. 이 대회들은 에큐메니칼 진영의 사회 참여 중심의 선교와는 대조적으로,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 복음주의 진영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영혼과 육체,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는 이원론적 경향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1970년대 초반, 세계 기독교 선교는 사회 구원을 외치는 에큐메니칼 진영과 영혼 구원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진영으로 양분되어, 서로를 비판하며 좁혀지기 어려운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제3부 로잔 운동: 총체적 선교를 향한 복음주의의 여정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적 대립이 극에 달했던 1970년대, 이 두 흐름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고 20세기 후반 선교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로잔 운동'(Lausanne Movement)이다.

3.1. 로잔 운동의 태동과 역사적 의의
로잔 운동은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과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의 주도 아래,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함께 감당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제1차 로잔대회 (1974, 스위스 로잔):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150여 개국 2,700여 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여 제1차 세계복음화국제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WCC의 방콕 대회(1973)가 제시한 급진적인 선교 이해에 대한 복음주의 진영의 조직적인 응답이라는 성격을 가졌다. 로잔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세계 복음화를 위한 연대와 협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현대 선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 이 대회의 가장 중요한 결실은 만장일치로 채택된 '로잔 언약'이다. 15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이 문서는 성경의 권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확고히 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으로 명시했다. 이는 복음주의 진영이 과거의 이원론적 한계를 극복하고,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중요한 신학적 진전을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3.2. 총체적 선교(Holistic/Integral Mission) 개념의 정립
로잔 언약 제5항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요,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느 곳에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이 선언을 바탕으로 로잔 운동은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 또는 Integral Mission)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의 통합: 총체적 선교는 복음 전도(evangelism)와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제로 통합한다. 이는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한쪽만으로는 온전한 선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행위는 복음 전도를 위한 수단이나 미끼가 아니며, 복음 전도 역시 사회 참여의 결과로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둘 다 복음의 본질적인 표현이다.   

신학적 균형: 총체적 선교는 에큐메니칼 진영이 사회 구원을 강조하며 복음 전도를 소홀히 했던 점과, 전통적 복음주의가 영혼 구원만을 강조하며 사회적 책임을 외면했던 점을 모두 비판하며 그 사이의 신학적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였다. 존 스토트는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의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의 전적인 복지, 즉 그의 육체와 영혼과 사회적인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며 총체적 선교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우선순위 논쟁: 그러나 로잔 운동 내에서도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 중 무엇이 더 우선적인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다. 일부는 여전히 영혼 구원의 긴급성을 들어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주장했지만, 다수는 두 사명이 동등하게 중요하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3.3. 로잔 운동의 발전: 마닐라에서 케이프타운까지
로잔 운동은 1974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세계적인 대회를 통해 시대의 도전에 응답하며 선교 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제2차 로잔대회 (1989,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 선언'을 채택한 이 대회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자"는 구호 아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의 주체임을 강조했다. 특히 평신도와 여성, 청년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선교의 저변을 확대했다. 또한 급격한 도시화, 현대성의 도전 등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복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들을 논의했다.   

제3차 로잔대회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 서약'을 발표한 이 대회는 21세기의 새로운 도전들에 응답했다. 이 서약은 '사랑'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에서 선교의 동력을 찾고, 그 사랑을 세상 속에서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의 진리 증거, 분열된 세상 속에서의 화해 사역,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 등을 강조하며 총체적 선교의 지평을 더욱 넓혔다.   

로잔 운동은 지난 50년간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세계 교회가 연합하여 선교적 과업을 감당하도록 독려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다. '미전도 종족' 개념, '10/40창'과 같은 선교 전략들이 로잔 운동을 통해 제안되고 공유되었으며, 무엇보다 '총체적 선교'를 복음주의 선교의 표준으로 정착시킴으로써 21세기 선교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4부 21세기 현대 선교의 과제와 방향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선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복합적이고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 세계 기독교 지형의 급격한 변화, 디지털 기술의 발전 등은 교회가 기존의 선교 방식과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4.1.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의 도전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합리성, 보편적 진리를 강조했던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사상적 흐름이다. 이는 거대 담론을 해체하고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다양성, 상대적 진리를 강조하는 특징을 가진다.   

진리의 상대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식의 종교 다원주의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주장으로 치부되기 쉽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복음 전도를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극도로 약화시키는 심각한 도전이다.   

선교적 대응: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더 이상 권위적인 선포 방식만으로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어렵다. 대신, 기독교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며 그 아름다움과 능력을 증거하는 '삶의 증언'이 더욱 중요해졌다. 또한, 타종교와 문화를 무조건 비판하고 정죄하기보다는, 그들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기독교 진리를 변증적으로 설명하며 진솔하게 대화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4.2. 세계 기독교 지형의 변화: 탈서구화와 남반구의 부상
20세기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극적인 인구 지형의 변화를 겪은 시기이다. 1900년만 해도 세계 기독교인의 80% 이상이 유럽과 북미에 거주했지만, 오늘날에는 약 65% 이상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남반구(Global South)에 거주하고 있다.   

선교의 '탈서구화': 이는 더 이상 서구 교회가 세계 선교를 주도하는 중심이 아님을 의미한다. 선교는 이제 '서구에서 나머지 세계로' 향하는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from everyone to everywhere) 향하는 다방향적인 운동이 되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교회들이 이제는 유럽과 북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역선교 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토착 리더십과 자신학화: 이러한 변화는 선교 현장에서 서구 선교사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을 요구한다. 선교의 주도권은 점차 현지 교회와 토착 지도자들에게 이양되어야 한다. 선교사는 더 이상 주도자가 아니라, 현지 교회를 돕고 격려하며 동역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또한, 서구 신학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화의 토양 위에서 성경적 진리를 스스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자신학화'(Self-theologizing)를 존중하고 지원해야 한다.   

4.3. 새로운 선교의 장: 도시, 디아스포라, 디지털 공간
도시화와 메가시티 선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러한 도시화는 계속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인구 천만 이상의 메가시티들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 극심한 빈부 격차, 복잡한 사회 문제가 응축된 새로운 선교의 최전선이다. 도시의 익명성과 파편화된 관계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도시 빈민과 이주민 등 소외된 이웃을 섬기며, 복잡한 도시 문제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는 총체적 도시 선교 전략이 시급하다.   

디아스포라 선교: 세계화로 인해 자신의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Diaspora)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유학생, 이주 노동자, 난민 등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이 되었다. 이들을 향한 선교는 더 이상 먼 나라로 가야만 할 수 있는 해외 선교가 아니라, 우리 지역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문턱 앞의 타문화권 선교'이다. 또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 사회를 복음화하고, 나아가 제3의 지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중요한 선교 자원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와 사이버 선교: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새로운 선교의 공간을 열었다. 디지털 공간은 지리적 제약 없이 복음을 전하고,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며, 제자 훈련을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짜 뉴스와 비윤리적 콘텐츠의 범람, 온라인상의 피상적인 관계 형성 등의 도전도 존재한다. 교회는 이러한 디지털 환경의 특성을 이해하고, 복음의 진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선교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4.4. 한국 교회의 과제: 성과주의를 넘어 동반자적 선교로
세계 선교 역사상 유례없는 성장을 경험하고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한국 교회 역시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성과주의와 외형주의 극복: 한국 선교는 그동안 교회 개척 수, 세례 교인 수 등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성과주의'와 '외형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는 선교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지 못하게 하고, 현지 문화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선교 방식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이제는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숙을 추구하며, 현지 교회가 자립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내실 있는 선교로 전환해야 한다.   

현지 교회 중심의 동반자적 선교: 미래 선교의 방향은 선교사 중심이 아닌 '현지 교회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주는 자'의 위치가 아니라, 남반구 교회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배우고 협력하는 '동반자'(Partner)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현지인 지도자를 양육하고, 그들이 주도적으로 사역을 이끌어 가도록 권한을 위임하며, 재정 지원을 넘어 인적, 영적 자원을 공유하는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비즈니스 선교(BAM) 등 창의적 접근: 전통적인 선교사 파송이 어려운 창의적 접근 지역이 늘어나면서,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 Mission, BAM)와 같은 새로운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BAM은 비즈니스 활동 자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사회에 기여하며,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총체적 선교의 한 형태이다. 전문인 선교사, NGO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창의적인 선교 전략 개발이 요구된다.   

결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총체적 여정
20세기를 거치며 선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교회의 과업'에서 '하나님의 본성'으로, '영혼 구원'에서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 구현'으로 심화되고 확장되었다.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치열한 논쟁, 그리고 로잔 운동을 통한 변증법적 종합의 과정은 선교가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날개를 함께 펼칠 때 비로소 온전히 날아오를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21세기의 교회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복합적인 도전 앞에 서 있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상대주의, 남반구 교회의 부상이라는 세계 기독교 지형의 변화, 그리고 디지털과 도시라는 새로운 선교 환경은 우리에게 낡은 방식과의 결별을 요구한다. 이제 선교는 더 이상 소수의 전문가에게만 위임된 특별한 과업이 아니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그 가치를 구현하며 살아가는 '선교적 삶'(missional living)으로의 부르심이다.   

한국 교회는 지난 세기 동안 보여준 선교적 열정을 바탕으로, 이제는 성과주의와 일방주의를 넘어 겸손한 섬김과 동반자적 협력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우리의 이웃이 된 디아스포라를 섬기고, 디지털 세상 속에서 창의적으로 복음을 나누며,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샬롬의 빛을 비추는 총체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 모든 여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교회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모든 눈물이 씻기며, 모든 피조물이 함께 회복되는 그 날,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앞당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의 정의이자 목표이며,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다.

현대 선교 패러다임

선교학 개론 심화: 정의, 목표, 그리고 21세기의 도전

서론: 선교, 그 개념의 진화와 신학적 지형도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에서 '선교(Mission)'는 교회의 존재 이유와 본질을 규명하는 핵심적인 사명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선교'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시대와 신학적 통찰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20세기 중반까지 선교는 주로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라는 틀 안에서, 지리적 경계를 넘어 교세를 확장하고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의 주도적 활동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남긴 참상과 식민주의 시대의 종언은 서구 기독교 문명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죄책감을 낳았고, 이는 기존 선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신학적 성찰을 촉발했다.  

이러한 신학적 격변의 중심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이 혁명적 패러다임은 선교의 주체를 교회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으로 전환시켰다. 선교는 더 이상 교회가 수행하는 여러 과업 중 하나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고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며, 교회는 그 위대한 구원 드라마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로써 선교의 무대는 교회 안에서 세상 전체로, 그 목표는 개인 구원을 넘어 하나님의 총체적 통치, 즉 '하나님 나라'의 구현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라는 큰 우산 아래서 그 구체적인 내용과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20세기 후반 기독교계는 두 개의 큰 흐름으로 나뉘어 치열한 신학적 논쟁을 벌였다.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칼 진영은 선교를 사회 구조적 악의 철폐와 인간 해방, 정의와 평화(샬롬)의 실현으로 이해하며 사회 구원을 강조했다. 반면, 복음주의 진영은 이러한 경향이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개인의 회심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하며 영혼 구원의 우선성을 재확인하고자 했다.  

본 강의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먼저, 선교에 대한 전통적 정의와 현대적 정의의 핵심적인 차이를 명확히 하고, 선교의 궁극적 목표로서 '하나님 나라'의 신학적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룰 것이다. 이어서 20세기 선교 신학의 지형을 형성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대립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이 두 진영의 신학적 간극을 잇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 '로잔 운동'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그 핵심인 '총체적 선교' 개념을 상세히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신학적 유산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 세계 기독교 지형의 변화, 디지털 시대의 도래 등 21세기 교회가 마주한 복합적인 선교적 과제들을 진단하고 그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파편화된 선교 이해를 넘어, 성경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시각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적 사명을 재정립하게 될 것이다.

제1부 선교의 정의와 궁극적 목표
1.1. 선교 개념의 패러다임 전환: Missio Ecclesiae에서 Missio Dei로
1.1.1. 전통적 정의: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
19세기 '위대한 선교의 세기'를 거치며 확립된 전통적 선교관은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선교의 주체는 명확히 '교회'였으며, 그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대위임명령(마 28:18-20)에 대한 순종으로 이해되었다. 선교의 핵심 목표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고(구령, 救靈), 그들을 통해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여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수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고 전 세계에 교회를 세우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선교사들은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했을 뿐만 아니라, 병원과 학교를 세워 문맹을 퇴치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등 피선교지의 근대화에 기여한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모델은 몇 가지 본질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첫째, 선교를 교회의 여러 기능 중 하나로 축소시켰다. 둘째, 영혼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육체적 고통이나 사회 구조적 불의와 같은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한 이원론적 경향을 낳았다. 셋째, 선교를 주도했던 서구 교회가 자신들의 신학과 예배 형식, 교회 구조, 심지어 문화까지 우월한 것으로 여기고 피선교지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교회 확장주의' 혹은 문화적 제국주의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교회 중심적, 서구 중심적 선교 모델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1.1.2. 현대적 정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식민주의 시대의 종언은 서구 기독교가 지녔던 신학적, 문화적 낙관주의를 산산조각 냈고, 과거 선교 방식에 대한 깊은 죄책감과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신학적 공백과 실천적 위기 속에서 대안으로 부상한 개념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 즉  

Missio Dei이다.  

1952년 빌링겐 국제선교협의회(IMC)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 개념은 선교의 주체, 동력, 목표에 대한 이해를 송두리째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선교의 주체 전환: 선교의 주도권은 더 이상 인간이나 교회가 아닌, 창세 전부터 세상을 구원하고 회복하기 위해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 선교는 교회가 수행하는 여러 사역 중 하나가 아니라, '보내시는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이며, 교회는 그 위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공동체이다. 이로써 "교회가 선교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가 교회를 낳는다"는 혁명적 발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선교의 동력 재발견: 선교의 근원적 동력은 지상명령에 대한 의무감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본성에서 찾게 되었다. 영원 전부터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 사이의 완전하고 역동적인 사랑의 교제가 있었으며, 이 충만한 사랑과 선하심이 그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고 바깥으로 '흘러넘치는'(overflow) 속성을 가지는데, 이것이 바로 창조와 구속, 즉 선교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는 우리에게 먼저 부어진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자연스럽고 기쁨에 찬 응답이다.  

선교의 범위 확장: 선교의 무대는 교회나 특정 종교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상의 모든 영역(정치, 경제, 문화 등)으로 확장되었다. 전통적인 '하나님 → 교회 → 세상'의 구도가 '하나님 → 세상 → 교회'로 재정렬되면서, 교회의 과제는 세상에 없는 하나님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되었다. 이는 개인의 영혼 구원을 넘어 사회의 구조적 악과 불의에 맞서 싸우고, 파괴된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까지 선교의 본질적인 과제로 포함하는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 개념으로 발전하는 신학적 토대가 되었다.  

1.2. 선교의 궁극적 목표: 하나님 나라의 구현과 샬롬의 회복
선교의 정의가 확장되면서, 그 궁극적인 목표 또한 새롭게 조명되었다. 현대 선교신학은 선교의 최종 목표가 단순히 개교회의 성장이나 교파의 세력 확장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 '샬롬'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본다.

1.2.1.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의 도래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 주제였다. 성경에서 '나라'(malkuth, basileia)의 일차적 의미는 지리적 영토가 아니라 왕의 '통치'(reign), '주권'(rule)이라는 역동적인 활동을 가리킨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실현되는 영역이자 상태를 의미하며, 그곳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이다(마 6:10).  

선교는 바로 이 하나님의 통치가 개인의 삶과 가정, 공동체, 나아가 사회와 문화, 정치, 경제 등 세상의 모든 영역에 임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교회라는 조직의 성장을 넘어,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상에 임하는 더 크고 포괄적인 비전에 있다. 교회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이자 대리인(agent)이지, 목표 그 자체가 아니다.  

1.2.2.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의 종말론적 긴장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 나라는 독특한 시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이미' 역사 속으로 침투하여 시작되었지만(Already),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아직' 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다(Not Yet)는 종말론적 긴장 속에 존재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이 긴장감이야말로 교회가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선교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삶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구원과 능력을 '아직' 그것을 맛보지 못한 세상에 증언해야 할 사명이 있다.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죄와 불의의 세력에 맞서 싸우며, 반드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인내하는 선교적 과제를 안고 있다.  

1.2.3. 샬롬(Shalom)의 회복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구현된 상태를 성경은 '샬롬'(Shalom)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샬롬은 단순히 갈등이나 전쟁이 없는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든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된 총체적인 안녕과 번영, 조화의 상태를 의미한다. 질병, 가난, 억압, 불의, 환경 파괴와 같은 세상의 모든 고통은 이 샬롬이 깨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선교는 이러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샬롬이 임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난한 자를 돕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억압받는 자를 위해 정의를 외치고, 파괴된 창조 세계를 돌보는 모든 활동은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미리 맛보게 하고 확장하는 본질적인 선교 행위가 된다.  

제2부 에큐메니칼 vs. 복음주의: 20세기 선교신학의 대논쟁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은 20세기 중반 이후 모든 선교신학의 공통분모가 되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과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때로는 격렬한 신학적 대립을 보였다.

2.1. 에큐메니칼 진영의 선교 이해: 인간화와 사회 구원
에큐메니칼 운동은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를 기점으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며 발전했다. 초기에는 복음 전파를 위한 협력에 중점을 두었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시대적 상황의 변화 속에서 선교의 방향을 급진적으로 전환했다.  

세상으로의 전환: WCC는 교회의 관심이 교회 내부가 아닌, 고통받는 세상의 문제로 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세상이 선교의 의제를 설정한다"고 선언하며, 교회가 세상의 필요와 외침에 응답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교회의 과제보다 세상사 해결에 집중하는 '세속적 에큐메니즘'으로 발전했다.  

인간화(Humanization)로서의 선교: 196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린 제4차 WCC 총회는 '인간화'(Humanization)를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채택하며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 관점에서 선교는 가난, 질병, 인종차별, 정치적 억압 등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모든 구조악에 맞서 싸우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모든 활동과 동일시되었다.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 1973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 대회는 '오늘의 구원'이라는 주제 아래 이러한 신학을 더욱 구체화했다. 여기서 구원은 전통적인 영혼 구원을 넘어 '경제적 정의', '인간의 존엄성', '소외로부터의 연대' 등 현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해방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재정의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남미의 '해방신학'과 같은 급진적인 정치신학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종교 간 대화와 다원주의: 에큐메니칼 진영은 타종교 안에도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일방적인 복음 전파보다는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종교 간의 대화'를 강조했다. 이는 점차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 경향으로 나아갔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2.2. 복음주의 진영의 비판과 대응
에큐메니칼 진영의 급진적인 선교 이해에 대해, 복음주의 진영은 심각한 우려와 비판을 제기했다.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경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개인의 회심과 거듭남을 신앙의 핵심으로 강조하는 신학적 흐름이다.  

복음의 본질에 대한 우려: 복음주의자들은 WCC의 선교가 '인간화'와 '사회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이를 통한 영혼 구원이라는 수직적 차원을 상실하거나 변질시켰다고 비판했다. 선교가 인간의 노력으로 세상을 개선하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였다.  

프랑크푸르트 선언(1970):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피터 바이어하우스와 같은 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1970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WCC의 인간화 신학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선교의 최우선 목표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임을 재확인했다. 이는 복음주의 진영이 에큐메니칼 선교신학과 신학적으로 결별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초기 복음주의 선교 운동: 1966년 휘튼 선언과 빌리 그레이엄이 주도한 베를린 세계복음화대회 등은 복음주의자들이 세계 복음화를 위해 연대하려는 초기 시도였다. 이 대회들은 에큐메니칼 진영의 사회 참여 중심의 선교와는 대조적으로,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 복음주의 진영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영혼과 육체,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는 이원론적 경향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1970년대 초반, 세계 기독교 선교는 사회 구원을 외치는 에큐메니칼 진영과 영혼 구원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진영으로 양분되어, 서로를 비판하며 좁혀지기 어려운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제3부 로잔 운동: 총체적 선교를 향한 복음주의의 여정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적 대립이 극에 달했던 1970년대, 이 두 흐름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고 20세기 후반 선교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로잔 운동'(Lausanne Movement)이다.

3.1. 로잔 운동의 태동과 역사적 의의
로잔 운동은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과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의 주도 아래,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함께 감당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제1차 로잔대회 (1974, 스위스 로잔):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150여 개국 2,700여 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여 제1차 세계복음화국제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WCC의 방콕 대회(1973)가 제시한 급진적인 선교 이해에 대한 복음주의 진영의 조직적인 응답이라는 성격을 가졌다. 로잔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세계 복음화를 위한 연대와 협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현대 선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 이 대회의 가장 중요한 결실은 만장일치로 채택된 '로잔 언약'이다. 15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이 문서는 성경의 권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확고히 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으로 명시했다. 이는 복음주의 진영이 과거의 이원론적 한계를 극복하고,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중요한 신학적 진전을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3.2. 총체적 선교(Holistic/Integral Mission) 개념의 정립
로잔 언약 제5항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요,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느 곳에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이 선언을 바탕으로 로잔 운동은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 또는 Integral Mission)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의 통합: 총체적 선교는 복음 전도(evangelism)와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제로 통합한다. 이는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한쪽만으로는 온전한 선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행위는 복음 전도를 위한 수단이나 미끼가 아니며, 복음 전도 역시 사회 참여의 결과로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둘 다 복음의 본질적인 표현이다.  

신학적 균형: 총체적 선교는 에큐메니칼 진영이 사회 구원을 강조하며 복음 전도를 소홀히 했던 점과, 전통적 복음주의가 영혼 구원만을 강조하며 사회적 책임을 외면했던 점을 모두 비판하며 그 사이의 신학적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였다. 존 스토트는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의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의 전적인 복지, 즉 그의 육체와 영혼과 사회적인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며 총체적 선교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우선순위 논쟁: 그러나 로잔 운동 내에서도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 중 무엇이 더 우선적인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다. 일부는 여전히 영혼 구원의 긴급성을 들어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주장했지만, 다수는 두 사명이 동등하게 중요하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3.3. 로잔 운동의 발전: 마닐라에서 케이프타운까지
로잔 운동은 1974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세계적인 대회를 통해 시대의 도전에 응답하며 선교 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제2차 로잔대회 (1989,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 선언'을 채택한 이 대회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자"는 구호 아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의 주체임을 강조했다. 특히 평신도와 여성, 청년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선교의 저변을 확대했다. 또한 급격한 도시화, 현대성의 도전 등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복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들을 논의했다.  

제3차 로잔대회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 서약'을 발표한 이 대회는 21세기의 새로운 도전들에 응답했다. 이 서약은 '사랑'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에서 선교의 동력을 찾고, 그 사랑을 세상 속에서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의 진리 증거, 분열된 세상 속에서의 화해 사역,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 등을 강조하며 총체적 선교의 지평을 더욱 넓혔다.  

로잔 운동은 지난 50년간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세계 교회가 연합하여 선교적 과업을 감당하도록 독려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다. '미전도 종족' 개념, '10/40창'과 같은 선교 전략들이 로잔 운동을 통해 제안되고 공유되었으며, 무엇보다 '총체적 선교'를 복음주의 선교의 표준으로 정착시킴으로써 21세기 선교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4부 21세기 현대 선교의 과제와 방향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선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복합적이고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 세계 기독교 지형의 급격한 변화, 디지털 기술의 발전 등은 교회가 기존의 선교 방식과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4.1.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의 도전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합리성, 보편적 진리를 강조했던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사상적 흐름이다. 이는 거대 담론을 해체하고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다양성, 상대적 진리를 강조하는 특징을 가진다.  

진리의 상대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식의 종교 다원주의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주장으로 치부되기 쉽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복음 전도를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극도로 약화시키는 심각한 도전이다.  

선교적 대응: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더 이상 권위적인 선포 방식만으로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어렵다. 대신, 기독교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며 그 아름다움과 능력을 증거하는 '삶의 증언'이 더욱 중요해졌다. 또한, 타종교와 문화를 무조건 비판하고 정죄하기보다는, 그들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기독교 진리를 변증적으로 설명하며 진솔하게 대화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4.2. 세계 기독교 지형의 변화: 탈서구화와 남반구의 부상
20세기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극적인 인구 지형의 변화를 겪은 시기이다. 1900년만 해도 세계 기독교인의 80% 이상이 유럽과 북미에 거주했지만, 오늘날에는 약 65% 이상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남반구(Global South)에 거주하고 있다.  

선교의 '탈서구화': 이는 더 이상 서구 교회가 세계 선교를 주도하는 중심이 아님을 의미한다. 선교는 이제 '서구에서 나머지 세계로' 향하는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from everyone to everywhere) 향하는 다방향적인 운동이 되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교회들이 이제는 유럽과 북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역선교 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토착 리더십과 자신학화: 이러한 변화는 선교 현장에서 서구 선교사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을 요구한다. 선교의 주도권은 점차 현지 교회와 토착 지도자들에게 이양되어야 한다. 선교사는 더 이상 주도자가 아니라, 현지 교회를 돕고 격려하며 동역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또한, 서구 신학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화의 토양 위에서 성경적 진리를 스스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자신학화'(Self-theologizing)를 존중하고 지원해야 한다.  

4.3. 새로운 선교의 장: 도시, 디아스포라, 디지털 공간
도시화와 메가시티 선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러한 도시화는 계속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인구 천만 이상의 메가시티들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 극심한 빈부 격차, 복잡한 사회 문제가 응축된 새로운 선교의 최전선이다. 도시의 익명성과 파편화된 관계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도시 빈민과 이주민 등 소외된 이웃을 섬기며, 복잡한 도시 문제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는 총체적 도시 선교 전략이 시급하다.  

디아스포라 선교: 세계화로 인해 자신의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Diaspora)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유학생, 이주 노동자, 난민 등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이 되었다. 이들을 향한 선교는 더 이상 먼 나라로 가야만 할 수 있는 해외 선교가 아니라, 우리 지역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문턱 앞의 타문화권 선교'이다. 또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 사회를 복음화하고, 나아가 제3의 지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중요한 선교 자원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와 사이버 선교: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새로운 선교의 공간을 열었다. 디지털 공간은 지리적 제약 없이 복음을 전하고,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며, 제자 훈련을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짜 뉴스와 비윤리적 콘텐츠의 범람, 온라인상의 피상적인 관계 형성 등의 도전도 존재한다. 교회는 이러한 디지털 환경의 특성을 이해하고, 복음의 진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선교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4.4. 한국 교회의 과제: 성과주의를 넘어 동반자적 선교로
세계 선교 역사상 유례없는 성장을 경험하고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한국 교회 역시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성과주의와 외형주의 극복: 한국 선교는 그동안 교회 개척 수, 세례 교인 수 등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성과주의'와 '외형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는 선교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지 못하게 하고, 현지 문화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선교 방식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이제는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숙을 추구하며, 현지 교회가 자립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내실 있는 선교로 전환해야 한다.  

현지 교회 중심의 동반자적 선교: 미래 선교의 방향은 선교사 중심이 아닌 '현지 교회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주는 자'의 위치가 아니라, 남반구 교회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배우고 협력하는 '동반자'(Partner)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현지인 지도자를 양육하고, 그들이 주도적으로 사역을 이끌어 가도록 권한을 위임하며, 재정 지원을 넘어 인적, 영적 자원을 공유하는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비즈니스 선교(BAM) 등 창의적 접근: 전통적인 선교사 파송이 어려운 창의적 접근 지역이 늘어나면서,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 Mission, BAM)와 같은 새로운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BAM은 비즈니스 활동 자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사회에 기여하며,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총체적 선교의 한 형태이다. 전문인 선교사, NGO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창의적인 선교 전략 개발이 요구된다.  

결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총체적 여정
20세기를 거치며 선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교회의 과업'에서 '하나님의 본성'으로, '영혼 구원'에서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 구현'으로 심화되고 확장되었다.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치열한 논쟁, 그리고 로잔 운동을 통한 변증법적 종합의 과정은 선교가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날개를 함께 펼칠 때 비로소 온전히 날아오를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21세기의 교회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복합적인 도전 앞에 서 있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상대주의, 남반구 교회의 부상이라는 세계 기독교 지형의 변화, 그리고 디지털과 도시라는 새로운 선교 환경은 우리에게 낡은 방식과의 결별을 요구한다. 이제 선교는 더 이상 소수의 전문가에게만 위임된 특별한 과업이 아니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그 가치를 구현하며 살아가는 '선교적 삶'(missional living)으로의 부르심이다.  

한국 교회는 지난 세기 동안 보여준 선교적 열정을 바탕으로, 이제는 성과주의와 일방주의를 넘어 겸손한 섬김과 동반자적 협력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우리의 이웃이 된 디아스포라를 섬기고, 디지털 세상 속에서 창의적으로 복음을 나누며,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샬롬의 빛을 비추는 총체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 모든 여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교회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모든 눈물이 씻기며, 모든 피조물이 함께 회복되는 그 날,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앞당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의 정의이자 목표이며,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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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M 세계인터넷선교협의회는 (KWMA소속단체) 1996년 창립한 선교단체로, 인터넷과 IT를 활용하여 30여 년간 세계선교에 기여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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