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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의 선교 주제, 지상명령 연구
선교학 개론

선교의 성경적 기초
에덴에서 땅끝까지: 선교와 지상명령에 대한 성경신학적 연구
서론: 성경의 통일된 서사로서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서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 주도적 선교, 즉 '미시오 데이'(Missio Dei)로 이해될 때 가장 깊이 있게 파악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선교는 단순히 교회의 여러 활동 중 하나가 아니라,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고 깨어진 창조 세계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과 역사하심 그 자체이다. 본 연구는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선교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점진적 전개 과정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은 연대기적이며 신학적인 접근을 통해, 구약의 기초적인 선교 개념에서부터 신약의 궁극적인 성취와 위임에 이르기까지 선교 사상의 연속성과 점진적 계시를 추적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미시오 데이', 구심적 선교와 원심적 선교,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종말론적 틀과 같은 핵심 신학 용어들을 탐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고립된 명령이 아니라, 창세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목적의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정점임을 밝히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이다.
제1부: 구약의 구심적 선교: 열방을 이끄심
구약의 선교 패러다임은 본질적으로 구심적(centripetal) 성격을 띤다. 이는 하나님께서 특정 백성인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당신의 임재와 거룩의 등불로 삼으시고, 이를 통해 열방이 그들에게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로 이끌려 오도록 계획하셨음을 의미한다.
제1.1절: 창조와 언약 속에 나타난 원시적 선교
문화명령 (창세기 1:28)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출산 장려 지침을 넘어, 인류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창조 세계의 잠재력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는 '문화명령' 혹은 '통치명령'의 성격을 지닌다. 이 명령은 인류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를 온 땅에 확장하는 것임을 천명한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의 타락은 이 선교적 사명을 근본적으로 왜곡시켰다. 청지기 직분은 착취로 변질되었고, 창조주를 향한 예배는 피조물을 향한 숭배로 전락했다. 이후 성경의 모든 서사는 하나님께서 이 본래적 목적을 구속을 통해 어떻게 회복하시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아브라함 언약 (창세기 12: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은 선교 역사의 전환점이다. 하나님은 한 개인과 그의 가족이라는 특수한 대상을 선택하시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이 특별한 선택의 목적은 명백히 보편적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 그것이다.
이 언약은 구약 선교의 근본적인 동학, 즉 '보편주의를 섬기는 특수주의'를 확립한다. 이스라엘은 열방을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방을 '위해서' 선택되었다. 한 자료에서 지적하듯이,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 선포에 있어서 '완성'이 아닌 '시작의 말'이다. 이 언약은 이후 모든 선교 신학의 씨앗이 되며, 하나님의 관심이 결코 한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제1.2절: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
시내산 언약과 이스라엘의 중보적 역할 (출애굽기 19:5-6)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목적을 공식적으로 규정하신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제사장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는 중보자이듯,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위한 중보자적 국가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에 앞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특별한 소명이 당신의 보편적 주권이라는 더 큰 맥락 안에서 주어졌음을 분명히 하신다.
이스라엘의 선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아래 있는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되는 것이었다. 언약(율법)에 대한 순종은 단지 그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을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열방으로 하여금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야 했다.
'선민사상'의 긴장
그러나 이 특별한 소명은 종종 배타적 특권과 민족적 우월성을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로 왜곡되었다. 이스라엘은 섬김을 위해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위를 위해 선택받았다고 착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나그네 되었던 시절을 잊고 이방인들을 압제함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했다.
이러한 왜곡된 선민사상은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을 받았다. 후일 사도 바울은 이 사상을 신학적으로 해체하며,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은 혈통이 아닌 믿음으로 정의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 로마서 9:6-8). 이 비판은 이스라엘이 선교적 소명에 실패했음을 드러내며, 이는 곧 새 언약과 새로운 선교의 주체인 교회의 등장을 신학적으로 요청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선교적 실패는 그들의 거룩함의 실패와 직결되어 있었다.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었으나 ,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을 열방에 증거할 수 없었다. 이 실패는 성령을 통해 내면으로부터 거룩함이 주어지는 새 언약의 필요성을 예고한다.
제1.3절: 열방을 향한 선지자들의 소환
이사야의 '이방의 빛'
이사야서는 구약에서 가장 명확한 보편적 구원의 비전을 담고 있다. '여호와의 종'은 이스라엘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이사야 49:6)는 명백한 사명을 받는다. 선지자는 회복된 시온의 빛으로 열방과 왕들이 나아올 미래를 그린다 (이사야 60:3-5).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만민의 빛'이 될 것이다 (이사야 51:4).
이사야의 비전은 이스라엘의 수동적인 역할에서 '종'으로 대표되는 보다 능동적인 역할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이 비전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그리스도 중심적 예언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 결코 이스라엘에게만 한정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회복이 곧 세계 구원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특정한 백성(이스라엘)을 통해 보편적인 목적(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이루어 가신다. 이스라엘이 이 특수성을 보편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했을 때 선교적 비전은 명확했지만, 특수성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을 때 선교는 좌절되었다. 이 긴장은 유대인 메시아이면서 동시에 온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해결된다.
요나의 마지못한 선교
요나서는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 배타성에 대한 강력한 서사적 비판이다. 편협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요나는 이스라엘의 잔혹한 압제자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가 선교를 피해 도망친 것은 원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확장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1장의 이교도 선원들과 3장의 니느웨 사람들은 선지자 자신보다 하나님께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주권을 강력하게 증거한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이 가장 '자격 없는' 이방인에게까지 미치며, 하나님께서는 마지못해 순종하는 선교사를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의 소명을 실패하게 만든 바로 그 민족 중심주의에 대한 질책이다. 요나서는 구약에서 보기 드문 원심적(centrifugal, 밖으로 나아가는) 선교의 명확한 사례로서, 지상명령을 예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2부: 예수 그리스도의 중추적 선교: 하나님 나라의 도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은 '미시오 데이'의 중심이자 결정적 사건이다. 그는 구약의 구심적 희망을 성취하시고, 신약의 원심적 운동을 시작하신다.
제2.1절: 하나님 나라의 복음
예수의 선포 (마가복음 1:15)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그의 가르침의 핵심 주제로서 , 하나님의 역동적인 통치가 인간 역사 속으로 임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에 대한 선포이다. 구약에서 예언된 구원의 결정적 시기(kairos)가 예수라는 인격과 그의 사역 안에서 도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이미 오셨고 그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기쁜 소식(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성격: 이미와 아직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사역을 통해 치유, 축사, 죄 사함의 형태로 현재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 들어가는 현재적 실체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성취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 이로 인해 종말론적 긴장이 발생한다.
이 '이미와 아직'(already/not yet)의 구조는 모든 기독교 선교의 배경이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 사이의 시대에 존재한다. 선교란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이미' 시작된 통치 안으로 부르면서, '아직' 오지 않은 완성의 소망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2.2절: 십자가와 화해
선교의 기초로서의 속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선포되기 위한 필수적인 사건으로 제시된다 (누가복음 24:46-47). 사도 바울의 복음 역시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한다. 이 속죄 사역은 인류를 거룩하신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며,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포함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연다. 십자가 없이는 선포할 '기쁜 소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속죄는 본래의 문화명령 성취를 가로막았던 궁극적인 장벽인 죄를 해결하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제공한다.
에베소서 2장: '한 새 사람'의 창조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물었다. 그는 단순히 이방인을 유대인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두 무리로부터 '한 새 사람'을 창조하여 화평을 이루셨다.
이는 선교 신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선교는 단지 개인 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화해된 새로운 공동체, 즉 교회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공동체는 민족적, 종교적, 사회적 분열과 같은 인간의 가장 깊은 적대감을 극복하는 복음의 능력을 살아있는 증거로 보여준다. 통일된 다민족 교회의 존재 자체가 일차적인 선교의 형태이며, 화해된 새 창조를 가리키는 표지판이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지점에서 예수는 성공하셨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빛'이 되라는 소명을 받았으나 죄로 인해 실패했다. 예수는 이 역할을 온전히 성취하신 참 이스라엘이자 신실한 종이다. 따라서 그가 제자들에게 주신 선교 명령은 본질적으로 그의 성취된 선교에 동참하라는 초대이다. 요한복음 20장 21절은 이를 명확히 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처럼 교회의 선교는 그리스도의 선교의 연장선상에 있다.
제3부: 지상명령: 교회를 향한 원심적 위임
이 부분에서는 핵심적인 위임 본문들에 대한 상세한 주해 및 신학적 분석을 제공하며, 이 명령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권위를 부여받아 원심적(밖으로 나아가는) 선교 자세로의 결정적인 전환을 의미함을 논증한다.
표 3.1: 지상명령 본문 비교 분석
본문 배경 핵심 명령/동사 범위 권능/약속
이미지 참조 할것
이 표는 각 복음서가 제시하는 위임 명령의 독특한 강조점들을 즉각적으로 비교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핵심 명령, 범위, 약속된 권능을 병치함으로써, 이 본문들이 단순한 중복이 아니라 하나의 포괄적인 위임 명령의 상호 보완적인 측면들임을 보여준다. 이는 각 본문의 세부 사항을 탐구하기에 앞서 위임 명령의 신학적 풍요로움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제3.1절: 위임 본문 주해 분석
마태복음 28:18-20: 제자를 삼으라는 권위 있는 명령
마태복음의 지상명령에서 중심이 되는 명령형 동사는 "제자를 삼으라"(μαθητε
υ
ˊ
σατε)이다. '가서',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이 중심 명령을 수행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분사들이다. 이 명령의 기초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는 그리스도의 선언이다. 그 범위는 "모든 민족"(
panta ta ethne)이며 , 약속은 그의 영원한 함께하심이다.
이는 가장 교훈적인 위임 명령으로서, 선교의 포괄적인 과정을 제시한다. 선교는 지리적 이동('가서'), 복음 전파와 공동체로의 편입('세례를 베풀고'), 그리고 장기적인 영적 형성('가르쳐 지키게 함')을 포함한다. 이 모든 사역의 근거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우주의 참된 주권자이신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권세에 있다. 따라서 선교는 불확실한 도박이 아니라, 우주적 주님의 명령을 확신 가운데 수행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16:15: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소명
마가복음의 강조점은 보편적 선포에 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선포에 대한 반응이 각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구원으로, 믿지 않는 것은 정죄로 이어진다.
마가복음의 버전은 메시지의 우주적인 범위와 긴급한 성격을 부각시킨다. '복음'은 예수에 관한 구체적인 선포로서, 즉각적인 응답을 요구한다. 이는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이 영원한 결과를 낳는 양자택일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누가복음 24:46-49 & 사도행전 1:8: 전 지구적 증인을 향한 위임
누가는 선교를 성경 성취의 관점에서 구성한다. 그리스도께서 고난받고 부활하시며,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제자들은 이 모든 일의 '증인'(
μ
α
ˊ
ρτυρες)으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이 증언은 그들이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시작될 수 없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이 증언이 지리적으로 어떻게 확장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까지 이르는 것이다.
누가-행전은 메시지의 '내용'(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죄 사함의 제공)과 선교의 '동력'(성령)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강조한다. 선교는 인간의 능력으로 성취될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구속 사건들을 증언하는, 성령의 권능으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사역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지리적 확장은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민족적·문화적 장벽을 허무는 신학적 프로그램이다.
요한복음 20:21: 아들을 모델로 한 선교적 파송
요한복음의 버전은 신학적으로나 관계적으로 매우 심오하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 직후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파송과 성령 수여를 직접적으로 연결하신다.
이 본문은 '미시오 데이' 패러다임을 확립한다. 교회의 선교는 스스로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성부로부터 오신 성자의 바로 그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성육신적 모델을 제시한다. 예수께서 아버지를 드러내기 위해 세상에 들어오셨듯이, 교회는 아들을 증언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는다. 이 선교를 위한 권능은 하나님의 '숨결' 자체인 성령의 내밀한 임재로부터 온다.
구약의 모델이 주로 구심적, 즉 열방이 예루살렘의 빛으로 이끌려 '와서 보는'("come and see") 것이었다면 , 지상명령은 이 흐름을 역전시킨다. 이제 빛은 이동 가능하며,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파송된 사자들에 의해 운반된다. 이 원심력은 부활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으시며, 그의 권세는 우주적이다. 따라서 그의 백성 또한 전 세계적으로 파송되어야 한다.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서로 모순되는 위임 명령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위대한 선교에 대한 상호 보완적인 측면들을 보여준다. 마태는 선교의 '깊이'(제자 삼기)를, 마가는 '넓이'(온 천하)를, 누가-행전은 '동력'과 '전략'(성령의 권능과 점진적 확장)을, 요한은 '신학적 기초'(삼위일체적 선교에의 참여)를 강조한다. 온전한 선교 신학은 이 모든 측면을 통합해야 한다.
제4부: 사도적 선교: 실행된 위임 명령
이 부분에서는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기록된 대로, 초대 교회가 지상명령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행에 옮겼는지를 탐구한다.
제4.1절: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권능을 입은 증언
세계 선교의 시작으로서의 오순절
사도행전은 누가복음 24장 49절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자, 그 즉각적인 결과는 바벨탑의 저주를 역전시키는 다국어 복음 선포였다. 이 사건은 사도들이 증인의 사명을 시작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했다.
오순절은 교회 선교의 엔진이다. 성령은 선교가 전진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담대함, 심지어 전략까지 제공한다. 사도행전 전체는 성령의 인도 아래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성령의 전략적 인도
성령은 선교의 주된 행위자이자 감독이다. 성령은 빌립을 에티오피아 내시에게로 인도하고(행 8장),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에게 보내며(행 10장), 바울과 바나바를 첫 선교 여행을 위해 구별하여 세우고(행 13:2),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을 막고 마게도냐로 방향을 틀게 하신다(행 16:6-10).
사도들의 선교는 인간이 고안한 전략이 아니라 성령이 이끄시는 운동이었다. 교회의 역할은 성령의 주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는 '미시오 데이'가 삼위일체의 제3격을 통해 계속됨을 보여준다.
제4.2절: 바울의 패러다임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바울의 소명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극적인 회심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구체적인 사명을 위한 하나님의 소명으로 이해했다 (갈라디아서 1:15-16). 그는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로 여겼으며, 복음을 전해야 할 신적인 의무감을 느꼈다 (로마서 1:14). 그의 선교 여행들은 이 소명의 실천적 결과물이었다.
바울은 이방인 선교의 신학적, 실천적 선봉장 역할을 했다. 그는 이방인들이 모세 율법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포함된다는 결정적인 논증을 제공했다.
바울 선교의 신학적 기반
바울의 신학은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 그의 핵심 신학 사상들은 모두 선교와 연결된다. 이방인을 포함시키는 근거로서의 이신칭의(로마서, 갈라디아서), 이방인의 포함 자체가 복음의 신비라는 개념(에베소서 3장),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화해(골로새서 1장), 그리고 심지어 이방인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질투를 유발하여 그들의 구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략적 동기까지(로마서 11:11-14, 25) 그의 선교 신학을 구성한다. 특히 회당에 소속되어 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즉 이방인들은 이 선교를 위한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
바울에게 선교는 부차적인 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음의 본질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은혜로, 믿음을 통해 구원하는 복음은 특정 민족이나 문화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결론: 미완의 과업과 현대 교회
본 연구는 창조 시의 보편적 위임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구심적 소명의 특수성을 거쳐, 그리스도 안에서의 중추적 성취, 그리고 마침내 성령의 권능을 입은 교회를 통해 발현된 보편적이고 원심적인 위임 명령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미시오 데이'의 장대한 흐름을 추적했다.
지상명령은 단순히 역사적 문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의 정체성과 목적을 규정하는 영속적인 헌장이다. 이 포괄적인 성경적 선교 신학은 현대 교회의 실천에 깊은 함의를 제공한다. 이는 교회가 다음과 같은 사명을 재확인하도록 촉구한다.
첫째, 하나님을 선교하시는 하나님으로 재인식해야 한다.
둘째, 교회의 정체성이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백성'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인간의 계획이 아닌 성령의 능력에 의존해야 한다.
넷째, 복음 선포(마가)와 제자 양육(마태) 모두를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한다.
다섯째, 분열된 세상에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화해의 공동체(에베소서)로 살아가야 한다.
여섯째, 이 선교는 왕이 다시 오셔서 그의 나라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세워질 때까지 계속되는 미완의 과업임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