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CEO JESUS OF LEADERSHIP PRINCIPLES

윤리 및 가치

이웃 사랑의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긍휼을 통한 초월적인 사회적 책임 실현

CEO JESUS 이웃 사랑의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긍휼을 통한 초월적인 사회적 책임 실현
목차
서론: '착한 기업'을 넘어 '선한 기업'으로

21세기 기업의 새로운 사명: 이윤 추구를 넘어선 사회적 책임

전통적 CSR의 한계: 이미지 관리와 시혜적 관점

CEO 예수의 CSR: '이웃 사랑'이라는 근본적인 관계 설정과 '긍휼'이라는 동기

핵심 대주제 1: '네 이웃'은 누구인가? - CSR의 대상 재정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소주제 2.1: 율법학자의 질문: "누가 내 이웃입니까?" - CSR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시도

소주제 2.2: 제사장과 레위인의 외면: 내부 규정과 효율성을 핑계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조직

소주제 2.3: 사마리아인의 행동: 경계를 넘어,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나의 이웃이다 - CSR 대상의 무한한 확장

소주제 2.4: 예수의 결론: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 수동적 대상에서 능동적 주체로의 관점 전환

핵심 대주제 2: CSR의 동기 - 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가?

소주제 3.1: '긍휼(Compassion)'이라는 내적 동기: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행동

소주제 3.2: 황금률(The Golden Rule):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역지사지의 원칙

소주제 3.3: '가장 작은 자'와의 동일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이 곧 최고 경영자에 대한 책임이다

핵심 대주제 3: 이웃 사랑 CSR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

소주제 4.1: 가진 것을 나누는 책임: 단순한 기부를 넘어선 부의 재분배 (부자와 나사로 비유)

소주제 4.2: 정의를 실현하는 책임: 억울한 자의 편에 서서 불의한 구조에 저항하라 (불의한 재판관 비유)

소주제 4.3: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책임: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해결

소주제 4.4: 환경을 돌보는 책임(창조세계 보전): "공중의 새를 보라" - 모든 피조물에 대한 청지기적 책임

핵심 대주제 4: '이웃 사랑 CSR'이 조직에 가져오는 초월적 가치

소주제 5.1: 진정성 있는 브랜드 구축: 계산된 이익을 넘어선 진심의 힘

소주제 5.2: '의미'를 추구하는 인재 유치: Z세대의 가치 소비와 직업관에 부응하다

소주제 5.3: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 제로섬 게임을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성장하는 '공동선(Common Good)' 추구

소주제 5.4: 사회적 라이선스(Social License to Operate) 확보: 지역 사회의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받다

결론: 기업은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인가?

이웃 사랑,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완전한 CSR 철학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재무제표가 아닌, 이웃의 눈물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평가된다

당신의 조직은 오늘, 강도 만난 세상의 선한 이웃이 되고 있는가?

1. 서론: '착한 기업'을 넘어 '선한 기업'으로
21세기 기업의 새로운 사명: 이윤 추구를 넘어선 사회적 책임

과거 기업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이윤 극대화'였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할 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진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고전적인 기업관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무분별한 이윤 추구가 초래한 극심한 빈부 격차, 환경 파괴, 인권 침해 등의 사회적 문제가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는 더 이상 기업을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는 경제 주체로만 보지 않는다. 사회는 기업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들이 가진 막강한 자원과 영향력을 사용하여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을 요구하는 **'기업 시민(Corporate Citizen)'**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다.

전통적 CSR의 한계: 이미지 관리와 시혜적 관점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CSR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성금, 나무 심기 행사, 문화 예술 후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분명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만, 많은 경우 두 가지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첫째, **'이미지 관리'**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향이다. CSR 활동이 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덮거나, 제품 홍보를 위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될 때, 그 진정성은 퇴색되고 대중의 냉소를 사게 된다. 둘째, **'시혜적 관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업을 '가진 자'로, 사회를 '도움이 필요한 자'로 규정하는 수직적인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일시적인 도움은 줄 수 있지만,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거나, 도움을 받는 대상과의 진정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는 '착한 일'을 하는 '착한 기업'의 모습일 수는 있어도, 사회와 진정으로 함께 호흡하는 '선한 기업'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CEO 예수의 CSR: '이웃 사랑'이라는 근본적인 관계 설정과 '긍휼'이라는 동기

이러한 전통적 CSR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장 근본적이고 초월적인 사회적 책임의 모델을 CEO 예수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단 한 문장으로 제시한다. 예수의 CSR 모델은 '활동' 이전에 '관계'를, '전략' 이전에 '동기'를 문제 삼는다.

첫째, 그는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단순히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가 아닌, '이웃'이라는 수평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로 재설정한다. 이웃은 내가 선택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나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 공동체이다. 따라서 이웃을 돕는 것은 특별한 선행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이다.

둘째, 그는 CSR 활동의 궁극적인 동기가 기업의 평판이나 장기적 이익과 같은 계산된 전략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긍휼(Compassion)'이라는 내적인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긍휼은 동정(Sympathy)을 넘어, 상대방의 고통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공감(Empathy)이며,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사랑이다. 이 분석을 통해 우리는 예수의 '이웃 사랑' 철학이 어떻게 현대 기업의 CSR 패러다임을 '착한 기업'에서 '선한 기업'으로 전환시키고, 시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게 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2. 핵심 대주제 1: '네 이웃'은 누구인가? - CSR의 대상 재정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모든 CSR 전략의 출발점은 "우리의 사회적 책임 활동의 대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 질문에 대한 예수의 혁명적인 대답을 담고 있다.

소주제 2.1: 율법학자의 질문: "누가 내 이웃입니까?" - CSR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시도

이야기는 한 율법학자가 예수를 시험하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 데서 시작된다. 예수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답하자, 그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즉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되묻는다.

이는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CSR의 대상을 정의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들은 **"우리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를 물으며, CSR의 범위를 법적 의무가 있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직원, 주주, 고객, 협력업체)나, 기업 이미지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특정 사회 계층'으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율법학자의 질문 속에는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과 '사랑하지 않아도 될 이웃'을 구분하여, 자신의 책임을 편리하게 제한하려는 교묘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소주제 2.2: 제사장과 레위인의 외면: 내부 규정과 효율성을 핑계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조직

예수는 이 질문에 직접 답하는 대신,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다. 마침 그 길을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보고도 '피하여 지나갔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들, 즉 오늘날로 치면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 강령을 가진 기업'이나 '사회적 책임을 선도해야 할 리더'에 해당한다.

그들이 왜 강도 만난 자를 외면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시체와 접촉하면 부정해진다'는 자신들의 내부 규정(율법)을 지켜야 했거나, 성전에서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업무(핵심 비즈니스)에 늦지 않기 위해 바빴을 것이다. 이는 많은 조직들이 "우리는 법규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핵심 사업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부서의 책임이 아닙니다"라는 식의 내부 규정과 효율성을 핑계로, 눈앞의 사회적 고통을 외면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CSR을 자신들의 핵심 비즈니스와는 별개인, 부수적이고 귀찮은 활동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들에게 강도 만난 자는 '나의 이웃'이 아니었다.

소주제 2.3: 사마리아인의 행동: 경계를 넘어,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나의 이웃이다 - CSR 대상의 무한한 확장

그다음,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멸시하고 상종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이 등장한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다가가서, 자신의 모든 자원(기름, 포도주, 나귀, 돈)을 사용하여 그를 치료하고 돌보아 주었다. 사마리아인에게는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할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자신 또한 위험에 처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경계(민족, 종교, 안전, 비용)도 따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지금 내 눈앞에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이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통해 예수는 '나의 이웃'이 혈연, 지연, 학연, 국경, 종교 등 우리가 만들어 놓은 **모든 인위적인 경계를 넘어, 지금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임을 선포한다.

이는 CSR의 대상이 우리 공장 주변의 지역 주민이나, 우리 제품의 소비자에 국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의 원자재를 공급하기 위해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일 수도 있고, 우리 제품의 폐기물로 인해 고통받는 미래 세대일 수도 있다. 이웃의 범위가 무한히 확장될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 또한 무한히 확장된다.

소주제 2.4: 예수의 결론: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 수동적 대상에서 능동적 주체로의 관점 전환

이야기를 마친 예수는 율법학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율법학자의 처음 질문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Who is my neighbor?)"라고 묻지 않고,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Who proved to be a neighbor?)"라고 물었다.

이 질문의 전환은 CSR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라는 질문은, '나'를 중심에 놓고 내가 도와줄 대상을 선택하려는 수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관점이다.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 라는 질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중심에 놓고, 내가 그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능동적이고 타자 중심적인 관점이다.

결국 예수의 가르침은 "우리의 CSR 대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의 기업이 과연 세상의 진정한 이웃이 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기업은 더 이상 사회적 책임의 대상을 선별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고통받는 세상의 필요에 응답하고 기꺼이 '선한 이웃'이 되어주어야 하는 '책임의 주체'인 것이다.

3. 핵심 대주제 2: CSR의 동기 - 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가?
진정한 CSR은 '무엇을 하는가'보다 '왜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예수의 가르침은 이웃 사랑의 동기가 외부의 압력이나 계산된 이익이 아닌, 깊은 내적 신념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소주제 3.1: '긍휼(Compassion)'이라는 내적 동기: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행동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도운 유일한 이유는,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기(ἐσπλαγχνίσθη, esplagchnisthē)" 때문이다.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이 헬라어 동사는 단순히 감상적인 동정을 넘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깊은 고통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동일시하는 깊은 '긍휼' 또는 '자비'**가 그의 모든 행동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어떤 의무감이나, 주변의 시선이나, 미래의 보상을 기대하고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행동은 내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 완전히 자발적인 것이었다.

이는 진정한 CSR이 '전략'의 영역이기 이전에 '마음'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기업의 CSR 활동이 단지 연례 보고서의 한 페이지를 채우거나,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홍보팀의 전략에서 출발한다면, 그 활동은 결코 지속될 수 없으며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리더와 구성원들이 사회의 고통에 진심으로 아파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보람과 의미를 느끼는 '긍휼의 마음'을 가질 때, 그들의 CSR 활동은 계산을 뛰어넘는 진정성과 창의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소주제 3.2: 황금률(The Golden Rule):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역지사지의 원칙

예수는 산상수훈에서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 원칙으로 '황금률'을 제시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이는 CSR 활동의 방향과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기준이다.

즉, "만약 우리 기업이 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처했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기를 원할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원칙이다.

만약 우리 가족이 우리가 만든 제품의 유해 물질 때문에 병들었다면, 우리는 기업에게 어떤 수준의 보상과 사과를 요구할까?

만약 내 아들이 우리 회사의 해외 하청 공장에서 아동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면, 우리는 본사에 어떤 개선을 요구할까?

만약 우리 마을이 우리 공장에서 배출된 폐수로 오염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수준의 환경 복원을 기대할까?

이 '황금률 필터'를 모든 경영 활동에 적용할 때, 기업은 법적인 최소 기준을 지키는 소극적인 CSR을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소주제 3.3: '가장 작은 자'와의 동일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이 곧 최고 경영자에 대한 책임이다

예수는 이웃 사랑 CSR의 동기를 최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신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왕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혔던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보아 준 것을 칭찬하며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연약한 이웃에 대한 기업의 태도가, 곧 그 조직의 최고 권위자(하나님/CEO)에 대한 태도와 동일하게 평가된다는 선언이다. 이제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더 이상 선택적인 자선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성과 지표(KPI)'가 된다.

이 관점은 CSR의 무게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기업이 하청업체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는 경영 활동이 아니라, 최고 경영자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와 같다. 기업이 지역 사회의 환경 오염을 방치하는 것은, 곧 CEO의 집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가장 작은 자'와 '최고 경영자'를 동일시할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경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4. 핵심 대주제 3: 이웃 사랑 CSR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
예수의 가르침은 CSR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풍부한 통찰을 제공한다.

소주제 4.1: 가진 것을 나누는 책임: 단순한 기부를 넘어선 부의 재분배 (부자와 나사로 비유)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부유한 기업이 가난한 이웃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부자는 매일 호화로운 파티를 즐기면서도, 자기 집 대문 앞에서 굶주리는 거지 나사로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는 나사로에게 어떤 악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부작위(不作爲)'의 죄로 인해 그는 죽어서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된다. 이 비유는 기업이 가진 부와 자원을 사회의 가장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지 않는 것 자체가 심각한 죄악임을 경고한다. 이는 연말에 남는 이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의 부가 사회 전체와 어떻게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즉 '부의 재분배'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다.

소주제 4.2: 정의를 실현하는 책임: 억울한 자의 편에 서서 불의한 구조에 저항하라 (불의한 재판관 비유)

누가복음 18장의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는 억울하게 고통받는 과부가 끈질기게 재판관에게 정의를 요구하는 이야기이다. 이는 사회의 힘없는 약자들이 불의한 권력과 구조 속에서 어떻게 고통받는지를 보여준다. 이웃 사랑은 단순히 가난한 자에게 빵을 주는 것을 넘어,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불의한 사회 구조' 자체에 맞서 싸우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책임을 포함한다. 기업은 자사의 막강한 영향력을 사용하여, 불공정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인권이 억압받는 곳에서 목소리를 내며, 사회 전체의 공공선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

소주제 4.3: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책임: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해결

기업 활동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고객, 직원, 협력업체, 지역 사회 등)와의 갈등을 유발한다. 이웃 사랑의 원칙은 이러한 갈등을 힘의 논리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를 통해 해결할 책임을 요구한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다. 이는 기업이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피해를 입은 이해관계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노사 갈등이나 협력업체와의 분쟁 시, 법적인 승패를 따지기 이전에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고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주제 4.4: 환경을 돌보는 책임(창조세계 보전): "공중의 새를 보라" - 모든 피조물에 대한 청지기적 책임

예수의 이웃 사랑은 인간 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마 6:26-28)고 말씀하시며, 하찮아 보이는 미물 하나하나까지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셨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것을 잘 돌보고 보전해야 할 **'청지기(Steward)'**의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기업의 CSR은 이제 **인간 사회를 넘어, 지구 환경 전체를 '이웃'으로 여기고, 미래 세대가 살아갈 환경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환경적 책임(ESG 경영)'**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5. 핵심 대주제 4: '이웃 사랑 CSR'이 조직에 가져오는 초월적 가치
계산된 이익을 넘어 '긍휼'의 동기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CSR은, 단기적인 비용 손실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기업에 그 어떤 전략보다 더 큰 '초월적 가치'를 가져다준다.

소주제 5.1: 진정성 있는 브랜드 구축: 계산된 이익을 넘어선 진심의 힘

소비자들은 똑똑하다. 그들은 기업의 CSR 활동이 홍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구분한다. '이웃 사랑'과 '긍휼'에 기반한 CSR 활동은 꾸며낼 수 없는 '진정성'을 가지며, 이는 고객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울림을 주어 강력한 '브랜드 신뢰'와 '충성도'를 구축한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브랜드 자산은 그 어떤 광고 캠페인으로도 살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경쟁 우위가 된다.

소주제 5.2: '의미'를 추구하는 인재 유치: Z세대의 가치 소비와 직업관에 부응하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 특히 Z세대는 단순히 연봉이 높은 회사보다,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가치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가치 노동자'이다. 이웃 사랑의 CSR을 진정성 있게 실천하는 기업은, 이러한 '의미'를 추구하는 최고의 인재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직장이 된다. 훌륭한 인재들은 자신들의 재능이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넘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소주제 5.3: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 제로섬 게임을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성장하는 '공동선(Common Good)' 추구

이웃 사랑의 CSR은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닌, '윈윈 게임(Win-win Game)'으로 만든다. 기업이 협력업체의 성장을 돕고, 지역 사회의 발전에 투자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비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속한 전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결국 기업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성장하고 번영하는 '공동선'의 추구이며, 기업의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소주제 5.4: 사회적 라이선스(Social License to Operate) 확보: 지역 사회의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받다

기업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받는 법적인 라이선스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대중으로부터 받는 암묵적인 '사회적 운영 라이선스(Social License to Operate)'가 필요하다. 이웃 사랑의 CSR을 통해 지역 사회의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받는 기업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지역 사회의 반발이 아닌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을 얻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은 예측 불가능한 위기 속에서 기업을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6. 결론: 기업은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인가?
이웃 사랑,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완전한 CSR 철학

결론적으로, CEO 예수의 '이웃 사랑'은 단순한 윤리적 권고를 넘어, 현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CSR의 대상을 나의 편의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존재로 확장하고, 그 동기를 계산된 이익이 아닌 순수한 '긍휼'에 두라고 요구한다. 이는 CSR을 기업 경영의 부수적인 활동이 아닌, 기업의 존재 이유 그 자체와 연결시키는 가장 완전한 CSR 철학이다.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재무제표가 아닌, 이웃의 눈물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평가된다

궁극적으로 한 기업의 위대함은 연간 매출액이나 시장 점유율과 같은 재무제표의 숫자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그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그 기업이 자신들의 이웃, 특히 강도 만나 쓰러져 있는 연약한 이웃들의 고통과 눈물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외면하고 지나칠 것인가, 아니면 사마리아인처럼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그 상처를 싸매줄 것인가?

당신의 조직은 오늘, 강도 만난 세상의 선한 이웃이 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강도를 만나 신음하고 있다. 가난과 질병, 불평등과 차별, 환경 파괴와 전쟁의 위협 속에서 수많은 이웃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질문은 모든 기업과 리더에게 던져져 있다. "당신의 조직은 이 강도 만난 세상의 아픔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치는 제사장인가, 아니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 함께 아파하고 일으켜 세우는 '선한 이웃'이 될 것인가?" 그 대답에 당신 기업의 진정한 미래와 존재 가치가 달려있다.

mainlogo.png

SWIM 세계인터넷선교협의회는 (KWMA소속단체) 1996년 창립한 선교단체로, 인터넷과 IT를 활용하여 30여 년간 세계선교에 기여해 왔습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