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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뮬러 (George Muller)
기도로 수만 명의 고아를 돌본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기도로 고아원을 세운 사람, 조지 뮬러: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
서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거대한 신앙 실험
만약 당신에게 수천 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해야 할 책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당신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부유한 후원자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으며, 심지어 신문에 모금 광고를 내거나 후원 요청 편지를 보내는 것조차 금지된다. 오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당신은 그 일을 시작할 수 있겠는가?
19세기 영국, 조지 뮬러는 바로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실제로 해낸 인물이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해외 선교사는 아니었다. 그의 선교지는 영국의 산업도시 브리스톨의 어둡고 비참한 골목이었고, 그의 선교 대상은 그곳에서 굶주리고 버려진 고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역 방식, 즉 인간의 도움을 일절 구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만 모든 필요를 공급받는 그의 삶은,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전 세계 교회를 향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가장 강력하고 실증적인 설교가 되었다.
그의 삶은 하나의 거대한 신앙 실험이었다. "하나님은 정말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1만 명이 넘는 고아들의 삶과 오늘날 가치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재정을 통해 "그렇다"고 증명해 보였다. 그는 신학자나 웅변가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자신의 삶 전체를 그 약속의 증거로 만들어낸 믿음의 실천가였다.
본 글은 이 위대한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도둑질과 거짓말을 일삼던 한 탕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났는지 그의 극적인 회심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그가 브리스톨에 고아원을 세우고 운영했던 경이로운 '믿음의 원칙'들을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선교의 개념을 확장하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영감과 도전을 주고 있는지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탕자에서 성자로 - 극적인 회심
뮬러의 위대한 믿음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죄와 방탕으로 얼룩져 있었다.
거짓과 도둑질로 물든 청년기
조지 뮬러는 1805년, 프로이센(오늘날의 독일)의 한 세무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돈을 상습적으로 훔쳤고, 친구들을 속였으며, 도박과 음주에 빠져 살았다. 그의 거짓말과 사기 행각은 점점 대담해져, 16세 때는 최고급 호텔을 전전하며 숙박비를 떼먹다가 결국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의 자신을 "거짓말쟁이, 도둑, 위선자"였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할레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그의 방탕한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했지만, 그것은 안정된 목사직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경외심은 전혀 없었다.
한 기도 모임에서의 완전한 변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은 1825년 11월, 그가 20세 때 일어났다. 한 친구의 초대로 별생각 없이 따라간 어느 가정집의 작은 기도 모임이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그곳에서 그는 난생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자유롭게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학교 예배의 형식적인 기도와는 완전히 다른,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대화하는 그 모습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죄악된 삶을 깊이 깨닫고, 처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결심했다.
그날 이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술과 거짓말을 끊었고, 성경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품게 되었다. 탕자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극적인 회심의 순간이었다. 그는 이후 런던 선교회에 들어가 유대인 선교사로 헌신하고자 했으나, 건강 문제와 기존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그의 독립적인 성향은 그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
본론 2: 브리스톨의 고아들 - 믿음의 원칙 위에 세운 집
1832년, 뮬러는 잉글랜드의 브리스톨에 정착했다. 당시 브리스톨은 산업 혁명의 그늘 아래, 비참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 고아들의 참상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들을 위한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세상의 방식과 완전히 달랐다.
기도로만 운영되는 고아원
1836년, 뮬러는 자신의 집에 30명의 여자 고아들을 받으며 첫 번째 고아원을 시작했다. 이 사역을 시작하며 그는 자신과 동역자들을 위한 몇 가지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을 세웠다.
어떤 인간에게도 사역의 필요를 알리거나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모든 필요는 오직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만 아뢴다.
결코 빚을 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도에 응답하셨는지 증명하기 위해, 받은 모든 헌금과 사용된 모든 지출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공개한다.
정부의 지원이나 부유한 특정 후원자의 약속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심만을 신뢰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고아들을 구제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사역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시며, 그분은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세상에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아원은 그 증거를 보여주기 위한 무대였다.
텅 빈 식탁 앞에서의 감사 기도
뮬러의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침 식사 시간의 기적'이다. 어느 날 아침, 고아원의 식당에는 300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지만, 부엌에는 먹을 음식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뮬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아이들을 식탁에 앉힌 뒤,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곧 받게 될 음식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기적이 일어났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문밖에는 한 제빵사가 서 있었다. 그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새벽 일찍 빵을 구웠다며, 고아원에 빵을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돌아가자마자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우유 배달부였다. 그의 우유 배달 수레가 고아원 앞에서 고장이 나서, 수리하는 동안 우유가 상할 것 같으니 아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 아이들은 빵과 우유로 풍성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뮬러의 사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던 수많은 기적적인 공급의 한 단편일 뿐이었다.
이러한 믿음의 원칙 위에서, 뮬러의 사역은 놀랍게 확장되었다. 그는 브리스톨의 애슐리 다운(Ashley Down) 언덕에 5채의 거대한 고아원 건물을 건축하여, 한 번에 2,000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가 평생에 걸쳐 돌본 고아의 수는 1만 명이 넘었고, 기도를 통해 받은 헌금은 총 150만 파운드(오늘날 가치로 환산 시 약 2,000억 원)에 달했다.
본론 3: 세계를 향한 증언 - 기도와 말씀의 사역
조지 뮬러의 비전은 브리스톨의 고아들을 돌보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전 세계의 영혼들을 향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고아원을 넘어선 사역 (SKI)
뮬러는 1834년, 고아원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국내외 성경 지식 보급회(The Scriptural Knowledge Institution for Home and Abroad, SKI)'라는 기관을 설립했다. 고아원 사역은 사실 이 SKI가 수행하는 5대 사역 중 하나에 불과했다. SKI의 다른 사역들은 다음과 같았다.
학교 지원: 수백 개의 주일학교와 일반 학교를 지원하여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성경 보급: 수십만 권의 성경과 신약성경을 전 세계에 배포했다.
문서 선교: 1억 부가 넘는 기독교 소책자와 문서들을 배포했다.
선교사 후원: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수백 명의 선교사들에게 재정 지원을 보냈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사역 역시 고아원과 동일한 '믿음의 원칙' 위에서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중국내지선교회를 설립한 허드슨 테일러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직접 해외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기도와 SKI를 통해 전 세계의 선교사들과 동역했던 '선교의 동역자'였다.
17년간의 세계 선교 여행
70세가 되던 해, 뮬러는 고아원의 운영을 사위에게 물려주고 완전히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바로 세계 순회 설교 여행이었다. 그는 87세가 될 때까지 17년 동안, 42개국을 방문하며 20만 마일(약 32만 km)이 넘는 거리를 여행했다. 그는 약 300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며 자신의 삶을 간증했다.
그의 설교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그는 복잡한 신학 이론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지난 50년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는가"를 이야기했다. 그의 삶 자체가 그의 설교의 내용이자 증거였다. 한때 방탕한 죄인이었던 노인이, 이제는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살아있는 전설이 된 것이다.
결론: 기도의 능력, 살아있는 증거
1898년, 조지 뮬러는 92세의 나이로 브리스톨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개인 소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위대한 신학자나 웅변가는 아니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믿고, 그 약속을 붙들고 평생을 살았던 순수한 신앙인이었다. 그의 진정한 사역은 고아들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세상에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가 세운 고아원 건물들은 벽돌이 아닌, 수만 번의 응답된 기도로 지어진 기념비였다.
조지 뮬러의 삶은 오늘날 인간의 계획과 전략, 모금 기술과 재정 능력에 점점 더 의존해가는 현대 교회를 향한 강력한 도전이다. 그는 우리의 가장 큰 자원이 건물의 크기나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하늘의 보좌로 직접 연결된 기도의 라인임을 상기시킨다. 그의 삶은 증명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그분은 당신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분의 방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언제나 신실하다는 것을. 조지 뮬러는 역사책 속에 박제된 성인이 아니라, 오늘 우리 각자에게 "너의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외치는,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