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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계획의 부재: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는 계획 없음에 대한 변명인가?

'망대를 세울 때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않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철저한 계획과 준비는 믿음 없는 행동이 아니라 지혜로운 청지기의 의무입니다. '주님이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은 치밀한 사업 계획과 재무 예측을 세우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계획은 하나님이 주신 지성을 사용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주제 17: 계획의 부재: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는 계획 없음에 대한 변명인가?

Topic 17: The Absence of a Plan: Is 'The Lord Will Provide' an Excuse for Having No Plan?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서론: '믿음'이라는 이름의 무책임
교회에서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기획 회의가 열립니다. 한 청년이 행사 예산, 세부 일정, 그리고 역할 분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제시합니다. 바로 그때, 회의를 주관하던 리더가 온화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형제님, 너무 인간적인 계획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맙시다. 우리는 그저 믿고 기도하면 됩니다. 주님이 다 알아서 채워주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말에 다른 사람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행사는 준비 부족과 혼선 속에서 겨우 치러지고,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불편함을 안고 돌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신앙 공동체와 비즈니스 현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계획의 부재' 문제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주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믿음을, 마땅히 해야 할 '인간의 책임 있는 계획'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한 영적인 변명으로 사용합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마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믿음 없는 행위처럼 여기고, 아무런 준비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온전한 맡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합니다.

이 글은 이처럼 '믿음'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무책임'과 '나태함'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성경이 결코 우리에게 아무 생각 없이 살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오히려 누구보다 더 지혜롭고 철저하게 계획하라고 명령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나아가,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가장 확실한 통로가 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신실한 청지기의 자세인지를 구체적인 원리와 방향을 통해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를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깨워, '주님과 함께 계획하고 실행하는' 성숙한 동역자로 세워갈 것입니다.

1. Who (누가) '계획 없음'을 믿음으로 포장하는가?
계획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이를 신앙적인 언어로 정당화하는 태도는 특정 유형의 리더와 개인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첫째, '즉흥적이고 비전을 중시하는 리더' 가 이러한 경향을 보입니다. 이들은 큰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에는 서툴거나 싫증을 느낍니다. 이들은 자신의 이러한 기질적인 약점을 "나는 성령의 즉각적인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인다"는 식의 영적인 언어로 포장하곤 합니다. 계획은 창의성을 제한하고 성령의 역사를 막는 인위적인 틀이라고 생각하며, 체계적인 준비보다는 즉흥적인 열정과 순발력에 의존하여 일을 처리하려 합니다.

둘째, '실패를 두려워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 은 계획 없음을 선호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그 계획에 따른 명확한 '목표'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만약 계획대로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을 때, 그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그러나 애초에 계획이 없다면, 실패하더라도 "원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보다"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들에게 '계획 없음'은 실패의 부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안전한 도피처 역할을 합니다.

셋째, '단순히 게으르거나 무능한 사람' 이 자신의 부족함을 신앙으로 위장합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지적인 노동입니다. 시장을 조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여러 대안을 비교 검토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문서로 정리하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은 게으름이, "기도만 하면 된다"는 편리한 신앙의 외투를 입는 것입니다. 혹은,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무능하면서도, 그 무능을 인정하기 싫어 영적인 신념의 문제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말은 때로는 순수한 믿음의 고백일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즉흥적인 자신의 기질을 정당화하고,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며,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을 숨기기 위한 매우 편리하고 그럴듯한 '영적인 변명'으로 사용될 위험이 큽니다.

2. What (무엇이) '계획'에 대한 성경적 이해의 핵심인가? -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파트너십
계획을 세우는 것이 믿음 없는 행위라는 오해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진리를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둘이 서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파트너십 관계'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계획'의 가치

많은 사람들이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마 6:34)는 예수님의 말씀을 계획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을 경고하는 것이지, 미래를 위한 '준비'와 '계획'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지혜로운 계획의 중요성을 곳곳에서 강조합니다.

계획은 지혜의 열매다: 잠언은 "지혜로운 자는 장래를 예비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도 망대를 세우려는 사람이 먼저 앉아서 비용을 계산해보고(눅 14:28), 전쟁에 나가는 임금이 승산이 있는지 먼저 헤아려본다는 비유를 통해, 계획 없는 행동의 어리석음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계획은 성실한 청지기의 의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과 지성, 시간과 자원을 주셨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선물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그분의 영광을 위해 최선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청지기로서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계획 없이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주인의 것을 낭비하는 악한 청지기의 모습입니다.

핵심 원리: '사람의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의 조화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는 잠언 16장 9절의 말씀은, 이 주제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균형 잡힌 신학적 원리를 제공합니다.

1단계: 인간의 책임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이것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로봇처럼 수동적으로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주신 지성과 창의력을 총동원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의 길을 '계획하기를' 기대하십니다.

2단계: 하나님의 주권 -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가 세운 계획이 최종적인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그 계획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겸손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을 성취시키시고, 때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더 좋은 길로 수정하여 인도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계획'과 '믿음'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철저한 계획은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실 수 있는 '구체적인 경로'를 제공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계획 없이 가만히 서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실 '걸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 계획하고 그 계획을 따라 '걷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 걸음 위에 개입하셔서 방향을 트시고, 속도를 조절하시며, 마침내 그분의 선하신 목적지에 이르게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믿음은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세운 불완전한 계획조차도 선하게 사용하셔서 결국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3. When (언제) '계획 없음'에 대한 유혹은 가장 강렬해지는가?
최선을 다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원칙을 알면서도, 현실 속에서는 계획을 세우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싶은 강력한 유혹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첫째, '문제의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할 때' 우리는 계획 세우기를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거대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압도감을 느끼고思考를 멈추게 됩니다. 이때 "이건 내 힘으로 계획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적만이 해결책이다"라고 생각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분석과 전략 수립의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게 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먼저 밤에 몰래 성벽을 정찰하고(현상 분석), 각 가문별로 공사 구간을 할당하는(업무 분장) 치밀한 계획을 세웠으며, 그 계획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둘째, '미래가 너무 불확실하여 예측이 불가능해 보일 때' 우리는 계획의 무용론에 빠집니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몇 달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앞에서, "어차피 계획을 세워봐야 그대로 되지도 않을 텐데, 계획 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회의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계획의 진정한 가치는 미래를 100% 예측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가 가진 자원과 약점을 파악하고, 발생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에 대해 미리 대비하며, 조직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훈련의 과정입니다. 좋은 계획은 돌에 새겨진 지도가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계속해서 수정하고 업데이트하는 살아있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셋째,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고 싶어집니다. 정직하게 사업 계획을 세우다 보면, 우리의 아이디어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 부족한 자금, 비현실적인 목표 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차라리 "믿음으로 하면 된다"는 막연한 긍정주의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마음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것처럼,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 상태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분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문제의 복잡성, 미래의 불확실성, 그리고 불편한 진실과의 마주함은, 우리로 하여금 계획이라는 힘든 수고를 피하고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영적인 안개 속으로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강력한 유혹입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러한 '반(反)계획주의' 문화는 비롯되는가?
계획과 전략, 시스템과 같은 체계적인 접근을 불신하고, 즉흥적인 감동과 신비적인 체험을 더 우위에 두는 문화는 어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원천은 '성경 구절에 대한 문자적이고 편협한 해석' 입니다. 앞서 언급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외에도, "너희의 총명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사람의 계획은 무너져도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선다"(잠 19:21)와 같은 구절들을, 인간의 모든 계획과 노력을 부정하는 의미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의 핵심 메시지는 '계획하지 말라'가 아니라, '너의 계획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지성과 계획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궁극적인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겸손'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균형 잡힌 해석 없이 특정 구절만 문자적으로 취사선택할 때, 신앙은 현실과 동떨어진 반(反)지성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두 번째 원천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즉흥적인 감동'과 동일시하는 경향입니다. 물론 성령님은 때로 우리의 계획을 뛰어넘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또한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이성과 지성을 사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고 계획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성령 충만'을, 아무런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비이성적인 상태로 오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분의 지혜를 구하며 누구보다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며, 동시에 자신의 계획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영적인 유연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 번째 원천은 '성공한 리더들의 간증에 대한 오해' 입니다. 성공한 크리스천 리더들이 "저는 아무 계획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다 인도해주셨습니다"라고 간증하는 것을 들을 때, 우리는 종종 그 말의 이면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이 '계획이 없었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세운 계획대로가 아니라,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방식으로 일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일 때가 많습니다.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준비했던 시간들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간증의 드라마틱한 결과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이면에 숨겨진 성실한 과정과 준비를 간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성경에 대한 오해, 성령의 역사에 대한 편협한 이해, 그리고 성공 간증의 이면을 보지 못하는 순진함이 결합하여, 체계적인 계획을 불신하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려는 '반(反)계획주의'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5. Why (왜) '계획 없음'은 최악의 불신앙인가?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고 말하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최악의 불신앙'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주신 '지성(Reason)'이라는 선물을 멸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 없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로 만들지 않으시고, 당신의 형상을 따라 생각하고, 분석하고, 추론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이 고귀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계획 세우기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을 땅에 던져 버리며 "나는 이런 것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교만하고 무례한 행위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할 제목'을 드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업을 축복해주세요"라는 막연한 기도는, 구체적인 행동 계획이 없을 때 공허한 외침으로 그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저희가 이번 분기에 신제품 출시를 위해 이러한 마케팅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 계획의 부족한 부분을 지혜로 채워주시고, 우리가 만나야 할 핵심 파트너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강력해집니다. 계획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기도의 지도' 역할을 합니다.

셋째, 함께 일하는 동료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계획을 세우지 않을 때, 그 혼란과 비효율의 대가는 고스란히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전가됩니다. 직원들은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되며, 불필요한 야근과 감정 소모에 시달리게 됩니다. 고객들은 약속된 시간에 제대로 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지 못해 피해를 봅니다. 이처럼 계획의 부재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책임'이며, 함께하는 이웃의 시간과 에너지를 존중하지 않는 '사랑 없음'의 표현입니다.

결론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성을 멸시하고, 구체적인 기도를 포기하며, 이웃에 대한 사랑의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이기에, 이는 결코 좋은 믿음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 모두를 기만하는 깊은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6. How (어떻게) '믿음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믿음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계획의 전 과정을 '기도'로 덮으라 (Prayerful Planning)

계획은 기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구체적인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계획 전의 기도 (Prayer before Planning): 계획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비전과 동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점검합니다. 우리의 계획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나의 야망인지, 하나님의 영광인지를 분별하며, 지혜를 구하는 기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습니다.

계획 중의 기도 (Prayer during Planning):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 이 상황에서 주님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어떤 결정이 가장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요?"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성령의 조명을 구합니다.

계획 후의 기도 (Prayer after Planning): 최선을 다해 세운 계획안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며, "주님, 이것이 저희의 최선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은 저희의 생각보다 높으십니다. 이 계획을 주님의 손에 맡기오니, 주님의 뜻대로 더하시고 빼시며,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결과를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합니다.

방법론 2: 세상의 'SMART 목표'를 넘어 'FAITH 목표'를 세우라

세상에서 널리 쓰이는 SMART(구체적, 측정 가능, 달성 가능, 관련성, 시간제한) 목표 설정 방식은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크리스천은 여기에 영적인 차원을 더한 'FAITH'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Faithful (신실한): 이 목표는 성경의 원칙과 우리의 소명에 '신실한' 것인가?

Audacious (담대한): 이 목표는 우리를 안주하게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담대한' 도전으로 이끄는가?

Inspirational (영감을 주는): 이 목표는 우리 팀원들에게 돈을 넘어선 '영감'과 사명감을 주는가?

Transformational (변혁적인): 이 목표는 우리 자신과 고객, 그리고 사회를 선하게 '변혁'시키는 힘이 있는가?

Honoring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 모든 과정과 결과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가?

방법론 3: '견고한 계획'과 '영적 유연성'의 균형을 유지하라

철저한 계획은 우리를 옭아매는 감옥이 아니라,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 최상의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와 여러 변수들을 미리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응 계획(Contingency Plan)을 세워 둡니다.

유연한 실행: 계획은 한 번 세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행 과정에서 얻는 피드백을 통해 끊임없이 수정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입니다. 계획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목표에 대한 집중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인'에 민감하라: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그것을 무조건적인 실패로 규정하지 말고, 혹시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사인'은 아닌지 기도하며 분별하는 영적인 민감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방향 제시: '하나님의 꿈'을 설계하는 '신실한 건축가'

궁극적으로 크리스천 리더는, 아무런 청사진 없이 막연히 "하나님이 집을 지어주시겠지"라고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는 '꿈'을, 이 땅 위에 실현 가능한 '설계도'로 그려내는 '신실한 건축가'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지혜를 의지하여 가장 정교하고 튼튼한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리고 그 설계도를 따라 땀 흘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립니다. 때로 비바람이 불어와 설계도를 수정해야 할 때도 있고, 예상치 못한 암반을 만나 공사가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는 최종 건축가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묵묵히 우리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말은 계획 없는 자의 변명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계획하고 실행하는 자가 모든 과정과 결과를 겸손히 하나님께 맡기며 드리는 위대한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주제 17: 계획의 부재: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는 계획 없음에 대한 변명인가?

Topic 17: The Absence of a Plan: Is 'The Lord Will Provide' an Excuse for Having No Plan?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서론: '믿음'이라는 이름의 무책임
교회에서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기획 회의가 열립니다. 한 청년이 행사 예산, 세부 일정, 그리고 역할 분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제시합니다. 바로 그때, 회의를 주관하던 리더가 온화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형제님, 너무 인간적인 계획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맙시다. 우리는 그저 믿고 기도하면 됩니다. 주님이 다 알아서 채워주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말에 다른 사람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행사는 준비 부족과 혼선 속에서 겨우 치러지고,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불편함을 안고 돌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신앙 공동체와 비즈니스 현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계획의 부재' 문제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주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믿음을, 마땅히 해야 할 '인간의 책임 있는 계획'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한 영적인 변명으로 사용합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마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믿음 없는 행위처럼 여기고, 아무런 준비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온전한 맡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합니다.

이 글은 이처럼 '믿음'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무책임'과 '나태함'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성경이 결코 우리에게 아무 생각 없이 살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오히려 누구보다 더 지혜롭고 철저하게 계획하라고 명령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나아가,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가장 확실한 통로가 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신실한 청지기의 자세인지를 구체적인 원리와 방향을 통해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를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깨워, '주님과 함께 계획하고 실행하는' 성숙한 동역자로 세워갈 것입니다.

1. Who (누가) '계획 없음'을 믿음으로 포장하는가?
계획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이를 신앙적인 언어로 정당화하는 태도는 특정 유형의 리더와 개인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첫째, '즉흥적이고 비전을 중시하는 리더' 가 이러한 경향을 보입니다. 이들은 큰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에는 서툴거나 싫증을 느낍니다. 이들은 자신의 이러한 기질적인 약점을 "나는 성령의 즉각적인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인다"는 식의 영적인 언어로 포장하곤 합니다. 계획은 창의성을 제한하고 성령의 역사를 막는 인위적인 틀이라고 생각하며, 체계적인 준비보다는 즉흥적인 열정과 순발력에 의존하여 일을 처리하려 합니다.

둘째, '실패를 두려워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 은 계획 없음을 선호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그 계획에 따른 명확한 '목표'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만약 계획대로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을 때, 그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그러나 애초에 계획이 없다면, 실패하더라도 "원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보다"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들에게 '계획 없음'은 실패의 부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안전한 도피처 역할을 합니다.

셋째, '단순히 게으르거나 무능한 사람' 이 자신의 부족함을 신앙으로 위장합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지적인 노동입니다. 시장을 조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여러 대안을 비교 검토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문서로 정리하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은 게으름이, "기도만 하면 된다"는 편리한 신앙의 외투를 입는 것입니다. 혹은,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무능하면서도, 그 무능을 인정하기 싫어 영적인 신념의 문제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말은 때로는 순수한 믿음의 고백일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즉흥적인 자신의 기질을 정당화하고,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며,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을 숨기기 위한 매우 편리하고 그럴듯한 '영적인 변명'으로 사용될 위험이 큽니다.

2. What (무엇이) '계획'에 대한 성경적 이해의 핵심인가? -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파트너십
계획을 세우는 것이 믿음 없는 행위라는 오해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진리를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둘이 서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파트너십 관계'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계획'의 가치

많은 사람들이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마 6:34)는 예수님의 말씀을 계획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을 경고하는 것이지, 미래를 위한 '준비'와 '계획'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지혜로운 계획의 중요성을 곳곳에서 강조합니다.

계획은 지혜의 열매다: 잠언은 "지혜로운 자는 장래를 예비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도 망대를 세우려는 사람이 먼저 앉아서 비용을 계산해보고(눅 14:28), 전쟁에 나가는 임금이 승산이 있는지 먼저 헤아려본다는 비유를 통해, 계획 없는 행동의 어리석음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계획은 성실한 청지기의 의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과 지성, 시간과 자원을 주셨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선물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그분의 영광을 위해 최선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청지기로서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계획 없이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주인의 것을 낭비하는 악한 청지기의 모습입니다.

핵심 원리: '사람의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의 조화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는 잠언 16장 9절의 말씀은, 이 주제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균형 잡힌 신학적 원리를 제공합니다.

1단계: 인간의 책임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이것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로봇처럼 수동적으로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주신 지성과 창의력을 총동원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의 길을 '계획하기를' 기대하십니다.

2단계: 하나님의 주권 -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가 세운 계획이 최종적인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그 계획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겸손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을 성취시키시고, 때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더 좋은 길로 수정하여 인도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계획'과 '믿음'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철저한 계획은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실 수 있는 '구체적인 경로'를 제공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계획 없이 가만히 서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실 '걸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 계획하고 그 계획을 따라 '걷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 걸음 위에 개입하셔서 방향을 트시고, 속도를 조절하시며, 마침내 그분의 선하신 목적지에 이르게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믿음은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세운 불완전한 계획조차도 선하게 사용하셔서 결국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3. When (언제) '계획 없음'에 대한 유혹은 가장 강렬해지는가?
최선을 다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원칙을 알면서도, 현실 속에서는 계획을 세우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싶은 강력한 유혹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첫째, '문제의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할 때' 우리는 계획 세우기를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거대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압도감을 느끼고思考를 멈추게 됩니다. 이때 "이건 내 힘으로 계획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적만이 해결책이다"라고 생각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분석과 전략 수립의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게 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먼저 밤에 몰래 성벽을 정찰하고(현상 분석), 각 가문별로 공사 구간을 할당하는(업무 분장) 치밀한 계획을 세웠으며, 그 계획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둘째, '미래가 너무 불확실하여 예측이 불가능해 보일 때' 우리는 계획의 무용론에 빠집니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몇 달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앞에서, "어차피 계획을 세워봐야 그대로 되지도 않을 텐데, 계획 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회의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계획의 진정한 가치는 미래를 100% 예측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가 가진 자원과 약점을 파악하고, 발생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에 대해 미리 대비하며, 조직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훈련의 과정입니다. 좋은 계획은 돌에 새겨진 지도가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계속해서 수정하고 업데이트하는 살아있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셋째,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고 싶어집니다. 정직하게 사업 계획을 세우다 보면, 우리의 아이디어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 부족한 자금, 비현실적인 목표 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차라리 "믿음으로 하면 된다"는 막연한 긍정주의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마음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것처럼,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 상태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분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문제의 복잡성, 미래의 불확실성, 그리고 불편한 진실과의 마주함은, 우리로 하여금 계획이라는 힘든 수고를 피하고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영적인 안개 속으로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강력한 유혹입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러한 '반(反)계획주의' 문화는 비롯되는가?
계획과 전략, 시스템과 같은 체계적인 접근을 불신하고, 즉흥적인 감동과 신비적인 체험을 더 우위에 두는 문화는 어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원천은 '성경 구절에 대한 문자적이고 편협한 해석' 입니다. 앞서 언급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외에도, "너희의 총명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사람의 계획은 무너져도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선다"(잠 19:21)와 같은 구절들을, 인간의 모든 계획과 노력을 부정하는 의미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의 핵심 메시지는 '계획하지 말라'가 아니라, '너의 계획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지성과 계획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궁극적인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겸손'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균형 잡힌 해석 없이 특정 구절만 문자적으로 취사선택할 때, 신앙은 현실과 동떨어진 반(反)지성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두 번째 원천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즉흥적인 감동'과 동일시하는 경향입니다. 물론 성령님은 때로 우리의 계획을 뛰어넘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또한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이성과 지성을 사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고 계획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성령 충만'을, 아무런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비이성적인 상태로 오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분의 지혜를 구하며 누구보다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며, 동시에 자신의 계획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영적인 유연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 번째 원천은 '성공한 리더들의 간증에 대한 오해' 입니다. 성공한 크리스천 리더들이 "저는 아무 계획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다 인도해주셨습니다"라고 간증하는 것을 들을 때, 우리는 종종 그 말의 이면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이 '계획이 없었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세운 계획대로가 아니라,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방식으로 일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일 때가 많습니다.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준비했던 시간들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간증의 드라마틱한 결과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이면에 숨겨진 성실한 과정과 준비를 간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성경에 대한 오해, 성령의 역사에 대한 편협한 이해, 그리고 성공 간증의 이면을 보지 못하는 순진함이 결합하여, 체계적인 계획을 불신하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려는 '반(反)계획주의'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5. Why (왜) '계획 없음'은 최악의 불신앙인가?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고 말하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최악의 불신앙'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주신 '지성(Reason)'이라는 선물을 멸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 없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로 만들지 않으시고, 당신의 형상을 따라 생각하고, 분석하고, 추론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이 고귀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계획 세우기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을 땅에 던져 버리며 "나는 이런 것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교만하고 무례한 행위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할 제목'을 드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업을 축복해주세요"라는 막연한 기도는, 구체적인 행동 계획이 없을 때 공허한 외침으로 그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저희가 이번 분기에 신제품 출시를 위해 이러한 마케팅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 계획의 부족한 부분을 지혜로 채워주시고, 우리가 만나야 할 핵심 파트너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강력해집니다. 계획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기도의 지도' 역할을 합니다.

셋째, 함께 일하는 동료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계획을 세우지 않을 때, 그 혼란과 비효율의 대가는 고스란히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전가됩니다. 직원들은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되며, 불필요한 야근과 감정 소모에 시달리게 됩니다. 고객들은 약속된 시간에 제대로 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지 못해 피해를 봅니다. 이처럼 계획의 부재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책임'이며, 함께하는 이웃의 시간과 에너지를 존중하지 않는 '사랑 없음'의 표현입니다.

결론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성을 멸시하고, 구체적인 기도를 포기하며, 이웃에 대한 사랑의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이기에, 이는 결코 좋은 믿음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 모두를 기만하는 깊은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6. How (어떻게) '믿음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믿음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계획의 전 과정을 '기도'로 덮으라 (Prayerful Planning)

계획은 기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구체적인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계획 전의 기도 (Prayer before Planning): 계획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비전과 동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점검합니다. 우리의 계획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나의 야망인지, 하나님의 영광인지를 분별하며, 지혜를 구하는 기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습니다.

계획 중의 기도 (Prayer during Planning):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 이 상황에서 주님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어떤 결정이 가장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요?"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성령의 조명을 구합니다.

계획 후의 기도 (Prayer after Planning): 최선을 다해 세운 계획안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며, "주님, 이것이 저희의 최선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은 저희의 생각보다 높으십니다. 이 계획을 주님의 손에 맡기오니, 주님의 뜻대로 더하시고 빼시며,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결과를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합니다.

방법론 2: 세상의 'SMART 목표'를 넘어 'FAITH 목표'를 세우라

세상에서 널리 쓰이는 SMART(구체적, 측정 가능, 달성 가능, 관련성, 시간제한) 목표 설정 방식은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크리스천은 여기에 영적인 차원을 더한 'FAITH'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Faithful (신실한): 이 목표는 성경의 원칙과 우리의 소명에 '신실한' 것인가?

Audacious (담대한): 이 목표는 우리를 안주하게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담대한' 도전으로 이끄는가?

Inspirational (영감을 주는): 이 목표는 우리 팀원들에게 돈을 넘어선 '영감'과 사명감을 주는가?

Transformational (변혁적인): 이 목표는 우리 자신과 고객, 그리고 사회를 선하게 '변혁'시키는 힘이 있는가?

Honoring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 모든 과정과 결과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가?

방법론 3: '견고한 계획'과 '영적 유연성'의 균형을 유지하라

철저한 계획은 우리를 옭아매는 감옥이 아니라,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 최상의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와 여러 변수들을 미리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응 계획(Contingency Plan)을 세워 둡니다.

유연한 실행: 계획은 한 번 세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행 과정에서 얻는 피드백을 통해 끊임없이 수정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입니다. 계획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목표에 대한 집중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인'에 민감하라: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그것을 무조건적인 실패로 규정하지 말고, 혹시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사인'은 아닌지 기도하며 분별하는 영적인 민감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방향 제시: '하나님의 꿈'을 설계하는 '신실한 건축가'

궁극적으로 크리스천 리더는, 아무런 청사진 없이 막연히 "하나님이 집을 지어주시겠지"라고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는 '꿈'을, 이 땅 위에 실현 가능한 '설계도'로 그려내는 '신실한 건축가'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지혜를 의지하여 가장 정교하고 튼튼한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리고 그 설계도를 따라 땀 흘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립니다. 때로 비바람이 불어와 설계도를 수정해야 할 때도 있고, 예상치 못한 암반을 만나 공사가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는 최종 건축가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묵묵히 우리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말은 계획 없는 자의 변명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계획하고 실행하는 자가 모든 과정과 결과를 겸손히 하나님께 맡기며 드리는 위대한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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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элхийн Интернэт Номлолын Нийгэмлэг (SWIM) нь 1996 онд байгуулагдсан номлогчийн байгууллага бөгөөд 20 гаруй жилийн турш интернет болон мэдээллийн технологийн тусламжтайгаар дэлхийн номлолд хувь нэмрээ оруулсаар ирсэ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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