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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토마스 (Apostle Thomas)

'의심 많은 도마'로 알려졌지만,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도 토마스 (Apostle Thomas): 의심을 넘어선 위대한 고백, 동방 선교의 개척자
서론: '의심'이라는 꼬리표 뒤의 진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사도 토마스만큼 하나의 단어로 그의 정체성이 규정되는 인물은 드물다. '의심 많은 토마스(Doubting Thomas)'. 이 별칭은 2000년 동안 그의 이름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어 왔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선언했던,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증거를 요구했던 제자로 기억된다. 이로 인해 그의 이미지는 종종 믿음이 부족하고 완고한 회의주의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토마스를 단순히 '의심'이라는 틀에 가두는 것은 그의 다층적인 인격과 신앙의 여정, 그리고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심각하게 축소하는 것이다. 성경, 특히 요한복음은 그의 의심뿐만 아니라, 주를 향한 비장한 충성심과 진리를 향한 진지한 탐구심을 함께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의 의심은 결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앙 고백 중 하나인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외침으로 귀결되었다. 그의 회의주의는 불신앙의 종착역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도달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성경 기록 이후의 강력하고 오래된 교회 전승은 토마스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는 예루살렘의 작은 다락방을 넘어, 당시 세상의 끝으로 여겨졌던 인도까지 복음을 들고 간 위대한 선교의 개척자였다. 오늘날 인도에 존재하는 고대 기독교 공동체 '마르 토마(Mar Thoma)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뿌리를 사도 토마스에게 두고 있으며, 이는 그의 선교적 발자취가 단순한 전설 이상의 역사적 무게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본 글은 '의심 많은 토마스'라는 널리 알려진 이미지의 이면을 탐색하고, 그의 진정한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먼저 요한복음에 나타난 그의 세 가지 중요한 발언을 통해 그의 복합적인 성품, 즉 충성심과 탐구심, 그리고 궁극적인 신앙 고백을 분석할 것이다. 이어서, 성경 이후의 교회사적 전승을 따라 그가 어떻게 동방의 사도가 되어 인도에까지 복음의 씨앗을 심었는지 그 장대한 여정을 추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신학적 의미, 특히 '의심'과 '믿음'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기독교의 보편성에 대한 도전을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토마스가 단순한 회의주의자가 아닌, 정직한 질문을 통해 가장 깊은 확신에 도달했으며, 그 확신을 가지고 세상 끝까지 나아간 위대한 신앙의 선구자였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본론 1: 요한복음에 나타난 세 가지 초상
사도 토마스의 성품과 신앙을 가장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는 요한복음이다. 공관복음서에서는 그의 이름이 제자들의 명단에만 언급될 뿐이지만, 요한복음은 세 번의 결정적인 장면을 통해 그의 입체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충성스러운 현실주의자 (요한복음 11장)
토마스가 처음으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을 때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했던 위험한 지역인 유대 베다니로 다시 돌아가 나사로를 살리겠다고 말씀하시자, 다른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걱정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곧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침묵을 깨고 나선 이가 토마스였다. 그는 다른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Let us also go, that we may die with him)." 이 말속에는 토마스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에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냉철한 현실주의가 깔려 있다. 그는 유대로 돌아가면 최악의 상황, 즉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은 주님을 향한 그의 비장하고 흔들림 없는 충성심을 보여준다. 그는 위험을 피하라고 간청하는 대신,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가시는 주님과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결단했다. 그는 죽음의 가능성 앞에서 도망치기보다 주님 곁에서 죽는 길을 택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결코 비겁하거나 믿음 없는 제자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충성심은 감상적인 낙관론이 아닌, 최악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기꺼이 헌신하려는 용기에서 비롯되었다.

진지한 구도자 (요한복음 14장)
두 번째 장면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펼쳐진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죽음과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암시하셨다. 다른 제자들이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을 때, 또다시 질문을 던진 것은 토마스였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이 질문은 불신이나 도전적인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척 넘어가지 않고, 진리를 향해 정직하고 진지하게 나아가는 구도자의 질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목적지를 알아야 한다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실질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바로 이 정직한 질문 덕분에, 기독교 신학의 가장 위대한 선언 중 하나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게 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토마스의 질문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후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심오한 진리의 문을 연 열쇠가 되었다. 그는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막연한 추측이 아닌, 명확한 이해와 확신을 추구했던 진지한 탐구자였다.

의심을 넘어선 신앙 고백자 (요한복음 20장)
토마스의 세 번째이자 가장 유명한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흥분하여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증언했지만, 그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마도 스승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한 깊은 충격과 절망이 그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을 것이다. 그는 섣부른 희망에 자신을 내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실증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그의 이 요구는 완고한 불신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활이라는 경이로운 사건 앞에서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남기지 않으려는, 절대적인 확신을 갈망하는 영혼의 외침으로도 볼 수 있다. 여드레 후, 제자들이 다시 모여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곧바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부활하신 주님은 그의 의심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주시며, 그의 눈높이에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자신의 상처를 직접 만져보라는 주님의 초청 앞에서 토마스의 모든 의심의 벽은 무너져 내렸다. 그는 더 이상 만져볼 필요도 없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그 자체가 모든 증거였다. 그는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명료한 신앙 고백을 터뜨린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Dominus meus et Deus meus)!" 이는 예수가 단순히 위대한 스승이나 메시아를 넘어, 자신의 주인이자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 자신이라는, 신성에 대한 완벽한 고백이었다. 그의 치열했던 의심은 그 누구보다도 깊고 높은 차원의 믿음으로 승화된 것이다. 이때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시며, 토마스의 체험이 미래 세대의 모든 신자들을 위한 교훈이 되게 하셨다.

본론 2: 역사의 장막 뒤, 동방으로 향한 사도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바울의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어, 토마스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러나 성경 밖의 풍부하고 오래된 교회 전승들은 토마스가 예루살렘을 떠나 동쪽으로, 당시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던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결같이 증언한다.

초대 교회 전승과 '도마 행전'
가장 오래된 전승 중 일부는 토마스가 파르티아 제국(오늘날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말한다. 3세기의 교부 오리게네스가 이를 언급했고, 4세기의 교회사가 유세비우스 역시 이를 기록했다. 이는 토마스의 선교가 동방으로 향했다는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준다.

토마스의 인도 선교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는 3세기에 기록된 외경인 '도마 행전(Acts of Thomas)'에 담겨 있다. 이 문헌은 비록 정경은 아니며, 영지주의적인 색채가 강해 역사적 사실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당시 초대 교회에 널리 퍼져 있던 토마스와 인도에 대한 전승을 집대성한 중요한 자료이다. '도마 행전'에 따르면, 사도들이 제비를 뽑아 선교지를 정할 때 토마스는 인도로 가는 것을 꺼려했다고 한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 인도 왕 군다포루스(Gondophares)의 사절에게 토마스를 목수 노예로 파셨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토마스는 마지못해 인도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된다. 그는 군다포루스 왕의 궁전을 짓는 임무를 맡았지만, 왕에게 받은 건축 자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복음을 전했다. 왕이 진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었으나, 죽었던 왕의 동생이 살아나 천국에서 토마스가 지은 영적인 궁전을 보았다고 증언하면서 왕과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이처럼 '도마 행전'은 기적과 이적으로 가득 찬 전설적인 이야기지만, 특히 군다포루스 왕이라는 인물은 19세기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실제로 1세기에 인도 북서부를 다스렸던 인도-파르티아 왕국의 왕이었음이 증명되어, 이 전승에 어느 정도의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시사한다.

인도 교회의 아버지, 마르 토마
토마스의 인도 선교 유산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곳은 인도 남서부의 케랄라(Kerala) 주이다. 이곳의 '마르 토마 기독교인' 또는 '성 토마스 기독교인'이라 불리는 고대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들의 교회가 주후 52년, 사도 토마스가 무지리스(Muziris, 현재의 코дун갈루르) 항구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들의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는 케랄라 해안을 따라 여행하며 브라만 계급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일곱 개의 주요 교회와 하나의 작은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이 '일곱과 반 교회'는 오늘날까지도 케랄라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순례지로 남아 있다. 이 공동체는 서방 교회와 거의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수 세기 동안 독자적인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유지해왔다. 그들은 고대 시리아어를 예배 언어로 사용했으며, 중동의 아시리아 동방교회(네스토리우스파)와 교류하며 신학적, 전례적 영향을 받았다. 16세기 포르투갈의 가톨릭 선교사들이 인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곳에 뿌리내린 기독교 공동체를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비록 이후 식민 시대의 영향으로 공동체가 여러 교파로 나뉘는 아픔을 겪었지만, '마르 토마'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여전히 사도 토마스로부터 이어지는 자신들의 독특한 신앙적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지켜나가고 있다.

순교의 발자취
인도에서의 오랜 사역 끝에, 토마스는 순교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순교지로 알려진 곳은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 주의 첸나이(옛 마드라스) 근교의 마일라포르(Mylapore)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의 사역으로 인해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한 브라민 사제들이 그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 현재 그가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언덕은 '성 토마스 산(St. Thomas Mount)'이라 불리며,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세운 교회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그가 묻혔다고 전해지는 자리에는 장엄한 산 토메 대성당(San Thome Basilica)이 세워져 전 세계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인도 대륙 곳곳에 남아 있는 유형, 무형의 흔적들은 사도 토마스가 단순한 성경 속 인물을 넘어, 동방 기독교의 문을 연 위대한 개척자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본론 3: 토마스의 유산과 신학적 의미
사도 토마스의 삶과 전승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실천적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유산은 '의심'의 문제를 넘어서 신앙의 본질과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의심'의 재해석: 정직한 질문의 가치
현대는 이성과 합리주의를 중시하는 시대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문제 앞에서 지적인 질문과 회의를 경험한다. 이러한 시대에 토마스의 이야기는 '의심'이 반드시 믿음의 적이 아님을 보여준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거짓된 확신보다, 진리를 향한 정직한 질문과 치열한 고민이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토마스는 자신의 의심을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공동체 앞에서 솔직하게 드러냈고, 마침내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직접 해소 받았다. 그의 여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적인 씨름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정직한 질문에 기꺼이 응답하시는 분임을 가르쳐준다. 의심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토마스는 위로가 된다. 그는 의심 자체가 죄가 아니라, 그 의심을 가지고 어디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의심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의심을 끌어안고 끈질기게 주님께로 나아갈 때, 우리의 회의는 가장 견고한 확신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의심을 통과한 믿음은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믿음보다 더 강하고 성숙할 수 있다.

체험적 신앙과 부활의 증인
토마스의 이야기는 기독교 신앙의 체험적 측면을 강조한다. 그는 다른 제자들의 간접적인 증언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부활하신 주님과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만남이 필요했다. 그의 갈망은 주관적인 감정의 추구가 아니라, 자신의 전 인격을 걸 수 있는 객관적이고 확실한 근거에 대한 요구였다.

예수님께서 그의 요구에 응해주셨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이 단순한 교리나 사상의 체계가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 위에 세워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해 터져 나온 그의 고백,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는 부활 사건의 핵심적인 의미를 가장 강력하게 증언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육체가 다시 살아난 기적적인 사건을 넘어, 그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며, 우리의 경배와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주님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궁극적인 계시이다. 토마스는 부활의 가장 강력한 증인이 됨으로써, 자신의 의심을 통해 오히려 후대 교회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기독교의 보편성: 잊혀진 동방의 빛
사도 토마스의 인도 선교 유산은 서구 중심의 기독교 역사관에 중요한 도전을 제기한다. 우리는 종종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그리고 신대륙으로 퍼져나간 서진(西進)의 역사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토마스의 이야기는 복음이 처음부터 동쪽으로도 힘차게 나아갔음을 상기시킨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특정 문화나 지역에 갇힐 수 없는 보편적인 복음이다. 예수님의 지상 대위임 명령,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사도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토마스의 동방 선교는 이러한 기독교의 본질적인 보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도에 존재하는 고대 기독교 공동체는 기독교가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토착화되고 뿌리내려 온 세계적인 신앙임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토마스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잊혀졌던 기독교의 동방 역사를 일깨워주며, 오늘날 세계 교회(World Christianity)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이해하는 중요한 창을 열어준다.

결론: 의심의 사도에서 확신의 순교자로
사도 토마스의 여정은 예루살렘의 한 잠긴 방에서 시작하여 인도 해안의 순교지에서 끝을 맺는 장대한 신앙의 순례였다. 그는 '의심 많은 토마스'라는 별명으로 시작했지만, 그의 삶의 마지막은 그 누구보다도 확신에 찬 믿음의 증인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부활의 주님에 대한 그 확신 하나를 가지고, 당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었던 가장 먼 땅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파했다.

그는 더 이상 '의심 많은 토마스'가 아니라 '고백하는 토마스', '충성스러운 토마스', '진리를 탐구하는 토마스', 그리고 '세상 끝까지 나아간 선교사 토마스'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믿음의 여정이 언제나 평탄하고 순탄한 길만은 아님을 가르쳐준다. 때로는 의심의 안개가 우리 앞을 가리고, 절망의 어둠이 우리를 삼킬 듯 덤벼들 때도 있다. 그러나 토마스는 바로 그 어둠 속에서 가장 정직한 질문을 던지고, 가장 간절하게 주님의 현존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토마스의 위대한 고백,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는 그의 의심을 통과한 후에 나왔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그가 직접 확인한, 상처 입으신 그러나 살아계신 주님을 향한 전 인격적인 응답이었다. 이 고백을 가슴에 품은 그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아직 보지 못한 수많은 영혼들을 향해 자신의 남은 생을 온전히 바쳤다. 그의 삶은 우리의 가장 깊은 의심과 연약함조차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때 위대한 확신과 사명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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