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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공동체가 되는 교회의 위기

침묵하는 공동체가 되는 교회의 위기
질문이 사라진 공동체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질문은 생각의 시작이며, 성숙의 씨앗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성도의 자유로운 질문조차 ‘신앙 없음’으로 치부되고, 참여는 허용되되 ‘결정에 대한 발언’은 용납되지 않는 구조가 만연합니다. 겉으로는 ‘열린 공동체’를 외치지만, 실상은 목회자와 핵심 리더만이 결정권을 독점하고, 성도는 말 없이 따라야 하는 수동적 순응 구조로 운영됩니다. 이처럼 질문이 억제되고 참여가 통제된 교회는 점차 건강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1. 침묵하는 성도, 말하는 교회
교회는 본래 함께 듣고, 함께 분별하고, 함께 살아내는 공동체’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단순히 예배에 참석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함께 나누고 실천하는 사역의 주체다. 성경은 모든 성도가 성령 안에서 은사를 받았고, 지체로서 교회를 이루고 있다고 선언합니다(고전 12장). 즉,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로 구분된 위계 조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가 공존하는 생명체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의 교회는 점점 단조로운 목소리만을 허용합니다. 설교는 일방향이고, 결정은 소수에 의해 내려지며, 질문은 ‘믿음 없음’으로 간주되거나 조직적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억압됩니다. 회의 자리에서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불순종’으로 낙인찍히기 쉽고, 목회자에게 의문을 제기하면 곧바로 ‘도전하는 자’, ‘말을 어지럽히는 자’로 여겨집니다.
2. 왜 성도의 질문은 불편해지는가?
성도의 질문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첫째, 교회 리더십이 권위주의적일수록, 질문은 ‘순종하지 않음’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성도의 말은 ‘듣는 것이 아니라 통제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둘째, 목회자 자신이 비판에 익숙하지 않거나 방어적 태도를 가지면, 공동체는 더욱 침묵의 분위기로 흘러갑니다. 셋째, 성장을 숫자나 안정성 중심으로만 평가하는 분위기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곧 불편한 변수로 간주됩니다. 질문은 성장의 방해물이 되고, 참여는 시간 소모로 여겨집니다.
결국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크고 체계적일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고립되고 닫힌 공간이 됩니다. 구성원들은 ‘진짜 생각’은 숨긴 채, 맞춰 주는 말만 반복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려놓는 것을 미덕처럼 배웁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조직에서나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이며, 본질적으로 열린 대화와 상호 존중, 진리를 향한 공동 분별이 이루어져야 할 장소입니다.
3. 질문 없는 교회가 초래하는 병폐
질문이 사라진 교회에는 몇 가지 심각한 병폐가 나타납니다. 진리가 독점됩니다. 목회자나 소수 리더만이 성경을 해석하고 방향을 결정하며, 다른 해석이나 관점을 나누는 시도는 차단됩니다. 책임은 위로 올라가고, 사명은 아래로 내려갑니다. 결정은 목회자가 내리지만, 실행과 헌신은 성도의 몫이 됩니다. 의견 없는 참여는 곧 착취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자율성과 창의성이 사라지고 성도는 생각하지 않고 따라야 하며, 자발적인 기획, 참여, 새로운 시도는 줄어듭니다. 공동체는 정체되고, 고루해지고, 젊은 세대는 떠나갑니다. 불의와 부정이 감춰집니다. 투명성과 공정성이 사라진 조직에서는 권력 남용, 재정 문제, 비윤리적 행동 등이 드러나기 어렵습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질문은 믿음 없음이 아니라, 믿음의 시작이다
질문은 결코 믿음 없음의 증거가 아라 오히려 질문은 진리와 깊이 만나려는 신앙의 열망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질문자’들이 등장합니다. 시편 기자는 “어찌하여 내 영혼이 이렇게 낙심하는가”를 물었고, 욥은 고통 속에서 수없이 하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끊임없이 질문했고, 예수님 자신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되묻지 않았는가요?
건강한 신앙은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문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점검하고,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마음속에 가진 의문, 불편함,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5. 참여하는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공동체다
참여 없는 교회는 조직이고, 참여하는 교회가 공동체입니다. 단지 주일 예배에 출석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체가 아니며 성도가 의견을 낼 수 있고,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설교에 대해 묻고 토론할 수 있으며, 사역 방향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동역자입니다.
리더십은 절대자가 아니라 촉진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방향을 제시하고, 말씀을 전하며, 성도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여야 합니다. 교회는 ‘나를 따라오라’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걷자’는 관계를 지향해야 합니다.
6. 회복의 길: 듣는 교회로, 나누는 교회로
이제 교회는 다시 ‘듣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목소리를 듣고, 질문을 존중하고, 참여를 환영하는 분위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실천이 가능합니다. 설교 후 질문을 나누는 소그룹 피드백 시간을 운영합니다. 교회의 정책과 재정을 함께 공유하고 논의하는 공청회, 리더 미팅을 정기화합니다. 성도들의 의견을 반영한 사역 기획 위원회를 운영하고, 세대별 대표성을 반영합니다. ‘목사님께 묻습니다’와 같은 열린 질문 게시판, 편지함, 대화 시간을 통해 질문의 통로를 엽니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 다른 의견을 용납하고 경청하는 문화를 설교와 훈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길러야 합니다.
7. 침묵이 아니라, 대화가 살아 있는 교회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교회는 듣는 공동체입니다. 목회자만 말하고, 성도는 침묵하는 구조는 결코 건강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질문, 말씀에 대한 의문, 삶의 갈등을 품은 고백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질문은 불경이 아니라 그것은 믿음의 증거이며, 공동체가 살아 있다는 징후입니다. 질문을 존중하고, 참여를 환영하는 교회만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된 모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야말로, 세상 속에서 신뢰받는 영적 공동체로 다시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