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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바즈 (Joseph Vaz)
17세기 인도 고아 출신 가톨릭 사제로, 네덜란드의 박해 아래 있던 스리랑카(실론)에 몰래 들어가 가톨릭 신앙 공동체를 재건하고 지켰습니다.

실론의 사도, 요셉 바즈: 박해의 땅에 숨어든 복음의 밀수꾼
서론: 아시아인이 아시아인을 향한 선교
17세기 후반, 인도양의 섬 실론(Ceylon, 현재의 스리랑카)의 가톨릭 교회는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섬을 지배하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칼뱅주의 개신교를 국교로 삼고, 가톨릭 신앙을 철저히 탄압했다. 모든 사제들은 추방되었고, 미사를 드리는 것은 불법이었으며, 수십만 명의 가톨릭 신자들은 목자 없는 양 떼처럼 흩어져 신앙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바로 이 절망의 땅에, 복음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잠입한 한 인도의 사제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요셉 바즈. 그는 유럽인이 아닌, 인도 고아(Goa) 출신의 브라만 계급의 사제였다. 그는 변장과 잠입, 비밀스러운 성사 집전 등, 마치 '하나님의 밀수꾼'과도 같은 방식으로 30년 가까이 박해받는 실론의 가톨릭 교회를 지키고 재건했다. 그는 '아시아인이 아시아인에게' 복음을 전한 위대한 선교의 선구자였으며, 2015년 아시아인 최초로 스리랑카에서 시성된 성인이다.
본 글은 이처럼 '실론의 사도'로 불리는 요셉 바즈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가 어떻게 안정된 삶을 버리고 박해의 땅 실론으로 향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그의 용감하고 지혜로운 '잠입 선교' 방식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헌신이 어떻게 스리랑카 가톨릭 교회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었는지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고아의 브라만, 실론의 목자가 되다
1651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인도 고아의 독실한 브라만 가톨릭 가문에서 태어난 요셉 바즈는,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학문적 재능과 깊은 신앙심을 보였다. 그는 사제로 서품받은 후, 고아에서 존경받는 설교가이자 행정가로서 편안한 미래를 보장받았다.
"실론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네덜란드의 박해 아래 신음하고 있는 이웃 섬, 실론의 가톨릭 형제들을 향해 있었다. 그는 "아시아 선교는 아시아인 사제들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인도인 사제들로 구성된 '성 필립보 네리의 오라토리오회'를 창설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선교지로, 가장 위험하고 도움이 절실한 실론을 선택했다.
1686년, 그는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노동자로 변장한 채 홀로 실론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당시 실론에서 가톨릭 사제로 발각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밀수꾼
실론에 잠입한 그의 삶은 한 편의 첩보 영화와도 같았다. 그는 구걸하는 걸인, 빵 파는 상인, 세탁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마을과 도시를 떠돌았다. 그는 낮에는 숨어 지내고, 밤이 되면 비밀리에 흩어져 있던 가톨릭 신자들의 집을 찾아가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주었다.
그의 사역은 곧 네덜란드 당국의 수배 대상이 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체포될 위기를 넘겼고, 결국 중부의 불교 왕국인 캔디(Kandy) 왕국으로 피신했다. 처음에는 그를 포르투갈의 첩자로 의심하여 감옥에 가두었던 캔디의 왕은, 그의 거룩한 인품과 지혜에 감복하여 점차 그의 활동을 묵인해주었다. 특히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바즈 신부가 십자가를 들고 기도하자 폭우가 쏟아졌다는 전설적인 일화 이후, 왕은 그에게 왕국 내에서의 완전한 종교 활동의 자유를 허락했다.
캔디를 거점으로, 그는 실론 전역에 흩어져 있던 가톨릭 공동체를 재조직하고, 비밀리에 현지인 교리교사들을 양성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창설했던 인도의 오라토리오회에 도움을 요청하여, 더 많은 인도인 사제들을 실론으로 불러들였다.
결론: 아시아 교회의 초석이 된 성인
1711년, 23년간의 헌신적인 실론 사역 끝에, 요셉 바즈는 59세의 나이로 캔디에서 선종했다. 그가 처음 실론에 도착했을 때, 섬에는 단 한 명의 사제도 없었고 교회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눈을 감았을 때, 실론에는 7만 명이 넘는 신자를 가진 활기찬 가톨릭 공동체가 재건되어 있었다.
그의 유산은 실로 거대하다.
그는 스리랑카 가톨릭 교회를 구원했다. 그의 용기와 헌신이 없었다면, 스리랑카의 가톨릭 신앙은 네덜란드의 박해 속에서 완전히 소멸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오늘날 '스리랑카 교회의 창설자'로 추앙받는다.
그는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 선교'의 위대한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서구 선교사에 의존하지 않고, 현지인 사제들의 힘으로 교회를 재건하고 확장함으로써, 아시아 교회의 자립 가능성을 증명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요셉 바즈를 성인으로 공식 시성했다. 그의 시성식은, 서구 제국주의의 그늘을 넘어, 아시아 교회가 자신의 고유한 성인을 갖게 되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요셉 바즈의 삶은, 가장 어두운 박해 속에서도 한 사람의 거룩한 헌신이 어떻게 신앙의 불씨를 지키고 더 큰 빛으로 타오르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원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