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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 강독

존 폭스 (John Foxe), 『순교자 열전 (Foxe's Book of Martyrs)』

존 폭스 (John Foxe)의 『순교자 열전 (Foxe's Book of Martyrs)』
- 부제: 피로 쓰인 역사, 한 나라의 정체성을 만들다 -

서론: 피로 쓰인 역사, 한 나라의 정체성을 만들다
📖 성경책을 제외하고, 16세기부터 300년 이상 영국 개신교 가정의 서가에 거의 빠짐없이 꽂혀 있던 책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온화한 경건 서적이 아니라, 화형대의 불길과 고문,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영웅적인 신앙에 대한 방대하고 생생한 기록이었습니다. 바로 존 폭스의 『순교자 열전』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교회에 관한 최후의 위험한 시대의 행적과 기념비』이지만, 출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대중에게는 『폭스의 순교자 열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순교자들의 이야기 모음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고통을 기록한 역사서이자,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변증하는 신학서이며, 마침내 잉글랜드라는 한 국가의 정체성을 개신교 신앙 위에 세운 강력한 선언문이었습니다.

저자인 존 폭스는 16세기 영국의 학자이자 개신교 목회자였습니다. 에드워드 6세의 종교개혁 이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 1세("피의 메리, Bloody Mary")가 여왕으로 즉위하자, 영국에는 끔찍한 피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개신교 신앙을 버리기를 거부했던 300여 명의 사람들이 화형대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습니다. 이때 폭스는 수많은 동료 개신교도들처럼 박해를 피해 유럽 대륙으로 망명했고, 바로 그곳에서 순교자들의 재판 기록과 편지, 목격자들의 증언을 수집하며 이 기념비적인 저작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본 강독에서는 이 거대한 책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메시지를 통해 한 국가의 영혼을 형성했는지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먼저 책의 심장이 된 '메리 여왕의 박해'라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역사를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의 투쟁으로 보는 폭스의 거대한 관점을 분석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책이 어떻게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시대를 초월하여 신앙의 본질과 고난의 의미를 묻는 강력한 증언이 되었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본론: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의 기나긴 전쟁
1. 메리 여왕의 불길 속에서
『순교자 열전』의 가장 핵심적이고 생생한 부분은 바로 1553년부터 1558년까지 이어진 '메리 여왕의 박해'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시기,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토머스 크랜머, 그리고 휴 래티머, 니콜라스 리들리 같은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평범한 남녀노소가 화형대 위에서 신앙을 증언했습니다.

폭스는 망명지에서 이 끔찍한 소식들을 들으며, 이들의 희생이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마치 종군 기자처럼, 순교자들의 이름과 직업, 재판 과정에서의 대화, 감옥에서 쓴 편지, 그리고 화형대 위에서의 마지막 말들을 놀라울 만큼 상세하게 수집하고 기록했습니다. 그의 기록은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라, 독자들이 마치 그 끔찍한 현장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2. 역사를 관통하는 두 교회
폭스는 메리 여왕 시대의 박해를 단지 한 시대의 비극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교회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영적 전쟁의 일부로 보았습니다. 그에게 역사는 두 개의 보이지 않는 교회의 투쟁사였습니다.

참된 교회 (The True Church):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시작된, 소박하고, 성경에 충실하며,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박해받는 소수의 무리입니다. 폭스는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스데반, 폴리캅 등), 중세 시대 교황권에 저항했던 '개혁의 선구자들'(존 위클리프, 얀 후스 등),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시대에 불타 죽어간 영국의 개신교 순교자들이 모두 이 '참된 교회'의 영웅적인 계보를 잇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거짓 교회 (The False Church):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권력과 부를 탐하고,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며, 참된 성도들을 박해하는 거대한 제도적 교회를 의미합니다. 폭스는 이 '거짓 교회'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 그 정점에 로마 교황청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메리 여왕의 박해는 로마라는 거짓 교회가 잉글랜드의 참된 교회를 파괴하려는 최후의 발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3. 삽화의 힘과 순교의 신학
『순교자 열전』이 그토록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책에 실린 수많은 목판화 삽화 때문이었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생생하고 끔찍한 삽화들을 통해 순교자들이 겪는 고통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잔혹함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화염에 휩싸인 채 기도하는 순교자의 모습은 그 어떤 설교보다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폭스에게 순교는 결코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이자, 궁극적인 신앙의 승리였습니다. 순교자들의 마지막 말들은 그들의 죽음만큼이나 중요했습니다. 화형대 위에서 리들리 주교와 함께 죽어가던 래티머 주교의 마지막 외침은 이 책의 정신을 완벽하게 요약합니다.

"힘을 내시오, 리들리 선생. 그리고 남자답게 행동하시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결코 꺼지지 않을 촛불을 잉글랜드에 밝힐 것이오."
(Be of good comfort, Master Ridley, and play the man. We shall this day light such a candle, by God's grace, in England, as I trust shall never be put out.)

그들의 육신은 불탔지만, 그들의 순교는 잉글랜드의 개신교 신앙이라는 영원한 촛불을 밝혔다는 것입니다.

결론: 한 권의 책이 역사를 만드는 법
존 폭스의 『순교자 열전』은 순교자들을 위한 기념비이자,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신앙 교육서였으며,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는 강력한 프로파간다였습니다. 이 책의 역사적 신뢰성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논쟁이 있습니다. 폭스는 당대의 기준으로는 매우 성실한 자료 수집가였지만, 객관적인 역사가가 아닌 명확한 목적을 가진 '개신교 투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책이 역사에 미친 영향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즉위 이후, 이 책은 성경, 공동기도서와 함께 영국 개신교의 3대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는 성경 옆에 이 책을 쇠사슬로 묶어두고 누구나 읽게 했을 정도입니다.

이 책은 영국인들의 정신 속에 반(反)가톨릭 정서를 깊이 각인시켰으며, '잉글랜드'라는 국가 정체성을 '개신교 신앙'과 거의 동의어로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박해받는 소수자로서의 개신교가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승리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국가적 서사를 창조했습니다.

『순교자 열전』은 현대 독자들이 읽기에는 불편할 수 있는 책입니다. 노골적으로 편파적이며, 그 묘사는 끔찍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고난과 신앙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이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하고, 용기를 불어넣으며, 마침내 한 국가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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