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상: 교회의 정체성과 선교적 사명
서론: 교회와 선교의 불가분성
교회는 단순히 예배드리는 기관이 아니다. 교회의 본질은 선교적 공동체이다. 신약 성경에서 교회는 항상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에클레시아)로 묘사되며, 그 부름은 세상을 향한 파송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교회의 존재 이유 자체가 선교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본 장에서는 성경 전체를 통해 교회와 선교의 불가분성을 탐구한다.
1장: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선교적 정체성
1.1 아브라함 언약과 이스라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1-3)라고 하셨다. 이 약속은 단순히 아브라함 개인의 복이 아니라 열방을 향한 복이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선교적 사명을 맡았다.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선교적 표징이었다.
1.2 이스라엘의 실패와 선교적 의미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선택을 특권으로만 이해하고, 열방을 향한 사명을 잊어버렸다.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가 이방의 빛이 되어야 한다”(사 49:6)고 외쳤다. 교회는 이스라엘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며, 선교적 소명을 본질적 사명으로 인식해야 한다.
2장: 예수님의 선교적 공동체 이해
2.1 제자 공동체의 파송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막 3:13-15),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셨다. 교회의 시작은 곧 파송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교리적 지식을 전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도록 훈련시키셨다.
2.2 십자가와 부활 사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선교적 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근거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드러내는 사건이며, 부활은 선교 공동체의 능력과 소망을 제공한다. 교회는 이 사건을 증언하는 공동체이다.
3장: 사도행전 속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
3.1 오순절 성령 강림
사도행전 2장은 교회의 본질이 곧 선교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령은 제자들을 흩어 세상 언어로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 이는 교회가 선교 공동체임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3.2 안디옥 교회의 사례
안디옥 교회는 선교 공동체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다양한 민족과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복음을 나누었고,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는 교회가 단순히 지역 공동체를 넘어 세계적 선교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4장: 바울 서신과 교회의 선교적 소명
4.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으로 묘사하며, 각 지체가 선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몸 전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교회는 선교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4.2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바울의 서신 곳곳에는 선교적 명령이 담겨 있다.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은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밝히며 교회의 후원과 동참을 요청했다. 이는 교회가 선교 공동체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5장: 요한계시록의 교회와 선교
요한계시록은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비전을 보여준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모인 무리가 어린양 앞에 서 있는 장면(계 7:9)은 교회의 선교적 사명의 최종적 성취를 보여준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모든 민족을 하나님 나라로 이끄는 공동체이다.
결론: 교회의 본질은 선교
교회는 존재론적으로 선교적이다. 교회가 선교를 "프로그램"으로 여길 때,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보내심 받은 공동체이며, 복음을 삶으로 증언하는 공동체이다. 성경 전체가 이를 증언한다.
1부 하: 교회는 선교 공동체이다 – 역사적·교리적 전개
1. 초대교회의 선교적 정체성
초대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 공동체였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사도들은 단순히 예루살렘이라는 지역 공동체 안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행 1:8)에 순종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에는 유대인 공동체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지만,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박해 이후 안디옥 교회로 대표되는 다문화적 선교 공동체로 발전하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단순히 예루살렘 교회의 분교가 아니라, 선교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안디옥 교회는 여러 민족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봉사하며,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다(행 13:1-3). 이는 교회가 단순히 모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파송하는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모이는 것(케리그마, 코이노니아)과 흩어지는 것(마르투리아, 디아코니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교회는 태생적으로 선교 공동체였으며, 그 정체성을 잃을 때 교회의 본질을 잃는 것이다.
2. 교부 시대의 선교 이해
교부 시대의 교회 역시 선교적 정체성을 이어갔다. 2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시기 동안 교회는 로마 제국 전역에 확장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순교자들의 증언은 복음 전파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터툴리안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고 말한 것은, 교회가 선교 공동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교부들은 교회의 사명을 단순히 교리적 수호에 두지 않았다. 물론 아리우스 논쟁이나 삼위일체 교리 정립 등 교리 논쟁은 치열했지만, 그 속에서도 교회는 본질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공동체였다. 이레네우스는 『이단 논박』에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역사의 진행을 하나님의 선교적 섭리 속에서 이해했다. 즉, 역사는 하나님의 선교적 경륜이며, 교회는 그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선교 공동체였다.
3. 중세 교회의 선교와 한계
중세 교회는 교황권 강화와 제도적 안정 속에서 선교적 열정이 위축되기도 했다. 십자군 운동은 표면적으로는 성지를 회복하려는 명분을 가졌지만, 복음적 선교보다는 정치적·군사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선교적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수도회 운동은 가난과 헌신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적 삶의 본을 보였다. 또한 중세 수도원 운동은 유럽의 복음화를 견인하며, 학문·문화·교육을 통해 선교적 영향을 끼쳤다.
중세 교회의 한계는 선교를 제도와 권력의 확장으로 오해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흔적은 수도회, 성자들의 증언, 복음적 삶을 통해 이어졌다. 이 시기 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선교 공동체로서의 본질을 되살릴 때, 권력과 제도의 유혹을 경계해야 함을 가르친다.
4. 종교개혁과 선교 공동체
종교개혁은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선 공동체”로 회복하려는 운동이었다. 루터와 칼빈은 직접적으로 해외 선교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신학은 교회를 본질적으로 선교 공동체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를 놓았다. 루터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보편적 제사장직을 강조했다. 이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선교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칼빈은 제네바를 “하나님의 학교”로 만들며 말씀과 성례, 훈련을 통해 교회를 선교적 훈련의 장으로 세웠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직접적인 운동은 아니었지만, 성경으로 돌아감으로써 교회의 본질이 선교 공동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프로테스탄트 선교 운동은 17세기 모라비안 공동체를 비롯해 18세기 복음주의 부흥운동으로 이어졌다.
5. 근대 선교 운동과 교회의 선교적 재발견
18세기 말, 윌리엄 캐리로 대표되는 근대 선교 운동은 교회가 본질적으로 선교 공동체임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캐리는 『이교도 개종에 관한 논문』을 통해 “교회의 본질은 선교”임을 강조하였고, 실제로 인도 선교를 통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 실천적으로 드러났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100년 기도운동과 끊임없는 파송을 통해 교회의 선교 공동체적 본질을 보여주었다.
근대 선교 운동은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을 교리적·실천적으로 확장시켰다. 교회는 단순히 유럽 중심의 기독교 공동체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공동체임을 깨닫게 되었다. 선교는 선택적인 활동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 자체였다.
6. 현대 신학과 교회의 선교 공동체 이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교회는 선교적 정체성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심화하였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을 중심으로 교회의 선교 사명을 강조했으며, 에밀 브루너는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 불이 타오르지 않으면 불이 아니라는 것처럼,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20세기 중반부터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을 발전시켰다. 선교는 교회의 활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역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단순히 선교를 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신학은 교회의 본질을 선교 공동체로 규정하는 데 중요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로잔 운동(1974)이 등장하여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수행하는 교회”라는 선교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로잔 언약은 교회가 본질적으로 선교 공동체이며, 모든 성도가 선교적 삶에 부름 받았음을 선언하였다.
7. 교회론 속에서 본 선교 공동체의 의미
교회론의 관점에서 볼 때, 교회는 세 가지 기본 속성을 가진다: 말씀의 공동체, 성례의 공동체, 선교의 공동체. 전통적으로 교회는 말씀 선포와 성례 집행을 교회의 표지로 삼았으나, 여기에 선교가 빠진다면 교회의 정체성은 불완전해진다. 교회는 단순히 안으로 모이는 집단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공동체이다.
교회론은 교회가 자기 보존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함을 밝힌다. 따라서 교회가 선교 공동체라는 선언은 교회의 교리적 정체성의 한 부분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 정의에 속한다.
결론
역사를 돌아볼 때, 교회는 언제나 선교 공동체로 존재할 때 가장 본질에 충실했다. 초대교회, 교부 시대, 중세 수도원, 종교개혁, 근대 선교 운동, 현대 신학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역사는 곧 선교의 역사였다. 교회가 제도와 권력에 머물 때 선교 공동체적 정체성을 잃었지만, 언제나 성령께서 새로운 선교의 길을 열어주셨다.
교회는 그 본질상 선교 공동체이다. 선교 없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교회의 교리와 역사적 전개는 이를 분명히 증거하며, 오늘날 우리 시대 교회 역시 선교 공동체로서의 본질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2부 상: 교회는 선교 공동체이다 – 선교 방법론과 원리
1. 교회의 선교 사명 이해
교회가 선교 공동체라는 고백은 단순한 신학적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론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실 때 단순히 모이는 집단으로 남겨두지 않으셨다. 그는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파송하시며, 세계 속으로 보내셨다(요 20:21). 따라서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은 “보냄 받은 공동체”라는 사실로 귀결된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에클레시아)이자 동시에 “세상 속으로 보내심을 받은 공동체”이다. 이중적 정체성 속에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조직, 예배, 교육, 섬김, 사회참여 모든 영역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교회가 선교 공동체임을 진정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해외 선교를 돕는 수준을 넘어, 교회의 존재와 활동 전반을 선교적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2. 선교 공동체의 구조적 원리
(1) 예배 중심의 선교
예배는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이며 동시에 선교의 원천이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 아니라, 예배자들을 세상 속으로 파송한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공동체는 그 은혜를 세상 속에서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선교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예배를 “내적 만족”이 아니라 “세상으로 보냄”의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2) 제자도와 훈련
교회가 선교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단순한 청중이 아니라 제자로 세워져야 한다. 제자도는 단순한 성경 지식 교육이 아니라, 삶 전반에서 복음을 살아내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다. 교회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성도들이 직장, 가정, 사회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돕는다. 따라서 선교는 “특별한 사람의 사역”이 아니라 모든 성도의 삶 자체로 이어져야 한다.
(3) 파송과 지원
교회가 선교 공동체로 존재하려면 파송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사도행전의 안디옥 교회처럼, 교회는 성도들을 선교지로 보내며, 그들의 사역을 물질적으로·영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파송은 단순히 해외 선교사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 속 빈민가, 캠퍼스, 직장, 문화 현장으로도 성도들을 파송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이다.
3. 교회의 선교 전략
(1) 지역 선교(Local Mission)
선교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자신이 위치한 지역 속에서 먼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한다. 이는 단순한 사회봉사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 속에서 복음의 증거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드러나는 삶을 의미한다.
가난한 이웃 돌봄
지역 문화 속 복음적 소통
공적 영역에서의 정의와 평화 추구
지역 교회는 자신의 담장을 넘어 지역과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2) 세계 선교(Global Mission)
선교 공동체의 정체성은 세계적이다. 교회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대위임령(마 28:19)을 따라 세계 선교에 헌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기도로 동역하며, 물질적 자원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한 서구 중심, 혹은 한 국가 중심의 선교가 아니라, 상호적·다문화적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대의 선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라는 일방적 흐름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라는 상호적 운동이어야 한다.
(3)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
현대 선교는 단순히 영혼 구원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사역처럼 선교는 말씀 선포와 동시에 치유, 정의, 화해, 창조세계 돌봄을 포함한다. 교회는 선교 공동체로서 총체적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 로잔 언약이 강조한 것처럼, 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복음은 영혼과 육체, 개인과 사회, 현재와 미래 모두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선교적 메시지다.
4.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원리
21세기 교회론에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한 담론이다. 이는 교회가 선교라는 활동을 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 본질 자체가 선교라는 이해를 말한다. 에디 가버트슨, 대럴 구더 등은 교회의 정체성을 “보냄 받은 공동체”로 정의하며,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는 주체라고 강조한다.
선교적 교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내부 중심이 아니라 세상 중심이다.
선교는 교회의 부속 활동이 아니라 존재 이유다.
모든 성도가 선교적 삶에 부름 받았다.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과 사역은 선교적 관점에서 점검되어야 한다.
이 원리는 교회를 단순히 “선교를 후원하는 공동체”에서 “선교를 살아내는 공동체”로 변화시킨다.
5. 교회의 선교 리더십
교회가 선교 공동체로 기능하려면 선교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목회자 리더십: 목회자는 단순한 교회 행정가가 아니라, 성도들을 선교 현장으로 동원하는 파송자이다.
평신도 리더십: 모든 성도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가정, 직장, 사회 속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삶 자체가 선교 리더십이다.
팀 사역과 동역: 교회는 개인주의적 리더십이 아니라, 공동체적 리더십을 통해 선교 사명을 감당한다.
6. 선교 공동체로서의 영적 기반
교회의 선교는 전략과 구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다. 교회가 선교 공동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영적 기반이 필요하다.
기도: 선교의 원동력은 기도이다. 교회는 선교를 위한 중보기도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선교적 사명의 토대이다. 말씀을 통한 훈련과 제자화가 선교 공동체의 생명이다.
성령의 역사: 교회의 선교적 사역은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순절 사건처럼, 성령이 임하실 때 교회는 선교 공동체로 살아날 수 있다.
결론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 공동체이며, 그 정체성은 구체적 방법론과 원리 속에서 구현된다. 예배, 제자도, 파송, 지역과 세계를 아우르는 총체적 선교, 선교적 교회론, 영적 기반은 모두 교회를 선교 공동체로 세워가는 핵심 요소다.
오늘날 교회는 선교를 선택적 프로그램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존재 이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교회는 크든 작든, 도시에 있든 시골에 있든,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교회는 선교 공동체이다”라는 선언의 실제적 의미가 있다.
2부 하: 교회는 선교 공동체이다 – 현장과 상황 적용
1. 초대 교회의 선교적 모델
초대 교회는 그 자체가 선교 공동체의 전형이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도 수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 자체가 선교였다.
안디옥 교회: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예배하며,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다. 오늘날 다문화 교회의 모델이 된다.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적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선교를 수행했다.
바울의 선교 팀: 바울은 언제나 동역자들과 함께 움직이며, 교회를 세우고 또 다른 교회를 파송했다. 이는 공동체적 선교의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모델은 오늘날 교회가 선교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 참고해야 할 신앙적 원형이다.
2. 역사 속 교회의 선교 사례
(1) 교부 시대
초대 교부들은 신학 논쟁과 더불어, 복음을 이방 세계에 확장하는 사명을 감당했다. 예를 들어, 이레네우스는 갈리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했고, 터툴리안은 로마 제국 사회 속에서 복음을 지적으로 방어하며 확산시켰다.
(2) 중세 수도원 운동
중세 수도원은 단순히 금욕 공동체가 아니라, 선교적 거점이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농업, 교육, 사회적 봉사를 통해 유럽 문명 속에 복음을 심었다. 수도사들은 말씀 연구와 기도를 통해 내적 영성을 세우면서 동시에 선교적 파송을 감당했다.
(3) 종교개혁 이후
루터와 칼빈은 교회의 본질을 “말씀과 성례전”에 두었지만, 동시에 교회를 세상 속으로 보내는 공동체로 보았다. 칼빈은 제네바 교회를 통해 제자들을 훈련하고 유럽 각국에 파송하였다. 이는 근대 선교 운동의 토대를 놓았다.
(4) 근대 선교 운동
윌리엄 캐리, 허드슨 테일러, 아도니람 저드슨 등은 교회가 파송 공동체로 존재해야 함을 실천했다. 이들은 교회의 후원과 파송을 받아 새로운 대륙과 민족 속으로 들어갔다. 19세기 세계 선교 운동은 교회를 선교 공동체로 다시금 회복시킨 사건이었다.
3. 현대 교회의 선교 현장 적용
(1) 한국 교회의 선교 공동체적 사역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교 파송 교회로 성장했다. 20세기 말, 수많은 선교사를 전 세계로 파송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숫자 중심의 파송에서 벗어나, 질적 성숙과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주민 사역: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을 섬기는 것은 오늘날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다.
북한 선교 준비: 분단 상황 속에서도 교회는 언젠가 열릴 북한을 위한 선교 공동체적 준비를 해야 한다.
청년 세대 선교: 다음 세대를 세워 세계 속으로 보내는 비전 훈련이 필수적이다.
(2) 서구 교회의 새로운 선교
서구 교회는 탈기독교 사회 속에서 다시금 “선교 공동체”로 자신을 정의해야 했다. 이는 더 이상 해외 선교 중심이 아니라, 자국 내 세속 사회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은 바로 이러한 필요에서 일어났다.
(3) 제3세계 교회의 부상
오늘날 선교의 주역은 서구 교회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교회로 이동하고 있다. 이 교회들은 스스로 선교 공동체로 살아가며, 다른 나라와 지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는 선교의 다극화 현상을 보여준다.
4. 상황별 선교 공동체 모델
(1) 도시 교회
도시는 문화, 경제, 교육의 중심지이다. 도시 교회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선교 공동체가 된다.
직장인 선교, 캠퍼스 선교, 문화 예술 사역
노숙자, 이주민, 소외 계층을 위한 돌봄
공적 신앙 증거를 통한 사회적 영향력
(2) 농촌 교회
농촌 교회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성과 관계 중심의 선교를 실현할 수 있다. 또한 자연과 함께하는 창조세계 돌봄의 선교를 실천할 수 있다.
(3) 온라인/디지털 교회
21세기 교회는 디지털 공간에서도 선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온라인 예배, 선교 콘텐츠 제작, SNS를 통한 전도는 새로운 선교적 가능성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디지털 시대의 영적 공허와 단절을 극복하는 공동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5. 선교 공동체의 도전 과제
교회가 선교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도전에 직면한다.
세속화: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교회는 선교적 정체성을 잃는다.
내부 중심성: 교회가 자기 보존에만 집중할 때, 선교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잃는다.
물질주의: 선교를 위한 헌신 대신 소비주의가 교회를 지배할 수 있다.
문화적 장벽: 다문화 사회 속에서 복음을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6. 선교 공동체의 미래
교회가 선교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대한 교회보다 선교적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미래의 교회는 건물과 제도 중심이 아니라, 관계와 제자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소그룹 교회 운동: 작은 공동체 속에서 선교적 삶을 실천
다문화 교회: 다양한 민족이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
이동 교회: 특정 지역에 고정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움직이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
결론
교회는 단순히 선교를 지원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선교 공동체이다. 초대 교회에서 시작된 이 정체성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되었고, 오늘날도 여전히 교회의 본질로 남아 있다.
현대 교회는 도시와 농촌, 온라인과 오프라인, 지역과 세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현장에서 선교 공동체로 존재해야 한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결국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선교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정의할 때, “교회는 선교 공동체이다”라는 선언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고백이며, 실천적 요청이다. 교회가 이 부르심에 응답할 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