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훈련?
이제는 선교단체가 아니라도 누구나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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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ChatGPT와 함께이제는 AI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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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세계선교는
평신도 선교사가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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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중직 목회자의 특징
이중직 목사는 많은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준다. 교회라는 우물에 빠진 목회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목사가 전도하는 교회는 이미 끝장난 교회이다.

13. 이중직 목회자의 특징
이중직 목사는 많은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준다. 교회라는 우물에 빠진 목회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목사가 전도하는 교회는 이미 끝장난 교회이다. 아마도 대형 교회 목사의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목사가 전도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말일까? 성경의 어디에도 이런 문장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수없이 듣는다. 대형 교회 목사의 교만의 극치라고 하고 싶다. 왜 이런 말이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성도들을 교육하고 훈련할 책임이 있으므로 전도할 시간이 없다. 라고 표현한 것이라 이해하고 싶다.
한국 교회가 한 때 제자 양육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을 가진 시기가 있었다. 모든 교회가 제자훈련 많이 살길이다. 라도 외쳐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의 제자들인가? 그렇게 많은 제자들이 양성되었는데 그 제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그 많은 제자들은 왜 한국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늘 날 교회는 사회에서 천덕꾸러기가 됐을까? 감옥에 가면 65% 이상이 성도, 국회의원 60% 성도, 가는데 마다 성도 성도들이 넘쳐 난다. 4명중 1명이 성도라는데 이단은 늘어나도 진정한 교회의 성도는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의 패러다임이 바꾸어야 하기에 이중직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이중직 목사는 직업이라는 현장에 있으므로 수많은 불신자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도 제자 훈련 덕분에 신실한 성도들이 있다. 라고 이야기를 들을 때 한국 교회의 현실의 수준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중직을 수행하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한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얼마 전에 잘 아는 목사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만남의 이유를 물었더니 꼭 만나서 사업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디 만나 달라는 것이다. 나는 거절할 수 없어 내 사무소에 방문을 요청했다.
목사님 요즘 무슨 일을 하십니까?
예,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잘 되었습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 목사는 다단계 회사에 다니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단계 회사라고 해서 나쁜 것은 없다. 대화하는 가운데 다단계 회사에서 건강식품에 대한 제품 파는 일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 외에도 내 주변에 있는 많은 목사 전도사들이 타를 만나기를 원한다. 이유는 자신들의 일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나쁜 이중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중직이 목적에 부합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이런 유형의 다단계 회사에 많은 목사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카톡이나 페이스 북을 통해서도 목사들이 경제적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유혹하는 내용이 수없이 올라온다. 내가 운영하는 하베스트 대학원 4 융복합 과정에도 하루에 몇 번씩 비트코인 투자, 부동산 투자, 주식 투자 등 정보들이 올라온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카톡에 올라왔다. 내 열린 카톡 오픈 방에 있는 목사와 선교사들에게 이러한 사기 글에 속지 말라고 늘 당부하고 있다.
이중직은 이윤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 확장의 도구로 활용될 때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은 돈을 통하여 오는 것이다. 돈은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경제적 자유로움을 얻으려면 이윤보다 하나님 나라 확장 도구로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중직을 통하여 주변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목적을 맞추면 좋다. 그렇게 되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당신이 목사라 할지라도 배려하며 존경을 할 것이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고객을 섬기는 목회자로서 사업을 한다. 어떤 때는 고객에게 이런 말도 한다. 당신을 하나님처럼 대하겠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할까? 나의 고객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미리 선포해 놓으면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존경받는다.
이중직은 어딘가에는 소속이 되어 일하기 때문에 속한 기업에 영향력을 주며 하나님의 말씀과 목적에 부합한 행동을 하여야 한다. 그럴 때 기업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 세속의 사람에게 영향력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직을 통해서 사람과 기업에 영향력을 주는 것이 바로 이중직의 강력한 힘이다. 이중직은 하나의 먹고 살기 위한 도구로 전략시키지 마라. 당신이 하는 일을 통하여 목회할 때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구원의 역사를 전할 수 있으며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중직의 놀라운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이 없는 자들이 이중직을 비하하고 이중직에 대하여 부정적적인 논리를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일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일터이다.
수많은 일터는 당신이 어떤 이중직을 하든 상관없다. 당신이 택배를 하든, 택시를 하든, 노동의 현장에서 일을 하든, 소화물 배달을 하든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당신이 있는 그 현장이 바로 지성소이며, 교회이다. 이것이 바로 건물 없는 교회라는 것이다. 꼭 교회가 건물이 있어야 하는가? 건물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 내가 지금까지 선교지 우리 방에서 예배를 드린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후원하는 교회 장로에게 국제 전화가 왔다. 아이고! 장로님 전화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 선교사! 당신에 대하여 중아일보 신문 전면에 기사가 났어요? 아니 선교사가 이래도 되는 거요?
무슨 기사요?
모른다는 말인가요?
글쎄요?...
한국에 국제 행사가 있어 방문을 했는데 그 때 중앙일보 대기자라는 분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때는 사업이 줄줄이 성공하고 있을 때이다. 아마 그 기사가 신문 전면에 나온 모양이다. 그것을 보신 장로님이 괘씸하다고 생각하여 전화한 것이다. 선교비를 보내주었더니 선교는 안하고 사업한다는 것이다. 기도 편지를 보내면 교회도 없이 집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교회냐고 늘 불만이셨다. 십자가가 있어야 하는데 십자가 없이 예배를 드린다고 야단맞은 적이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교회 건물 중심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한국형 성도의 모습이다. 세상이 교회로 들어와야지 어떻게 거룩한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냐 하느냐는 논리인 것이다. 교회가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교회는 망하게 되어 있다. 이중직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들은 황금 어장으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