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안녕하십니까?
2. 상처가 머무는 교 회에서 치유가 흐르는 교회로 406

상처가 머무는 교회에서 치유가 흐르는 교회로
신앙은 본래 치유와 회복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깨어진 인간의 마음을 고치시기 위해 오셨고, 교회는 그 복음을 삶 속에 실현하는 공간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들은 교회에서 오히려 상처를 입고, 다시는 교회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상처는 단순한 감정의 불쾌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 트라우마’라고 불릴 만큼 깊고 구조적인 고통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처를 받아줄 공동체, 곧 치유의 공간이 교회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 교회 트라우마란 무엇인가?
‘트라우마’는 충격적 경험으로 인해 생기는 심리적 상처를 의미합니다. ‘교회 트라우마’는 교회 안에서 겪은 부정적 경험이 믿음 전체를 위협할 정도로 깊은 상처가 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 경험은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 목회자나 리더의 영적 학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격을 억압하거나 비난당한 경우
● 지나친 헌신 요구와 부담감: 신앙이라는 명분으로 과도한 봉사나 희생을 강요당한 경험
● 공동체 내 소외와 비교: 관계 중심의 교회 문화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당한 기억
● 설교나 교리에서 받은 정죄감: 죄의식이나 두려움을 이용한 설교로 인한 심리적 위축, 성적, 재정적 스캔들을 목격하고 배신감을 느낀 경우
이런 경험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는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교회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라는 감정을 심어주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까지 무너지게 만듭니다.
2. 왜 치유 공동체가 없는가?
교회 트라우마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다루기를 꺼린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문제를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구조: 문제를 드러내면 교회의 이미지나 목회자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
● ‘신앙이 약해서’라는 판단: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을 오히려 영적으로 미성숙하다고 몰아붙이는 태도
● 심리적 고통에 대한 신학적 무지: 정서적 상처를 단순한 ‘죄의 문제’나 ‘믿음의 문제’로 해석하며 상담과 회복의 과정을 무시
● 회복보다는 복귀 중심의 태도: 진짜 회복보다 다시 예배당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우선시함
결국 교회는 트라우마를 입은 성도를 불편한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를 갖게 되며, 자연스럽게 회복 공동체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3. 치유 공동체가 없는 교회의 후폭풍
치유의 구조가 없는 교회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 상처 입은 이들의 이탈: 떠난 이들이 돌아오지 않고, 신앙을 버리거나, ‘무교화’ 현상으로 이어짐.
●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공동체: 아픈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어, 진실과 회개가 사라짐.
● 다음 세대의 신뢰 상실: 부모 세대가 교회에서 상처를 입는 모습을 보고 자란 다음 세대는 교회를 회피하거나 불신하게 됩니다.
● 영적 위선의 심화: 표면적으로는 ‘은혜가 넘치는 교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에 수많은 상처가 곪고 있는 상태가 지속됩니다.
교회가 더 이상 치유의 공간이 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세속적인 상담 기관을 찾고, 교회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종교적 껍데기’로 전락하게 됩니다.
4. 진짜 치유 공동체가 되기 위한 방향
‘치유 공동체’란 단지 상담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품어주는 문화가 살아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1) 말할 수 있는 공간 만들기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비난받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구조가 필요합니다. 정기적인 고백 모임, 회복 간증의 시간, 소그룹 중심의 감정 나눔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2) 상담과 돌봄 사역의 제도화
단순한 권면이 아닌, 전문적인 기독상담 훈련을 받은 이들을 통한 치유 사역이 필요합니다. 영성과 심리가 통합된 돌봄 구조가 교회 안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3) 목회자의 정직한 리더십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당수는 권위자에 의한 상처를 경험했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실수와 한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리더십의 회개와 낮아짐이 치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4) 회복 중심의 사역 문화 정착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사역 문화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사역에 참여시키는 것보다 마음을 먼저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5. 교회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공동체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들이 함께 치유되어 가는 여정의 공간입니다.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교회를 “상처 입은 치유자들(Wounded Healers)”의 공동체라고 정의했습니다. 완벽함을 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연약함을 고백할 수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 안에서 트라우마는 치유의 고백이 되고, 고백은 간증이 되며, 간증은 누군가에게 다시 돌아올 용기를 줍니다. 교회는 그 과정을 설계하고, 지지하고, 끝까지 함께 걸어주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6. 다시 치유가 흐르는 교회로
한국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준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와 눈물을 남긴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제 교회는 묻혀 있던 상처를 직면하고, 그것을 회복시키기 위한 공동체적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교회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치유 공동체를 세워갈 때, 교회는 다시 복음의 생명을 품은 공간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상처가 머무는 교회가 아니라, 상처가 치유되는 교회, 그것이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할 교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