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전문인 선교학 49 과정
선교적 교회론, 소그룹(셀) 사역 과 선교
전도론 및 교회 개척론

선교 공동체 개발
선교적 교회론, 소그룹(셀) 사역과 선교: 보냄 받은 백성의 유기적 구현
서론: 위기 속에서 본질을 묻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교회는 전례 없는 위기와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세속주의의 거대한 물결,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하락, 다음 세대의 급격한 이탈, 그리고 전통적인 교회 성장 모델의 한계 봉착 등은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지난 수십 년간 서구 신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어 온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Ecclesiology)'은 마치 광야의 나침반처럼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의 핵심은 '선교'를 교회의 수많은 사역 프로그램 중 하나로 간주하는 것을 넘어, 교회의 존재 자체가 바로 '선교'에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즉, 교회는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상 '선교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혁명적인 선언이다. 더 이상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매력적인 종교 기관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 하나님의 통치를 증거하고 실현하는 '보냄 받은 백성들의 공동체'로 재정의된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하고 본질적인 신학적 담론이 어떻게 개별 교회의 구체적인 삶과 사역 속에서 구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있다. 선교적 교회의 비전이 담임목사나 일부 선교위원회의 구호에 머물지 않고, 모든 성도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 비전을 담아낼 수 있는 효과적인 구조와 역동적인 환경이 필수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그룹(셀) 사역'은 선교적 교회론의 가장 강력하고 유기적인 파트너로서 그 중요성을 드러낸다. 소그룹은 단순히 교회를 구성하는 하부 조직이나 효율적인 교인 관리 시스템이 아니다. 오히려 소그룹은 선교적 교회의 DNA가 심기고, 양육되며, 발현되는 가장 기초적인 생명 단위이자, 세상 속으로 파송된 선교의 전초기지로서 기능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선교적 교회론의 신학적 기초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소그룹 사역의 성경적, 역사적 본질을 고찰함으로써, 이 둘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만나 시너지를 창출하는지를 논증하고자 한다. 나아가 선교적 소그룹이 갖추어야 할 구체적인 운영 원리와 실제적인 사역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오늘날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한국 교회가 어떻게 하면 '선물 가게'가 아닌 '보냄 받은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세상 속에서 의미 있는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신학적, 실천적 통찰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사역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모든 성도를 세상 속 선교사로 세우는 거대한 여정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이 될 것이다.
I. 선교적 교회론의 신학적 기초: 하나님의 심장에서 시작된 이야기
선교적 교회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교의 주체와 기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교회를 선교의 주체로, 세상을 선교의 대상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론은 선교의 시작이 교회가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선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 즉 '미시오 데이(Missio Dei)' 사상의 핵심이다.
1. 모든 것의 시작,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미시오 데이'는 20세기 중반 칼 바르트(Karl Barth), 게오르크 비체돔(Georg Vicedom)과 같은 신학자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1952년 국제선교협의회(IMC) 빌링겐 대회에서 공식화된 개념이다. 이 사상에 따르면, 선교는 인간의 계획이나 교회의 프로그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성부 하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를 보내셨고(요 3:16), 성부와 성자는 교회를 세우시고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다(요 14:26, 15:26). 그리고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구원의 역사 속으로 교회를 초대하시어 세상으로 보내신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엄청난 함의를 가진다. 첫째, 선교의 주인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게 된다. 교회는 선교의 주인이 아니라 동역자이며,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드라마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배우이다. 이는 교회의 교만과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게 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게 만든다. 둘째, 선교의 범위가 교회의 활동 영역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 하나님은 교회 건물 안에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속에서, 모든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미 일하고 계신다. 따라서 선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세상으로 '가져가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행위가 된다. 셋째, 선교의 동력이 인간의 열심이나 전략이 아닌, 성령의 능력에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교회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시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그분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다.
이처럼 '미시오 데이'는 선교적 교회의 대헌장이자 흔들리지 않는 신학적 반석이다. 교회는 스스로 존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으로 향하는 하나님의 선교적 흐름 속에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이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자기 보존에만 급급한 내향적인 종교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2. 선교의 방법론, 성육신적 모델 (Incarnational Model)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선교를 수행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모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선포한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 앉아서 세상을 향해 구원의 메시지를 외치지 않으셨다. 그는 인간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친히 들어오셔서, 우리의 언어로 말씀하시고, 우리의 고통을 함께 느끼시며, 우리의 삶을 사셨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적 선교의 본질이다.
선교적 교회는 바로 이 예수님의 성육신적 모델을 따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저명한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서구 사회가 더 이상 기독교 세계관(Christendom)을 공유하지 않는 '선교지'가 되었음을 통찰하며, 교회가 과거의 특권 의식을 버리고 마치 타문화권 선교사처럼 자신이 속한 문화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성육신적 접근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적인 경계를 넘는 태도와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교회는 더 이상 세상과 분리된 '거룩한 요새'를 쌓고 그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신, 교회는 세상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지역 사회의 필요와 아픔에 공감하며,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겸손히 들어가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이웃이 되어야 한다. 이는 복음의 본질을 타협하는 '혼합주의'와는 다르다. 오히려 복음의 핵심 진리를 그 문화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고 소통하는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노력을 포함한다. 예수께서 비유와 이야기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듯이, 교회도 자신이 속한 문화의 상징과 서사를 사용하여 복음의 진리를 창의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3. 선교의 목표, 하나님 나라 (Kingdom of God)
선교적 교회의 활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교회의 교세를 확장하거나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께서 선포하시고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실재를 증거하고, 그 나라의 완성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미치는 모든 영역,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환경 등 삶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선교 역시 총체적(Holistic)인 성격을 띤다. 개인의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Proclamation)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교는 또한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정의와 해방의 실천(Social Action), 깨어진 관계의 회복과 평화(Shalom)의 추구,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적 사명을 포함한다.
선교적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표지(Sign)', '도구(Instrument)', 그리고 '선취(Fore-taste)'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교회 공동체는 그 자체로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보여주는 가시적인 '표지'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세상의 가치관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이다. 성도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도구로 부름받았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화를 미리 맛보고 세상에 증거하는 '선취 공동체'이다. 교회의 예배와 성만찬, 교제 속에서 성도들은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축제를 경험하며, 세상에 참된 소망을 전하는 증인이 된다.
결론적으로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의 정체성을 '미시오 데이'에 뿌리내리고, '성육신'을 그 방법론으로 삼으며, '하나님 나라'를 그 궁극적인 목표로 바라보는 신학적 관점이다. 이는 교회를 안락한 신앙의 안식처에서 세상의 변혁을 위한 역동적인 운동(Movement)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한 비전이다. 문제는 이 위대한 비전을 어떻게 모든 성도의 가슴 속에 심고, 그들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II. 소그룹(셀) 사역의 본질과 역사: 작은 공동체 안에 담긴 생명력
선교적 교회의 비전이 뿌리내릴 수 있는 가장 비옥한 토양은 바로 소그룹이다. 소그룹은 교회사 속에서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제도화될 때마다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 신앙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영적 부흥의 진원지 역할을 감당해왔다. 소그룹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 성경적 원형과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1. 성경 속 소그룹의 원형: 관계와 삶의 공동체
소그룹의 가장 원초적인 모델은 예수님과 열두 제자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을 가르치시기도 했지만, 그의 사역의 핵심은 소수의 제자들을 선택하여 그들과 3년 동안 함께 먹고, 자고, 대화하며 삶을 나누는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그들을 양육하신 것에 있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직접 보여주셨고, 그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여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가도록 준비시키셨다. 이 작은 공동체는 단순한 학습 그룹이 아니라, 깊은 관계 속에서 인격이 변화되고 사명이 잉태되는 생명의 공동체였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탄생한 초대교회의 모습은 소그룹의 역동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도행전 2장 42절과 46절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기록한다. 이는 초대교회가 대그룹 예배(성전)와 소그룹 모임(집)이라는 두 날개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집집마다 흩어져 모인 작은 공동체 안에서 사도의 가르침을 배우고, 서로 교제하며(코이노니아), 삶의 필요를 나누고, 함께 기도했다. 이 가정교회는 단순한 친교 모임이 아니었다. 그곳은 복음이 삶으로 해석되고,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며, 세상의 박해를 이겨낼 힘을 얻는 신앙의 인큐베이터이자, 이웃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의 최전선이었다. 바울 서신에 등장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롬 16:5), 빌레몬의 집(몬 1:2)에 있던 교회들 역시 이러한 가정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성경이 증언하는 교회는 거대한 조직이나 건물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유기적으로 모이는 작은 신앙 공동체들의 네트워크였다. 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은 익명성을 극복하고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었으며, 말씀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총체적인 신앙을 훈련받았다.
2. 역사 속 영적 부흥의 동력: '교회 안의 작은 교회'
교회사를 돌아보면, 교회가 제도화되고 세속화되어 생명력을 잃어갈 때마다 소그룹 운동은 어김없이 개혁과 부흥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중세 시대의 수도원 운동은 세속화된 교회를 떠나 함께 노동하고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추구했던 작은 신앙 공동체의 한 형태였다. 17세기 독일 경건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필립 야콥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는 당시 형식주의에 빠진 루터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경건의 모임(Collegia Pietatis)'이라는 소그룹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 모임을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 in ecclesia)'라고 부르며, 이 작은 공동체를 통해 평신도들이 성경을 함께 읽고 삶을 나누며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기 영국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시작한 감리교 운동의 성공 비결 역시 '속회(Class Meeting)'라고 불리는 소그룹 조직에 있었다. 웨슬리는 대규모 부흥 집회를 통해 회심한 사람들을 12명 내외의 속회로 편성하여, 매주 한 번씩 모여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격려하도록 했다. 이 속회는 단순한 성경공부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며 책임을 지는 '언약 공동체'였다. 이 강력한 소그룹 시스템을 통해 감리교 운동은 단순한 부흥 운동을 넘어 지속적인 제자도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당시 산업혁명으로 혼란스러웠던 영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소그룹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한국의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시작한 '구역(Cell)' 시스템은 폭발적인 교회 성장의 모델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모델은 교회를 수많은 세포(Cell)와 같은 작은 단위로 나누고, 각 구역이 예배, 교제, 전도의 중심이 되도록 함으로써 대형교회가 가질 수 있는 비인격성과 비효율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후 랄프 네이버(Ralph Neighbour)의 '셀 교회 운동', 릭 워렌(Rick Warren)의 '목적 중심적 소그룹' 등 다양한 모델들이 발전하면서, 소그룹은 현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 전략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3. 현대 소그룹의 핵심 기능: 유기적 생명 공동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듯이, 건강한 소그룹은 다섯 가지 핵심적인 기능을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생명 공동체의 특징을 보인다. 첫째는 예배(Worship)와 기도이다. 소그룹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을 높이는 작은 예배 공동체이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삶을 나눌 때, 구성원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다.
둘째는 양육(Nurture)과 훈련이다. 소그룹은 성경 말씀을 배우고 삶에 적용하는 제자 훈련의 가장 효과적인 장이다. 설교를 통해 선포된 진리가 소그룹 안에서 구체적인 삶의 질문과 나눔을 통해 소화되고 체화된다.
셋째는 교제(Fellowship)와 돌봄이다.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는 단순한 친목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공유하는 깊은 사귐을 의미한다. 소그룹은 대그룹 예배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진솔한 나눔과 상호 돌봄이 일어나는 곳이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짐을 짊어질 때, 구성원들은 진정한 가족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다.
넷째는 사역(Ministry)과 섬김이다. 소그룹은 각자의 은사를 발견하고 서로를 섬기는 훈련을 하는 사역의 장이다. 구성원들은 그룹 안에서 작은 섬김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점차 교회와 세상을 향한 더 큰 섬김으로 나아가게 된다.
다섯째는 전도(Evangelism)와 증거이다. 소그룹은 세상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초대할 수 있는 관계 중심적인 전도의 통로가 된다. 불신자들은 딱딱한 교회 건물보다는 따뜻하고 환대하는 소그룹 모임에 훨씬 더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기능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소그룹이라는 생명체를 건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기능이 균형을 이룰 때, 소그룹은 비로소 내향적인 친교 모임을 넘어 세상으로 뻗어 나가는 선교적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게 된다.
III. 선교적 교회와 소그룹의 필연적 만남: 비전과 구조의 통일
선교적 교회라는 원대한 신학적 비전과 소그룹 사역이라는 구체적인 실천 전략은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엮일 때 비로소 강력하고 아름다운 직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선교적 교회론이 소그룹이라는 구조를 만날 때 그 비전은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며, 소그룹은 선교적 교회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 목적을 발견하고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 둘의 만남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1.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의 전환
전통적인 교회 구조는 대부분 '모이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주일 예배, 수요 기도회, 금요 철야 등 모든 프로그램은 성도들을 교회 건물 안으로 모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흡인력 있는(Attractional)' 모델은 기독교가 사회의 중심이었던 시대에는 효과적이었을지 모르나, 탈기독교 사회에서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선교적 교회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전복시켜, '모이는 교회(Church Gathered)'만큼이나 '흩어지는 교회(Church Scattered)'를 중요하게 여긴다. 모여서 예배하고 양육받는 이유는 다시 세상 속으로 흩어져 선교적 삶을 살기 위함이다.
바로 이 '흩어지는 교회'의 비전을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단위가 소그룹이다. 대규모의 회중 전체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흩어져 유기적으로 사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소그룹은 다르다. 10명 내외의 소그룹은 하나의 작은 선교팀처럼 움직일 수 있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혹은 관계적으로 연결된 공동체로서, 자신들이 속한 삶의 영역(이웃, 직장, 학교 등)을 구체적인 선교지로 삼고 함께 기도하며 섬길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성도들이 모인 소그룹은 단지 내의 어려운 이웃을 함께 돕거나, 아이들을 위한 작은 행사를 여는 등의 방식으로 지역 사회를 섬기는 선교적 실천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소그룹은 '흩어지는 교회'라는 거대한 비전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플랫폼이다.
2. 모든 성도의 선교사화: 평신도 사역의 극대화
선교적 교회는 목회자나 선교사와 같은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선교의 책임을 떠넘기는 성직주의를 거부한다. 종교개혁이 '만인제사장설'을 외쳤다면, 선교적 교회는 '만인선교사설'을 주장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삶의 자리로 보냄 받은 선교사라는 것이다. 교사는 교실에서, 사업가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주부는 가정과 이웃 관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확장하는 선교사로 부름받았다.
이러한 '평신도 선교사'를 세우고 훈련하며 파송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 바로 소그룹이다. 주일 강단에서의 설교만으로는 모든 성도를 각자의 삶의 현장에 맞는 선교사로 무장시키기 어렵다. 그러나 소그룹에서는 가능하다. 소그룹 리더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터와 삶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선교지인지를 깨닫도록 도울 수 있다. 구성원들은 소그룹 모임에서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겪는 선교적 고민과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직장에서 불의한 상사의 요구에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대처해야 할까?", "믿지 않는 자녀에게 어떻게 복음을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을까?" 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들이 논의되고, 서로의 지혜와 경험을 통해 해답을 찾아갈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성도들은 선교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소그룹은 평신도들을 선교의 구경꾼에서 주역으로 변화시키는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는 용광로이다.
3. 성육신적 공동체의 구현: 세상의 필요에 응답하다
선교적 교회의 핵심 방법론이 성육신이라면, 소그룹은 성육신적 사역을 수행하는 가장 적합한 공동체 단위이다. 거대한 교회 건물 자체가 특정 지역 사회 속으로 '성육신'하기는 어렵다. 교회는 종종 지역 사회와는 분리된 섬처럼 존재하기 쉽다. 그러나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소그룹은 그 지역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소그룹은 자신들이 속한 동네의 필요가 무엇인지 민감하게 파악하고, 그 필요에 구체적으로 응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소그룹이 자신들의 동네에 독거노인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정기적으로 반찬을 만들어 나누거나 집을 방문하여 말벗이 되어드리는 사역을 시작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 아이들 돌봄이 어려운 지역이라면, 소그룹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작은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작은 섬김들은 거창한 구호나 대규모 행사보다 훨씬 더 진정성 있게 지역 사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예수의 사랑을 보여주는 성육신적 공동체의 모습이다. 소그룹은 교회가 세상과의 다리를 놓고, 세상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는 '교회의 더듬이' 역할을 감당한다.
4. 유기적 번식과 확산: 프로그램이 아닌 운동으로
건강한 생명체는 성장하고 번식한다. 선교적 교회는 정체된 조직(Organization)이 아니라, 생명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확장되는 유기체(Organism)이자 운동(Movement)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유기적 번식과 확산의 원리가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소그룹이다.
전통적인 교회 성장 방식이 더 많은 사람을 교회 건물 안으로 끌어모으는 것이라면, 선교적 소그룹의 성장 방식은 새로운 소그룹을 낳고 또 낳는 '번식(Multiplication)'에 있다. 하나의 소그룹이 건강하게 성장하여 숫자가 늘어나면, 적절한 시점에 두 개의 소그룹으로 분가(번식)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소그룹 멤버가 새로운 소그룹의 리더로 세워진다. 이러한 번식의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될 때, 교회는 마치 살아있는 세포가 분열하며 성장하듯이 건강하게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번식 모델은 단순히 숫자를 늘리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여기에는 모든 성도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평신도 사역의 철학이 담겨 있으며, 더 많은 사람을 섬기고 더 넓은 영역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려는 선교적 열정이 그 동력이 된다. 프로그램은 한계에 도달하면 멈추지만, 운동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해서 확산된다. 선교적 소그룹은 교회를 정적인 프로그램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는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변화시키는 핵심 동력이다. 이처럼 선교적 교회와 소그룹은 서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고, 서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완벽한 파트너 관계에 있다.
IV. 선교적 소그룹의 실제적 운영 원리: 안에서 밖으로의 여정
선교적 교회론과 소그룹이 만나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소그룹의 운영 패러다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기존의 많은 소그룹들이 구성원들의 내적인 필요를 채우고 친목을 도모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었다면, 선교적 소그룹은 그 방향을 180도 전환하여 세상으로 향하는 외적인 사명을 그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소그룹의 정체성, 리더십, 모임의 내용, 그리고 성장 방식 전반에 걸친 구체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1. 정체성의 전환: '안전한 피난처'에서 '선교적 전초기지'로
가장 먼저 일어나야 할 변화는 소그룹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많은 경우 소그룹은 세상살이에 지친 성도들이 와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 '안전한 피난처(Safe Haven)'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물론 이러한 돌봄의 기능은 매우 중요하며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선교적 소그룹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세상 속으로 파송되기 위해 재충전하고 전략을 세우는 '선교적 전초기지(Missional Basecamp)'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피난처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지향하지만, 전초기지는 세상을 향한 진격을 준비하는 곳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전환을 돕는 유용한 틀이 바로 'UP-IN-OUT' 모델이다. 모든 건강한 소그룹은 세 가지 차원의 관계를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한다.
첫째, **UP(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소그룹은 예배와 기도,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깊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능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다른 모든 관계는 힘을 잃게 된다.
둘째, **IN(서로 간의 관계)**이다. 소그룹은 구성원들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격려하며, 돌보는 수평적인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통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내적인 결속력은 필수적이다.
셋째, **OUT(세상과의 관계)**이다. 선교적 소그룹의 핵심은 바로 이 'OUT' 차원을 의도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소그룹은 자신들의 시간과 에너지, 재정의 일정 부분을 그룹 외부의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한다.
많은 소그룹들이 UP과 IN 차원에는 익숙하지만, OUT 차원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선교적 소그룹은 이 세 가지 차원이 삼각형의 세 변처럼 균형을 이루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소그룹의 정체성이 '피난처'에서 '전초기지'로 바뀔 때, 그룹의 모든 활동과 대화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세상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2. 리더십의 변화: '돌보는 목자'에서 '파송하는 선교사'로
소그룹의 방향 전환은 리더십의 역할 변화와 직결된다. 전통적인 소그룹 리더의 역할이 주로 그룹 구성원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목자(Shepherd)'에 가까웠다면, 선교적 소그룹의 리더는 구성원들을 세상 속 선교사로 훈련시키고 파송하는 '선임 선교사(Lead Missionary)'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선교사형 리더는 단순히 성경 지식을 잘 전달하는 교사나 모임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진행자를 넘어선다. 그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비전 제시자이다. 그는 구성원들에게 소그룹의 존재 목적이 우리끼리의 만족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데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선교적 삶에 대한 열정과 도전을 불어넣는다. 둘째, 환경 조성자이다. 그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겪는 선교적 경험과 고민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안전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셋째, 기회 창출자이다. 그는 소그룹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섬김과 전도의 기회를 발굴하고 제안한다. 지역 사회의 필요를 조사하고, 구성원들의 은사와 재능을 파악하여 적절한 사역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넷째, 역량 강화자이다. 그는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효과적인 선교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훈련시킨다. 예를 들어, 개인 전도 방법, 이웃과 관계 맺는 법, 기독교 변증 등을 함께 배우고 실습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선교사형 리더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또 다른 선교사형 리더를 세우는 것이다. 그는 모든 구성원이 잠재적인 리더임을 믿고, 그들이 성장하여 새로운 선교적 소그룹을 이끌 수 있도록 위임하고 격려한다. 리더십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고 모두에게 분산되고 재생산될 때, 소그룹은 진정한 운동성을 가지게 된다.
3. 모임의 재구성: '성경공부'를 넘어 '선교적 삶의 나눔'으로
소그룹의 정체성과 리더십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모임의 내용과 형식도 변화해야 한다. 많은 소그룹 모임이 정해진 교재를 따라 성경을 공부하고, 각자의 기도제목을 나누는 것으로 채워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물론 중요하지만, 선교적 소그룹은 여기에 더하여 '선교적 삶'을 나누고 계획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선교적 소그룹 모임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할 수 있다. 첫째, 지역 사회를 위한 중보기도이다. 개인적인 기도제목을 넘어, 소그룹이 섬기기로 작정한 이웃, 직장 동료, 지역 사회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놓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는 구성원들의 시야를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하게 한다. 둘째, **선교적 삶의 이야기 나눔(Storytelling)**이다. 한 주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았던 작은 시도나 경험, 혹은 실패와 어려움을 나누는 시간이다. 예를 들어, "이번 주에 직장 동료의 고민을 들어주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또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려다 거절당해서 마음이 어려웠다"와 같은 진솔한 나눔은 서로에게 큰 격려와 도전이 된다. 셋째, OUT 사역 계획 및 평가이다. 소그룹이 함께 진행할 구체적인 섬김 활동(예: 동네 청소, 반찬 나눔, 이웃 초청 파티 등)을 계획하고, 지난 활동을 평가하며 개선점을 찾는 시간이다. 넷째, 선교적 역량 강화를 위한 훈련이다. 때로는 성경공부 대신, 관계 전도법, 타문화 이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등 선교적 삶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주제들을 함께 배우고 토론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 소그룹 모임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자리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선교적 실천을 위한 작전 회의와 재충전의 시간이 될 것이다.
4. 성장 방식의 전환: '덧셈'이 아닌 '곱셈'의 원리
마지막으로, 선교적 소그룹은 성장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기존의 소그룹이 한 그룹의 크기를 계속 키워나가는 '덧셈(Addition)' 방식의 성장을 추구했다면, 선교적 소그룹은 건강한 소그룹을 계속해서 복제해내는 '곱셈(Multiplication)' 방식의 성장을 지향한다.
곱셈, 즉 '번식'은 소그룹의 성공을 측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나의 소그룹이 1년 혹은 2년의 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 안에 새로운 리더를 세워 또 하나의 선교적 소그룹을 탄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는 그룹에 건강한 긴장감과 역동성을 부여한다. 구성원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참여자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의 리더로서 성장해야 한다는 동기를 갖게 된다. 또한 번식은 소그룹이 지나치게 내향적인 관계에 안주하여 새로운 사람에게 배타적인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번식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리더 양육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소그룹 리더는 예비 리더(인턴 리더)를 미리 선정하여 리더십을 위임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회 전체적으로는 새로운 소그룹 리더들을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격려하는 공식적인 파이프라인을 갖추어야 한다. 곱셈의 원리가 교회 전체에 문화로 자리 잡을 때, 교회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하고 유연한 네트워크 구조를 갖추게 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강력한 선교적 운동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V. 도전과 과제 그리고 미래 전망
선교적 교회와 소그룹의 결합이 이 시대 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강력한 대안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비전을 현실화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도전과 극복해야 할 과제가 존재한다. 특히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한국 교회의 고유한 문화와 구조 속에서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을 직시하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1. 넘어서야 할 장애물들
선교적 소그룹 운동이 직면하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내향성의 강력한 중력'**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하고 익숙한 관계 속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다. 소그룹 역시 의도적으로 밖으로 향하는 힘을 가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좋은' 친교 모임으로 회귀하려는 강력한 중력에 이끌리게 된다. '선교'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섬기는 데 따르는 수고로움은 이러한 내향성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의 지속적인 비전 제시와 격려, 그리고 'OUT' 사역을 소그룹의 핵심적인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구조적인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두 번째 도전은 **'성과주의와 조급증'**이다. 특히 가시적인 성장과 빠른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 교회의 문화 속에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선교적 소그룹의 방식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전도 열매나 섬김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구성원들은 쉽게 지치거나 회의감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선교적 소그룹은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며 진정성 있는 관계를 통해 서서히 영향력을 미쳐가는 '성육신적 인내'를 배워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숫자로 표현되는 결과보다는 선교적 삶을 살려는 구성원들의 작은 시도와 과정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 장애물은 **'성직주의와 평신도의 수동성'**이다. 오랫동안 한국 교회는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구조 속에서 운영되어 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평신도들은 사역의 주체라기보다는 목회자의 지시를 따르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인식되기 쉬웠다. 모든 성도를 선교사로 세우고 리더십을 위임하는 선교적 소그룹의 방식은 이러한 전통적인 권위 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선교적 소그룹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교회 전체의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총체적인 개혁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담임목사가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평신도 리더들을 신뢰하고 세워주는 '섬기는 리더십'으로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2. 한국 교회의 적용을 위한 제언
이러한 도전들을 극복하고 한국 교회 상황에 선교적 소그룹을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점진적이고 유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교회 전체를 한 번에 바꾸려는 급진적인 시도는 큰 저항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대신, 선교적 교회의 비전에 동의하는 소수의 리더들과 함께 몇 개의 '파일럿 소그룹'을 시작하여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작은 성공 사례들이 점차 교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둘째,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선교적 삶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신학적, 실천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체계적인 훈련 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특히 소그룹 리더들을 선교사형 리더로 재교육하고, 그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재충전할 수 있는 정기적인 모임과 코칭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교회의 모든 사역을 '선교'라는 렌즈로 재평가해야 한다.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은 소그룹 사역만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의 예배, 교육, 재정 사용, 건물 활용 등 모든 영역이 '우리는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선교적 목적에 부합하도록 재조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교회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교회 내부 운영이 아닌 지역 사회를 섬기는 데 사용하거나, 주중에 비어있는 교회 공간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개방하는 등의 시도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총체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선교적 소그룹은 더욱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다.
3. 미래 교회의 소망: 흩어지는 작은 공동체들의 네트워크
미래 사회는 점점 더 파편화되고 개인화될 것이다. 거대 담론보다는 진정성 있는 관계와 작은 이야기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지역 사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고 역동적인 선교적 공동체들의 네트워크로서의 교회 모델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안이 될 것이다.
선교적 소그룹은 단순히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교회의 가장 원초적이고 성경적인 본질, 즉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예수의 제자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회복하는 길이다. 건물 중심의 거대 교회가 감당할 수 없는 세밀한 돌봄과 성육신적 섬김을 작은 공동체들은 감당할 수 있다. 세상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어떤 위기 속에서도 복음의 생명력을 확산시킬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지니고 있다.
미래 교회의 희망은 더 크고 화려한 건물이나 더 세련된 프로그램에 있지 않다. 그 희망은 평범한 성도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것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작은 공동체들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 각자의 이웃과 직장, 학교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선교적 소그룹들이 마치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처럼 세상 곳곳에서 빛을 발할 때, 세상은 그 빛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결론: 다시, 교회의 본질을 향하여
지금까지 우리는 21세기 교회가 직면한 위기 앞에서, 그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신학적 탐구로서 '선교적 교회론'을 살펴보았다. 선교는 교회의 선택 사항이 아닌 존재 이유이며, 그 기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이 위대한 비전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낼 가장 효과적인 구조이자 생명 단위가 바로 '소그룹'임을 논증했다.
선교적 교회와 소그룹의 만남은 단순히 두 개의 좋은 프로그램을 결합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신학적 결단이자 실천적 모험이다. 이는 교회의 중심을 '안'에서 '밖'으로, '모이는 것'에서 '흩어지는 것'으로, '성직자 중심'에서 '모든 성도의 사역'으로 옮기는 거대한 여정이다. 이 여정 속에서 소그룹은 더 이상 주일 예배의 부속물이 아닌, 선교의 최전선에 서는 전투 소대이자,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작은 천국 공동체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이 길은 쉽지 않다. 익숙한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불편함과 새로운 시도에 따르는 위험 부담이 있다. 내향성의 중력과 성과주의의 유혹은 끊임없이 우리를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과 지혜를 주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완벽한 전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흐름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선교적 소그룹은 바로 그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통로이다. 각각의 소그룹이 자신들이 속한 작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작은 등불이 될 때, 그 작은 불빛들이 모여 세상을 밝히는 거대한 빛의 네트워크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기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부흥을 꿈꾸는 교회가 붙잡아야 할 소망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사명이다. 이제 교회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냄 받은 백성들의 작은 공동체로, 살아있는 복음의 편지로, 세상 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