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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모펫 (Robert Moffat)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장인으로, 남아프리카에서 츠와나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 로버트 모펫: 황무지를 오아시스로 바꾼 인내의 거인
서론: 10년의 기다림, 한 영혼의 무게
만약 당신이 낯선 땅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심지어 10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의 개종자도 생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하고 포기하거나, 자신의 소명을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그 10년이라는 기나긴 영적 가뭄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마침내 거대한 부흥의 물꼬를 튼 한 선교사가 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모펫, '남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그의 유명한 사위,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그늘에 가려져 있을 때가 많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 대륙을 탐험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은 탐험가형 선교사였다면, 모펫은 한곳에 깊이 뿌리내려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고 다음 세대를 위한 견고한 발판을 마련한 개척자형 선교사였다. 그는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황량한 변방에 '쿠루만(Kuruman)'이라는 기적적인 선교 기지를 건설했고, 글자가 없던 츠와나(Tswana) 부족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선물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불굴의 인내는 한 젊은이의 마음에 불을 지펴 아프리카 선교의 다음 장을 열게 했다.
본 글은 이처럼 위대한 '인내의 거인' 로버트 모펫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스코틀랜드의 평범한 정원사가 어떻게 아프리카를 향한 소명을 품게 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쿠루만에서 보낸 10년간의 기나긴 기다림과 그 이후에 맺어진 놀라운 열매들을 추적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기념비적인 성경 번역 사업과 데이비드 리빙스턴에게 미친 결정적인 영향력을 통해 그가 남긴 유산의 의미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스코틀랜드의 정원사, 아프리카를 향한 부르심
로버트 모펫의 삶은 그의 겸손하고 성실한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학자가 아닌, 흙을 만지는 노동자였다.
정원사의 소명
1795년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모펫은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정원사로 일했다. 그러나 독실한 어머니의 신앙 교육 속에서 성장한 그는 일찍부터 하나님을 깊이 인격적으로 만났고, 해외 선교에 대한 강렬한 부르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LMS)에 지원하여 선교사 훈련을 받았다.
그의 선교를 향한 결단에는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가 함께한다. 그는 정원사로 일하던 시절, 고용주의 딸이었던 메리 스미스(Mary Smith)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녀에게 청혼하며, 자신은 곧 아프리카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는 주저 없이 그의 아내가 되어 아프리카 오지까지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다. 비록 메리의 부모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 두 사람의 굳건한 믿음과 사랑에 감동하여 결혼을 허락했다. 메리 모펫은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프리카의 온갖 고난 속에서 남편의 가장 헌신적인 동역자이자 10명의 자녀를 키워낸 위대한 어머니가 되었다.
악명 높은 무법자를 변화시키다
1817년, 22세의 모펫은 마침내 아프리카 남단에 도착했다. 그의 초기 사역지에서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직면했다. 바로 당시 남아프리카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악명 높은 무법자, '아프리카너(Afrikaner)'라는 이름의 추장을 전도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너는 수많은 살인과 약탈을 저지른 인물로, 그의 목에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젊은 모펫은 두려움 없이 홀로 사막을 건너 아프리카너의 은신처로 들어갔다. 그는 총 대신 성경을 들고 그에게 다가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했다. 놀랍게도, 이 잔인한 무법자의 마음이 복음 앞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너는 자신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이전의 삶을 완전히 청산하고 평화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훗날 모펫이 변화된 아프리카너를 데리고 케이프타운에 나타났을 때, 식민지 관리들은 유령을 본 듯 경악하며 "이것은 기적이다!"라고 외쳤다. 이 사건은 복음이 가장 완악한 인간의 마음조차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고, 젊은 선교사 모펫의 명성을 높여주었다.
본론 2: 쿠루만의 기적 - 10년의 기다림과 열매
초기의 극적인 성공 이후, 모펫은 더욱 깊은 내륙, 즉 칼라하리 사막의 동쪽 경계에 사는 츠와나족(Tswana people)에게로 향했다. 1824년, 그는 그곳에 자신의 평생 사역지가 될 쿠루만(Kuruman) 선교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0년간의 영적 가뭄
쿠루만에서의 사역은 아프리카너의 회심과는 정반대였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길고 긴 영적 가뭄이었다. 츠와나족은 외부인에 대해 극도로 냉담하고 무관심했다. 모펫과 그의 아내 메리는 매일같이 복음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조롱하거나 무시할 뿐이었다. 극심한 가뭄과 기근이 닥쳐왔고, 다른 부족의 침략 위협이 계속되었다.
1년, 2년, 5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의 개종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영국에 있는 선교 본부에서는 성과 없는 선교지를 포기하라는 압력이 들어왔다. 그러나 모펫은 "나의 일은 순종하는 것이고, 결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이 10년의 시간 동안 그는 설교뿐만 아니라, 벽돌을 굽고 집을 짓고, 밭을 갈고, 수 마일에 걸친 관개 수로를 파서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 고된 노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아시스의 탄생
1829년, 마침내 기나긴 기다림이 끝났다. 10년 만에, 몇몇 츠와나인들이 진심으로 복음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첫 세례식이 거행되었다. 이 첫 열매를 시작으로, 쿠루만 교회는 더디지만 꾸준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모펫이 땀으로 일군 관개 수로에서 물이 솟아나 주변의 황무지를 푸른 정원으로 바꾸었듯이, 그의 눈물 섞인 인내의 기도는 메마른 영혼들을 적시는 생수의 강이 되었다. 쿠루만 선교 기지는 문자 그대로 사막 한가운데 핀 '영적, 물리적 오아시스'가 되었고, 이후 수십 년간 아프리카 내륙 선교의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본론 3: 츠와나어 성경과 리빙스턴의 등불
로버트 모펫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그가 츠와나 민족에게 남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전 세계에 남긴 것이다.
츠와나 민족에게 준 최고의 선물
모펫은 쿠루만에서의 사역 초기부터 츠와나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존 엘리엇이나 윌리엄 캐리처럼,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츠와나어를 배우고 연구하여, 이전에 문자가 없던 언어를 위한 문자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성경 번역이라는 기념비적인 과업에 착수했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신구약 성경 전체를 츠와나어로 번역했다. 1857년, 마침내 츠와나어 성경 완역본이 쿠루만의 인쇄기에서 인쇄되어 나왔을 때, 그것은 아프리카 토착 언어로 완역된 최초의 성경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성경은 츠와나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물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처음으로 문자 언어와 문학의 기초를 놓아준 위대한 문화적 유산이 되었다.
리빙스턴의 마음에 불을 지피다
모펫의 또 다른 위대한 유산은 바로 그의 사위, 데이비드 리빙스턴이다. 1840년경, 영국을 방문한 모펫은 여러 교회와 집회에서 아프리카 선교의 비전을 나누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한 집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는 동이 틀 때, 아직 단 한 명의 선교사도 방문한 적이 없는 천 개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청중 속에 앉아 있던 한 젊은 의대생의 가슴에 이 말이 불화살처럼 꽂혔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었다. 이 한 문장이 리빙스턴을 아프리카로 이끌었고, 그의 위대한 탐험과 선교의 여정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리빙스턴은 모펫의 딸 메리와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되었고, 쿠루만은 리빙스턴이 아프리카 내륙으로 탐험을 떠나는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모펫이 수십 년간의 인내로 다져놓은 견고한 기반 위에서, 리빙스턴이라는 다음 세대의 탐험가가 더 넓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 뿌리 깊은 나무, 위대한 숲을 이루다
로버트 모펫은 1870년, 53년간의 아프리카 사역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와 1883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삶은 10년이라는 기나긴 무응답의 시간을 견뎌낸 묵묵한 인내, 그리고 반세기 넘게 한 자리를 지킨 꾸준한 성실함으로 요약된다.
그는 사막에 나무를 심는 사람과 같았다. 그는 당장의 열매를 보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가 그 그늘 아래서 쉬고 열매를 맺을 것을 믿으며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일에 전념했다. 그가 쿠루만에 심은 한 그루의 나무는, 그의 사위 리빙스턴과 그 뒤를 이은 수많은 선교사들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향한 거대한 숲을 이루는 시작점이 되었다.
로버트 모펫의 삶은 오늘날 속도와 효율, 그리고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우리에게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의 삶은 증명한다. 가장 위대한 사역은 때로 가장 더디고, 가장 눈에 띄지 않으며, 가장 오래 기다리는 것임을. 그는 황무지를 오아시스로 바꾼 위대한 정원사였으며, 그의 인내는 아프리카 땅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깊은 뿌리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