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Номлогчийн үндсэн сургалтын онлайн лекцүүдийн жагсаалт

캐서린 부스 (Catherine Booth)

남편 윌리엄 부스와 함께 구세군을 창립한 '구세군의 어머니'로, 여성 사역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데 앞장섰습니다.

'구세군의 어머니', 캐서린 부스: 여성의 강단을 연 선구자적 설교가
서론: 대장의 심장이었던 아내
19세기 런던의 빈민가에서 구세군을 창설하여 '대장(General)'이라 불렸던 윌리엄 부스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그보다 더 조용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강인하고 혁신적인 영적 거인이 함께 서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캐서린 부스. 그녀는 단순히 윌리엄 부스의 아내이자 여덟 자녀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녀는 구세군의 신학적 기틀을 다진 사상가였고,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강단에 올라 수많은 군중을 사로잡았던 위대한 설교가였으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사역할 권리가 있음을 온몸으로 증거한 '여성 사역의 선구자'였다.

만약 윌리엄 부스가 구세군이라는 '군대'의 역동적인 행동대장이었다면, 캐서린 부스는 그 군대의 심장이자 두뇌였다. 그녀의 깊이 있는 신학적 통찰과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한 불타는 긍휼, 그리고 여성의 역할에 대한 시대를 앞서간 비전이 없었다면, 구세군은 결코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운동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 글은 '구세군의 어머니'라 불렸던 이 위대한 여성 지도자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녀가 어떻게 빅토리아 시대의 편견에 맞서 여성 설교가로서의 길을 개척했는지 살펴보고, '수프, 비누, 그리고 구원'으로 대표되는 구세군의 총체적 사역에 그녀가 어떤 신학적 기초를 제공했는지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삶이 오늘날까지도 교회 내 여성 리더십과 사회적 책임에 던지는 의미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침묵을 깨고 강단에 선 여인
캐서린 멈포드(Catherine Mumford)는 1829년 영국의 독실한 감리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허약했지만, 총명하고 독서열이 강했으며, 12살 이전에 이미 성경을 8번이나 통독할 만큼 깊이 있는 신앙심을 가졌다.

여성 설교권을 위한 투쟁
그녀는 젊은 시절, 당시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바울 서신 해석에 근거하여 여성의 설교를 금지하는 교회의 관습에 깊은 의문을 품었다. 그녀는 성경을 깊이 연구한 끝에, 성령의 은사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며,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여성도 얼마든지 설교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859년,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신념을 담은 소책자 **'여성의 사역(Female Ministry)'**을 출판하여, 빅토리아 시대 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는 이론가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860년 어느 날, 남편 윌리엄이 설교하던 예배 중에, 그녀는 성령의 강한 이끌림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날 저녁, 그녀는 처음으로 강단에 올라 간증을 했고, 그녀의 진솔하고도 논리적인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그녀는 영국 전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설교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녀는 부유한 상류층과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하며, 그들의 양심을 일깨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책임에 눈을 뜨게 하는 데 탁월한 은사를 보였다.

본론 2: 구세군 영성의 심장
캐서린 부스는 구세군 사역의 모든 측면에 깊은 신학적,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총체적 구원'의 신학
'수프, 비누, 그리고 구원'으로 대표되는 구세군의 사역 철학은 바로 캐서린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인간의 영혼 구원과 육체적, 사회적 구원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총체적인 사명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녀는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주장하며, 교회가 먼저 그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그녀의 신념은 구세군이 단순한 전도 단체를 넘어, 사회 복지 사역의 가장 위대한 선구자 중 하나가 되는 신학적 토대가 되었다.

어린이와 동물을 향한 사랑
그녀의 긍휼은 인간에게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녀는 당시 아동 노동이 만연했던 사회에서 어린이들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피조물을 향하고 있음을 깊이 이해했던, 시대를 앞서간 생명 존중 사상가였다.

결론: 대장의 심장, 교회의 어머니
1890년, 51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캐서린 부스는 윌리엄 부스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이자 동역자였으며, 때로는 그의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영적 나침반이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3만 6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구세군의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그녀의 유산은 실로 거대하다.

그녀는 여성 사역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녀의 용기 있는 설교와 변증은, 여성이 교회 안에서 남성과 동등한 사역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오늘날 구세군에서 여성 사관들이 남성과 동등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전통은 전적으로 그녀의 유산이다.

그녀는 구세군의 신학적 심장이었다. 그녀가 제시한 '총체적 구원'의 비전은, 구세군이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도주의 기관 중 하나로 굳건히 서게 한 뿌리가 되었다.

윌리엄 부스가 구세군의 '손과 발'이었다면, 캐서린 부스는 그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한 '심장과 두뇌'였다. 그녀의 삶은, 한 명의 깨어있는 여성이 어떻게 교회의 역사를 바꾸고 세상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이다.

강의 읽음 등록
mainlogo.png

Дэлхийн Интернэт Номлолын Нийгэмлэг (SWIM) нь 1996 онд байгуулагдсан номлогчийн байгууллага бөгөөд 20 гаруй жилийн турш интернет болон мэдээллийн технологийн тусламжтайгаар дэлхийн номлолд хувь нэмрээ оруулсаар ирсэн.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