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고전 강독
박윤선 (Park Yun-sun), 『성경주석 시리즈』

박윤선 (Park Yun-sun)의 『성경주석 시리즈』
- 부제: 한 평생, 한 권의 책 - 성경 66권을 주석하다 -
서론: 한 평생, 한 권의 책 - 성경 66권을 주석하다
📖 한 사람이, 자신의 평생을 바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 전체에 대한 주석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교단의 분열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격동적인 시기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한 신학자는 바로 이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을 실제로 이루어냈습니다. 한국 보수 장로교 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정암(正岩) 박윤선 목사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가 남긴 **『성경주석 시리즈』**는 단순한 여러 권의 책이 아니라, 그의 전 생애가 담긴 하나의 거대한 기념비적인 저작(magnum opus)입니다. 이 책은 한국인 저자가 집필한 최초이자 유일한 성경 66권 전권 주석으로, 한국 교회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본 강독에서는 박윤선 목사의 이 위대한 유산 속으로 들어가, 그가 왜 이토록 방대한 주석 집필에 자신의 삶을 바쳤는지 그 시대적 사명을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주석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신학적 원리—개혁주의 정통 신학과 구속사적 성경 해석—를 분석하고, 이 주석이 어떻게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교회의 강단을 형성하고 수많은 목회자들의 신학적 뼈대를 세워주었는지 그 거대한 영향을 탐구하게 될 것입니다.
본론: 정통 신학의 보루를 세우다
1. 시대적 사명: 왜 성경 주석이었나?
박윤선 목사가 이 대작을 집필하게 된 데에는 절박한 시대적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신학적 혼돈의 시대: 20세기 중반 한국 교회는 신학적으로 극심한 혼돈을 겪고 있었습니다. 서구로부터 유입된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권위를 흔들었고, 한편에서는 신비주의적인 운동들이 성경을 벗어난 주관적인 체험을 강조하며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닻이 필요하다: 박윤선 목사는 이러한 신학적 폭풍우 속에서 한국 교회가 굳건히 서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닻이 필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닻을 내리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를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의 관점에서 올바르게 해석해 주는 신뢰할 만한 안내서가 절실하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주석 집필은 바로 이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2. 주석의 뼈대: 개혁주의 정통 신학
박윤선 주석 전체를 떠받치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경의 절대 권위'**입니다.
개혁주의 신학: 그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J. 그레샴 메이첸, 코닐리어스 반틸과 같은 20세기 최고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에게 배우며, 칼뱅주의로 대표되는 개혁주의 정통 신학을 자신의 신학적 뼈대로 삼았습니다. 그의 주석은 일관되게 이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합니다.
구속사적 성경 해석: 그의 주석 방법론의 가장 큰 특징은 '구속사(Redemptive History)'적 관점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각 부분을 파편적으로 보지 않고, 창조-타락-구속-완성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구원의 이야기'의 일부로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구약의 모든 율법, 제사, 역사가 어떻게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줌으로써, 성경 66권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일한 주제로 통일되어 있음을 명쾌하게 논증합니다.
생사를 거는 신학: 그는 "신학은 생사 문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에게 신학은 학자들의 지적인 유희가 아니라, 한 영혼의 영원한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주석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독자의 삶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려는 목회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3. 주석의 목적: 목회와 경배
박윤선 주석은 결코 학자들만을 위한 현학적인 저작이 아닙니다.
목회자를 위한 도구: 이 책의 일차적인 목표는 매주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목회자들에게 가장 신뢰할 만한 설교 준비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천적 적용: 그의 주석은 본문 해설에만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이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적용' 부분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경배로의 초대: 주석의 궁극적인 목적은 언제나 독자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경배와 찬양으로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결론: 한국 교회를 빚어낸 거인의 유산
박윤선 목사의 『성경주석 시리즈』는 한 개인의 학문적 성취를 넘어, 한국 교회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한국 장로교 신학의 초석: 이 주석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보수 장로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거의 '표준 교과서'와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의 강단 설교가 이 주석을 통해 빚어졌으며,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통 신학의 보루: 그의 주석은 자유주의 신학과 여러 비성경적 사상들의 도전에 맞서, 개혁주의 정통 신앙을 수호하는 견고한 '신학적 보루'의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그의 주석이 지나치게 교의학적 틀에 매여 있다거나, 현대의 다양한 성서 비평학적 논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학문적 비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교회를 굳건히 세우려 했던 그의 목회적 열정과 역사적 공헌의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습니다.
박윤선 목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과,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단 하나의 위대한 확신에 사로잡혔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평생의 역작인 『성경주석 시리즈』는 바로 그 확신의 기념비입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격동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영원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한 자 한 자 쌓아 올린 신학의 견고한 요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