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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브랜드 (Paul Brand)

인도에서 나병(한센병) 환자 치료와 재활 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환자들의 육체와 영혼을 함께 치유했습니다.

상처 입은 손을 어루만진 의사, 폴 브랜드: 나병(한센병) 환자들의 존엄성을 되찾아주다
서론: 감각 없는 손, 세상의 편견을 향한 도전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나병(한센병)은 '하늘이 내린 저주'이자 '천형(天刑)'으로 여겨졌다. 나균(癩菌)이 신경을 파괴하여 감각을 잃게 만들고, 이로 인해 손과 발이 뒤틀리고 상처 입어 흉측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극도의 공포와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환자들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인간으로서의 모든 존엄성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야 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뒤틀린 손가락과 발가락이 병 자체 때문이라고 믿었지만, 20세기 중반, 한 젊은 영국인 의사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위대한 진실을 발견했다. "그들의 상처는 나병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 발견을 통해 나병 환자 재활 치료에 혁명을 일으키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선물한 인물이 바로 폴 브랜드 박사이다. 그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한 의사를 넘어, 세상의 가장 멸시받는 이들의 상처 입은 손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지고 수술하며, 그들이 잃어버렸던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준 위대한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작가 필립 얀시(Philip Yancey)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의학적 발견을 깊은 영적 통찰로 승화시켜 전 세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의 신비'와 '몸의 은사'에 대해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본 글은 이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들의 손을 잡았던 폴 브랜드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인도 산골에서 태어난 선교사의 아들이 어떻게 나병 환자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그의 혁명적인 의학적 발견과 재활 치료법을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의 삶과 글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고통의 선물'이라는 역설적인 메시지의 의미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선교사의 아들, 외과 의사가 되어 돌아오다
폴 브랜드의 나병 환자들을 향한 깊은 공감과 사랑은 그의 특별한 성장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인도 산골에서의 유년 시절
1914년, 폴 브랜드는 인도 남부 콜리(Kolli) 산맥에서 사역하던 영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산의 별(Star of the Mountain)'이라 불리며, 독사와 질병, 그리고 온갖 위험 속에서 헌신적으로 원주민들을 섬겼다. 폴은 어린 시절, 인도인 친구들과 함께 맨발로 산과 들을 뛰어놀며 자랐고, 그의 마음속에는 인도의 사람들과 문화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는 아버지가 세운 작은 진료소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돌보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런던의 외과 의사, 인도를 향한 부르심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유능한 외과 의사가 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공습으로 부상당한 환자들을 치료하며 외과 의사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전쟁이 끝난 후, 그에게는 영국에서 편안하고 성공적인 의사로서의 길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인도, 특히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나병 환자들의 고통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경력을 뒤로하고, 아내 마가렛(Margaret, 역시 안과 의사)과 함께 1946년 인도 남부 벨로르(Vellore)에 위치한 기독교 의과대학(CMC Vellore, 아이다 스커더가 설립)의 교수로 부임하여 인도로 돌아왔다.

본론 2: "고통은 선물이다" - 혁명적인 의학적 발견
벨로르에 도착한 폴 브랜드는 곧 나병 환자들의 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나병에 대한 오해를 뒤집는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된다.

나병이 아닌, '무감각'이 문제다
당시 사람들은 나병 환자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뭉개지고, 코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 나균 자체가 살을 썩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브랜드 박사는 환자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진짜 원인이 다른 곳에 있음을 발견했다. 나균은 신경을 파괴하여 '고통을 느끼는 감각'을 마비시키고, 이 '무감각(insensitivity)'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들은 손에 불이 붙어도 뜨거움을 몰랐고, 날카로운 것에 찔려도 아픔을 몰랐으며, 뼈가 부러져도 그 발로 계속 걸어 다녔다. 쥐가 밤새 발가락을 갉아먹어도 잠에서 깨지 못했다. 이러한 반복적인 '무감각한 상처'가 감염과 괴사로 이어져, 결국 손과 발을 잃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끔찍한 상처는 저주나 신의 형벌이 아닌, 단지 고통이라는 '경보 시스템'이 고장 났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고통의 선물을 되찾아주다
이 발견은 나병 치료에 혁명을 가져왔다. 브랜드 박사는 "치료의 목표는 나균을 죽이는 것을 넘어, 환자들이 잃어버린 '고통의 선물(the gift of pain)'을 되찾도록 돕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스스로 보호하는 법을 가르쳤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손과 발에 새로운 상처가 생기지 않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뜨거운 것을 만질 때는 장갑을 끼며, 신발 안에 돌멩이가 들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도록 훈련시켰다.

더 나아가, 그는 뒤틀린 손과 발을 기능적으로 재건하는 혁신적인 수술 기법들을 개발했다. 그는 힘줄 이전술(tendon transfer surgery)과 같은 정형외과적 수술을 나병 환자들에게 최초로 적용하여, 갈퀴처럼 굽었던 손가락을 펴게 하고, 아래로 처진 발목을 다시 들어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의 수술을 통해, 수많은 환자들이 처음으로 숟가락을 쥐고, 글씨를 쓰고,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신체를 재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너진 자존감과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주었다.

본론 3: 몸의 신비, 영혼의 교사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루이지애나의 국립 한센병 센터에서 재활 분과 책임자로 일하며 연구를 계속했던 폴 브랜드는, 말년에 작가 필립 얀시와 함께 자신의 의학적 발견과 신앙적 성찰을 담은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고통의 선물』과 『그의 형상대로』
그의 대표작인 **『고통의 선물(The Gift of Pain)』**과 **『그의 형상대로(In His Image)』**에서, 그는 인체의 신비, 특히 고통과 감각의 역할을 통해 깊은 영적 진리를 탐구했다.

고통의 역설: 그는 고통이 우리를 파괴하는 적이 아니라, 우리 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필수적인 '선물'임을 역설했다. 그는 이를 영적인 세계에 유비하여,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과 같은 영적인 고통 역시 우리의 영혼이 병들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이며, 우리를 회개와 치유로 이끄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했다.

몸의 지혜: 그는 인체의 수조 개의 세포들이 어떻게 완벽한 조화 속에서 서로를 섬기고, 하나의 몸을 이루어 살아가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이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모습에 비유했다. 그는 각 지체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공감),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할 때, 교회는 비로소 건강한 몸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에게 인체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였고, 그의 진료실은 영혼의 비밀을 탐구하는 예배의 장소였다.

결론: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의술, 가장 높은 곳을 향한 신앙
2003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폴 브랜드의 삶은 과학적 탐구와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아름답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위대한 증거였다. 그는 나병 환자를 만지기를 꺼렸던 세상의 편견에 맞서, 기꺼이 그들의 상처 입은 손을 잡고 수술했던 용기 있는 의사였다.

그의 유산은 명확하고 지대하다.

그는 나병 재활 치료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의 의학적 발견과 수술 기법은 전 세계 나병 환자 치료의 표준이 되었고, 수백만 명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고통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그는 고통을 피해야 할 저주가 아닌, 우리를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선물'로 보도록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몸'의 신학을 통해 교회의 본질을 일깨웠다. 그는 인체의 신비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아픔을 나누고 함께 세워져 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폴 브랜드는 세상에서 가장 멸시받는 이들의 '감각 없는 손' 속에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깊은 아픔과 사랑을 발견했다. 그의 삶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치유의 손길이, 어떻게 가장 높은 하늘의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솜씨 좋은 외과 의사의 정교한 수술처럼, 우리 마음에 깊고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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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элхийн Интернэт Номлолын Нийгэмлэг (SWIM) нь 1996 онд байгуулагдсан номлогчийн байгууллага бөгөөд 20 гаруй жилийн турш интернет болон мэдээллийн технологийн тусламжтайгаар дэлхийн номлолд хувь нэмрээ оруулсаар ирсэ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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