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고전 강독
미로슬라브 볼프 (Miroslav Volf), 『 배제와 포용 (Exclusion and Embrace)』

미로슬라브 볼프 (Miroslav Volf)의 『배제와 포용 (Exclusion and Embrace)』
- 부제: 증오의 한복판에서, 십자가의 신학을 짓다 -
서론: 증오의 한복판에서, 포용의 신학을 짓다
⚔️ 내 이웃이, 내 친구가 하룻밤 사이에 나를 죽여야 할 '적'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민족을 학살하려는 원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끔찍한 '인종 청소'의 광기가 휩쓸고 간 땅 위에서, 그리스도의 용서와 화해는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가?
크로아티아 출신의 복음주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는, 1990년대 자신의 조국 유고슬라비아를 찢어놓았던 끔찍한 내전의 한복판에서 바로 이 질문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배제와 포용』은 그가 겪었던 고통의 경험과 신학적 고뇌가 피처럼 묻어나는,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신학 서적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안락한 서재에서 쓰인 추상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종, 종교, 이념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는 세상의 모든 폭력의 근원을 파헤치고, 그에 대한 기독교의 유일하고도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처절한 시도입니다.
본 강독에서는 볼프의 이 위대한 저작을 통해, 먼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과 폭력의 뿌리에 있는 '배제(exclusion)'의 논리가 무엇인지 진단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한 신적인 대안, 즉 '포용(embrace)'이라는 네 단계의 행위가 어떻게 증오의 연쇄를 끊고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지를 탐구할 것입니다.
본론: 배제의 논리를 넘어서는 십자가의 포용
1. 모든 폭력의 뿌리: 배제의 논리
볼프는 먼저 우리 시대의 갈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분석합니다. 그 뿌리에는 바로 **'정체성'**의 문제가 있으며, 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에 '배제'의 논리가 숨어있다고 지적합니다.
'타자'를 통한 자기 정체성 확립: 우리는 종종 '우리'가 누구인지를 '그들'이 누구인지를 규정함으로써 확인합니다. 즉, '타자(the other)'를 우리의 정체성을 위한 부정적인 배경으로 삼는 것입니다.
정화를 위한 배제: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불순한 타자'를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고 배제하려 합니다. '타자'에게 모든 악과 더러움을 투사하고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우리'는 깨끗하고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제의 논리'는 학교에서의 따돌림에서부터 인종차별, 그리고 마침내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갈등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작동합니다.
2. 신적인 대안: 포용의 네 가지 움직임
이 파괴적인 '배제의 논리'에 맞서, 볼프는 기독교가 제시하는 대안적 행위로 **'포용(embrace)'**이라는 아름다운 은유를 제시합니다. '포용'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네 가지의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구성된 역동적인 행위입니다.
팔을 벌리기 (Opening the Arms): 방어적인 자세를 풀고, 내 안에 타자를 위한 공간을 의지적으로 만들어내는 첫 번째 움직임입니다. 이것은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하는 자발적인 취약성의 표현입니다.
기다리기 (Waiting): 상대를 강제로 끌어당기지 않고, 상대방의 자유와 거리를 존중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포용은 강요될 수 없습니다.
팔을 닫기 (Closing the Arms): 마침내 상대를 받아들이고 연대와 일치 안으로 감싸 안는 행위입니다.
다시 팔을 열기 (Opening the Arms Again): 진정한 포용은 상대를 나에게 흡수시켜 동화시키는 '융합'이 아닙니다. 포옹이 끝난 뒤, 우리는 다시 팔을 열어 상대가 상대방 자신으로 존재하도록 놓아줍니다. 이것은 연합 속에서의 상호 구별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볼프는 이 '포용'의 완벽한 모델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를 위한 공간을 내어주고, 서로를 영원히 포용하면서도, 결코 서로의 고유한 인격(위격)을 상실하지 않는 완벽한 사랑의 공동체이시기 때문입니다.
3. 포용의 정점: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 신적인 포용이 죄로 망가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극적으로 나타났는가? 볼프는 그 정점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열린 팔: 성부 하나님은 성자를 죄악된 세상의 먼 나라로 떠나보내심으로써 '팔을 벌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열린 팔: 십자가 위에 못 박혀 활짝 열린 그리스도의 두 팔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품으려는 신적인 포용의 궁극적인 형상입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폭력과 배제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시면서도, 결코 똑같은 폭력과 배제의 논리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과 죄의 분리: 십자가가 어떻게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가? 볼프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의 죄와 분리시키셨다고 통찰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지만, 죄인을 포기하지 않고 당신의 품으로 끌어안을 공간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고 포용해야 할 신학적 근거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저항하고 싸워야 하지만, 그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그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악마로 만들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 정체성의 정치 시대에 던지는 희망
미로슬라브 볼프의 『배제와 포용』은 '나와 다른 너'를 향한 증오와 폭력이 만연한 우리 시대에 기독교 신앙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심오하고 시의적절한 응답입니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두 가지 실패한 선택지 사이에서 강력한 **'제3의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타자'를 악마화하고 배제하는 폭력적인 정체성 정치.
악을 악이라고 부를 힘조차 상실한 채, 모든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무기력한 다원주의.
볼프가 제시하는 '포용'의 길은 결코 쉽거나 값싼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원수를 위해 내 안에 공간을 내어주고, 그의 죄와 그를 분리시키며, 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고통스럽고 자기희생적인 길입니다.
『배제와 포용』은 증오가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아는 땅에서 피어난, 고통스럽지만 강렬한 희망의 신학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단지 개인 구원의 상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깨어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으로 바라보라고 도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배제하고 싶은 바로 그 사람을 향해, 우리의 팔을 여는 어렵고도 값비싼, 그러나 궁극적으로 해방을 가져오는 실천으로의 부르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