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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바나도 (Thomas Barnardo)
영국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바나도 홈'을 설립하여 수만 명의 고아와 빈민 아동을 돌본 사회 개혁가입니다.

'아무도 거절하지 않는다': 런던의 버려진 아이들의 아버지, 토마스 바나도
서론: 한 소년의 죽음, 양심을 깨우다
1866년 런던의 추운 겨울 밤, 의대생이자 빈민가 전도자였던 젊은 토마스 바나도는, 지붕도 없는 곳에서 잠을 자는 부랑아 짐 자비스(Jim Jarvis)를 만났다. 짐은 그에게 런던의 골목과 지붕 밑에 자신처럼 버려진 아이들이 수없이 많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바나도는 자신의 작은 선교관이 이미 꽉 찼기에 짐을 받아주지 못했고, 며칠 후 짐은 영양실조와 동상으로 길거리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한 소년의 비극적인 죽음은 바나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는 "다시는 어떤 아이도, 어떤 이유로든, 문 앞에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 결심은 훗날 영국 최대의 아동 구호 기관인 '바나도 홈(Barnardo's Homes)'의 창립 정신, "No Destitute Child Ever Refused Admission(어떤 궁핍한 아이도 결코 입소를 거절당하지 않는다)"이 되었다.
토마스 바나도는 원래 중국 선교사를 꿈꿨던 의대생이었지만, 자신의 발밑에 있는 런던의 '어린 이교도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한 위대한 사회 개혁가였다. 그는 단순히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을 넘어, 그들에게 교육과 기술을 제공하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열어준 선구자였다. 본 글은 이처럼 '영국의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렸던 토마스 바나도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본론: "가장 약한 자를 먼저" - 바나도 홈의 탄생과 발전
184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토마스 바나도는, 10대 시절 회심을 체험하고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내지선교회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의료 선교사가 되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런던 이스트엔드의 비참한 현실은 그의 시선을 중국이 아닌 바로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소년 짐의 비극"과 첫 번째 집
짐 자비스의 죽음 이후, 그는 1867년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런던의 스텝니(Stepney)에 첫 번째 '소년의 집(boy's home)'을 열었다. 그러나 곧 소녀들을 위한 집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876년에는 바킹사이드(Barkingside)에 소녀들을 위한 '정원 마을(garden village)'을 조성했다. 그의 접근 방식은 당시의 거대하고 비인격적인 고아원과는 달랐다. 그는 아이들이 대규모 수용 시설이 아닌, '어머니'가 돌보는 작은 '가정집(cottage)'에서 살며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기를 원했다.
논란을 넘어선 헌신
그의 사역은 언제나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그는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전'과 '후' 사진으로 찍어 후원을 호소했는데, 이는 때로 "가난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는 부모의 동의 없이 아이들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이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법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이를 구할 도덕적 의무"라고 항변했다.
그의 가장 논쟁적인 사업 중 하나는, 약 10만 명의 빈민 아동들을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 국가로 이주시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한 '아동 이주 프로그램'이었다. 비록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비판의 소지가 있지만, 당시로서는 런던의 빈민가에서 살아남을 가망이 없었던 아이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를 제공하려는 그의 절박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결론: 한 아이의 가치를 일깨운 선구자
19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토마스 바나도는 약 6만 명의 아이들을 직접 돌보고, 영국 전역에 100개에 가까운 '바나도 홈'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가 세운 기관은 오늘날에도 '바나도스(Barnardo's)'라는 이름으로 영국 최대의 아동 복지 기관으로 활동하며 그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유산은 명확하다.
그는 '아동 복지'의 개념을 바꾸었다. 그는 자선이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한 아이의 미래 전체를 책임지고 변화시키는 '투자'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No Destitute Child Ever Refused"라는 원칙을 통해, 모든 아이는 조건 없이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다.
토마스 바나도는 한 소년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통감했고, 그 아픔을 평생에 걸쳐 수만 명의 아이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삶은, 우리 주변의 가장 작은 자 한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위대한 시작임을 보여주는 영원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