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비즈니스 살아남기
6.’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 성경이 말하는 정직한 부의 축적 과정
단기간에 큰 성공을 이루려는 조급함은 무리한 투자, 편법, 비윤리적 선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성경은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잠 28:20)고 경고하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여 차곡차곡 쌓아가는 부를 긍정합니다. 과정의 정직함을 지키는 것이 결과의 풍성함보다 더 중요합니다.

주제 6: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 성경이 말하는 정직한 부의 축적 과정
Topic 6: The Desire to Get Rich Quick: The Bible's Process for Honest Wealth Accumulation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잠언 13:11)
서론: '벼락부자'를 꿈꾸는 시대의 유혹
우리는 '일확천금'과 '벼락부자'의 신화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투자로 하룻밤 사이에 억만장자가 된 청년의 이야기, 주식 시장에서 소위 '대박'을 터뜨려 조기에 은퇴한 사람들의 소식이 미디어를 통해 연일 쏟아져 나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고,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FOMO, Fear Of Missing Out)을 증폭시킵니다. 그리고 이 조급함은 '빨리 부자가 되려는 욕심'이라는 강력한 유혹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신앙인들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재물의 복"을 구하면서도, 그 복이 마치 로또 당첨처럼 어느 날 갑자기 기적적으로 임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정직한 노동과 성실한 저축이라는 전통적인 가치는 어리석고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고, 더 빠르고 더 쉬운 길을 찾으려는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빨리 부자가 되려는 욕심'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하며,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이 글은 '벼락부자'를 꿈꾸는 시대의 유혹에 맞서, 성경이 일관되게 가르치는 '정직한 부의 축적 과정'이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왜 빨리 부자가 되려는 욕심이 위험한지 그 본질을 파헤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의 축적 원리가 '속도'가 아닌 '과정'에 있음을 밝힐 것입니다. 이 여정은 단순히 재테크의 기술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간관, 노동관, 그리고 재물관 전체를 하나님의 성품에 맞추어 재조정하는 근본적인 신앙 훈련의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조급함의 유혹을 이기고, 성실한 청지기로서 견고하게 부를 쌓아가는 지혜와 방향을 얻게 될 것입니다.
1. Who (누가) 이 욕심에 흔들리는가?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와 계층의 마음을 파고드는 보편적인 유혹입니다.
첫째, 미래가 불안한 청년 세대가 이 유혹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불안정한 일자리,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성실한 월급만으로는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은 자본으로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유혹하는 주식 단타매매, 암호화폐, 심지어는 불법적인 금융 다단계에 쉽게 빠져듭니다. SNS를 통해 접하는 친구들의 화려한 성공담은 이들의 조급함에 불을 지피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무리한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서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빨리 부자 되기'는 단순한 욕심을 넘어, 절망적인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처럼 보입니다.
둘째, 경제적 위기에 처한 중장년층 역시 절박함 때문에 이 유혹에 쉽게 무너집니다. 갑작스러운 실직, 사업 실패, 자녀의 학자금이나 결혼 자금 마련 등 예상치 못한 재정 압박에 직면했을 때, 오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회복할 여유가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 절박함은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고수익 보장'이라는 허황된 약속을 내거는 사기성 투자나 투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한순간의 위기 앞에서, 그동안 지켜왔던 정직과 성실의 원칙을 버리고 위험한 지름길을 선택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어느 정도 부를 이룬 사업가나 투자자들도 이 욕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들은 더 큰 부를 향한 '탐욕' 때문에 유혹에 빠집니다. 이미 안정적인 부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더 큰 부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만족하지 못하고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성공을 갈망합니다. 안정적인 가치 투자보다는 변동성이 큰 파생 상품이나 검증되지 않은 신사업에 거액을 투자하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이들의 욕심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아니라, '자기 과시'와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종종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파멸의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은 가난한 자의 절박함, 중산층의 불안감, 그리고 부자의 탐욕이라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 모두를 유혹합니다. 이는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불안, 시기, 탐욕과 같은 죄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영적인 싸움입니다.
2. What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가? - '투기(Speculation)'와 '축적(Accumulation)'의 근본적 차이
성경이 경고하는 것은 '부' 그 자체가 아니라 '부를 얻으려는 방식과 태도'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부추기는 '투기'와 성경이 가르치는 '축적'의 근본적인 차이를 분별해야 합니다.
'빨리 부자 되기'의 본질: 투기 (Speculation)
투기는 노동과 가치 창출의 과정을 건너뛰고, 오직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만을 노리는 행위입니다. 그 밑바탕에는 탐욕과 요행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가치의 원천: '노동'이나 '실질적인 가치 창조'가 아닌, '운(Luck)'과 '타이밍'에 의존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시장의 변동성을 예측하고 베팅하는 것뿐,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거나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습니다.
동기: '탐욕(Greed)'과 '시기(Envy)'가 주된 동력입니다. "남들이 저렇게 쉽게 버는데 나도 뒤처질 수 없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부의 목적은 종종 과시와 쾌락을 위한 것입니다.
과정: '인내'가 없습니다.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는 '조급함'이 그 특징입니다. 시장의 작은 변동에도 일희일비하며, 과정의 수고로움보다는 결과의 짜릿함에 중독됩니다.
성경적 관점: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잠언 28:22). 성경은 일하지 않고 얻으려는 부, 즉 불로소득에 대한 탐욕을 일관되게 경고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땀 흘려 일하고 그 소산을 먹으라'는 창조 질서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정직한 부'의 본질: 축적 (Accumulation)
축적은 성실한 노동과 지혜로운 관리를 통해 점진적으로 부를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그 밑바탕에는 성실과 인내, 청지기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가치의 원천: '성실한 노동'과 고객 및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가치 창조'에 기반합니다. 부는 이러한 가치 창조 활동에 대한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동기: '청지기적 사명(Stewardship)'과 '책임감'이 주된 동력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시간과 재능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더 유익하게 할까?"를 고민합니다. 부의 목적은 가족을 부양하고, 이웃을 도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과정: '인내'와 '성실'이 핵심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일하고, 아끼며, 저축하고, 지혜롭게 투자하는 '점진적인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고 오랜 시간 기다려 열매를 거두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적 관점: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언 10:4).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잠언 13:11). 성경은 꾸준하고 성실한 노동을 통해 얻는 부를 하나님의 축복이자 지혜의 결과로 인정하고 칭찬합니다.
결국, 투기와 축적의 가장 큰 차이는 '과정'을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투기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훔치려는 도둑의 심보와 같고, 축적은 땀 흘려 밭을 가는 농부의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정의 신실함을 통해 우리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그 결과로 주어지는 부를 선하게 관리할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되기를 원하십니다.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그것이 돈을 우상으로 삼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성숙한 청지기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과정을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3. When (언제) 이 욕심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가?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은 특정 시기에 더욱 강력한 유혹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평소에 견지하던 신앙의 원칙들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첫째, '사회 전체가 투기 광풍에 휩싸일 때' 우리는 '나만 뒤처진다'는 극심한 불안감에 빠집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거나 특정 주식, 암호화폐가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주변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우리는 조급해집니다. "지금이라도 이 흐름에 올라타지 않으면 평생 가난을 면치 못할 것 같다"는 공포가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킵니다. 이때, 성경이 말하는 정직한 축적의 과정은 너무나 더디고 어리석은 길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대중적 광기(Mass Hysteria)'의 순간에, 신앙의 원칙을 지키며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마치 거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은 영적인 분투를 요구합니다.
둘째, '인생의 큰 전환기나 재정적 압박이 심할 때' 우리는 지름길을 찾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낍니다. 결혼, 주택 구입, 자녀 출산과 같이 목돈이 필요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맞았을 때, 월급만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막막함을 느낍니다. 또한, 사업 실패나 실직으로 인해 당장 생계가 막막해졌을 때, 정상적인 방법으로 재기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바로 이런 절박함의 순간에 "이번 한 번만"이라는 생각으로 위험한 투자에 손을 대거나, 심지어는 비윤리적인 방법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셋째, '가시적인 성공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을 때' 이 욕심은 '교만'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옵니다.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빠른 성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보상 심리가 강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 '부'는 생존의 수단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트로피가 됩니다. 이러한 동기는 과정의 정직성보다는 결과의 화려함에 집착하게 만들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길로 우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은 사회적 광기, 개인적 절박함, 그리고 내면의 교만이라는 세 가지 상황 속에서 극대화됩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감정적인 충동에 휩쓸리지 않고, 잠시 멈추어 서서 성경이 말하는 변치 않는 부의 원칙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 '빨리 부자 되기'의 신화는 만들어지고 유통되는가?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을 부추기는 메시지는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으며, 심지어는 거룩해야 할 교회의 강단에서까지 발견되기도 합니다.
첫 번째 공장은 '대중 매체와 소셜 미디어' 입니다. TV와 유튜브는 평범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인생 역전에 성공한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확산시킵니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성공의 화려한 결과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뿐, 그 이면에 있었을지 모를 수많은 실패와 고통의 과정, 혹은 운적인 요소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성공적이고 행복한 모습만을 편집하여 전시하고, 우리는 그 편집된 이미지를 보며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비교하며 박탈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은 우리에게 "성공은 빠르고 화려해야 한다"는 왜곡된 환상을 심어주고,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게 만듭니다.
두 번째 현장은 '금융 시장과 투자 업계' 입니다. 주식 시장과 암호화폐 시장은 본질적으로 단기적인 가격 변동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는 곳입니다. 특히 일부 증권사나 투자 플랫폼은 "수수료 무료", "레버리지 극대화"와 같은 구호를 내세우며 사람들의 단기 투기 심리를 적극적으로 부추깁니다. 또한, 검증되지 않은 투자 정보를 '고급 정보'인 것처럼 포장하여 유포하고, 특정 종목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어 순진한 개인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장기적인 가치 투자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장소는 안타깝게도 '기복주의에 물든 일부 교회의 강단' 입니다. 일부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부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설교를 통해 교회의 성장을 꾀하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물질의 복을 쏟아 부어주신다"는 식의 메시지는, 성경이 말하는 인내와 성실의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을 약속하는 '영적 투기'를 조장합니다. 헌금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투자'로 묘사하며, "많이 심을수록 몇십 배로 돌려받는다"고 강조하는 것은, 신성한 헌신의 행위를 자신의 부를 위한 이기적인 거래 행위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도들로 하여금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게 만드는 심각한 영적 오류를 낳습니다.
이처럼 미디어, 시장, 그리고 심지어 교회까지, 우리 사회의 많은 영역이 합세하여 '빨리, 쉽게, 많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음 속에서 '천천히, 정직하게, 꾸준히'라는 성경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분별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5. Why (왜) 우리는 '정직한 과정'보다 '빠른 결과'에 끌리는가?
인간의 마음이 성실하고 점진적인 과정보다 빠르고 손쉬운 결과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데에는 몇 가지 깊은 심리적,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죄로 인한 인내심의 상실' 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즉각적인 만족'을 선택했습니다. 이처럼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조급함에 따라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성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인스턴트 문화'와 결합하여 더욱 강화됩니다. 우리는 빠른 배송, 빠른 인터넷, 빠른 결과에 익숙해져 있으며, 오랜 시간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급함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오랜 시간의 훈련과 연단을 통해 인격을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답답하게 여기고, 즉각적인 응답과 기적만을 구하게 만듭니다.
둘째,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가치관의 붕괴' 때문입니다. 성경은 노동을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거룩하고 신성한 행위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은 이후, 노동은 즐거운 창조 활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수고가 되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심화시켜, 노동의 과정이 주는 의미와 보람보다는,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돈'에만 모든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가능한 한 노동을 적게 하고 돈은 많이 버는 것을 '현명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번다'는 불로소득에 대한 환상은 바로 이러한 노동 가치관의 붕괴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셋째, '부를 통해 얻으려는 엉뚱한 기대' 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돈 자체가 우리에게 행복, 안정감, 자유,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핍감을 빨리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부를 향해 질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참된 만족과 평안은 재물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온다고 가르칩니다. 부는 이러한 것들을 얻는 데 도움을 주는 유용한 '도구'일 수는 있지만,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이나 '근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부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성찰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돈의 노예가 되어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다가 인생을 허비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빠른 결과'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하나님의 시간표를 불신하는 영적 조급함, 과정의 가치를 잃어버린 왜곡된 노동관, 그리고 돈에 대한 헛된 기대를 품고 있는 우상숭배적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정직하고 꾸준한 부의 축적 과정이 주는 참된 기쁨과 유익을 누릴 수 없습니다.
6. How (어떻게) '정직한 부의 축적'을 실천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의 유혹을 이기고 성경적인 부의 축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재테크 기술이 아닌 장기적인 삶의 태도와 습관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방법론 1: '농부의 영성(Farmer's Spirituality)'으로 부를 경작하기
성경이 말하는 부의 축적 과정은 투기꾼의 한탕주의가 아니라, 사계절의 순리를 따라 묵묵히 밭을 가는 '농부의 영성'과 같습니다.
봄 (개간과 파종): 모든 농사는 굳은 땅을 갈아엎는 고된 준비(개간)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전문성을 쌓으며, 시장을 연구하는 '준비의 시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씨앗을 뿌립니다(파종). 이는 자신의 시간과 자본을 사업이나 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당장의 열매가 보이지 않더라도, 미래를 신뢰하며 인내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름 (경작과 인내): 씨앗을 뿌린 후에는 김을 매고, 거름을 주며, 해충을 잡는 꾸준한 '관리의 시간'(경작)이 이어집니다. 이는 매일의 업무를 성실하게 감당하고,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며, 비즈니스를 꾸준히 개선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묵묵히 땀 흘리는 인내 없이는 가을의 풍성함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을 (수확과 감사): 오랜 수고 끝에 마침내 열매를 거둡니다(수확). 정직한 노동을 통해 얻은 부는 바로 이 결실에 해당합니다. 이때 농부는 모든 열매가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겨울 (쉼과 나눔): 수확 후에는 땅을 쉬게 하고, 거둔 곡식을 이웃과 나누며 다음 농사를 준비합니다(쉼과 나눔). 이는 벌어들인 부를 통해 안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청지기로서 이웃과 사회에 흘려보내며, 새로운 투자를 계획하는 지혜에 해당합니다.
방법론 2: '점진적 축적(Gradual Accumulation)'의 3대 원칙
잠언이 강조하는 "손으로 모으는" 삶은 구체적으로 다음 세 가지 습관을 통해 실천됩니다.
성실 (Diligence): 부의 가장 큰 원천은 '성실한 노동'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탁월하게 감당하여 꾸준한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 모든 부의 축적의 출발점입니다. 로또나 대박을 꿈꾸기 전에, 내가 지금 하는 일에서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검소 (Frugality): "적게 버는 것이 가난의 원인이 아니라, 많이 쓰는 것이 가난의 원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입의 범위 안에서 지출을 통제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검소함'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이는 인색함이 아니라, 더 중요한 목적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절제하는 지혜입니다.
저축과 투자 (Saving and Investment): 성실과 검소를 통해 마련된 종잣돈(Surplus)을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저축'하고 지혜롭게 '투자'하여 돈이 스스로 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때 투자는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가 아니라,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보고 장기적으로 동행하는 '가치 투자'가 되어야 합니다.
방향 제시: '속도'가 아닌 '방향'과 '과정'을 중시하는 청지기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얼마나 빨리 부자가 되는가'라는 속도의 경쟁에서 벗어나, '어떤 방향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가'라는 성품의 경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기간에 큰 부자가 되는 것보다, 오랜 시간 정직하고 성실한 과정을 통해 그 부를 선하게 관리할 만한 '성숙한 인격의 그릇'으로 준비되기를 더 원하십니다. 정직한 부의 축적 과정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과정이 아니라, 인내, 성실, 절제, 감사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신앙 훈련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빨리 부자 되려는 욕심'이라는 시대의 우상 앞에서, 우리는 감히 '느리고 정직한 길'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길의 끝에는 단순히 재정적인 풍요뿐만 아니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을 닮은 성품이라는 진정한 보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