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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게일 (James Scarth Gale)

한영사전을 편찬하고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등 한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선교했습니다.

조선의 마음을 사랑한 선비, 제임스 게일: 붓으로 복음과 한국학의 터를 닦다
서론: 푸른 눈의 한국학 학자, 붓을 든 선교사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병원을 짓고 교회를 세우며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조선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의사나 건축가가 아니었다. 그는 붓을 든 선비였고, 서재에 앉은 학자였다. 그는 한국의 언어와 역사, 그리고 문화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평생을 바쳐 그것을 연구하고 세계에 알렸으며, 그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복음의 진리를 한국인의 심성에 가장 잘 와닿는 언어로 번역하고자 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스카스 게일, 한국 이름으로는 '기일(奇一)'이라 불렸던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이다.

그는 언더우드나 아펜젤러처럼 거대한 기관을 세운 설립자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은 그 어떤 건물보다도 더 견고하고 지속적이다. 그는 최초의 본격적인 **한영대자전(韓英大字典)**을 편찬하여 동서 언어의 다리를 놓았고, 성경 번역 위원회의 핵심 멤버로서 오늘날 우리가 읽는 성경의 문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그는 『구운몽』, 『춘향전』과 같은 한국의 고전 문학을 최초로 서양에 소개하고, 한국의 역사와 민속을 깊이 연구하여 '한국학(Koreanology)'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게일의 삶은 선교가 단순히 일방적인 가르침의 전달이 아니라, 상대방의 문화와 영혼에 대한 깊은 존중과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모델이다. 본 글은 이처럼 '조선보다 조선을 더 사랑했던 이방인' 제임스 게일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가 어떻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매료되었는지 살펴보고, 그의 기념비적인 사전 편찬과 성경 및 문학 번역 작업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학문적 업적이 어떻게 선교의 지평을 넓히고 한국 문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는지 그 의미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토론토의 청년, 조선의 선비가 되다
1863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제임스 게일은 토론토 대학교에서 국제 관계와 언어학을 공부한 재능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YMCA 활동을 통해 해외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고, 1888년 토론토 대학 YMCA가 파송한 최초의 해외 선교사로서 미지의 땅 조선을 밟았다.

언어와 문화에 매료되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한국어의 깊이와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는 다른 선교사들처럼 통역에 의존하는 대신, 직접 한국인 스승을 모시고 한문과 한국 고전을 파고들었다. 그는 갓과 도포를 입고 한국인처럼 생활하며, 전국의 서당과 향교를 찾아다니고 유학자들과 교류하는 것을 즐겼다.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는 곧 다른 선교사들과 한국인들 모두에게 놀라움과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선교 초기부터 언더우드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고, 원산과 서울 연동교회(현 연동교회) 등에서 목회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재능은 강단에서의 설교보다 서재에서의 연구와 번역에서 빛을 발했다.

본론 2: 붓으로 세운 불멸의 업적
제임스 게일은 자신의 언어적 재능을 세 가지 기념비적인 업적을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 온전히 바쳤다.

최초의 한영대자전 편찬
당시 선교사들에게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만든 불한사전은 있었지만, 영어권 선교사들이 사용할 만한 제대로 된 사전은 전무했다. 게일은 이 필요를 절감하고, 1891년부터 사전 편찬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한국인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단어를 수집하고, 그 의미와 용례를 정리했다.

마침내 1911년, 총 1,164페이지에 달하는 **『한영대자전(A Korean-English Dictionary)』**이 완간되었다. 이 사전은 단순한 단어 목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 속담과 관용어가 풍부하게 담겨 있는 문화 백과사전이었다. 이 사전은 이후 수십 년간 한국어를 배우려는 모든 서양인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교과서가 되었으며, 동서 문화 교류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성경 번역의 문장가
게일은 언더우드, 아펜젤러와 함께 성경번역위원회의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특히 구약성경 번역에 큰 기여를 했는데, 히브리어 원문의 시적 아름다움과 깊이를 한국어로 살려내기 위해 고심했다. 그는 간결하고 쉬운 문체를 선호했던 다른 선교사들과는 달리, 한국의 고전 문학과 같은 유려하고 품격 있는 문체를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고집은 때로 다른 번역 위원들과 갈등을 낳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어 성경의 문학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개역개정 성경에 담긴 유려하고 장중한 문체 속에는 제임스 게일의 문학적 고뇌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또한 개인적으로 신약성경 전체와 구약 일부를 자신이 추구하는 문체로 독자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한국 문학의 첫 번째 서양인 전도사
게일의 가장 독특한 공헌은 그가 한국의 고전 문학을 깊이 사랑하고, 이를 최초로 영어로 번역하여 서구 세계에 소개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인들조차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속에 담긴 깊은 철학과 해학, 그리고 인간적인 고뇌에 감탄했다.

그는 김만중의 **『구운몽(九雲夢)』**을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서양에 소개했고,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 수많은 판소리계 소설과 설화들을 영어로 옮겼다. 그의 번역은 단순한 직역이 아니라, 서양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문학적으로 재창조한 것에 가까웠다. 그는 또한 단군 신화부터 당대 역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영문으로 된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사 저술 중 하나인 **『한국사(A History of the Korean People)』**를 집필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서구 세계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깊이와 독자성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한국학'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본론 3: 시대를 앞서간 선교 철학
게일의 학문적 활동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깊은 선교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기독교 복음이 서양의 문화라는 옷을 입고 한국에 이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는 복음이 진정으로 한국인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와 정신세계라는 토양 속에서 한국적인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선교사는 먼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토착화(Inculturation)'에 대한 깊은 이해는, 당시 많은 선교사들이 가졌던 서구 우월주의적인 태도를 뛰어넘는, 시대를 앞서간 통찰이었다. 그는 유교와 불교, 심지어 샤머니즘 속에서도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할 수 있는 '복음의 접촉점'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때로 다른 선교사들로부터 "지나치게 한국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결론: 조선의 마음을 얻은 푸른 눈의 선비
1927년, 약 40년간의 한국 사역을 마친 제임스 게일은 건강 문제로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37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록 이역만리에서 눈을 감았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그가 사랑했던 땅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

제임스 게일의 유산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기관이 아니다. 그의 유산은 그가 남긴 책과 사전, 그리고 번역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 한국인과 서양인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다리를 놓았고, 한국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으며, 서구 세계에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처음으로 알린 문화 대사였다.

그는 교회의 담장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깊은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복음의 씨앗을 심었다. 제임스 게일의 삶은 진정한 선교란, 상대방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친구가 되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는 진정 '조선의 마음을 얻은' 푸른 눈의 선비이자 위대한 선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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