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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철 세인트 (Rachel Saint)

오빠 네이트 세인트가 순교한 에콰도르 와오다니(아우카)족에게 들어가, 그들과 평생 함께 살며 복음을 전하고 신약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원수의 부족, 나의 가족으로: 레이철 세인트의 위대한 용서와 동행
서론: 순교자의 누이, 새로운 사명을 받다
1956년, 에콰도르 정글에서 순교한 다섯 명의 젊은 선교사 이야기의 중심에는 짐 엘리엇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있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순교와 화해의 서사에는, 그림자처럼 묵묵히 그러나 누구보다 끈질기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또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레이철 세인트, 순교자 중 한 명이었던 선교사 조종사 네이트 세인트의 누나였다.

그녀는 동생의 죽음에 절망하거나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동생이 그토록 사랑했던 와오다니(Waodani) 부족을 섬기는 것을 자신의 평생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짐승처럼 여겨졌던 그들의 언어를 최초로 체계화하고, 신약성경을 번역했으며, 36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그들의 할머니이자 어머니, 그리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순교의 의미를 세상에 알린 '메신저'였다면, 레이철 세인트는 순교의 현장에 남아 그 열매를 평생에 걸쳐 키워낸 '양육자'였다. 그녀의 삶은 극적인 사건보다는 꾸준하고 변함없는 동행으로, 화려한 헌사보다는 묵묵한 섬김으로 특징지어진다. 본 글은 이처럼 위대한 용서와 헌신의 삶을 살았던 레이철 세인트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녀가 어떻게 와오다니 부족과 운명적으로 연결되었는지 살펴보고, 동생을 죽인 부족과 함께 살기로 결단한 그녀의 놀라운 여정을 추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평생에 걸친 헌신이 와오다니 부족과 선교 역사에 어떤 깊은 유산을 남겼는지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다유마와의 만남, 운명의 시작
레이철 세인트는 191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그녀는 동생 네이트 세인트보다 먼저 선교사로 헌신하여, 페루의 아구아루나 부족을 섬기던 중이었다. 그녀의 삶이 와오다니 부족과 연결된 것은 '다유마(Dayuma)'라는 이름의 한 와오다니 여성과의 운명적인 만남 때문이었다.

다유마는 부족 내의 폭력적인 살인극을 피해 정글을 탈출하여, 외부 세계의 한 농장에서 일하고 있던 유일한 와오다니인이었다. 1955년, 레이철은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WBT)의 동료들과 함께 다유마를 만나, 미지의 와오다니 언어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다유마를 통해 와오다니족의 문화와 세계관, 그리고 그들 내면에 있는 깊은 두려움과 폭력의 악순환에 대해 듣게 되었다.

바로 그 무렵, 그녀의 동생 네이트 세인트와 짐 엘리엇을 포함한 다섯 명의 선교사들이 다유마의 부족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레이철은 다유마를 통해 얻은 언어 정보를 동생에게 전해주며, '오퍼레이션 아우카'를 간접적으로 돕고 있었다.

본론 2: 동생의 죽음을 넘어, 부족의 심장부로
1956년 1월, 동생 네이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선교사들이 순교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깊은 슬픔 속에서, 레이철은 이 비극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직감했다. 그녀는 다유마와 함께 와오다니 언어 연구와 성경 번역 준비를 계속하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했다.

두 명의 용감한 여인
기회는 2년 후에 찾아왔다. 다유마는 마침내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부족 사람들에게 다섯 선교사의 죽음이 오해였으며, 외부 세계에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놀랍게도, 와오다니 부족은 다유마를 통해 레이철과 엘리자베스 엘리엇을 자신들의 마을로 초대했다.

1958년, 레이철 세인트와, 어린 딸 밸러리를 데리고 온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마침내 자신들의 오빠와 남편을 죽인 바로 그 부족의 마을로 걸어 들어갔다. 이는 20세기 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극적인 용서의 행위 중 하나였다.

'기모(Gikoo)' 할머니, 그들의 가족이 되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약 2년간 와오다니 부족과 함께 살다가 자녀 교육 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레이철 세인트는 남았다. 그녀는 와오다니 부족을 자신의 새로운 가족으로, 그들의 마을을 자신의 영원한 집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그들과 똑같은 오두막에서 살고,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모든 삶에 동참했다. 그녀는 와오다니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 앞에서, 와오다니 사람들의 마음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녀를 '기모(Gikoo, 할머니)'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따랐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수 세기 동안 복수 살인의 악순환에 갇혀 있던 와오다니 부족은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폭력을 버리고 평화의 공동체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섯 명의 선교사를 죽이는 데 앞장섰던 밍카예(Mincaye)와 키모(Kimo)를 포함한 많은 전사들이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부족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동생을 죽인 원수들이, 이제는 복음 안에서 그녀의 가장 사랑하는 형제자매가 된 것이다.

본론 3: 평생의 헌신과 남겨진 유산
레이철 세인트의 헌신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199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와오다니 부족과 함께했다.

와오다니어 성경, 평생의 열매
그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와오다니 언어로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한 것이다. 그녀는 다유마와 다른 부족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 끝에 1992년 마침내 와오다니 신약성경을 출판했다. 이는 와오다니 부족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문자 언어이자, 그들의 신앙을 영원히 지탱해 줄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논란의 그림자
그러나 그녀의 사역에는 논란의 그림자도 존재했다. 일부 인류학자들과 선교사들은 그녀의 사역 방식이 지나치게 가부장적이며, 와오다니 부족을 외부 세계와 고립시키고 그들의 전통문화를 파괴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녀가 부족 내에서 가졌던 막강한 영향력은 때로 다른 선교 단체나 정부와의 갈등을 낳기도 했다. 그녀는 흠 없는 성인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사랑의 방식에 대해 때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완고했던, 복합적인 인물이었다.

결론: 용서로 완성된 사랑의 서사시
레이철 세인트의 삶은 동생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거대한 질문에 대한 평생에 걸친 응답이었다. 그녀는 그 질문에 대해 증오나 복수가 아닌, 용서와 동행, 그리고 끈질긴 사랑으로 답했다.

그녀의 유산은 명확하다.

그녀는 용서의 힘을 증명했다. 그녀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살아냄으로써, 가장 폭력적이었던 부족을 평화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기적의 통로가 되었다.

그녀는 '성육신적 선교'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단순히 부족을 '위해' 사역한 것이 아니라, 기꺼이 그들의 '일원'이 되어 그들과 함께 늙어갔다.

그녀는 와오다니 민족에게 영원한 선물을 남겼다. 그녀가 번역한 성경은, 와오다니 교회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서 나갈 수 있는 영원한 반석이 되었다.

레이철 세인트의 이야기는 엘리자베스 엘리엇의 유명한 저서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순교의 이야기가 단지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피가 뿌려진 땅에 남아 평생에 걸쳐 밭을 갈고 씨앗을 심는 묵묵한 헌신을 통해 비로소 열매 맺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을 죽인 사람들을 자신의 형제로 삼음으로써, 십자가의 용서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온몸으로 증거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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