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고전 강독
안셀무스 (Anselm of Canterbury), 『프 로슬로기온 (Proslogion)』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Anselm of Canterbury)의 『프로슬로기온 (Proslogion)』
- 부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정점 -
서론: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정점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왜 믿는지를 이해하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11세기 위대한 신학자 안셀무스의 정신을 정확히 요약한 것입니다. 중세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라는 유명한 모토로 자신의 신학 전체를 대변했습니다. 그는 불신자를 설득하기 위해, 혹은 의심에서 출발하여 신앙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굳건히 서 있는 신앙의 자리에서,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성을 통해 더욱 깊고 명료하게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저서 『프로슬로기온』("이야기" 혹은 "담화"라는 뜻)은 바로 이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가장 순수하고도 빛나는 결정체입니다. 이 책은 건조한 철학 논문이 아니라, 책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하나의 긴 기도이자 명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셀무스는 이 책의 서문에서, 신의 존재와 속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복잡한 논증을 사용했던 전작 『모놀로기온』과 달리,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논증(unum argumentum)'**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그 '단 하나의 논증'이 바로 서양 철학사에서 천 년간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입니다.
본 강독에서는 안셀무스의 『프로슬로기온』 속으로 들어가 이 대담하고도 우아한 논증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먼저 안셀무스의 논증이 어떤 신앙적 토대 위에서 시작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어서, 그의 존재론적 증명의 논리적 단계를 차근차근 따라가며 그 핵심을 파악하고, 곧바로 제기되었던 동시대 수도사 가우닐로의 날카로운 반박과 그에 대한 안셀무스의 답변을 검토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책이 단순한 신 존재 증명을 넘어, 신앙이 어떻게 이성을 통해 그 깊이를 더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언임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본론: 단 하나의 논증 -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
안셀무스의 논증은 세상의 관찰(우주가 얼마나 정교한가 등)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신'이라는 개념 혹은 정의 그 자체에서 출발합니다.
1. 논증의 출발점: 신앙과 정의(定義)
안셀무스의 논증은 시편 14편 1절의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구절에 대한 명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이 '어리석은 자'조차도 반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신에 대한 정의를 제시합니다.
신이란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aliquid quo nihil maius cogitari possit)"이다.
이 정의가 논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핵심 열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conceivable)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정의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사유와 상상 속에서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단 하나도 떠올릴 수 없는 바로 그 대상을 신으로 정의합니다.
2. 논증의 전개: 마음 속에서 실제 속으로 (2-3장)
이 정의를 바탕으로 안셀무스는 논증을 펼쳐나갑니다.
1단계: '어리석은 자'의 이해
신이 없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조차도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을 들으면 그 의미를 이해합니다. 따라서 이 개념은 적어도 그의 '지성 속에(in intellectu)' 존재합니다.
2단계: 두 가지 가능성
이제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는 두 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오직 우리의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성 속에는 물론 '실제로도(in re)' 존재하는 것입니다.
3단계: 모순의 발견
만약 이 존재가 오직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지성 속에는 물론 실제로도 존재하는 존재' 말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단지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는 최초의 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논리적 모순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해버린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4단계: 필연적 결론
이러한 모순을 피하기 위해,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는 단지 지성 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실제로도 존재해야만 합니다.
5단계 (심화 논증): 필연적 실존
안셀무스는 3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신은 단지 존재하는 것을 넘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조차 없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우연적 존재)'보다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필연적 존재)'가 더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가 입으로는 "신은 없다"고 말할 수 있어도, 그의 마음속(지성)에서는 모순 없이는 신의 부재를 생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3. 최초의 반론: 가우닐로의 '잃어버린 섬'
안셀무스의 논증이 발표되자마자, 동시대의 한 수도사 가우닐로가 '어리석은 자를 대신하여'라는 글을 통해 예리한 반박을 제기합니다.
그는 '잃어버린 섬'이라는 유명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풍요로운 '잃어버린 섬'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섬은 당신의 지성 속에 존재한다. 안셀무스의 논리에 따르면, 만약 이 섬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완벽한 섬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 완벽한 '잃어버린 섬'은 반드시 실제로 존재해야만 한다."
가우닐로의 비판의 핵심은, 우리가 어떤 완벽한 것을 상상하거나 정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안셀무스의 답변 또한 명쾌했습니다. 그의 논증은 '잃어버린 섬'과 같은 우연적 존재에는 적용될 수 없으며, 오직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에게만 유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가장 완벽한 섬'보다 조금 더 완벽한 섬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는 그 정의상 더 이상의 개선이 불가능한 유일하고 필연적인 존재입니다. '필연적 실존'이라는 속성은 섬에는 적용될 수 없지만, 신의 개념에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천 년의 논쟁, 영원한 묵상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은 이후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에 의해 계승되었지만, 토마스 아퀴나스와 칸트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에게는 강력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칸트는 "존재는 개념에 덧붙여질 수 있는 속성(predicate)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이 논증에 치명타를 가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처럼 존재론적 증명은 지난 천 년간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프로슬로기온』을 단지 하나의 논리적 증명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놓치는 것입니다. 2-4장의 논증은 사실 이 책의 전체 목적을 위한 출입구에 불과합니다. 논증을 통해 신의 실존과 필연성을 확인한 안셀무스는, 이후 책의 나머지 부분(5-26장)에서 그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과연 어떤 분이신지—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정의로우시고, 단순하시며, 영원하신 분 등—를 기도와 명상 속에서 아름답게 펼쳐나갑니다.
따라서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신의 존재를 냉정하게 증명하는 것을 넘어, 이해를 통해 신앙의 대상을 더욱 깊이 알고 관상하며, 마침내 경배와 찬양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논쟁과 무관하게, 『프로슬로리온』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 도달할 수 있는 지성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그것은 단지 신을 믿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그 신의 위대함 속에서 지적인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위대한 열망을 담고 있는 영원한 고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