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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비즈니스 살아남기 

20.안식의 원리 무시: 일중독이 어떻게 영성과 창의성을 파괴하는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면서 '쉼'을 죄악시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이레째에 안식하심으로 쉼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재충전 없는 노동은 결국 우리의 영성과 건강, 창의성을 모두 소진시킵니다. 거룩한 멈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더 멀리 뛸 힘을 얻습니다.

주제 20: 안식의 원리 무시: 일중독이 어떻게 영성과 창의성을 파괴하는가

Topic 20: Ignoring the Principle of Sabbath: How Workaholism Destroys Spirituality and Creativity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마가복음 2:27)

서론: '멈춤'을 잃어버린 시대의 비극, 번아웃
일요일 밤 11시, 성공한 크리스천 CEO로 알려진 그의 사무실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습니다. 그는 주말 내내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월요일 아침에 있을 회의를 준비하며 지친 몸을 커피로 달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의 이런 모습을 '열정'과 '성실'의 증거라며 칭찬하고, 교회에서는 그의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의 예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내면은 이미 오래전에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번아웃(Burnout)' 상태입니다. 기도는 일에 대한 청구서처럼 변해버렸고, 성경을 읽을 마음의 여유도 없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창의력은 완전히 고갈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일중독(Workaholism)'이라는 현대의 우상에 사로잡힌 많은 크리스천 리더들의 비극적인 초상입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마치 신앙적인 미덕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어진 사명을 위해"라는 거룩한 명분 아래, 하나님께서 창조의 6일보다 더 중요하게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일곱째 날의 '안식(Sabbath)'의 원리를 무시하고 짓밟습니다. 헌신으로 포장된 이 불순종은, 결국 우리의 영성과 창의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날개를 부러뜨려,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추락하게 만듭니다.

이 글은 '쉼은 곧 게으름'이라는 세상의 거짓말과, '일중독은 곧 헌신'이라는 영적인 자기기만을 모두 거부하고, 성경이 말하는 '안식'의 진정한 의미와 능력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왜 안식의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며, 동시에 가장 어리석은 경영 전략인지를 밝힐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안식이 어떻게 우리의 파괴된 영성과 창의성을 회복시키고, 우리를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성공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리와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은 멈춤의 기술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진정한 쉼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힘을 얻는 법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1. Who (누가) '일중독'이라는 우상에 빠지는가?
안식 없이 일에만 매달리는 일중독의 문제는,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일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영적인 질병입니다.

첫째, '사명감'이 지나쳐 자신을 돌보지 않는 리더가 이 함정에 빠집니다. 이들은 "내가 하는 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는 강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숭고한 동기 때문에, 자신의 휴식과 건강을 챙기는 것을 이기적인 행위로 여기며 죄책감을 느낍니다. "내가 쉬면 이 중요한 일이 멈춘다"는 생각에, 자신을 희생하며 끊임없이 채찍질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자신을 소진시켜, 장기적으로는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하나님의 사명 자체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드는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둘째, '불안' 때문에 일을 멈추지 못하는 리더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안정감을 자신의 '성과'와 '업적'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일을 하지 않고 쉬고 있으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낍니다. "내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경쟁사에게 뒤처질 거야", "내가 모든 것을 챙기지 않으면 회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거야"라는 두려움이 그를 쉴 수 없게 만듭니다. 이들에게 일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는 유일한 수단이자, 닥쳐올지 모르는 실패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마약과도 같습니다.

셋째,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족쇄에 묶인 현대의 모든 직장인들입니다. 과거에는 퇴근하여 집의 문을 닫는 순간 일과의 물리적인 단절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이메일을 확인하고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상시 연결(Hyper-connected)'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일과 삶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일과 안식을 의식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의 노예가 되어버리게 만듭니다.

결론적으로, 일중독은 사명감, 불안감, 그리고 기술적 환경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현대의 가장 강력한 우상숭배 중 하나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 대신 '일'을 올려놓고, 그 우상에게 우리의 건강과 관계, 그리고 영혼까지 제물로 바치는 행위입니다.

2. What (무엇이) '성경적 안식'의 핵심인가? - '멈춤', '쉼', 그리고 '누림'
많은 사람들이 '안식'을 단순히 '일하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안식은 '노동의 부재(Absence of work)' 상태를 넘어, 훨씬 더 적극적이고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진정한 안식은 '멈춤', '쉼', 그리고 '누림'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됩니다.

1. 멈춤 (Stop / Cease): 신뢰의 선언

안식의 첫 번째 단계는, 이익을 창출하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의도적인 '노동'을 의식적으로 '멈추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피곤해서 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본질: '멈춤'은 "내가 6일 동안 성실히 일했으니, 이제 나머지 하루는 내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나의 비즈니스를 붙드실 것을 믿습니다"라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의 선언' 입니다. 이는 내 힘으로 나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과 강박에서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실천: 일과 관련된 모든 도구(컴퓨터, 업무용 스마트폰 등)를 내려놓고, 일에 대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입니다.

2. 쉼 (Rest / Replenish): 회복의 선물

'멈춤'이 만들어준 빈 공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고갈된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을 회복시키는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질: '쉼'은 다음 주의 더 많은 노동을 위한 '재충전'의 개념을 넘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신 것처럼, 쉼은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주신 치유와 회복의 '선물' 입니다.

실천: 충분한 잠을 자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가족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자연 속을 산책하는 등, 우리의 몸과 마음에 진정한 재충전을 주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3. 누림 (Delight / Worship): 관계의 축제

진정한 안식의 완성은 '멈춤'과 '쉼'을 넘어, 하나님과 그의 창조 세계를 마음껏 '누리고 즐거워하는' 예배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질: '누림'은 우리의 존재 목적이 '일하는 것(Doing)'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거하는 것(Being)'임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일이 주는 성취감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 자체에서 오는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게 됩니다. 안식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기념하는 '축제' 입니다.

실천: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거나, 좋은 친구들과 교제하고,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등,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채우는 활동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은 일을 멈추는 소극적인 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멈춤'), 그분의 돌보심 안에서 회복하며('쉼'), 그분과의 관계를 마음껏 즐거워하는('누림') 가장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신앙의 실천입니다.

3. When (언제) '안식'의 유혹은 가장 뿌리치기 힘든가?
안식의 중요성을 머리로는 알지만, "이번 한 주만 더..."라고 말하며 안식을 뒤로 미루게 만드는 유혹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첫째, '일이 가장 잘 될 때' 우리는 멈추기를 두려워합니다. 사업이 승승장구하고, 새로운 기회들이 밀려 들어올 때, 우리는 이 기세와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며 쉼 없이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성공의 짜릿함과 성취감은 일중독이라는 마약의 가장 강력한 유인책입니다. 그러나 이때 멈추지 않으면, 우리의 성공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결국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의지하게 만드는 영적인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일이 가장 안 될 때' 우리는 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거나, 중요한 마감일에 쫓길 때, 우리는 불안감 때문에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어떻게 한가하게 쉴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를 책망하며,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일해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치고 탈진한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은 종종 최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일수록, 한 걸음 물러나 안식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위기관리 전략일 수 있습니다.

셋째, '경쟁이 극도로 치열할 때' 우리는 쉬는 것을 뒤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사가 밤낮없이 일하며 우리를 추격해 올 때, 우리가 잠시라도 쉬면 영원히 따라잡힐 것 같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비즈니스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사실입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오버페이스를 하다가 쓰러지는 것보다,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결국 최종 승자가 됩니다. 안식은 경주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주하기 위한 필수적인 '페이스 조절' 기술입니다.

이처럼 성공의 정점에서, 위기의 순간에,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일해야 한다'는 세상의 목소리는 가장 크고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이 목소리를 거슬러 '멈춤'을 선택하는 것은, 세상의 지혜를 거스르는 가장 용기 있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일중독을 숭배하는 문화'는 비롯되는가?
오늘날 '쉼'을 죄악시하고 '일중독'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는 어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원천은 '과로를 명예로운 훈장으로 여기는 허슬 컬처(Hustle Culture)' 입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스타트업 문화와 소셜 미디어는, "잠을 줄여가며 일에 미쳐라", "주말에도 일하는 당신이 진정한 승자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유포합니다. 밤늦게까지 사무실 불을 밝히고, 휴가도 반납한 채 일하는 모습은 '열정과 헌신'의 상징으로 칭송받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정시에 퇴근하고 주말에 푹 쉬는 사람은 열정이 부족하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습니다.

두 번째 원천은 '성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 입니다. "당신이 이룬 것이 곧 당신 자신(You are what you achieve)"이라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가치는 오직 우리의 성과와 업적을 통해서만 증명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은 곧 '아무 가치 없는 존재'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져, 우리에게 깊은 존재론적 불안감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줄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쉼 없이 일의 쳇바퀴를 돌리게 됩니다.

세 번째 원천은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적 신앙' 입니다. 이는 세속적인 능력주의가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해야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은, 우리를 '영적인 일중독'에 빠지게 만듭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직분과 봉사를 감당하며 자신을 소진시키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신뢰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의 인정을 얻어내려는 불신앙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세속적인 허슬 컬처, 능력주의, 그리고 종교적인 율법주의가 결합하여, 우리로 하여금 안식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든 일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만드는 강력한 '과로 사회'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5. Why (왜) 안식의 파괴는 '영성'과 '창의성'을 파괴하는가?
안식의 원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왜 우리의 신앙과 비즈니스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요?

영성을 파괴하는 이유

첫째, 안식의 포기는 하나님에 대한 '교만'이자 '불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 없이 일한다는 것은,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혹은 내 회사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세상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또한, 쉼을 통해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미래를 통제하려는 불신의 표현입니다. 안식은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 것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겸손'과 '신뢰'의 훈련입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공간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관계는, 바쁜 일과 속에서 틈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어 그분 앞에 잠잠히 머무는 '멈춤'의 시간을 통해 깊어집니다. 일에 중독된 사람은 기도할 때조차도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마음의 여백이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비즈니스를 돕는 '조력자'로 전락하고, 삶의 중심에는 일이 자리 잡게 되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창의성을 파괴하는 이유

첫째, 뇌과학적으로 '창의적인 통찰'은 '쉼' 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한 가지 문제에 고도로 집중하는 '집중 모드'와, 특별한 목적 없이 자유롭게 생각들이 연결되는 '분산 모드(혹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쳤던 것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집중 모드'가 아닌 '분산 모드' 상태, 즉 산책하거나, 샤워하거나, 멍하니 있을 때 번쩍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쉼 없이 일만 하는 것은 우리의 뇌를 '집중 모드'에만 가두어, 창의성의 샘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둘째, '번아웃'은 '관점의 축소'를 낳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탈진한 번아웃 상태에 빠지면, 우리의 사고는 극도로 경직되고 부정적으로 변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문제의 한 단면만 집요하게 파고들며, 익숙하고 안전한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혁신은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되는데, 번아웃은 우리의 관점을 낡은 틀 안에 완전히 가두어 버립니다. 결국, 가장 혁신적이어야 할 리더가 조직의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버립니다.

결론적으로, 안식의 포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우리의 영혼을 고갈시키고, 뇌의 자연스러운 창의적 과정을 방해하여 우리의 비즈니스를 고사시킵니다. 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영혼과 비즈니스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6. How (어떻게) 21세기에 '안식의 리듬'을 회복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일중독을 숭배하는 문화 속에서, 의도적으로 '안식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일정을 계획할 때, '안식'부터 가장 먼저 기록하라

우리는 보통 일이 끝난 후 남는 시간에 쉬려고 하지만, 그런 시간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스케줄을 짤 때 가장 중요한 약속인 '안식'의 시간부터 달력에 확정해야 합니다.

'안식 블록' 설정: 일주일 중 자신만의 안식의 시간을(예: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주일 오후 6시까지) 미리 달력에 '다른 약속 불가'로 표시해 둡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사용하여 업무 계획을 세웁니다.

'디지털 안식' 실천: 정해진 안식의 시간에는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의 업무 관련 알림을 모두 끄거나, 아예 스마트폰을 멀리 두는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합니다. 이를 위해 안식일 전날, 동료나 거래처에 "내일은 연락이 안 될 수 있습니다"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방법론 2: 안식의 3요소('멈춤', '쉼', '누림')를 의도적으로 계획하라

안식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디자인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멈춤'을 위한 준비: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진행하던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다음 주에 해야 할 일 목록을 간단히 정리해 둠으로써, 쉬는 동안 일에 대한 미련이나 불안이 떠오르지 않도록 합니다.

'쉼'을 위한 계획: 나를 진정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계획합니다. 충분한 수면, 가족과의 대화, 조용한 독서, 가벼운 운동 등, 자신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쉼의 방식을 찾습니다.

'누림'을 위한 계획: 하나님과 그의 창조 세계를 즐거워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합니다. 온전히 집중하여 예배드리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산책하기, 좋아하는 취미 활동에 몰두하기,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기 등이 모두 '누림'의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방법론 3: 리더가 먼저 '안식의 모델'이 되라

조직의 문화는 리더의 모습, 특히 리더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리더가 안식의 본을 보일 때, 조직 전체에 건강한 쉼의 문화가 확산됩니다.

주말이나 휴가 중에 업무 연락을 하지 마라: 리더가 주말에 이메일을 보내면, 모든 직원들은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휴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장려하라: 리더가 먼저 자신의 휴가를 온전히 사용하고,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쉼'의 가치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라: 회의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번 주말에는 푹 쉬었더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와 같이,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쉼을 통해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는지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방향 제시: '일하는 존재'에서 '사랑받는 존재'로의 회복

궁극적으로 안식은, '무엇을 하는가(Doing)'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일하는 존재'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사랑받고 있는 '존재(Being)' 자체의 기쁨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 안식의 비밀을 누릴 때, 우리는 더 이상 일의 노예가 아니라 일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쉼을 통해 회복된 맑은 영혼과 창의적인 정신으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 일하고도 더 탁월한 성과를 내는 '하나님의 경영 방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일중독이라는 우상을 파괴하고, 안식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크리스천 리더들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주제 20: 안식의 원리 무시: 일중독이 어떻게 영성과 창의성을 파괴하는가

Topic 20: Ignoring the Principle of Sabbath: How Workaholism Destroys Spirituality and Creativity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마가복음 2:27)

서론: '멈춤'을 잃어버린 시대의 비극, 번아웃
일요일 밤 11시, 성공한 크리스천 CEO로 알려진 그의 사무실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습니다. 그는 주말 내내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월요일 아침에 있을 회의를 준비하며 지친 몸을 커피로 달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의 이런 모습을 '열정'과 '성실'의 증거라며 칭찬하고, 교회에서는 그의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의 예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내면은 이미 오래전에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번아웃(Burnout)' 상태입니다. 기도는 일에 대한 청구서처럼 변해버렸고, 성경을 읽을 마음의 여유도 없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창의력은 완전히 고갈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일중독(Workaholism)'이라는 현대의 우상에 사로잡힌 많은 크리스천 리더들의 비극적인 초상입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마치 신앙적인 미덕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어진 사명을 위해"라는 거룩한 명분 아래, 하나님께서 창조의 6일보다 더 중요하게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일곱째 날의 '안식(Sabbath)'의 원리를 무시하고 짓밟습니다. 헌신으로 포장된 이 불순종은, 결국 우리의 영성과 창의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날개를 부러뜨려,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추락하게 만듭니다.

이 글은 '쉼은 곧 게으름'이라는 세상의 거짓말과, '일중독은 곧 헌신'이라는 영적인 자기기만을 모두 거부하고, 성경이 말하는 '안식'의 진정한 의미와 능력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왜 안식의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며, 동시에 가장 어리석은 경영 전략인지를 밝힐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안식이 어떻게 우리의 파괴된 영성과 창의성을 회복시키고, 우리를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성공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리와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은 멈춤의 기술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진정한 쉼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힘을 얻는 법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1. Who (누가) '일중독'이라는 우상에 빠지는가?
안식 없이 일에만 매달리는 일중독의 문제는,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일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영적인 질병입니다.

첫째, '사명감'이 지나쳐 자신을 돌보지 않는 리더가 이 함정에 빠집니다. 이들은 "내가 하는 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는 강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숭고한 동기 때문에, 자신의 휴식과 건강을 챙기는 것을 이기적인 행위로 여기며 죄책감을 느낍니다. "내가 쉬면 이 중요한 일이 멈춘다"는 생각에, 자신을 희생하며 끊임없이 채찍질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자신을 소진시켜, 장기적으로는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하나님의 사명 자체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드는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둘째, '불안' 때문에 일을 멈추지 못하는 리더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안정감을 자신의 '성과'와 '업적'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일을 하지 않고 쉬고 있으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낍니다. "내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경쟁사에게 뒤처질 거야", "내가 모든 것을 챙기지 않으면 회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거야"라는 두려움이 그를 쉴 수 없게 만듭니다. 이들에게 일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는 유일한 수단이자, 닥쳐올지 모르는 실패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마약과도 같습니다.

셋째,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족쇄에 묶인 현대의 모든 직장인들입니다. 과거에는 퇴근하여 집의 문을 닫는 순간 일과의 물리적인 단절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이메일을 확인하고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상시 연결(Hyper-connected)'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일과 삶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일과 안식을 의식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의 노예가 되어버리게 만듭니다.

결론적으로, 일중독은 사명감, 불안감, 그리고 기술적 환경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현대의 가장 강력한 우상숭배 중 하나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 대신 '일'을 올려놓고, 그 우상에게 우리의 건강과 관계, 그리고 영혼까지 제물로 바치는 행위입니다.

2. What (무엇이) '성경적 안식'의 핵심인가? - '멈춤', '쉼', 그리고 '누림'
많은 사람들이 '안식'을 단순히 '일하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안식은 '노동의 부재(Absence of work)' 상태를 넘어, 훨씬 더 적극적이고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진정한 안식은 '멈춤', '쉼', 그리고 '누림'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됩니다.

1. 멈춤 (Stop / Cease): 신뢰의 선언

안식의 첫 번째 단계는, 이익을 창출하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의도적인 '노동'을 의식적으로 '멈추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피곤해서 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본질: '멈춤'은 "내가 6일 동안 성실히 일했으니, 이제 나머지 하루는 내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나의 비즈니스를 붙드실 것을 믿습니다"라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의 선언' 입니다. 이는 내 힘으로 나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과 강박에서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실천: 일과 관련된 모든 도구(컴퓨터, 업무용 스마트폰 등)를 내려놓고, 일에 대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입니다.

2. 쉼 (Rest / Replenish): 회복의 선물

'멈춤'이 만들어준 빈 공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고갈된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을 회복시키는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질: '쉼'은 다음 주의 더 많은 노동을 위한 '재충전'의 개념을 넘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신 것처럼, 쉼은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주신 치유와 회복의 '선물' 입니다.

실천: 충분한 잠을 자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가족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자연 속을 산책하는 등, 우리의 몸과 마음에 진정한 재충전을 주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3. 누림 (Delight / Worship): 관계의 축제

진정한 안식의 완성은 '멈춤'과 '쉼'을 넘어, 하나님과 그의 창조 세계를 마음껏 '누리고 즐거워하는' 예배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질: '누림'은 우리의 존재 목적이 '일하는 것(Doing)'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거하는 것(Being)'임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일이 주는 성취감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 자체에서 오는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게 됩니다. 안식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기념하는 '축제' 입니다.

실천: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거나, 좋은 친구들과 교제하고,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등,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채우는 활동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은 일을 멈추는 소극적인 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멈춤'), 그분의 돌보심 안에서 회복하며('쉼'), 그분과의 관계를 마음껏 즐거워하는('누림') 가장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신앙의 실천입니다.

3. When (언제) '안식'의 유혹은 가장 뿌리치기 힘든가?
안식의 중요성을 머리로는 알지만, "이번 한 주만 더..."라고 말하며 안식을 뒤로 미루게 만드는 유혹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첫째, '일이 가장 잘 될 때' 우리는 멈추기를 두려워합니다. 사업이 승승장구하고, 새로운 기회들이 밀려 들어올 때, 우리는 이 기세와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며 쉼 없이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성공의 짜릿함과 성취감은 일중독이라는 마약의 가장 강력한 유인책입니다. 그러나 이때 멈추지 않으면, 우리의 성공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결국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의지하게 만드는 영적인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일이 가장 안 될 때' 우리는 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거나, 중요한 마감일에 쫓길 때, 우리는 불안감 때문에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어떻게 한가하게 쉴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를 책망하며,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일해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치고 탈진한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은 종종 최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일수록, 한 걸음 물러나 안식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위기관리 전략일 수 있습니다.

셋째, '경쟁이 극도로 치열할 때' 우리는 쉬는 것을 뒤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사가 밤낮없이 일하며 우리를 추격해 올 때, 우리가 잠시라도 쉬면 영원히 따라잡힐 것 같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비즈니스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사실입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오버페이스를 하다가 쓰러지는 것보다,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결국 최종 승자가 됩니다. 안식은 경주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주하기 위한 필수적인 '페이스 조절' 기술입니다.

이처럼 성공의 정점에서, 위기의 순간에,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일해야 한다'는 세상의 목소리는 가장 크고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이 목소리를 거슬러 '멈춤'을 선택하는 것은, 세상의 지혜를 거스르는 가장 용기 있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일중독을 숭배하는 문화'는 비롯되는가?
오늘날 '쉼'을 죄악시하고 '일중독'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는 어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원천은 '과로를 명예로운 훈장으로 여기는 허슬 컬처(Hustle Culture)' 입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스타트업 문화와 소셜 미디어는, "잠을 줄여가며 일에 미쳐라", "주말에도 일하는 당신이 진정한 승자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유포합니다. 밤늦게까지 사무실 불을 밝히고, 휴가도 반납한 채 일하는 모습은 '열정과 헌신'의 상징으로 칭송받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정시에 퇴근하고 주말에 푹 쉬는 사람은 열정이 부족하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습니다.

두 번째 원천은 '성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 입니다. "당신이 이룬 것이 곧 당신 자신(You are what you achieve)"이라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가치는 오직 우리의 성과와 업적을 통해서만 증명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은 곧 '아무 가치 없는 존재'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져, 우리에게 깊은 존재론적 불안감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줄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쉼 없이 일의 쳇바퀴를 돌리게 됩니다.

세 번째 원천은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적 신앙' 입니다. 이는 세속적인 능력주의가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해야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은, 우리를 '영적인 일중독'에 빠지게 만듭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직분과 봉사를 감당하며 자신을 소진시키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신뢰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의 인정을 얻어내려는 불신앙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세속적인 허슬 컬처, 능력주의, 그리고 종교적인 율법주의가 결합하여, 우리로 하여금 안식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든 일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만드는 강력한 '과로 사회'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5. Why (왜) 안식의 파괴는 '영성'과 '창의성'을 파괴하는가?
안식의 원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왜 우리의 신앙과 비즈니스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요?

영성을 파괴하는 이유

첫째, 안식의 포기는 하나님에 대한 '교만'이자 '불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 없이 일한다는 것은,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혹은 내 회사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세상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또한, 쉼을 통해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미래를 통제하려는 불신의 표현입니다. 안식은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 것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겸손'과 '신뢰'의 훈련입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공간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관계는, 바쁜 일과 속에서 틈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어 그분 앞에 잠잠히 머무는 '멈춤'의 시간을 통해 깊어집니다. 일에 중독된 사람은 기도할 때조차도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마음의 여백이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비즈니스를 돕는 '조력자'로 전락하고, 삶의 중심에는 일이 자리 잡게 되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창의성을 파괴하는 이유

첫째, 뇌과학적으로 '창의적인 통찰'은 '쉼' 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한 가지 문제에 고도로 집중하는 '집중 모드'와, 특별한 목적 없이 자유롭게 생각들이 연결되는 '분산 모드(혹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쳤던 것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집중 모드'가 아닌 '분산 모드' 상태, 즉 산책하거나, 샤워하거나, 멍하니 있을 때 번쩍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쉼 없이 일만 하는 것은 우리의 뇌를 '집중 모드'에만 가두어, 창의성의 샘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둘째, '번아웃'은 '관점의 축소'를 낳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탈진한 번아웃 상태에 빠지면, 우리의 사고는 극도로 경직되고 부정적으로 변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문제의 한 단면만 집요하게 파고들며, 익숙하고 안전한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혁신은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되는데, 번아웃은 우리의 관점을 낡은 틀 안에 완전히 가두어 버립니다. 결국, 가장 혁신적이어야 할 리더가 조직의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버립니다.

결론적으로, 안식의 포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우리의 영혼을 고갈시키고, 뇌의 자연스러운 창의적 과정을 방해하여 우리의 비즈니스를 고사시킵니다. 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영혼과 비즈니스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6. How (어떻게) 21세기에 '안식의 리듬'을 회복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일중독을 숭배하는 문화 속에서, 의도적으로 '안식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일정을 계획할 때, '안식'부터 가장 먼저 기록하라

우리는 보통 일이 끝난 후 남는 시간에 쉬려고 하지만, 그런 시간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스케줄을 짤 때 가장 중요한 약속인 '안식'의 시간부터 달력에 확정해야 합니다.

'안식 블록' 설정: 일주일 중 자신만의 안식의 시간을(예: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주일 오후 6시까지) 미리 달력에 '다른 약속 불가'로 표시해 둡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사용하여 업무 계획을 세웁니다.

'디지털 안식' 실천: 정해진 안식의 시간에는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의 업무 관련 알림을 모두 끄거나, 아예 스마트폰을 멀리 두는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합니다. 이를 위해 안식일 전날, 동료나 거래처에 "내일은 연락이 안 될 수 있습니다"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방법론 2: 안식의 3요소('멈춤', '쉼', '누림')를 의도적으로 계획하라

안식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디자인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멈춤'을 위한 준비: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진행하던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다음 주에 해야 할 일 목록을 간단히 정리해 둠으로써, 쉬는 동안 일에 대한 미련이나 불안이 떠오르지 않도록 합니다.

'쉼'을 위한 계획: 나를 진정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계획합니다. 충분한 수면, 가족과의 대화, 조용한 독서, 가벼운 운동 등, 자신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쉼의 방식을 찾습니다.

'누림'을 위한 계획: 하나님과 그의 창조 세계를 즐거워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합니다. 온전히 집중하여 예배드리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산책하기, 좋아하는 취미 활동에 몰두하기,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기 등이 모두 '누림'의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방법론 3: 리더가 먼저 '안식의 모델'이 되라

조직의 문화는 리더의 모습, 특히 리더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리더가 안식의 본을 보일 때, 조직 전체에 건강한 쉼의 문화가 확산됩니다.

주말이나 휴가 중에 업무 연락을 하지 마라: 리더가 주말에 이메일을 보내면, 모든 직원들은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휴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장려하라: 리더가 먼저 자신의 휴가를 온전히 사용하고,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쉼'의 가치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라: 회의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번 주말에는 푹 쉬었더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와 같이,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쉼을 통해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는지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방향 제시: '일하는 존재'에서 '사랑받는 존재'로의 회복

궁극적으로 안식은, '무엇을 하는가(Doing)'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일하는 존재'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사랑받고 있는 '존재(Being)' 자체의 기쁨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 안식의 비밀을 누릴 때, 우리는 더 이상 일의 노예가 아니라 일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쉼을 통해 회복된 맑은 영혼과 창의적인 정신으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 일하고도 더 탁월한 성과를 내는 '하나님의 경영 방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일중독이라는 우상을 파괴하고, 안식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크리스천 리더들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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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M 세계인터넷선교협의회는 (KWMA소속단체) 1996년 창립한 선교단체로, 인터넷과 IT를 활용하여 30여 년간 세계선교에 기여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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