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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이드 맥클랑 (Floyd McClung)
국제 예수전도단(YWAM)의 지도자로,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 들어가 '생명의 집' 사역을 시작하는 등 소외되고 상처받은 젊은이들을 섬겼습니다.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등불, 플로이드 맥클랑: '아버지의 사랑'으로 세대를 품다
서론: "아버지의 사랑이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1970년대 히피 운동의 물결이 휩쓸고 간 유럽의 중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마약과 자유로운 성(性), 그리고 동양 종교에 심취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중앙역 앞의 홍등가는, 이 길 잃은 젊은이들의 영적 공허함과 육체적 타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바로 이 절망의 한복판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걸어 들어간 한 젊은 미국인 선교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플로이드 맥클랑.
그는 국제 예수전도단(YWAM)의 개척자로서, 전통적인 교회 건물이 아닌 '생명의 집(De Ark)'이라 불리는 공동체를 통해, 집을 떠나 방황하는 수많은 '영적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어주었다. 그는 강단 위의 권위적인 설교자가 아니라,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홍등가 바닥에 앉아, 마약 중독자와 히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었던 '친구'였다.
그의 사역은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The Father Heart of God)'이라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그는 율법적인 정죄와 판단을 넘어,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긍휼과 사랑으로 죄인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본 글은 이처럼 '거리의 목자'였던 플로이드 맥클랑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가 어떻게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선교사가 되었는지 살펴보고, '생명의 집' 사역과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그의 핵심 메시지를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YWAM의 리더로서 그가 다음 세대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캘리포니아의 청년, 암스테르담의 히피들을 만나다
194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플로이드 맥클랑은 1960년대 '예수 운동(Jesus Movement)'의 열기 속에서 회심하고, 로렌 커닝햄의 비전에 이끌려 YWAM의 초기 사역에 헌신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등지에서 히피들을 대상으로 한 단기 사역 경험을 통해, 그는 서구의 물질문명에 환멸을 느끼고 영적인 답을 찾아 동양으로 향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영적 갈급함을 목격했다. 1973년, 그는 아내 샐리(Sally)와 함께, 바로 이 '히피 트레일(Hippie Trail)'의 유럽 쪽 관문이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선교 기지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도시의 가장 어두운 심장부, 중앙역 앞의 홍등가였다. 그곳은 전 세계에서 온 히피와 마약 중독자, 가출 청소년들의 집결지였다. 맥클랑 부부는 이곳에 낡은 건물을 얻어, '데 아르크(De Ark)', 즉 '방주(The Ark)'라는 의미의 '생명의 집'을 열었다.
본론 2: '생명의 집'과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생명의 집'은 전통적인 교회가 아니었다. 그곳은 24시간 문이 열려 있는 카페이자, 임시 숙소였고, 따뜻한 식사를 나누는 공동체였다.
판단이 아닌 환대
맥클랑과 YWAM의 젊은 사역자들은 홍등가를 찾아온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설교하거나 정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배고프지 않으세요? 따뜻한 수프 한 그릇 하고 가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생명의 집'을 찾아온 이들에게,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했다.
이러한 조건 없는 환대와 사랑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처와 방황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맥클랑과 사역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울고 기도해주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맥클랑의 사역의 신학적 기초는 바로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The Father Heart of God)'**이었다. 그는 많은 젊은이들의 방황이,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에 대한 깊은 갈증에서 비롯됨을 발견했다. 그들의 반항과 분노는 "나를 사랑해 줄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외침이었다.
그는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 비유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더러워지고 망가졌는지에 상관없이,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심을 역설했다. 그는 율법적인 규칙과 종교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대신, 아버지의 품 안에서 누리는 사랑과 자유, 그리고 정체성의 회복을 강조했다. 그의 메시지는 '종교'에 상처 입고 교회를 떠났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이러한 통찰은 훗날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The Father Heart of God)』이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출간되었다.
결론: 세대를 일으키는 영적 아버지
암스테르담에서의 성공적인 사역 이후, 플로이드 맥클랑은 YWAM의 국제 총재를 역임하는 등 세계적인 리더로 활동했다. 그는 2000년대 후반까지 '올네이션스(All Nations)'라는 새로운 개척 선교 단체를 이끌며, 다음 세대의 선교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헌신하다가, 2021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산은 그가 세운 건물이나 조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도시 중심, 관계 중심적 선교'의 탁월한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교회가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직접 들어가, 판단이 아닌 환대를 통해 이웃의 친구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수많은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했다. 그는 율법주의와 종교적 위선에 지친 세대에게, 은혜와 사랑에 기초한 복음의 본질을 회복시켜 주었다.
플로이드 맥클랑은 평생에 걸쳐, 집을 나간 아들과 딸들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았다. 그는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서, 히말라야의 산길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의 도시들에서 길 잃은 다음 세대를 품에 안고, "괜찮아, 아버지가 너를 기다리고 계셔"라고 속삭여주었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적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