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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안녕하십니까?

제1부 1. 복음 전파와 섬김, 희생 등 초대교회의 핵심 가치 약화 40 

제1부
한국교회, 안녕하십니까? 1. 복음 전파와 섬김, 희생 등 초대교회의 핵심 가치 약화

오늘날 한국교회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면,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던 복음 전파와 섬김, 그리고 희생의 가치가 얼마나 귀하고도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교회가 건물이나 조직, 재정적 힘을 갖추게 되었음에도, 정작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겸손과 나눔, 순종과 희생의 기운이 희미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교인들끼리 “우리 교회가 정말 복음의 본질에 충실한 공동체인가?”라고 물을 때, 막연한 불안감이나 갈증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단순히 ‘역사 속의 첫 번째 교회’가 아니라, 복음이 지닌 생명력을 가장 순수하고 강력하게 체화했던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과 초대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건물이나 재정, 제도적 안전 보장 같은 세속적 힘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박해와 핍박, 생존의 위협이 일상적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복음의 기쁨을 붙들고, 담대히 이웃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유무상통(有無相通)이라는 아름다운 사랑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실현했습니다. 재산을 팔아 공동체에 바치고, 과부와 고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심지어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위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는 열정과 믿음은 교인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고, 세상은 “도대체 저들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가?”라며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교회가 여러 제도적 안정을 갖추고, 때론 세상의 칭찬과 주목을 받게 되면서부터, 역설적으로 복음 전파와 섬김, 희생의 정신이 옅어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많은 교회가 외형적 성장과 프로그램 확충에만 몰두하고, 개교회주의적인 경쟁 구도에 빠져 버린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새 신자를 대하는 태도조차 ‘영혼을 돌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합니다.’기보다, ‘우리 교회를 키우는 한 사람의 숫자’로 여기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교회 내부에서도 서로를 섬기고 나누기보다, 직분이나 명예를 두고 다투거나, 물질적 축복만 강조하는 기복적 분위기를 경계 없이 받아들이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복음 전파와 섬김, 희생은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정체성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것입니다. 교회론(Ecclesiology)에서 말하듯,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 땅에서 계속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와 약자를 돌보시고, 십자가에 달려 자신을 희생하시면서까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회 역시,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스스로 낮아지고 헌신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가 언제나 ‘내가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만 고민한다면, 그것은 예수의 길이 아닌 세상의 길입니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볼 때는 손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복음의 시각에서는 섬김과 희생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이요, 영적 생명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보면, 교회가 제도적으로 안정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하면, 복음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희생정신이 약화되는 현상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종교개혁 전의 중세 교회를 떠올려 보면, 교회가 세상의 권세를 장악하고 막대한 재정을 축적하면서,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는 수도사들과 일반 평신도들의 영적 갈망은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부패가 만연해진 그 상황에서 루터, 칼뱅 등 개혁자들이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외치며 본질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정신이 식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어느 면에서는 중세 교회가 겪었던 세속화와 흡사한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복음 전파와 섬김, 희생이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한 가치일까요? 먼저,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 사랑하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단지 교리를 전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을 구현해 내는 능력입니다. 복음이 가정과 직장, 사회 전 영역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으로 예수의 길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자체를 녹이며 맛을 내고, 빛은 어두운 곳을 밝히며 자신을 내어줍니다. 즉, 희생과 헌신이라는 성품이 없다면 교회는 빛과 소금의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둘째,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섬김과 희생은 필수적입니다. 안타깝게도 교회가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재정 비리나 권위주의적 리더십 문제, 또 교회 내 갈등이 외부로 노출되면서, 일반인들은 교회를 “자기들끼리만 잘 사는 곳” 또는 “돈과 권력을 탐내는 집단”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일부 잘못된 정보나 과장도 섞여 있겠지만, 교회 안에서 실제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상황을 개선하려면, 교회가 ‘본래의 복음적 태도’ 즉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소외 이웃을 돌보는 섬김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가 오히려 지역사회 봉사와 약자 보호에 앞장서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극진한 사랑을 실천한다면, “교회가 자기 이익만 챙긴다.”는 비판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셋째, 신앙인 개인의 영적 성숙에도 복음 전파와 섬김, 희생이 필수적입니다. 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설교나 성경 공부를 많이 접했어도, 실제로 내 삶 속에서 예수의 길을 따르는 ‘영적 근육’을 쓰지 않으면 성장이 멈춥니다. 봉사와 선교의 자리에 나가야만, 그리고 실제로 내 것을 나누고 상대를 섬기는 현장에서, 우리는 ‘복음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희생 없이, 자기 포기 없이, 편안한 신앙생활만을 추구하는 경우, 오히려 안일과 무력감, 형식적 종교 생활로 빠지기 쉽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뜨거운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매일 같이 복음을 위해 기도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때로는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으며 서로를 격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복음 전파와 섬김, 희생이 약화된 데에는 몇 가지 구조적, 문화적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로, 개교회주의와 성장지상주의 문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교회가 서로 협력하기보다 경쟁 관계로 몰리는 바람에,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해 프로그램과 행사를 반복하지만, 정작 한 영혼을 책임 있게 양육하고 돌보는 노력은 소홀히 할 때가 많습니다. 둘째로, 교회의 세속화와 물질 만능주의 영향이 큽니다. 헌금과 재정 운용이 투명하지 못하거나, 교역자가 과도한 권위주의를 행사하면서 섬김이 아닌 지배 구조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셋째로, 교회가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대신, 특정 정치 세력이나 이념과 밀착해 보수, 진보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교회 안팎에서 본질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실패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문제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면, 결국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교회론적으로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이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고자 하는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주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대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병든 자와 죄인을 품고, 진리를 전하며, 희생과 순종으로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지요. 현실적으로는 교회가 불완전한 인간들의 모임이기에, 완벽한 공동체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우리도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겸손을 배울 수 있으며, 그때 오히려 서로를 용납하고 회복하는 섬김의 능력이 발휘됩니다.

한편, 복음 전파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예전처럼 “전도 폭발”식의 숫자 채우기나, 사람들을 강제로 교회에 끌어들이려는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관계 중심’ 전도와 ‘생활 속’ 전도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소외된 이웃과 동네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사랑을 베풀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땀 흘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복음은 말 이상의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고 하신 말씀은, 말로만 떠드는 신앙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나는 복음의 모습을 강조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섬김과 희생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공동체 차원에서의 제도적, 문화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청년들이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장학금, 쉼터, 급식 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운영한다면, 교인들은 ‘이곳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공동체’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또한 목회자와 교직자들도 지나친 물질적 풍요나 권위주의를 멀리하고, 교인들과 허물없이 소통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교회 운영에 투명성이 확보되고, 권력이 아닌 섬김의 리더십이 작동할 때, 교회는 내부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역시 복음 공동체답다.”는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초대교회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군가부터 “여기는 왜 이렇게 서로 사랑하나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희생할 수 있지요?”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질문이 터져 나올 때, 우리는 “복음을 믿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만들고, 세상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의 언어를 실천하게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도덕적, 인본주의적 선행이 아니라, 예수님을 본받아 죄인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구체적인 섬김과 희생, 한 영혼을 아끼는 진정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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