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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더릭 매켄지 (Roderick Mackenzie)
캐나다 선교사로, 한국에서 결핵 퇴치 사업에 헌신하며 '크리스마스 씰' 운동을 처음 도입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씰의 아버지', 로더릭 매켄지: 결핵 퇴치에 평생을 바친 푸른 눈의 의사
서론: 한 장의 씰, 희망을 붙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은 연말연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따뜻한 상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작은 씰 한 장이, 한때 '백색 죽음'이라 불리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결핵 퇴치를 위해, 한 캐나다 선교사가 바친 40년 헌신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이름은 로더릭 매켄지. 그는 의사이자, 선교사였으며, 한국 땅에서 결핵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푸른 눈의 할아버지 의사'였다.
그는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시작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을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켰고, 평생을 바쳐 결핵 퇴치와 예방, 그리고 환자들을 위한 재활 사업에 헌신했다. 그의 삶은 의료 선교가 단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한 사회의 보건 시스템 전체를 바꾸고, 질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거대한 사회 변혁 운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본 글은 이처럼 '한국 결핵 퇴치의 아버지'였던 로더릭 매켄지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본론: 결핵 왕국에 맞선 40년의 투쟁
1911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로더릭 매켄지는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38년 캐나다 연합교회 파송을 받아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그가 마주한 한국은, 인구의 약 7%가 결핵 환자로 추정될 만큼 '결핵 왕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던 땅이었다.
크리스마스 씰 운동의 계승과 발전
그는 1939년부터 셔우드 홀이 시작했던 크리스마스 씰 운동을 이어받았다. 일제의 방해와 6.25 전쟁으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그는 1953년 '대한결핵협회'를 창설하고 크리스마스 씰 발행을 재개하여, 이를 전국적인 결핵 퇴치 기금 모금 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씰 판매를 통해 모인 기금은 결핵 환자 진료소, 결핵 요양원 건립, 그리고 BCG 예방 접종 사업 등, 한국의 결핵 퇴치 사업 전반에 걸친 가장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한국형' 결핵 관리 시스템 구축
매켄지 박사는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실정에 맞는 지속 가능한 결핵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그는 전국의 보건소와 협력하여 결핵 환자 등록 및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고, 가정 방문 간호사 제도를 훈련시켜 환자들이 가정에서도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의 노력은 오늘날 한국의 국가 결핵 관리 시스템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결론: 땅끝까지 이어진 사랑
로더릭 매켄지는 1970년대 한국을 떠난 후에도,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 봉사를 계속하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봉사의 삶을 멈추지 않다가 2010년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40년에 걸친 헌신은 한국의 보건 의료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그가 '결핵 없는 사회'를 꿈꾸며 뿌렸던 씨앗은,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결핵 관리 시스템을 갖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되었다. 그는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한 민족에게, 의술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망을 선물한 진정한 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