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안녕하십니까?
2. 신앙과 정신 건강의 통합적 돌봄 필요성 419

신앙과 정신 건강의 통합적 돌봄 필요성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 건강에 대한 필요와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울증, 불안장애, 번아웃, 중독, 자살 충동 등 정신적 위기 상황은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겪는 구조적 스트레스와 개인의 상처, 감정적 결핍은 교회 안에도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문제는, 많은 교회가 이런 상황 앞에서 영혼은 돌보지만 마음은 외면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은 강조되지만,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나 실천은 미비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성도들이 신앙은 유지하면서도 심리적 고통 속에서 홀로 싸우고, 때로는 신앙마저 포기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제 교회는 단순한 권면이나 기도만으로는 부족한 시대 앞에 서 있습니다. 신앙과 정신 건강을 통합적으로 돌보는 접근이 시급하며, 교회가 그 사역의 전면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1. 왜 신앙과 정신 건강이 함께 다뤄져야 하는가?
성경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감정, 사고, 관계, 의지, 몸과 영혼을 통합한 존재다. 따라서 신앙은 단지 영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인(全人)을 다루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만나실 때 단지 ‘믿음을 가지라’고 하신 것만이 아니다. 그는 아픈 사람을 고치셨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셨으며, 두려워 떠는 자에게 다가가셨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침묵으로 동행하셨습니다. 신앙이란 삶의 모든 차원을 회복하는 과정이며, 여기에 감정과 정신도 포함됩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깊은 불안과 우울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영적 훈계가 아닙니다. 심리적 고통의 이해, 정서적 지지, 공동체의 안정감,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 안에서 자신의 아픔이 안전하게 수용될 수 있는 경험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앙과 정신 건강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돌봄이 필요합니다.
2. 이분법의 함정 – ‘영적 문제 vs. 정신 문제’
많은 교회에서 정신 건강의 문제를 다룰 때 영적 프레임만으로 해석하는 오류가 발생합니다. 우울증은 ‘죄책감 부족’으로, 불안은 ‘기도 부족’으로, 중독은 ‘영적 게으름’으로 환원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당사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기며, 정작 회복의 길을 막습니다.
반면, 세속 심리학은 인간을 전적으로 생리적, 행동적 기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또한 한계가 있다. 인간은 단순히 호르몬, 신경 전달물질,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영혼의 존재이며, 의미를 추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존재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심리학과 신앙을 적대적으로 보지 말고, 상호 보완의 관계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둘 사이에는 긴장이 있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본다면 모든 진리는 하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복잡성과 깊이를 온전히 다루기 위해서는 신학과 심리학이 협력해야 합니다.
3. 교회가 정신 건강에 침묵하면 생기는 문제들
1)고통을 감추게 만드는 분위기
“믿음이 있는데 왜 우울해요?”라는 말은 고통을 말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성도들은 점점 감정을 억누르고, 신앙 안에서조차 ‘가짜 기쁨’을 연기하게 됩니다. 그 결과, 교회는 감정의 억압 구조로 굳어지고, 신앙의 진정성은 약해집니다.
2)적절한 치료 시기의 상실
심리적 문제는 초기에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빠르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극복하라는 권면만 반복될 경우, 중증으로 발전하거나 삶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으로까지 악화될 수 있습니다.
3)영혼과 마음의 분열
사람은 통합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영혼만을 강조하면, 성도는 삶의 실제 문제와 신앙을 분리하게 되고, 이는 곧 신앙의 이중화와 피상화를 낳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전혀 회복되지 않는 삶, 찬양은 하지만 아무 변화도 없는 관계 속에서, 신앙은 점점 생명력을 잃습니다.
4. 통합적 돌봄을 위한 교회의 역할
1) 기독교 상담과 연계한 돌봄 시스템 구축
전문 기독 상담사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안전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심리적 고통과 영적 회복이 함께 이루어지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2) 정신 건강 교육과 인식 개선
리더십과 성도들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에 대한 바른 이해를 교육해야 합니다. 우울, 불안, 공황장애, 중독 등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며, 치료와 회복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확산해야 합니다.
3) 감정 표현과 정서 교류가 허용되는 문화 형성
감정을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공동체,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공동체의 깊이와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4) 설교와 사역의 감정적 공감 확장
승리만을 강조하는 메시지보다, 인간의 연약함과 실존의 고통을 공감하고 품어주는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설교 안에 눈물과 고백의 공간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5) 전인적 회복을 향한 교회의 사명
예수 그리스도는 병든 자, 고통받는 자, 외로운 자, 상한 심령을 품으셨습니다. 그의 사역은 단지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 관계와 삶 전체의 회복이었습니다. 교회가 그의 몸이라면, 교회 역시 그와 같은 사명을 품어야 합니다.
이제 교회는 단지 영혼만을 돌보는 시대에서 벗어나, 마음도 함께 돌보는 공간, 신앙과 정신 건강을 함께 이끌어가는 통합적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와 상담이 함께 숨 쉬고, 말씀과 공감이 어우러지고, 회개와 회복이 함께 일어나는 교회, 그것이 오늘날 세상이 진정으로 기다리는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